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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적의 사제-85화 (85/18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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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실리아의 생일 파티는 북부를 비롯하여 중부에서도 귀족들이 대거 몰려왔다.

북부의 지배자와 중부의 대귀족의 결합을 약속하는 약혼식까지 함께할 예정이었기에 그리들 많이 온 것이다.

왕실파의 귀족들이 속속들이 도착하면서 내성은 상당히 북적해졌다.

그 때문에 몽블랑과 루시아도 바빠져야 했다.

놀랍게도 카쉬모프의 성자란 호칭이 북부를 비롯해 중부까지 알려져 있었기 때문이다.

여기에는 카쉬모프 자작의 손길이 닿아 있었다.

몽블랑은 감춘다고 해서 감춰질 만한 존재가 아니었다.

주머니 속의 송곳처럼 분명 이름이 알려질 것이고, 그리되면 수많은 시련과 역경을 받아야 할 것이다.

그럴 바에는 차라리 자신이 배경을 자처해 숨길 것을 숨기면서, 보여야 할 것은 확실히 보여 주어 쉽사리 건드릴 수 없게 해야 했다.

그 때문에 부활을 제외한 몽블랑의 모든 업적은 낱낱이 밝혀졌고, 그 업적은 뒤로하더라도 철혈의 카쉬모프가 배경을 자처하니 귀족들은 호기심에라도 몽블랑과 이야기를 나누고 싶어 했다.

마루더즈의 부친인 알렉소 백작도 그에 동참해 있었다.

그걸 뿌리칠 수 없는 몽블랑은 생일 파티와 약혼식이 열리기 3시간 전까지 귀족들에게 시달려야 했다.

“푸, 이것도 못해 먹을 짓이네.”

세베루스는 단추를 풀어 헤치는 몽블랑을 보며 어이없어했다.

“얼씨구, 그런 놈이 귀족들을 그렇게 휘어잡았냐? 아주 네 이야기에 열광을 하더구먼.”

“아버님 눈치가 내 노하우를 전수해 주라는 것 같던데…… 아니었냐? 그래서 그랬다만.”

“큭, 알아차렸냐? 그래도 손해는 아니잖아. 너 확실히 그들에게 빚을 지워 준 거야. 벌써부터 네 연설문 복사해 간다고 아버지를 괴롭힌다더라.”

“그러니까 아무 말 안 하는 거잖아.”

귀족들은 몽블랑과의 대화를 통해 카우쉬카와 카쉬모프의 변화에 대해 보다 상세한 점들을 알게 되었다.

그것은 영지로 돌아가 바로 실행한다고 해도 무리 없을 정도로 확실한 노하우였다.

돈으로도 살 수 없는 그런 대단한 것을 몽블랑은 카쉬모프 자작의 지인, 같은 파벌이라는 이유로 대가 없이 알려 주었다.

대단한 사업 아이템보다는 그렇게 실패 없는 노하우가 그들에겐 더 절실히 필요한 것들이었고, 귀족들은 이야기 내내 대가를 바라지 않는 몽블랑의 모습에 감동하여 많은 것을 약속하였다.

지금은 카우트예보단 몽블랑 예거란 이름이 먼저 알려졌지만, 곧 카우트예도 들불처럼 퍼져 나갈 것이다.

“신소리 말고 주례문이나 외워.”

“……야, 솔직히 이건 오버다. 나 이제 스물네 살이야. 이렇게 젊은 놈이 약혼식 주례를 주관한다는 게 말이 되냐?”

“너희 교단에 사제라곤 너 한 명뿐이니 어쩔 수 있어? 어떻게, 지금이라도 다른 교단 불러올까? 지그문트?”

“……아나, 우리 신님은 왜 다른 사제를 내려 주시지 않는 걸까. 진짜 내가 과로사하길 바라는 걸까?”

“그럼 신상이라도 만들든가. 그 앞에서 기도하다가 사제 된 인간들이 가끔씩 있잖아. 물론 아주…….”

“안 그래도 만들고 있단다. 우리 신도들 무시하지 마라. 내가 뭐라고 안 해도 알아서 해 준다. 그래서 내가 미치지.”

세베루스의 눈에 비치는 몽블랑과 신도들은 서로 못해 줘서 안달 난 관계였다.

‘태풍이 불어닥쳐도 떨어지지 않을 사이. 이러니 무섭지.’

“머릿수가 15만이니 별의별 직종들이 다 있구나.”

“지금부터 머리를 정리하겠습니다. 움직이지 말아 주십시오.”

의자에 앉은 몽블랑과 세베루스는 허리를 편 채 정면만 바라보았다.

두 남성의 가위가 몽블랑과 세베루스의 머리칼을 잘랐다.

