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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적의 사제-89화 (89/18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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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뭣이!”

바라모스 추기경뿐만이 아니라 다른 이들도 눈이 동그랗게 변하여 몽블랑을 바라봤다.

“그러는 추기경께서는 카만 님에 대해 잘 아십니까? 그 흔한 경전도 있는데 왜 예배 내용은 그딴 식인지 모르겠군요. 죄다 신의 찬양뿐이니…… 듣는 그분께서도 질려 귀를 닫으시겠습니다.”

“이노옴-! 지금 네놈이 본 교단을 능멸하는 것이냐!”

“누가 먼저 시작했는지 모르겠군요.”

몽블랑은 신성력을 깨우며 자신을 노려보는 바라모스의 모습에 지지 않겠다는 듯이 무심히 노려보았다.

“자자, 진정들 하시오. 전하의 건강을 논하는 자리오.”

알로호모라 추기경은 어색하게 웃으며 중재에 나섰다.

바깥에서 지키는 근위 기사들이 듣고 있다는 듯이 문을 바라보는 알로호모라 추기경의 눈빛에 바라모스 추기경은 혀를 차며 앉았고, 몽블랑은 알로호모라 추기경을 빤히 보다가 이내 시선을 돌리며 앉았다.

알로호모라 추기경은 그런 몽블랑을 보며 속으로 비웃고는 자리에서 일어섰다.

“전하께서는 올 가을을 넘기시지 못한다는 걸 다들 알고 있을 것이오. 각 교단의 주교들이 그리 진료하였으니 모를 리 없을 것이오.”

‘올 가을을 넘기지 못해?’

명이 얼마 남지 않았다지만 이렇게 짧을 줄 몰랐던 몽블랑은 미간을 좁히며 심각함을 드러냈다.

“피차 서로 불편한 관계들이니 바로 날짜를 정하도록 하겠소. 차례로 돌아가며 하루씩 하도록 합시다. 본인이 12시 방향이나 레이디 퍼스트로 세르큐리안부터 시계 방향으로 돌아가면서 합시다. 모두 괜찮소?”

“괜찮아요, 괜찮소. 맘대로 하시오.”

몽블랑은 뭔가 이상했지만, 순순히 대답하는 모습들에 어쩔 수 없이 동의를 해야 했다.

알로호모라 추기경이 레이디 퍼스트를 들고 나오니 차마 자신이 먼저 할 수 없다고 생각했다.

‘공평하지 않은 방법이면 무조건 태클을 걸어 주지!’

몽블랑은 알로호모라 추기경이 어떤 방식을 들고 나올지가 엄청 궁금해졌다.

그런 시선을 느낀 것인지 몽블랑을 보며 피식 웃어 준 알로호모라 추기경은 원탁 밑에서 위에 동그란 구멍이 뚫린 작은 나무 상자를 꺼냈다.

“날짜는 모두가 볼 수 있게 원탁 가운데로 밀어 주시오.”

몽블랑은 순간 눈을 부릅떴다.

‘빌어먹을, 당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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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되면 루나에게 기댈 수 없게 된다.

몽블랑은 미안해하는 세르큐리안을 보며 이를 악물었다.

몽블랑은 지금이라도 스톱을 외치고 싶었지만, 왠지 부질없다고 생각했다.

놀랐던 얼굴들이 곧 만족스러운 미소를 짓고 있었기 때문이다.

“잠깐, 공정성을 기하기 위해 모두가 내부를 확인해 보는 것은 어떤가요?”

몽블랑은 나직하게 이야기하는 세르큐리안을 놀란 눈으로 바라봤다.

“지금 이 몸을 의심하는 것이오, 세르큐리안?”

“작은 의심도 없애자는 것이죠. 왕의 죽음을 온전히 감당할 수 있도록요.”

둘러보는 세르큐리안의 시선에 추기경들은 잠시 생각하다가 타당성이 있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좋소, 얼마든지 확인해 보시오.”

세르큐리안은 구멍 안에 손을 넣어 여기저기 만져 보고 두드려 보고 안에서 뽑기로 쓰일 연속된 세 개의 숫자가 적인 황금판 조각을 꺼내 만져 보기까지 했다.

‘돈지랄을 하는구나.’

고개를 끄덕인 세르큐리안은 로네 마하트마에게 넘겼다.

