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기적의 사제-83화 (83/18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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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갖 명화와 장식품으로 화려하게 꾸며진 방, 평민은 평생가도 꿈꿀 수 없는 보석과 금으로 치장된 옷을 입은 50대 중반의 배불뚝이 중년인은 쭉 찢어진 작은 눈으로 알로호모라 추기경을 보고 있었다.

“그러니까 나더러 병상에 누워 골골거리는 아바마마를 살릴 짓을 벌여라? 내가 왜 그래야 하는 거지, 추기경?”

가만히 있으면 왕위는 자연스럽게 이양될 것이다.

2왕자인 동생이 거슬리긴 했으나, 별다른 이유가 없는 한 왕위는 장자 승계 원칙에 따라야 했다.

“왕께선 절대 병상에서 일어나실 수 없습니다. 그건 왕자님께서도 아시지 않습니까.”

독이나 병이 아니라 노환으로 죽어 가고 있는 것이었다.

신이 아닌 이상 그 누가 온다고 해도 현왕 가르티안이 되살아날 확률은 없었다.

“그건 맞는 말이지만 그러다 만에 하나, 천만분에 하나로 아바마마께서 살아난다면? 추기경은 그걸 감당할 수 있나?”

“절대 일어나실 수 없습니다. 저뿐만이 아니라 나머지 네 교단의 추기경들이 그렇게 진단하였습니다. 천명입니다.”

“그래, 그 진단이라는 말이 나와서 하는 말인데, 아바마마께서 붕어하실 날은 얼마나 남았지?”

1왕자의 칭호를 받은 지 어언 40년의 세월이 흘렀다.

같은 시기에 왕자의 칭호를 받은 옆 나라의 왕자는 10년 전 부터 왕이었다.

“길어야 올 가을을 넘기지 못할 것입니다.”

“흐흐흐. 드디어 겨울이면 왕좌에 앉는 것인가. 정말 길고 긴 시간이었다. 내 왕이 되어도 절대 그대를 잊지 않겠다.”

“감사합니다. 하지만 왕자님, 왕자님에게는 아직 왕실파라는 큰 난적이 있사옵니다. 그들이 있는 한…….”

1왕자의 얼굴은 구겨진 종잇장처럼 일그러졌다.

자신이 왕이 된 순간 맞이할 가장 큰 적은 2왕자의 세력이 아니라 북부의 지배자 카쉬모프와 본프레레를 필두로 한 왕실파였다.

2왕자는 왕이 죽는 순간 대공의 직위를 받으며 변방으로 물러나야 할 것이다.

그들이 제동을 걸고 나서면 제아무리 왕이라고 하여도 마음대로 정책을 펼칠 수가 없다.

“북부는 지금 하루가 다르게 커지고 있습니다. 이대로 두고 본다면 왕자님께선 왕이 되어도 왕이 아니게 될 것입니다.”

알로호모라 추기경의 우려는 옳았다.

대대로 많은 왕이 왕실파라는 암초 때문에 제대로 된 힘을 쓰지 못했던 것이다.

흔들리는 1왕자를 보며 알로호모라 추기경은 쐐기를 박았다.

“카쉬모프 자작가는 현재 많은 정책을 펼치며 백성들의 신망과 돈을 천문학적으로 벌어들이고 있습니다. 더욱이 이번엔 중부의 대귀족 알렉소와 사돈 관계를 맺습니다. 그들의 영향력이 어디까지 커지고 뻗어 나갈지 예상할 수가 없습니다.”

현재도 카쉬모프 자작가는 어려운 상대지만, 중부의 알렉소 백작가까지 동참하게 된다면 희망은 없다고 봐야 했다.

“하나, 그들을 억제할 만한 방도가 없다!”

“방법은 있습니다.”

1왕자의 눈이 빛났다.

여태까지 알로호모라 추기경은 허언을 하지 않았으니, 분명 이번에도 방책이 있다고 믿는 것이다.

