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기적의 사제-79화 (79/18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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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쳐 버릴 정도로 온 몸에 전율의 소름이 내달리고 있었다.

세베루스는 익숙한 그 모습에 잔잔히 웃었다.

“저 친구의 연설은 매일 다르다오. 그렇게 정신없다가 한 단어라도 놓치면 후에 땅을 치고 후회할 거라오.”

“……정말 그럴 것 같아요.”

트리샤는 단상을 바라보며 몽블랑의 연설에 집중했다.

한편, 트리샤가 처음 느꼈던 전율의 소름은 그녀에게만 국한된 것이 아니었다.

수정구를 통해 몽블랑의 연설을 듣고 있는 지그문트의 젊은 주교 아실리는 이젠 확실히 알겠다며 고개를 주억거렸다.

“엘핀토 형제.”

“예, 주교님.”

“이 영상을 알로호모라 추기경에게 보내세요.”

엘핀토는 눈살을 찌푸렸다.

그 알로호모라 추기경이 이 영상을 보고 가만히 있을 것이라곤 생각할 수 없다.

“카쉬모프와 본프레레가 가만히 있겠습…….”

엘핀토는 그제야 아실리 주교의 뜻을 알 수 있었다.

“알겠습니다. 그의 모든 연설 연상을 알로호모라 추기경에게 보내도록 하겠습니다.”

만족스럽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인 아실리 주교는 허공에 떠오른 몽블랑을 톡톡 건드렸다.

“우린 아직 이 사람의 방식을 따라 할 수 없어요.”

“평민들이 우리를 거부할 테니까요.”

아실리 주교는 씁쓸히 웃었다.

“인과응보라 누굴 탓할 수도 없죠. 문제는 한다고 해도 결과를 얻기 위해선 시간이 너무 오래 걸린다는 것입니다.”

“돈과 권력에 길들여진 돼지들은 자신의 것을 절대 내놓지 않겠지요.”

“그렇기 때문에 배가 서서히 침몰하고 있다는 사실을 모르는 거죠. 예거 사제와 약속을 잡으세요.”

“……배를 새로 만드시려는 겁니까?”

“지금 우리가 타고 있는 배는 너무 오래되었죠. 이젠 새로운 배를 만들어야 해요. 수천수만 년 항해할 수 있는 튼튼한 배를요. 모두 아버지 지그문트 님을 위한 길이죠.”

“알겠습니다. 그라면 주교님과의 만남을 거부하지 않을 겁니다.”

고개를 숙인 엘핀토가 밖으로 나가자, 아실리 주교는 우레 같은 박수와 함성을 오페라처럼 듣듯이 눈을 감으며 귀를 기울였다.

“그때, 그 엄청난 신성력의 발현…….”

빛의 기둥은 한순간 사라져 소문은 돌지 않았지만, 아실리 주교는 그때의 전율을 잊지 못하고 있었다.

“몰락하여 절치부심 칼을 간 신이 드디어 자신의 좌를 찾는 것인가. 이 사실을 자만과 오만에 눈이 가려진 일곱 신들은 알고 있을지…… 목에 칼이 꽂히기 전에 알아차렸으면 좋으련만…… 아버지시여, 당신의 영광과 은총을 천년만년 이 땅에 비추기 위해서라면 나는 기꺼이 교단의 배신자가 되겠나이다.”

아실리 주교는 경쾌한 선율을 들은 듯이 입꼬리를 살짝 끌어 올렸다.

“나 외에 아무도 알아차리지 못해서 천만다행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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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버튼 은광산 노역수들이 바뀌기 시작했다.

그들은 지치고 힘든 몸을 이끌고 광산 내에 마련된 공부방을 찾았고, 작업 시간에도 그 전날 외운 단어를 암기하며 곡괭이질을 했다.

광기에 가까운 그들의 모습은 곧 가족들에게까지 전염되었다.

그들이 시작되자 곧 마을, 도시 전체에 공부에 대한 열풍이 부는 것은 순식간이었다.

범죄자의 자식도 글을 배우는데 내 자식이라고 배우지 못할쏘냐, 절대 그딴 놈들에게 져서는 안 된다, 등 그들은 ‘영립 공부방’에 등록하기 시작했다.

한 달에 겨우 2천 페니밖에 안 된다는 게 그들이 결단을 내리는 데 큰 역할을 하였다.

이에 돈 냄새를 맡은 교단들이 따로 건물을 매입하며 공부방을 만들었지만, 등록한 숫자는 영립 공부방에 비해 턱없이 모자랐다.

그것도 그들의 신도인 있는 집 자식들이 격이 맞질 않다며 행패를 부리기 시작하자 모두 떨어져 나가 버렸다.

부랴부랴 건물을 따로 매입하여 분리해도 마찬가지였다.

얼마든지 마음대로 할 수 있는 없는 집 자식이라는 장난감이란 재미를 알아 버린 그들이 가만히 있을 리 만무했다.

너희들이 여기에 다닐 수 있는 건 우리 아빠 때문이다, 쫓겨나기 싫으면 알아서 기어라 등등 교단이 방치한 온갖 모욕과 치욕은 결국 마음으로나마 신을 믿었던 평민들마저 등을 돌리게 하였다.

자식이 그런 꼴을 당하자 각 교단의 신도들이 운영하는 사업체에서 일하던 부모들은 더 이상 버티지 못하고 나와 버렸는데, 이들이 수입을 포기하게끔 만든 1등 공신은 귀네슈 상단이었다.

몽블랑을 통해 여러 가지 사업 방법을 배우게 되면서 상단 규모를 확장하려고 마음먹었지만 인력이 턱없이 부족했던 귀네슈 상단은, 마침 기득권에 불만을 품은 기술자들 외 인부들에게 접근하여 스카우트한 것이었다.