몽블랑은 주례문을 들어 달달 외우기 시작했다.

아주 중요한 행사다 보니 그들이 치장하는 데는 엄청난 시간이 걸렸다.

티끌이라도 묻혔다가는 너무 미안해질 정도로 하얀 법복을 입은 몽블랑은 전신 거울을 보며 한숨을 내뱉었다.

“내가 다시 이 짓거리를 하나 봐라.”

“포기해. 연로한 사제님이 나오기 전까지는 네가 해야 해. 오늘 이후로 북부와 중부 전체에 카우트예의 이름이 퍼질 거니…….”

세베루스는 얄밉게 웃었고, 몽블랑은 1시간 동안 정리한 저 머리를 헤집어 버리고 싶었다.

“시간이 되셨습니다. 식장으로 안내해 드리겠습니다.”

늙은 집사의 안내를 받으며 몽블랑과 세베루스는 식장 근처까지 걸어갔다.

연회장 근처에는 루시아가 있었는데, 몽블랑은 왜 귀족가의 남자들이 예쁜 여자를 에스코트하고 싶은지를 알 것만 같았다.

달빛 아래에서 빛나는 그녀는 너무도 아름다웠다.

그래서 세베루스에게 에스코트를 넘겨야 한다는 게 아쉬웠다.

“잘해라.”

“오냐. 가실까요, 레이디?”

“미, 미안해요, 블랑 오빠.”

“괜찮아. 난 사제로 참석하는 거고, 너는 카쉬모프의 방계이자 나이츠의 준 귀족으로 참석하는 거잖아. 세베루스, 너 허튼 마음 먹었다가는 죽는다.”

“걱정 마라. 레이디 카루트, 부디 저에게 당신을 에스코트할 수 있는 영광을 주시겠습니까?”

“……기꺼이.”

루시아는 몽블랑을 보며 망설이다 세베루스의 손에 자신의 손을 올렸다.

두 손이 포개지는 장면에 왠지 울컥한 몽블랑은 몸을 돌렸다.

‘나도 드디어 미쳤네. 욕구를 그렇게 풀었어도…… 니미럴.’

닫힌 연회장의 문의 앞에 선 몽블랑은 연미복을 입고 서 있는 젊은 청년을 바라봤다.

“카우트예 교단의 사제이신 몽블랑 예거 님께서 입장하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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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뭔 할 이야기가 이렇게 많은 건지.’

안으로 들어온 몽블랑은 귀족들에게 시달리고 있었다.

그들은 궁금한 점을 물었고, 몽블랑은 그에 아는 데까지 성심성의껏 답했다.

몽블랑은 카쉬모프 자작과 자작 부인이 들어온 뒤에야 겨우 풀려났고, 그제야 주위를 둘러볼 수 있었다.

귀족들이 배정된 의자에 앉는 것을 보던 몽블랑은 식장의 단상 뒤로 돌아가려다 두 번째 줄의 좌측 끝에 있는 지그문트 교단의 사제들을 발견할 수 있었다.

늙은 사제들 가운데 30대 초반의 중년인과 눈을 마주친 몽블랑은 그가 고개를 까딱이자 반사적으로 인사를 하였다.

두 번째 줄은 사제들만을 위한 줄이었다.

루나와 카만도 참석해 있었다.

주례 준비를 위해 단상 뒤로 돌아간 몽블랑은 방금 전 보았던 사제를 떠올렸다.

“아까 그가 아실리 주교인가? 정말 젊네.”

일반적으로 주교가 되는 나이는 40대 중반 정도다.

추기경은 거의 50대 후반에서 60대 초반이고, 교황은 60대 초반이다.

그런데도 그 나이에 주교가 됐다는 것은 그가 추기경이 될 재목이라는 소리밖에 안 되었다.

“그런 존재가 날 보자는 거지? 며칠 안에 볼 수 있으면 좋겠는데 말이야.”

“모두 일어서 좌측의 황금사자기를 봐 주십시오!”

“드디어 시작했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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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색의 드레스를 입은 신부가 입장하고, 검은색의 예복을 입은 마루더즈가 입장했다.

이 자리에 착석한 모든 귀족들은 몽블랑이 주례를 보는 것에 작은 불만도 없었다.

장난을 칠 수 없는 자리이기에 몽블랑은 경건히 주례문을 읊어 갔다.

“카우트예 님의 이름 아래 두 분의 사랑이 작은 결실을 맺었음을 선포합니다.”

짝짝짝짝짝!

세실리아와 마루더즈는 오른손 약지에 껴진 반지를 바라보다 서로를 응시하며 환하게 웃었다.

이렇게 식이 끝나고 사람들은 모두 연회장으로 안내되었다.