“카쉬모프 자작령엔 예전에 몰락했던 카우트예라는 교단이 신성으로 떠오르고 있다고 합니다. 사제라곤 겨우 한 명뿐이지만, 신도 수가 무려 15만이 넘는다고 합니다.”

지그문트 교단의 신도 수와 비슷한 숫자에 1왕자는 기겁했다.

“카쉬모프 자작이 그걸 가만히 두었단 말이냐!”

“놀랍게도 그 신도들이 카우트예를 믿는 만큼 자작가를 따른다고 하더군요. 더욱이 그 사제는 사사로이 자작을 아버님이라 부르고, 그 자제들과는 형님 동생 한다고 합니다.”

“무어라! 몰락한 교단의 사제 따위가 귀족과 호부호형을 한다고! 이런 망측한 일이 있나!”

“자작 부인은 사사로이 아들이라고 부른다고 합니다.”

1왕자는 자신의 일이 아님에도 수치심을 느끼며 이를 갈았다.

“그 사제를 쳐 내야 합니다. 그렇게 된다면 카쉬모프나 본프레레는 함부로 움직일 수 없을 것입니다.”

“허, 지금 그걸 방책이라고 내놓는 거냐? 일개 사제 때문에 카쉬모프가 입을 다문다? 지나가던 개가 웃겠다!”

“만약 그 사제가 왕의 죽음을 막지 못한다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아니, 정확히 말하여 그 사제가 왕을 진료할 때 황망스러운 일이 벌어진다면?”

순간 1왕자의 눈이 가늘어 졌다.

“계, 계속 말해 보아라.”

“현재 카쉬모프의 카우쉬카에는 경호요원양성훈련소라는 퇴역 병사 및 퇴역 용병, 민간인들을 상대로 한 군사훈련소가 지어졌다고 합니다.”

그렇게 말한 알로호모라 추기경은 나른히 웃었고, 잠시 생각하던 1왕자는 입술을 비틀었다.

“귀족의 사병 숫자는 정해져 있는데도 새로운 군사시설을 만든다? 이거 꿍꿍이가 의심스럽군.”

“목적은 퇴역 병사들을 위한 복지와 요인 및 상단 호위라지만…… 뭔가 의심스러워 조사해 보니, 그 요원 중 일부가 카우트예 교단을 지키는 자경단이 된다고 하더군요. 또한 본프레레 역시 이를 따라 하니, 대체 무슨 저의를 가지고 있는지 모르겠사옵니다.”

1왕자는 환하게 웃으며 책상을 내려쳤다.

“대놓고 사병을 늘리려는 수작이군! 이런 발칙한 것들을 봤나!”

“꽤 많은 자금이 그곳으로 흘러들어 간 바, 은밀히 군자금을 형성하려는 것은 아닐까 합니다.”

“그놈들이 감히 왕위를 노리고 있구나!”

“지금은 가만히 계셔야 합니다, 저하.”

“반역을 두고 보라는 것이냐!”

“아직은 증거가 부족합니다. 지금 친다면 역풍을 맞을 것입니다.”

“그럼 어쩌란 말이냐!”

눈엣가시인 북부를 찍어 낼 수 있다고 생각하니 몸이 단 1왕자는 한껏 흥분해 있었다.

북부만 삼킬 수 있다면 거슬리는 2왕자 따위는 바로 찍어 낼 수 있다.

“그렇기에 5대 교단의 최고 사제들을 불러들여 왕을 치료케 해야 하는 겁니다. 그 천명이 다하였다 하더라도, 왕의 죽음을 막지 못하면 크나큰 죄이옵니다, 저하.”

“……하하하! 역시 자네가 나의 지낭이네!”

일단은 카우트예를 비호했다는 이유로 발언권을 줄여 북부에 불만이 쌓이도록 해야 했다.

그렇다면 북부는, 아니 카쉬모프와 본프레레는 알아서 명분을 줄 터였다.