몽블랑은 자신의 차례가 되자 정말 꼼꼼히 확인을 해 봤다.

하지만 별다른 이상은 없었다.

‘빌어먹을, 이러면 다른 교단이 왕의 사망일에 걸리기만을 바랄 수밖에 없는 건가!’

“날짜는 사흘씩 적혀 있소. 열 장을 뽑아 주시면 되오.”

달그락! 달그락!

뚫린 구멍 안으로 손을 넣은 세르큐리안은 열 장의 황금판 조각을 꺼냈었다.

그렇게 순번은 돌아 자신의 차례가 되었다.

‘제발 걸리지 마라! 카우트예 님, 제발 보살펴 주세요!’

몽블랑은 바라모스 추기경의 비릿한 미소에 작은 불안이 들었지만, 이내 서늘한 알로호모라 추기경의 말투에 정신이 번쩍 들었다.

“나를 따르던 아이가 신세를 졌다고 들었다.”

화르르륵!

‘우라질! 반트 몰록 대사제!’

알로호모라 추기경이 양손으로 받친 뽑기 통이 불타고 있었다.

‘아실리 주교가 썼던 세인트 파이어인가! 빌어먹을, 난 왜 저런 걸 안 주는 거야?’

밑바닥에 넘실거리며 올라와 뽑기 통을 감싼, 하얀색이 섞인 불꽃은 정말 뜨거워 보였다.

알로호모라 추기경은 뜨겁지도 않은지 뽑기 통을 몽블랑에게 내밀었다.

“뭐 하느냐, 어서 집지 않고.”

‘씨발, 넣었다가는 팔이 뭉개질 것 같은데 너 같으면 넣겠냐?’

화상을 입는 게 문제가 아니라 손을 넣었다가는 팔이 아작 나 버릴 것같이 알로호모라 추기경의 전신에선 신성력이 넘실거리고 있었다.

“지금 넣었다간 뜨거울 것 같으니 다 탄 후에나 집으렵니다.”

“성자란 이름이 울겠구나.”

“누가 그렇게 불러 달라고 했답니까?”

“네놈은 비겁하고 졸렬한 사기꾼…….”

파사삭! 짜라라랑!

그새 밑바닥이 다 타 버렸는지 황금판 조각들이 떨어져 내렸다.

“……흥! 밖에 누구 있느냐? 들어와서 날짜를 기입하여라!”

문이 열고 들어온 이는 놀랍게도 라리우스 백작이었다.

몽블랑은 놀랐지만, 일단 아는 척을 하지 않았다.

왕의 사망일에 걸린 추기경이 몽블랑과 그녀의 관계를 들먹이며 라리우스 백작이 잘못 기입했다 우길 수 있기 때문이었다.

그걸 아는 것인지 라리우스 백작도 몽블랑을 아는 척하지 않았다.

그녀는 각 추기경들의 앞에 놓인 황금판조각에 적힌 날짜를 기입하고는 문을 닫고 나갔다.

“다들 허튼 수는 쓰지 말길 바라오! 1왕자께선 이미 나를 지지해 주셨소이다! 그럼 모두 조심히 돌아가시오! 흥!”

알로호모라 추기경은 반 정도만 남은 뽑기 통을 몽블랑 앞에 던지고는 나가 버렸고, 추기경들도 일어섰다.

몽블랑은 끝까지 비웃고 있는 바라모스의 모습에 다음의 적은 카만이 될 것이라고 생각하였다.

‘빌어먹을, 내가 다치기 전에 친다! 너 목 씻고 기다려. 내가 이 동네에서 내쫓아 줄 테니까!’

“그럼 편히 들어가세요.”

“예, 세르큐리안, 아니 세르도요.”

배시시 웃어 준 세르큐리안이 나가자 몽블랑은 바닥에 뒹구는 황금판 조각을 바라보다 몸을 돌렸다.

‘내가 거지새끼도 아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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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궁을 나가지 않고 왕궁 내부를 걷던 알로호모라 추기경은 다시 몸을 돌려 왕의 치료일을 정했던 궁으로 돌아갔다.

원탁이 있는 문 앞에는 근위 기사 두 명이 지키고 서 있었다.

둘 중 한 명은 아커만의 아들, 로니에르였다.

“아무도 들어오지 못하게 하여라.”

“충!”