일하던 곳에 충성심이 사라진 데다, 자작령 제1의 상단인 귀네슈 상단에서 손을 내미니 그들은 옳다구나 하고 죄다 이직을 해 버렸다.

그에 카우트예 님을 믿는다면 평생직장이 생긴다는 낭설이 떠돌게 되었지만, 금세 수면 밑으로 가라앉았다.

그렇게 되자 발등에 불이 떨어진 것은 5대 교단 신도들의 사업체였다.

일할 사람이 없는 것은 아니었지만, 기술자들이 대거 빠져 버린 사업체가 제대로 운영될 리 없었다.

그것뿐만이 아니라 악소문까지 함께 도니 5대 교단의 신도들은 점점 몰락해 갈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몰락해 가는 사업체는 귀네슈 상단에서 인수를 하며 귀네슈&카우트예라는 현판을 달기 시작했고, 폭풍처럼 카쉬모프 자작령의 상권을 삼켜 갔다.

완전한 독식은 결국 극독이 된다는 것을 알기에 정도는 지켰지만, 그래도 석 달도 안 되는 짧은 기간에 귀네슈 상단의 몸집이 1.5배 이상 커졌다는 것은 부정할 수 없었다.

그러면서도 소상인들을 위해 골목상을 보호하는 정책을 펼치니, 귀네슈 상단은 별다른 암초를 만나기는커녕 모든 백성들에게 열렬한 지지를 받았다.

비단 이 변화의 물결은 로버튼에만 국한된 것이 아니었다.

몽블랑의 목소리가 울려 퍼진 모든 노역장과 노역장이 있는 마을 도시에서도 일어났다.

카쉬모프에 부는 바람은, 자칫 방심했다가는 휩쓸려 형체조차 찾을 수 없을 정도로 격정적이고 빨랐다.

우레와 같은 박수로 맞이하고, 아쉬움의 눈물로 배웅하는 마지막 노역소를 떠난 몽블랑은 길다면 길다고 할 수 있었던 석 달간의 여정이 드디어 끝나자 긴 한숨을 내뱉었다.

세베루스는 푹신한 시트 위로 늘어진 몽블랑을 보며 혀를 찼다.

“이렇게 품위 없는 인간이 어떻게 카쉬모프의 성자가 될 수 있었을까.”

“품위가 밥 먹여 주냐? 그리고 내가 성자라고 하지 말랬지.”

“내가 붙였냐? 네가 지나간 길에 있던 이 땅의 백성이 붙여 준 거지. 물론 귀네슈 상단주도 한몫하기는 했지. 그래도 그 정도 금력을 모아 놓고 있었다니…… 정말 대단한 분이야.”

“안 거슬리냐?”

“거슬려? 왜? 귀네슈 상단주가 딴마음 먹었을까 봐? 너 전속이 왜 전속인지 모르는 거냐?”

“그래도 계약은 파기할 수도 있잖아.”

“계약을 파기하면? 그들이 뭘로 돈을 벌 수 있는데?”

“……그러네?”

“뭐, 그게 아니라도 우리와 전속계약을 해지할 수는 없지만…….”

세베루스는 은근슬쩍 잠들어 있는 루시아와 트리샤를 바라봤고, 몽블랑은 알았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이며 나중을 기약했다.

“그런데 너희 교단의 사제는 더 이상 탄생 안 하는 거냐?”

“내가 신의 뜻을 어찌 알리오. 그것 때문에 나도 미치겠다.”

“하긴, 제일 답답한 건 너겠지.”

혀를 찬 몽블랑은 가슴을 쓸어 내렸다.

‘사과, 아니 배 정도인가?’

신도로 받아들이는 세례를 하면서 신성력은 어느덧 이만큼 커져 있었다.

‘그렇다고 신성력만 커진 건 아니지. 신성한 치료나…… 그런데 신성한 축복은 결국 머리를 맑게 해 주는 효과만 있는 건가? 에라이.’

몽블랑은 밀려오는 졸음에 기지개를 켜다가 머뭇거리는 세베루스를 발견하곤 고개를 모로 기울였다.

세베루스는 우물쭈물하다가 한숨을 내쉬곤 입을 열었다.

“현 집권 체제를 어떻게 생각하냐? 솔직히 네가 연설하는 것을 듣다 보면 소위 있는 자들이 잘못한 것 같아서 말이야.”

“흠, 솔직히 말하자면 마음에 드는 건 아니야. 누군가가 누구를 지배하고 통제한다는 게 결코 좋다고 말할 순 없지. 하지만 세상은 어쩔 수 없이 지배와 피지배로 나뉘지. 그건 누구라도 엎을 수 없는 절대적인 거야. 모두가 평등하다? 꿈같은 이야기지. 그런 세상은 절대 오지 않아. 시대의 흐름에 밀려올 미래도 마찬가지지.”

“……그렇군. 맞는 말이다. 어느 곳에도 리더는 있지. 흠, 그렇다면 너는 기회를 주는 것이로군. 시작할 기회를 말이야.”

“그저 서로 더불어 잘살면 좋겠다고 생각하는 것뿐이야. 그러다가 신도가 되어 준다면 땡큐인 거지.”

“……미안하다.”

“됐어. 네 입장을 이해 못 하는 건 아니니까.”

“그래도…….”

“그렇게 미안하면 술 한 잔 사든가.”

몽블랑은 세베루스의 귀에 자신의 입을 바짝 붙였다.

“물론 우리 둘이서만, 찐하게.”

“……오케이.”

몽블랑과 세베루스는 서로를 보며 환하게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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