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기적의 사제-65화 (65/18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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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리스마스 파티에서 큰 기쁨과 추억을 얻은 몽블랑은 화답의 의미로 신년이 되자마자 바로 ‘설날’을 기획하였다.

이 역시도 수많은 사람들이 몰려 카우트예의 축제가 됐다.

아이들은 ‘세뱃돈’과 ‘덕담’에 크게 기뻐했고, 어른들은 한 해가 시작됐다는 것에 대한 안도와 앞으로의 미래, 가족들의 건강을 생각하는 시간을 가졌다.

카우트예의 신도인 부모들에게 세뱃돈을 받은 아이들은 거리를 뛰어다니며 자랑을 하였고, 다른 아이들은 세뱃돈이나 선물을 달라고 졸라서 부모를 당황하게 하는 등 웃지 못할 에피소드가 카우쉬카 전역에서 일어났다.

그래도 평소에 잘 찾아뵙지 못했던 웃어른을 찾아뵙고, 웃어른은 자식들에게 덕담을 할 수 있는 좋은 의미의 날이라서 그런지 대부분은 썩 기껍게 받아들였다.

그렇게 떠들썩하다면 떠들썩했던 겨울이 가고 어느덧 푸른 새싹이 대지를 뚫고 나올 때, 카우쉬카뿐만 아니라 몽블랑도 바빠지기 시작했다.

수많은 나무꾼들이 동원되어 나무를 베어 내고, 그 자리에 터를 다지기 시작했다.

산 전체의 반절뿐만 아니라 산부터 북쪽의 성벽까지의 모든 땅을 갈아엎는 대규모 공사여서 그런지 아주 떠들썩했다.

면회소 게시판 근처도 공사가 한창이었다.

간의 상점이 아니라 진짜 벽돌로 된 건물을 지어 제대로 된 상점가를 만들려는 것이었다.

“올해가 가기 전에 어느 정도 구색은 갖추겠지.”

동원된 인부가 워낙 많다 보니 건물이 올라가는 속도가 상상을 초월하고 있었다.

몽블랑은 채석장으로 올라갔다.

일등병으로 진급한 루체노는 몽블랑을 보곤 손을 흔들었다.

채석장 안으로 들어선 몽블랑은 희미하게 보이는 두 신전 건물을 보곤 피식 웃었다.

“다 자업자득이지.”

지그문트와 루나는 코팔라와 헬미나를 불러들이고 다른 사제들을 파견했다.

해 놓은 짓 때문인지 각기 중급으로 세 명씩 파견하였다.

그들이 아무리 치료한다고 해도 채석장의 죄수, 노예 대다수가 카우트예에게서 등을 돌리지 않았다.

가장 어려울 때 손을 내밀어 준 것이 몽블랑이었기 때문이다.

새로 들어오는 죄수와 노예들도 선배들의 그 이야기를 들으며 카우트예의 신도가 되니, 결국 지그문트와 루나는 계속해서 돈과 인적자원만 낭비하고 있었다.

“이걸 보고 재주는 곰이 부리고, 돈은 조련사가 챙긴다고 하는 거구나.”

“그런 거지. 오늘은 좀 늦었네?”

몽블랑은 어느새 옆에 선 체놈을 향해 활짝 웃어 주었다가 이내 미안한 표정을 지었다.

“이야기할 게 있어요, 간수장님.”

“쯧, 역시 한 달 전에 했던 그거냐?”

“……죄송해요.”

“너 바쁜 건 아는 사람이 다 아는데 뭐가 죄송해. 이렇게 컸는데도 잊지 않고 계속 계약을 이행해 준 게 고마운 거지. 그래, 여태껏 수고했다.”

“가끔씩 찾아올게요.”

“그럼 안 보려고 했냐? 우리 여보야가 어디서 사는지 몰라?”

“쩝, 그것도 그러네요. 그럼 전 작별 인사하러 갑니다.”

“그래, 수고해.”

몽블랑은 휘적휘적 채석장 안으로 향했다.

몽블랑이 떠난다고 하니 그들은 크게 아쉬워하였지만, 그래도 그게 무엇 때문인지 알기에 붙잡지는 않았다.

몽블랑은 드미트리와 마주 보고 있었다.

“앞으로 어떻게 하실 거예요?”

드미트리는 대답 없이 먼 하늘을 보았다.

가석방을 하려고 했던 이유인 블랙스컬이 산산조각 나 버리면서 결국 구역은 다른 조직들에게 흡수되어 버렸다.

“카우트예학원 경비대장 자리 비워 둘게요. 월급은 보스 시절보다는 못할 테지만, 그래도 넉넉할 거예요.”

“……내게 잘해 주는 이유가 뭐지?”

“그냥…… 정이라고 해 두죠. 제가 이곳에서 처음 치료한 사람이 드미트리 씨잖아요.”

“……역시 너 같은 사제가 있어야 했다. 네 사정이 어느 정도 정리되었을 때쯤이면 찾아가지. 문전 박대하지 마라.”

“걱정 마세요! 경비대 자리도 많이 비워 둘게요!”

조사한 결과 드미트리가 보스 시절이었을 당시의 블랙스컬은 암흑가 조직이 아니라 마치 자경단같이 상인들을 보호하고, 일반인들에게는 해를 끼치지 않는 정의로운 집단이었다.

몽블랑은 그 시절 블랙스컬을 이끌었던 드미트리의 카리스마가 필요했다.

그리고 그 시절의 드미트리를 따르던 정의로운 조직원들 역시도 말이다.