근위 기사는 상관과 왕족에게만 군례를 올려야 하는데 둘은 너무도 자연스럽게 알로호모라 추기경에게 군례를 올렸다.

왕궁의 소식을 알기 위해 키웠던 끄나풀들이 제 할 일을 다해 주자 만족스럽게 웃은 알로호모라 추기경은 문을 열고 들어갔는데, 그 안에는 놀랍게도 세르큐리안이 차를 마시고 있었다.

“난 그대가 먼저 내게 접근할 줄 몰랐소.”

왕도 메조르니아에 있는 지그문트 교단의 신전에 있을 때, 알로호모라 추기경은 어떤 전령에게서 숫자가 적힌 밀지를 받았다.

알로호모라 추기경은 그것이 왕의 사망일이라는 것을 깨닫고는 약속 날짜를 정하여 밀지를 들고 온 전령에게 돌려보냈다.

그리고 역시나 밀지를 보낸 이는 세르큐리안이었다.

“그는 너무 위험해요.”

알로호모라 추기경은 동감이라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율리나나 포비아는 자신들이 확고한 세를 이뤘다고 무시하는 것 같더군. 신의 말은 물과 바다를 가리지 않는데 말이오. 그런데 그대의 대모인 베아트리체는 이 사실을 알고 있소?”

“대모님은 영원히 모를 거예요.”

발설하면 가만두지 않겠다는 살의가 그녀의 두 눈을 가득 채우고 있었고, 알로호모라 추기경은 그럴 생각 없다는 듯 손을 저었다.

“기지가 놀랍더군요. 뽑기라니…… 바닥에 장치를 해 두었던 거죠?”

“이 세상엔 마법이 아니라 마술이라는 눈속임으로 돈을 버는 이들이 있더이다. 주로 사기꾼이란 놈들이 하는 짓인데…… 아, 걱정 마시오. 입은 영원히 열리지 않을 테니.”

“그럼 됐어요. 수고하세요.”

“벌써 가시려오?”

두 눈에 탐욕의 빛을 피워 올리던 알로호모라 추기경은 순간 심장을 압박하는 싸늘한 눈빛에 입을 다물었다.

세르큐리안은 정색하는 그를 보며 무심히 입을 열었다.

“더러운 생각 하지 마라, 태양의 노예야. 내가 존대를 해 주니 다른 창녀들과 똑같이 보이더냐. 약점을 잡았다 생각했다면 큰 오산이다.”

“크흠흠. 미안하오. 내가 주책을 부렸나 보오.”

“영원이 그 입 다무는 게 좋을 것이다. 태양의 노예는 아직도 많이 있다.”

콧방귀를 뀐 세르큐리안은 문을 열고 나가 버렸고, 남은 알로호모라 추기경은 이를 뿌득뿌득 갈았다.

“개 같은 년! 내가 교황이 되어서도 그리 고개를 뻣뻣이 세울 수 있는가 보자!”

탁자를 치며 일어난 알로호모라 추기경은 문을 거칠게 열고 나갔다.

알로호모라 추기경이 말 한마디 없이 떠나자 서로를 본 근위 기사들은 어깨를 으쓱이고는 몸을 돌렸다.

일이 끝났으니 더 이상 지키고 있을 이유가 없는 것이다.

“교대 시간이 되려면 멀었는데 로니에르, 넌 어떻게 할 거야?”

“저요? 라리우스 백작님께 가 봐야죠, 에휴.”

“크크큭, 또 예절 교육이야? 내가 아카데미에서부터 알아봤다. 그러게 예절 교육 잘 들으라니까. 어쩌다 그 마녀한테 찍혀서는…… 쯧쯧쯧.”

“끄응, 선배라 어떻게 칠 수도 없고…… 나중에 계급장 떼고 제대로 한판 붙읍시다!”

“네가 내 상관 되면! 하하하하하!”

그렇게 로니에르를 약 올린 근위 기사는 멀어졌고, 분노에 부들부들 떨던 로니에르의 얼굴은 순간 차갑게 가라앉았다.

미로 정원을 가로지르며 성큼성큼 걸은 로니에르는 어느 궁 앞에 서서 문을 두드렸다.

안에서 허락이 떨어지자 들어간 로니에르는 라리우스 백작을 향해 군례를 올렸다.

“생각보다 빨리 왔군요.”

“알로호모라와 세르큐리안은 계약을 한 관계였습니다, 단장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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