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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적의 사제-74화 (74/18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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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들은 패배자입니다

카쉬모프 자작가, 영주 카쉬모프 자작에게 부여받은 일감을 처리하던 아르민은 잠시 서류에서 눈을 떼며 한숨을 쉬었다.

“형이 카우쉬카를 떠났다고 했나요?”

“예, 아르민 공자님. 예거 사제의 첫 번째 목표지는 로버튼의 은광산이라고 합니다.”

“그녀들은 돌려보냈죠?”

“예! 자신들 입으로 돌아간다고 하였습니다.”

“다행이네요.”

“그러게 말입니다. 만약 그대로 진행했더라면…….”

“우리에게 크게 실망했겠죠.”

여자를 접근시켜 몽블랑의 코를 꿰겠다고 생각했던 계획은 몽블랑이 카쉬모프 자작을 부활시킴으로서 완전히 폐기되었다.

세실리아 역시 마찬가지였다.

“접근하는 벌레들 따위야 큰형이나 그녀도 있으니 안심이고…… 휴, 세실의 야망이 조금만 적었더라면 블랑 형과 좋은 짝이 되었을 텐데…… 쯧, 아쉽네요.”

“하하하! 어려서부터 주관이 확고한 분 아니셨습니까.”

“에휴휴, 말해서 뭐해요. 북부 귀족들이나 잘 감시하세요. 형이 카우쉬카란 울타리를 나섰으니 앞으로 꽤나 치열해질 거예요.”

“그들이 덤빌 담력이라도 있겠습니까? 혹여 그래 봤자 모두 콧대만 세우다가 사정없이 뭉개질 테지요. 그들은 예거 사제에게 접근하는 올바른 방법을 모르고 있을 테니까요.”

“쿡, 그렇긴 하죠. 아마 꽤나 골치 아플 거예요. 그 형은 종잡을 수 없으니까요.”

“맞습니다. 하하하하하!”

아르민은 피식 웃으며 잠시 창문 밖의 화창한 하늘을 바라봤다.

‘이번엔 어떤 바람을 불러올까…….’

아르민의 심장은 기대감에 두근두근 뛰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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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몰라! 징징거리면 그냥 놓고 갈 거니까 알아서 해!”

신경질적으로 머리를 긁은 몽블랑은 그대로 누워 버렸고, 잠시 후 고롱고롱 고른 숨소리가 흘러나왔다.

거칠지만 하얗고 가녀린 두 개의 손은 그런 몽블랑의 머리를 들어 자신의 허벅지에 놓게 하였다.

루시아는 몽블랑의 앞머리를 만지며 행복한 미소를 지었다.

“이걸로 첫 번째 부인은 정해졌구먼.”

얼굴이 확 붉어져 안절부절못하는 루시아를 보며 헛웃음을 짓던 세베루스는 곧 눈빛을 차갑게 가라앉혔다.

“노린 거냐?”

“……사제님은 진심을 외면하지 못하는 바보죠.”

심장을 옥죄는 기운에 그녀는 몸을 덜덜 떨었지만, 세베루스의 눈을 피하지 않으며 끝까지 말했다.

“노렸다는 거로군. 그렇게 안 봤는데 상당히 깜찍한 구석이 있었군. 이거 받아라.”

루시아는 세베루스가 넘긴 금패에 깜짝 놀랐다.

기사의 세 번째 칭호인 나이츠가 새겨져 있는 것이었다.

“나, 나이츠? 카루트?”

루시아 카루트. 그녀에게 새로운 성이 생겨 버렸다.

“방계 중 본가와 가까우면서도 멸족한 가문의 성이다. 혹여 모를, 미친년들을 상대하기에 그만한 것도 없지. 네가 이번에 따라나서지 않았더라면 그건커녕 몽블랑의 곁에 머물지 못하게 했을 거다. 그러니 잘 지켜라. 그게 첫 번째 부인이 될 네 역할이다.”

“……결코 저를 넘지 않고는 사제님에게 다가서지 못할 거예요!”

“믿음직스럽군. 둘이 결합해서 아이를 낳으면 꽤나 똘똘한 놈이 나오겠어.”

발그레 붉어지는 그녀를 보며 세베루스는 웃음을 터트렸다.

“우웅…… 시끄러…….”

얼른 입을 다문 둘은 곧 서로를 보며 피식 웃었다.

“앞으로 세베루스, 아니 루스 오빠라고 불러라.”

“네에? 제, 제가 어찌…… 그, 그럴 수는 없어요.”

“그래야 그놈에게 오빠라고 할 수 있는 타당성이 생기지. 질투심도 조금 유발시킬 수 있고. 오빠가 아빠 되는 거다.”

“……루스 오빠.”

세베루스는 배를 잡고 소리 죽여 웃었고, 루시아의 얼굴은 더욱 붉어졌다.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며 친해지던 둘은 곧 잠에 빠져들었다.

마차는 달리고 달리다 해가 저물어 갈 때쯤에 멈춰 섰다.

미약한 흔들림이 사라지자 눈을 뜬 몽블랑은 주위를 둘러보다 눈을 비비며 마차를 나왔다.

“……요리사가 루시아였냐?”

음식을 만들고 있는 루시아의 옆에 백구가 가만히 앉아 헥헥거리고 있었다.