“모두 1왕자 저하께서 태평성대를 펼치라는 지그문트님의 뜻이지요.”

“허어~ 역시 지그문트 님은 이 나를 너무도 아끼시는군. 한데, 아바마마가 돌아가시는 날을 확실히 알 순 없잖은가.”

“그것은 루나가 알려 줄 것이옵니다. 그들이 피하는 날이 크나큰 별이 떨어지는 날일 것이옵니다.”

1왕자는 흘러나오려는 웃음을 참기 위해 사력을 다해야 했다.

“크흠흠. 그나저나 본인이 왕에 등극하면 북부와 왕실파의 영지에 큰 혼란에 휩싸일 텐데, 그걸 다스릴 자는 누가 있을까. 이 몸은 그 많은 백성들의 마음을 일일이 어루만져 줄 수 없으니…….”

1왕자가 은근히 쳐다보자 알로호모라 추기경은 사람 좋은 미소를 지었다.

“오직 지그문트 님의 말씀만이 무지몽매한 이들의 마음을 어루만져 주지 않겠습니까.”

알로호모라 추기경은 이 기회에 아실리 주교를 비롯하여 왕실파 모든 영지에서 다른 교단들도 치워 버릴 생각이었다.

1왕자를 등에 업은 자신을 막을 교단은 없을 것이고, 그럴수록 자신은 교황의 자리에 한없이 가까워질 것이다.

“부족한 나를 대신하여 부탁하겠다.”

“모두 지그문트님의 뜻대로 될 것입니다. 그나저나 식사도 다 하셨으니 후식을 드셔야지요?”

“후식?”

1왕자는 자신의 앞에 놓인 주스를 바라보며 고개를 갸웃거렸고, 알로호모라 추기경은 작게 웃으며 손뼉을 쳤다.

그러자 문이 열리며 알몸에다 속이 다 비치는 옷을 입은 열일곱 살가량의 여자아이들이 들어왔고, 1왕자는 깜짝 놀랐다.

“부디 지그문트 님의 은혜를 갚게 해 달라며 본 교단에 투신한 아이들입니다. 사제가 될 수 없다고 그렇게 만류하여도 어떻게든 은혜를 갚게 해 달라고 하더군요.”

“호오~ 그런가? 신심이 뛰어난 아이들이로구먼.”

음탕하게 빛나는 찢어진 작은 눈이 바들바들 떠는 여자아이들을 훑었고, 알로호모라 추기경의 미소는 더욱 짙어졌다.

‘다음 대 교황은 이 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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몽블랑은 카우트예학원에 부족한 부분이 있을까 하여 영도 아카데미를 찾았다.

지금쯤 한창 신도들을 가르치고 있을 영도 아카데미의 졸업생들에게 듣기는 하였지만, 한번 보고 느끼고 싶은 것이었다.

세베루스와 함께 찾아가는 바람에 영도 아카데미는 뒤집어졌고, 몽블랑은 학장의 안내를 받으며 영도 아카데미 내부를 둘러보았다.

세베루스는 몽블랑을 데려다 주고는 다시 검술 수련을 한다며 자작가로 돌아갔다.

12학년까지 모두 둘러본 몽블랑은 왜 아카데미를 졸업하는 게 성공의 지름길이라고 불리는지 알 것 같았다.

‘수준이 높네.’

수업 내용이라든지 교사의 학식, 학생의 태도 등등 모든 게 열정적이었다.

“그럼 시험에 통과하지 못하는 사람은 절대 다음 학년으로 진급하지 못하는 겁니까?”

학장 베르세스는 힘차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것뿐만이 아니라 3년 이상 한 학년에 머물면 무조건 퇴출입니다. 많은 학생들이 7학년을 넘지 못하지요.”

“학교 운영에 보탬이 되려면 데리고 있는 게 좋지 않나요?”

“학습 분위기를 저어할 가능성이 크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졸업생들은 자부심이 크지요.”