“가 봐. 지금쯤 모든 구역에 네가 떠난다는 소문이 퍼졌을 거다.”

몽블랑이 떠나자 드미트리의 옆으로 코첸이 다가섰다.

제랄이 있을 당시 블랙스컬의 2인자였던 코첸은 순순히 자수하며 채석장행을 택했다.

그 덕분인지 그의 형량은 상당히 낮았다.

“형님, 우리는 앞으로 경비가 되는 겁니까?”

“그 아이들을 명예 병사로 만들 정도라면, 아마 공식적으로 인정받게 될 것이다. 우리의 형량 역시 줄어들겠지.”

“피로 얼룩진 이 손으로 아이들을 지키는 거라니…… 생각 만해도 가슴이 간질거리는군요.”

“저 사제와 함께 지내다 보면 다 그런 감정을 느끼지. 일 하자. 간수 노려본다.”

“……출소하면 저 새끼 재껴 버릴 겁니다. 아무도 몰래!”

한편, 계속 작별 인사를 나눈 몽블랑은 어느새 지옥 구역에 진입해 있었다.

“지그문트와 루나는 좀 어때요? 코팔라와 헬미나보단 나아요?”

184구역의 간수들은 한숨을 내뱉었다.

“매일 신성력이 바닥을 쳐서 빌빌거리지. 너보다 높은 등급인데 왜 그렇게 비실거리는지, 원…… 더 충원해 줬으면 싶어.”

“넌 혼자서 이 채석장을 다 커버했는데…… 에휴. 사제 새끼들이 평소에 얼마나 놀아 재꼈는지 뼈저리게 느끼고 있다.”

“큭큭큭, 그건 내가 특별해서 그런 거고요. 제대하면 찾아와요. 건물 몇 개 정돈 싸게 임대해 줄 수 있으니까요.”

“……지금은 안 되냐? 이번에 셋째 임신해서 월급이 간당간당하거든. 우리 마누라 음식 솜씨가 죽여.”

“그럼 바로 찾아오라고 하세요. 안 그래도 식당가를 세우려고 했는데 잘됐네요.”

“너 딴말하면 안 된다!”

“내가 언제 거짓말하는 거 봤어요?”

몽블랑은 귀가 입까지 찢어지는 간수들을 뒤로하고 지옥 죄수들을 향해 다가갔다.

아쉬워하는 죄수들 중 죽일 듯이 노려보는 이가 있었는데, 그들은 해치와 헤이먼, 칵트였다.

셋은 보기 안쓰러울 정도로 마르고, 몸 이곳저곳에 흉터를 가지고 있었다.

그럼에도 놀라운 것은 혹한 겨울을 버텨 냈다는 것이었다.

‘역시 사제가 있으니…….’

몽블랑은 그들을 빤히 응시하다 비웃어 주곤 다른 죄수들과 작별 인사를 하였다.

그렇게 채석장을 모두 돈 몽블랑은 채석장을 나서며 밑으로 내려갔고, 그 옆엔 어느새 다가온 백구가 보폭을 맞추고 있었다.

저택 역시도 공사가 한창이었다.

수백에 달하는 인부들이 벽돌을 옮기고 쌓고 있었다.

몽블랑은 그들을 진두지휘하는 쟝에게로 다가갔다.

쟝은 처음 보는 젊은 청년과 설계도를 보고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아니지. 여긴 굳이 기둥을 대지 않아도 돼. 이 기둥과 이 기둥이 충분히 하중을 견딜 수 있잖아.”

“하지만, 만약을 위해서 넣는 게 좋지 않을까요?”

“필요 없다니까 그러네. 아, 왔어?”

“이 청년은 누구에요?”

“이쪽은 게르만 헤세. 올해 열여덟 살이고, 처제의 아들이지. 마법사에 재능이 있다고 있는 돈 없는 돈 모두 죄다 끌어모아서 아카데미에 보내 놨더니 금방 때려치우고 내려온 몹쓸 놈이야.”

“아 진짜, 삼촌! 서클이 망가져서 더 이상 마법을 배우지 못하게 된 거라고 몇 번을 말해요! 그 사고가 일어나기 전까지만 해도 왕도의 마탑에서 저를 스카우트해 가려고 난리였다고요! 열여덟 살에 3서클 만든 게 보통 일인 줄 아세요?”

“알았다, 알았어. 거 한마디 했다고 아주 잡아먹으려고 하네.”

“안녕하십니까! 게르만 헤세입니다! 나이는 열정적인 열여덟! 취미는 고서 탐독입니다! 앞으로 잘 부탁드립니다!”

“그래, 몽블랑 예거다…… 왜 웃지?”

“푸흡흡! 아니, 사제의 성이 사냥꾼이라서…… 아, 죄송합니다.”

“괜찮아. 그런데 넌 다른 마법사들과 조금 다른 것 같다?”

마법사란 직업은 사제만큼 귀하고, 그렇기 때문에 그 권위의식이 대단하다고 할 수 있다.

그건 마법 아카데미의 학생이라도 마찬가지다.

이건 서클이 망가져서가 아니라 게르만의 천성인 것 같았다.

“그건 개구리 올챙이 적을 생각 못 하는 일부 마법사들 이야기죠. 같은 평민 주제에 그딴 식으로 행동하면 안 되죠. 아카데미 때문에 평민에게도 마법사의 길이 열린 지가 언젠데…… 쯧.”

몽블랑은 격의 없고 직설적인 게르만이 왠지 마음에 들었다.

“뭐, 앞으로 잘 부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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