“난 준비됐다고 했지, 내가 한다고는 안 했다?”

“시끄러. 너 이러려고 쟤 데려온 거지?”

“아니에요. 제가 루스 오빠한테 따라온다고 했어요. 뭐니 뭐니 해도 집 밥이 최고라고 사제님, 아니 오빠가 말해 주셨잖아요.”

몽블랑은 앓는 소리를 냈다.

“잠깐, 그런데 오빠?”

“앞으로 먼 길 같이 갈 사이에다가 너와도 밀접한 관계를 가지고 있으니, 내가 먼저 의남매 맺자고 했다. 그래서 너도 오빠라고 하라고 했지. 안 되냐?”

“안 되는 건 아니지만…… 너 귀족이야, 임마.”

“정확히는 계승권을 포기한 귀족 자제지. 그리고 너도 평민이다.”

“아버님도 너 이러는 거 아냐?”

“옛날에 포기하셨다네, 친구. 날 자유롭게 놔주시게나.”

몽블랑은 ‘지랄’이라고 중얼거리고는 세베루스의 근처에 앉으며 음식 만들기에 열중하는 루시아를 바라봤다.

‘오빠라…… 쯧.’

뭔가 기분이 묘해진 몽블랑은 일어나 버렸다.

“물가는 어디냐?”

“저쪽.”

“씻으러 갔다 오마.”

몽블랑은 머리를 긁으며 수풀 속으로 들어갔고, 열심히 도마를 두드리던 루시아의 칼질은 멈췄다.

세베루스는 의미심장하게 루시아에게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워 줬고, 루시아는 배시시 웃었다.

졸졸 흐르는 차가운 물로 세수를 한 몽블랑은 근처에 주저앉아 한숨을 쉬었다.

“얘가 정말 마음을 단단히 먹은 것 같았는데…… 세베루스 놈도 그에 동참했고. 아나, 오빠라니…… 어쩌지?”

자려고 했지만, 모두 느끼고 들어 버렸다.

루시아의 마음, 그리고 각오를 말이다.

몽블랑은 머리를 벅벅 긁었다.

“아, 몰라! 어떻게든 되겠지! 괜히 어색해하지 말자. 블랑아!”

몽블랑은 얼른 적응할 수 있기를 바랄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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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울가에서 하늘을 보며 했던 다짐이 무색해지는 것을 몽블랑은 시시각각 느낄 수 있었다.

음식을 담은 접시를 자신에게 제일 먼저 내민다거나, 제대로 된 씻을 곳이 없어 수건으로 몸을 닦으려 할 땐 등을 닦아 주려 하는 등의 행동들은 몽블랑으로 하여금 자꾸 루시아를 의식하게 만들었다.

이미 그녀의 다짐을 들어 버린 후라 그러지 않으려고 해도 어쩔 수 없이 인식해 버리는 것도 있었지만, 문제는 점점 그게 싫지 않다는 것이었다.

몽블랑의 입장에서 보면 미성년자지만, 대륙에서 루시아는 어엿한 한 사람의 성인이다.

그런 생각이 날 때마다 몽블랑은 ‘쟤는 애기다’라며 마음을 다잡았지만, 그건 고작 한순간일 뿐이었다.

적극적으로 다가오는 루시아는 치명적인 흔적을 남기고 있었다.

‘그래도 나이 차가…… 에부부. 이게 다 공허해서 그런 거야. 너무 굶었어. 마을에선 회포를 제대로 풀어야겠어.’

“야, 내일 올라갈 거지?”

“그렇지, 로버튼에 도착하면 저녁이 될 테니까.”

“로버튼에선 사흘 정돈 쉬자?”

“마음대로 해. 그렇게 급한 것은 아니니까.”

“그런데 로버튼은 뭐가 유명해?”

“그 말 언제 하나 싶었다. 이거 받아라.”

세베루스는 마법 주머니에서 팔뚝 길이만큼보다 두꺼운 종이 뭉치를 꺼내어 내밀었고, 몽블랑은 ‘로버튼과 은광산에 대한 개요’라는 제목에 헛웃음을 지었다.

“내가 안 한다 했으면 어쩔 뻔했냐.”

“허락할 때까지 졸랐겠지.”

고개를 저은 몽블랑은 처음엔 그냥 훑어보려는 듯이 빠르게 넘기다가 이내 한 부분에서 멈칫했다.

“제대로 준비했구나?”

은광산에서 노역하는 모든 죄수와 노예 개개인의 프로필과 과거사가 몽타주와 함께 꽤나 상세히 적혀 있었다.

“네가 확실히 알아야 할 것 같아서 말이다.”

“잘했어. 이 정도면 따로 발품을 많이 팔지 않아도 되겠어. 내일이 아니라 모레쯤에나 올라가는 걸로 시간 잡아.”

“겨우 모레? 그거면 되겠어?”

“어, 돼. 책을 많이 읽어서 그런지 지능, 아니 암기력이 많이 올라갔거든.”

“……뭔 소리야? 책 읽는 것과 암기가 무슨 상관이 있는데?”

“그런 게 있다. 이제부터 방해하지 마.”

몽블랑은 첫 장부터 신중히 읽어 내려갔고, 세베루스는 입맛을 다셨다.

루시아는 약간 몽롱하게 풀린 눈으로 몽블랑을 바라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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