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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적의 사제-93화 (93/18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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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눈에서 위엄을 뿜어대는 가르티안을 보고 돌아온 1왕자 알트란 드 메조른은 소파에 털썩 앉으며 손으로 얼굴을 쓸어내렸다.

“정정하시더군. 몸의 근육이 전성기 못지않았다.”

“저, 정말 왕께서 살아나셨단 말입니까?”

알로호모라 추기경은 도저히 믿을 수 없는 사실에 현실을 부정하고 싶었다.

알트란은 알로호모라 추기경을 죽일 듯이 노려보았다.

“분명 추기경은 전하께서 올가을을 넘기지 못한다고 하였다.”

“그, 그렇습니다! 왕께서는 분명 올가을을 넘기지 못하셔야 했습니다! 그건 저뿐만 아니라…….”

“듣기 싫다! 그 입 다물라!”

입을 다문 알로호모라 추기경은 알트란의 눈치를 보았다.

“샤락이 폐위된 것은 경축할 일이나, 아바마마께서 정정해지셨으니…… 하! 이러다 아바마마보다 내가 먼저 귀천할 것 같지 않은가!”

쉰을 훌쩍 넘긴 나이였다.

어찌하여 왕이 먼저 죽는다고 해도, 그때쯤이면 자신도 60대를 넘길 터였고, 그리되면 자신은 영원이 왕이 될 수 없었다.

곧 죽을 왕을 추대할 바보 같은 귀족들은 없을 테니 말이다.

코앞까지 왔다가 저 멀리 도망가 버린 왕좌에 알트란은 미쳐 버릴 것 같았다.

“하아, 아바마마께서 시험을 치르신 거구나. 몸져누운 시늉을 하여 이 왕실에 역신이 될 이들을 추려 낸 것이었어!”

알트란은 몽블랑이 왕을 살렸다는 것을 생각하지 못했다.

세스타, 하급 사제라는 계급이 그의 눈을 가린 것이었다.

알트란은 그나마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장자승계원칙을 믿고 자신을 따르는 귀족들만 추스르고 다스리기만 했으니 가르티안의 심기를 어지럽히지 않은 것이었다.

“조금만 더 참을 것을…… 그리하였다면…….”

모든 역신을 골라 낸 가르티안은 스스로 상왕을 자처하며 왕좌에서 물러났을 것이다.

알로호모라 추기경을 노려보는 알트란의 눈은 상당히 매서웠다.

“추기경이 각 교단의 추기경들을 불러 모으자 하지 않았더라면 아바마마께선 이 내게 왕위를 물려주셨을 것이다!”

“예에? 아, 아니 그건…….”

“대륙 5대 교단의 추기경들이 왔는데 그 어떤 병자가 있어 일어나지 않을까! 결국 추기경이 나의 소망을 앗아 간 것이야! 내 눈 앞에서 썩 꺼져라! 당분간 보기 싫다!”

“저, 저하!”

알로호모라 추기경은 억울하고도 억울했다.

분명 가르티안은 올가을을 넘기지 못할 정도로 기력이 쇄약해져 있었다.

그건 거짓으로 꾸며 낼 수 있는 일이 아니었다.

‘설마 왕실엔 그렇게 위장할 수 있는 비법이 있는 것인가!’

알로호모라 추기경 역시 알트란과 같은 이유로 몽블랑을 의심하지 못하고 있었다.

왕궁에서 거대한 신성력의 발현을 느꼈으면서도 말이다.

‘일단, 세르큐리안을 만나야겠다. 만나서 단단히 따져 봐야겠어! 감히 이 몸을 속이다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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란탄은 만신창이 피투성이가 되어 의자에 묶여 있었다.

무기의 초월자, 일인군단이라 불리는 마스터가 되어야만 받을 수 있는 칭호인 이브아를 가르티안에게 직접 받았음에도, 그는 공포와 고통에 질려 바들바들 떨고 있었다.