마찬가지로 바로 앞에 선 하인을 따라가던 몽블랑은 갑자기 그가 옆길로 새자 의아해하다가 순간 무언가를 깨닫고는 얼굴을 굳히며 뒤따랐다.

나무숲 사이의 작은 공터, 고작 하나 있는 벤치에 아실리 주교라는 선객이 있었다.

“전 오늘 저녁 늦게 만날 줄 알았습니다. 몽블랑 예거입니다.”

“그러면 걸릴 위험이 크지요. 아실리 보르테입니다. 앉으시겠습니까?”

몽블랑은 아실리 주교가 권하는 옆자리에 앉았다.

“피우십니까?”

“아뇨, 끊었습니다. 피우셔도 됩니다.”

“감사합니다.”

시거를 입에 문 아실리 주교는 ‘세인트 파이어’라는 신성 마법으로 불을 붙였다.

“끊으려 해도 끊을 수가 없더군요. 권력도 말입니다.”

“마치 마약과 같죠. 그러나 사람을 조금씩 좀먹어 가서 끝내 망가트립니다. 마치 선장도 모르게 서서히 침몰하는 배처럼…….”

“그래서 새로 배를 만들까 합니다. 수많은 사람들을 태우고 아버지의 낙원으로 무사히 항해할 커다랗고 튼튼한 배를 말입니다.”

“꽤나 힘드시겠군요.”

“누군가 도와준다면 쉬이 만들어질 것 같습니다.”

“늦었다는 생각은 드시지 않습니까?”

“누군가 그러더군요. 후회할 때가 가장 빠르다.”

“……쯧, 역시 이런 식의 말싸움은 저와 어울리지 않는군요.”

몽블랑은 더 이상의 탐색을 그만두자고 말하는 것이었다.

“신중하다는 것은 좋은 것이죠. 부탁드리겠습니다. 저희가 나무를 베어 배를 만들 수 있는 곳까지 데려다 주십시오.”

“제게 그럴 만한 힘이 있겠습니까? 저희 교단의 신도들은 세상의 가장 아래에 있습니다.”

“그 힘은 곧 생길 겁니다. 제가 교황으로 올리고자 하는 분의 반대에 있는 자가 예거 사제를 무너트리려 수작을 부렸습니다. 그는 이 나라에 온 본 교단의 추기경 알로호모라입니다.”

뜬금없는 말에 잠시 멍해졌던 몽블랑은 순간 아실리 주교의 멱살을 잡을 뻔했다.

“당신입니까?”

“예. 제가 당신의 예배 연설 영상과 업적들을 모두 보냈습니다.”

“잘도 뻔뻔히 지껄이는군요.”

“그래야 제가 꿈꾸는 세상이 다가오니까요. 죄송하지만, 지금 당신께 드릴 건 없습니다. 난 당신에게 기생할 겁니다.”

“……정말 뻔뻔하군요.”

“저는 아버지를 위하여 무엇이든 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내 위험은 모른 척하면서, 이득만 취하시겠다는 겁니까? 내가 허락할 거라고 봅니까?”

“약속하겠습니다. 제가 왕도에 입성하는 날, 지그문트는 카우트예와 함께할 것입니다.”

“당신은 배덕자로 기록될 것입니다.”

“배덕은 그들이 저지르고 있습니다. 저흰 처음부터 잘못된 길을 걸었습니다. 이제라도 바로 잡아야 합니다.”

아실리 주교는 부탁한다며 일어나 허리를 숙였고, 몽블랑은 된통 당했다며 이를 악물었다.

그러나 마냥 손해만은 아니었다.

아실리 주교와 동맹을 맺음으로써 그의 일파에 있는 사제들은 자신을 적대하지 않을 테니 말이다.

어찌 보면 다섯 교단이 모두 적이라 할 수 있는 상황이다.

적은 줄일수록 좋다.

“몇 개의 파벌이 있습니까.”

“이 메조른에는 저 그리고 알로호모라 추기경뿐입니다. 다른 파벌도 있긴 하지만 신경 쓰지 않으셔도 됩니다. 어차피 당신의 상대가 되지 않을 테니까요.”

철저히 몸을 숙이고 있겠다는 소리였다.

“빌어먹을, 역시 당신과는 친해질 수 없을 것 같습니다. 먼저 일어나죠.”

몽블랑은 신경질 적으로 공터를 빠져나갔고, 남은 아실리 주교는 그 등을 바라봤다.

“당신이라면 해낼 수 있을 겁니다, 신의 아들이여.”

아실리 주교는 어두운 밤하늘을 바라봤다.

“아버지, 나의 아버지. 오늘의 배덕을 용서하소서. 이는 당신께 드릴 영광이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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