이런 식이다 보니 아카데미의 졸업생은 상당히 적었다.

한 해에 2천 명이 넘는 학생들이 입학하지만, 졸업하는 이는 고작해야 2백 명 정도였다.

“마법학부는 3클래스까지 가르치는 것 같던데, 12학년 전에 3클래스에 도달하면 어떻게 됩니까?”

“아, 바로 졸업시킵니다. 기사 학부 아이들도 오러를 다루게 되면 마찬가지입니다. 오직 행정학부만이 12년의 교육을 모두 마치지요.”

그렇게 월반 졸업한 아이들은 아르센 마탑이나 자작가 직속의 기사단에 지원한다는 게 베르세스 학장의 설명이었다.

‘이왕이면 내 영지 사람으로 채우려고 할 테니, 그쪽에서도 우대해 주겠지.’

“흠, 그렇다면 불미스러운 사고로 인해 어쩔 수 없이 퇴학당하게 된 아이들에 대한 복지로는 뭐가 있습니까?”

몽블랑은 갑자기 쟝의 처조카인 게르만 헤세가 떠올랐다.

“음…… 죄송하지만 그런 것은 없습니다.”

“없다고요?”

“본 아카데미의 설립 목적은 영지에 보탬이 되는 인재를 배출하기 위함입니다. 그 정도도 이겨 내지 못하면서 어찌 영지의 대소사를 감당할 수 있겠습니까.”

“전도유망한 아이의 서클이 불미스러운 사고, 어쩌면 같은 학우의 시기 때문에 붕괴된다고 해도 말입니까?”

“그렇습니다!”

몽블랑은 순간 베르세르 학장의 얼굴을 후려칠 뻔하였다.

“아, 그러고 보니 최근에도 그런 사건이 있긴 했습니다. 게르만 헤세라는 아인데, 고작 8년 차에 3서클을 이룬 대단한 천재였습니다. 6클래스이신 멀린 부탑주와 사제지연을 맺고서 졸업만 기다리고 있었지만, 불미스러운 사고로 서클이 붕괴되어 버렸지요.”

대부분의 마법사가 스물한 살 전후로 하여 3클래스를 이루는 것을 보면 게르만 헤세의 재능은 상당히 넘친다고 봐야 했다.

몽블랑은 게르만 헤세의 스승이 꽤나 거물인 것에 살짝 놀랐다.

“그, 그래서 어떻게 됐습니까? 멀린 마법사는 게르만 헤세란 아이와 사제지연을 끊은 겁니까?”

“그런 건 아니라고 들었습니다. 어찌 되었건 제자라고 마법이론과 고대어 쪽으로 대성시키려 했지만, 게르만 헤세란 아이가 모두 내팽개치고 고향에 내려갔다고 하였습니다. 아, 그러고 보니 그 아이의 고향이 카우쉬카였군요.”

“호오~ 그래요? 멀린 마법사는 그걸 지켜보았답니까?”

“짧은 시간 동안 정이 많이 들었는지 마탑에서 두문불출한다고 합니다. 어찌 보면 믿었던 제자에게 배신당한 거니 상실감이 크셨겠지요.”

“그래요…… 그럴 수 있겠군요. 그런데 그 사고는, 우연한 사고였습니까?”

베르세르 학장은 이번에도 말을 하지 못했다.

“그, 그건 왜…….”

“아~ 별거 아닙니다. 고향 사람이 그런 일을 당했다니 조금 관심이 가서 말입니다. 그렇다고 제가 뭘 어찌하겠습니까? 게르만 헤세란 아이와 안면도 없는데요. 정말 궁금해서 그런 거니까 귀띔만 해 주십시오.”

몽블랑은 세베루스가 데려온 사람이다.

다음번 학장 자리를 위해서라도 결코 심기를 불편하게 해선 안 된다는 뜻이었다.

“크흠흠. 그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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