“사, 살려 주시오, 백작. 아니, 단장! 내, 내가 모두 불겠소! 제, 제발 살려 주시오!”

왕실, 아니 왕국의 모든 정보를 손에 쥐고 있다는 서드아이는 오직 왕만이 어디에 있는지를 안다는 왕실 비밀의 정보단체였다.

란탄은 고문실에 나타난 라리우스 백작을 보고 본능적으로 그녀가 서드아이의 단장임을 알 수 있었다.

그게 아니라면 고작 하녀장 따위가, 여자가 역적을 고문하는 곳을 찾는 것도 모자라 저리 차가운 눈빛을 보내지 못할 테니 말이다.

“그 살려 달라는 것에 경도 포함되어 있나요?”

“아, 아니오. 내 가족들만 살려 주시오. 부, 부디 부인과 자식들이 역적이 되지 않게만 해 주시오! 부탁하오!”

“분수를 아니 다행이군요.”

라리우스 백작은 의자를 끌어다 그의 앞에 놓고 앉았다.

“어디 들어 볼까요? 폐위된 2왕자가 꾸몄던 일이 무엇인지. 당신의 가족이 살려면 상세히 말해야 할 것입니다.”

라리우스 백작의 눈은 날이 선 칼처럼 빛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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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놈 잡아라-!”

“몰아!”

용병처럼 가죽 갑옷을 입고 허리에 검을 찬 이들이 누군가에게 쫓기고 있었다.

그들은 샤락이 메조른 전역에서 불러 온 파벌의 기사들이었다.

절대 잡혀서는 안 되었다.

잡히는 순간 주군으로 모시는 귀족은 형장의 이슬로 사라지게 될 것이고, 자신의 가족들은 살아도 산 것이 아니게 될 터였다.

“빌어먹을, 란탄! 마스터라면 사지가 찢기는 한이 있더라도 입을 열지 말아야지!”

“닥치고 달리기나 해! 잡히면 우리만 죽는 게 아니야!”

“여덟 개 성문이 모두 폐쇄됐는데 어디로 가란 말이야!”

반역도당의 검거라는 명분에 성문이 닫혔고, 육천여 명의 기사는 왕도 방위군과 왕실 근위 기사단 등 메조르니아에 상주하는 모든 병력에 몰이사냥을 당해야 했다.

“제기랄! 여기서 헤어집시다! 모두 살아서 다시 만납시다!”

한 명의 기사가 옆 골목으로 빠져 버리자 다른 기사들은 이를 악물며 사방으로 흩어졌다.

절대 잡히면 안 되는 상황에서 뭉쳐 다니는 것은 잡아 달라는 말밖에 안 되었다.

‘부디 주군께서 우리의 사정을 알아주시기를…….’

사방팔방 흩어지는 기사들은 모시는 귀족이 메조르니아로 와서 구해 주기를 간절히 기도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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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뭔가 시끄럽네.”

몽블랑은 시끄러운 담장 너머에 눈살을 찌푸렸고, 그건 세베루스도 마찬가지였다.

“2왕자가 반역을 획책했다고 합니다.”

별관으로 들어오는 루카스의 말에 몽블랑과 세베루스는 미간을 좁혔다.

“이미 전하를 독살을 획책했던 것부터가 반역이오, 루카스 경.”

“그게 아니라 왕국 곳곳에서 병력을 끌어 올렸다고 합니다.”

몽블랑과 세베루스는 눈을 동그랗게 떴다.

몽블랑은 곧 얼굴을 일그러트렸다.

“그렇게 권력이, 왕좌가 좋은 걸까, 제 아비와 형을 죽여서라도 차지하고 싶을 만큼?”

“그래서 권력을 물든 자는 인간이 아니라고 하는 거지. 보통 인간은 생각할 수 없는 것을 태연히 해내니까.”

몽블랑은 이해하지 못하겠다는 듯이 고개를 저었다.

분명 누군가 나를 떠받들어 주고, 말 한마디에 설설 기는 모습은 짜릿했다.

하지만 그것이 제 핏줄까지 죽여서 얻을 만큼 대단한 것이라곤 생각할 수 없었다.

“난 평생 정치가는 못 될 것 같다.”

“넌 이미 훌륭한 정치가다. 다만, 선한 정치가라는 것이 다를 뿐이지.”

몽블랑은 얼굴을 일그러트렸다.

그가 가진 통념 속에서 정치가는 좋은 족속이 아니었기 때문이었다.

진절머리 난다는 듯이 혀를 찬 몽블랑은 일어섰다.

왕궁으로 가야 할 시간이었다.

“아, 오늘이 각 교단의 추기경들을 불러다 치하하는 날인가?”

“그렇지. 그것만 끝나면 더 이상 왕궁에 갈 필요는 없을 거야. 모든 귀족들이 모이는 그날까지 말이야.”

“어떻게든 왕궁에 들어가 보겠다고 기웃거리는 귀족들이 들으면 몰매 맞을 소리로군.”

“네가 갈래?”

“싫다! 그렇게 답답한 곳을 내가 왜 가!”

몽블랑은 순간 세베루스의 얼굴을 후려칠까 하는 유혹에 휩싸였지만, 애써 참아 냈다.

왕궁에서 보낸 마법 마차를 타고 왕의 침소가 있는 골드 그리폰 궁에 도착한 몽블랑은 자신이 제일 먼저 왔음을 알 수 있었다.

마침 집무실 같은 곳에서 나오던 가르티안은 몽블랑을 발견하곤 환한 미소로 맞이해 주었다.

“왔는가?”

“갈수록 젊어지십니다, 전하.”

“아닌게, 아니라 정말 젊어지고 있네. 여기 보이는가?”

몽블랑은 황망하게도 들이미는 머리통을 보곤 깜짝 놀랐다.

하얗게 센 백발 사이로 금발이 올라오고 있었기 때문이다.

피부도 팽팽하게 당겨지고 있어서, 얼마나 젊어질지 예측이 안 되었다.

“괜히 족보 꼬시면 안 됩니다.”

“푸헐헐헐헐! 예끼, 이 사람아, 농도 가려서 하게.”

가르티안은 몽블랑을 격의 없이 대하고 있었고, 그건 몽블랑도 마찬가지였다.

“이미 선례를 보았기 때문에 드리는 말입니다. 내년에 카쉬모프 자작가에서 늦둥이가 태어날 예정입니다.”

“어, 어쩐지 다시 선다 싶더니만! 오호, 그렇단 말이지…….”

남자로서의 자존심이 살아나니, 가르티안의 두 눈이 뜨거운 불덩어리를 머금기 시작했다.

“아, 그런데 카쉬모프 자작이 죽었던가?”

“집안 사정이지요.”

가르티안은 이해했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자, 자, 앉아서 추기경들이 오기 전까지 이야기나 좀 하세. 카우쉬카, 아니 카쉬모프 전역에서 일어나는 변혁의 이야기를 다 듣지 못했어. 여봐라, 의자를 가져 오너라!”

화려하게 꾸며진 큰 의자와 그보단 덜 화려하지만, 고작 의자로 치기에는 너무도 고가인 의자가 티 테이블과 함께 놓여졌다.

“감기 걸리지 않으시겠습니까?”

“이걸 보게나!”

가르티안은 소매를 걷어 우람한 팔뚝을 보여 주었다.

힘을 주어 구부리니 근육이 불뚝불뚝 꿈틀거렸다.

처진 피부 한 점 보이질 않으니, 얼굴만 노인으로 변장한 20대의 잘 단련된 기사와 같았다.

“벌써 가을이건만 하녀들의 부채질이 없으면 더워서 힘들 지경이네. 모두 자네의 잘못이야.”

“예, 예. 모두 제 잘못입죠.”

가르티안은 크게 웃음을 터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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