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64 회: 3-4 [나랑 결혼할래요?] -->
아커만은 병사 쉰 명뿐만 아니라 기사 한 명 그리고 많은 숫자의 관리들까지 붙여 주었다.
“오랜만입니다, 믹 경.”
“무사한 얼굴을 보니 반갑군, 사제.”
“그럼 가실까요?”
“카우쉬카의 어둠을 걷어 내는 일은 내가 존재하는 이유지.”
병사들은 관리들과 몽블랑, 데커 믹이 탄 마차를 호위하며 해치의 아지트를 향해 달렸다.
마부는 우기고 우겨 아흘라니가 담당했다.
겨울이라 한적해진 거리를 거침없이 나아간 마차는 여느 건물과 다름이 없는 이층의 석조 건물 앞에 멈춰 섰다.
몽블랑은 건물을 보며 손을 들었다.
“모두 들어가세요.”
척! 척! 척! 척! 척!
서른 명의 병사들은 건물을 감싸고, 나머지 스무 명은 문을 부수며 들어갔다.
곧 우당탕 소리와 함께 해치, 헤이먼, 칵트의 것으로 추정되는 비명이 들렸다.
이윽고 소란이 잠잠해지자 몽블랑은 데커 믹과 관리들과 함께 느긋이 들어갔다.
엉망이 된 공간에 병사들에게 제압되어 바닥에 누워 있는 해치는 고개를 들었다가 몽블랑을 발견하곤 눈을 부릅떴다.
“네, 네놈은!”
몽블랑은 관리들을 보고 얼굴이 검게 죽어 가는 해치를 보며 환하게 웃어 주었다.
“오랜만이지요? 그러게 아커만이 시장이 됐을 때 튀었어야죠. 그럼 이런 꼴은 당하지 않았잖아요. 안 그래?”
몽블랑은 분노에 부들부들 떠는 해치를 비웃어 주곤 데커 믹을 바라봤다.
“모두 샅샅이 조사하라!”
“아, 안 돼-!”
*나랑 결혼할래요?
사채업을 하며 많은 부정과 비리를 저지른 해치는 그대로 끌려가게 되었다.
몽블랑은 소란 때문에 건물 근처에 모인 사람들을 바라봤다.
“이 중 여기서 돈 빌려 쓴 사람 있습니까?”
“제, 제가 썼습니다!”
“성함과 직업이?”
“토, 톰 샘슨입니다! 전에 채석장에서 일을 했었습니다!”
“아, 그러세요. 잠시만요.”
몽블랑은 금고 안에서 찾은 양피지 뭉치를 뒤져 톰 샘슨에 관한 대출 계약서를 찾았다.
“찢어 버리든 태워 버리든 맘대로 하세요.”
“저, 정말입니까? 정말로 돈을 안 갚아도 되는 겁니까?”
떨리는 손으로 계약서를 받아 든 톰은 차오르는 설움에 이를 악물며 계약서를 찢어 버렸다.
“이익! 왜 안 찢어지는 거야, 왜! 불! 그래, 불 어디 있어!”
톰은 계약서를 들고 불을 찾아 뛰었다.
그러자 몰려든 사람들 중 몇 명이 또 손을 들었다.
몽블랑은 그들에게 계약서를 넘겨주었고, 나머지는 관리에게 맡겨 추후 주인이 찾아오면 넘기라는 말을 하며 부탁한다는 말까지 덧붙였다.
관리들은 황송해하며 허리를 깊이 숙였다.
그가 자신들의 생사여탈권을 쥐고 있는 시장 아커만과 끈끈한 사이라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이었다.
거기다 찾은 현금 중 일부까지 넘겨주니 몸 둘 바를 몰라 했다.
남은 몽블랑은 다시 눈이 내리는 하늘을 보며 기지개를 켰다.
“아~ 시원하다!”
본격적인 겨울이 시작되자 카우쉬카는 조금 조용해졌다.
몽블랑도 학생들에게 방학을 선포하며 일요예배와 수요예배, 그리고 채석장에서의 치료에만 집중했다.
빙판길이 있어 미끄러울 텐데도, 수요예배에 오는 신도들의 숫자는 줄어들지 않고 계속해서 늘어만 갔다.
그 이유에는 해치의 사건 때 몽블랑에게 은혜를 입은 이들과 몽블랑을 알아본 사람들이 낸 소문이 일조를 했다.
소문은 조금 와전되어 ‘악랄하고 못된 사채업자를 신의 이름으로 회개시킨 카우트예 교단’이 되었다.
이 말 때문인지 많은 부모들이 일탈하는 자식의 손을 붙잡고 찾아오기도 해서 몽블랑을 조금 곤란케 하였다.
몽블랑은 그 자식들을 채석장에 맡김으로써 자원봉사를 하게 하였다.
지옥의 처절한 모습을 본 아이들은 ‘너희들이 계속 그런 식으로 자라면 여기에 온다, 저길 봐라. 저놈들이 블랙스컬의 조직원들이다’라며 겁을 주는 체놈과 겁먹은 마음을 어루만지는 몽블랑, 봉사를 하며 흘리는 구슬땀 때문에 대부분 마음을 고쳐먹었고, 카우트예의 명성은 더욱 높아졌다.
그러는 사이 면회소 게시판 근처에서 팔게 된 생강차와 모과차는 사람들에게 큰 인기를 얻으며 날개 돋친 듯 팔려 나갔다.
그에 아드리아나는 몽블랑을 찾아와 생강차와 모과차 외에도 몽블랑이 아는 몇 가지 약차에 대한 레시피에 대한 계약을 맺었다.
계약서를 챙기던 아드리아나는 그제야 몽블랑을 찾은 진짜 이유를 말하였다.
“투자를 하고 싶다고요?”
“카우트예학원 건설에 필요한 모든 것을 본 상단에서 해 드리고 싶어요. 우리는 파트너니까요.”
“학원 건설은 카우트예건축사무소에서 하기로 했는데요.”
카우트예건축사무소는 쟝을 비롯한 출소자들이 모여 만든 건축 사무소의 이름이었다.
어느덧 카우트예의 독실한 신자가 된 쟝이 관청에 등록을 마쳐 버려서 몽블랑은 그 이름을 고치게 할 수 없었다.
“그럼 그쪽을 대표로 할게요. 쟝 소장의 명성과 실력은 들어서 알지만, 이제 막 오픈한 카우트예건축사무소는 인력이 부족하잖아요. 저희가 인부와 기술자, 필요 자재들까지 보내 드릴게요. 그리고 내년에 등록할 학생들을 위한 공간 역시도요. 모두 무료로요.”
“……원하는 게 뭡니까? 아무리 파트너라고 해도 이번 건 규모가 너무 큰데요.”
몽블랑은 임대받은 모든 땅에 카우트예학원과 그에 관련된 것을 짓겠다고 신도들에게 말하고 다녔다.
그 규모는 산의 반절과 북쪽 성벽까지 모두였다.
아드리아나는 의심하는 몽블랑을 보며 활짝 웃었다.
“정말 미래를 위한 투자에요.”
‘빌라와 아파트…… 이것뿐만이 아니야. 저 작은 머리에선 앞으로도 수많은 아이디어가 쏟아져 나올 거야.’
몽블랑과 카쉬모프 자작가의 결합은 카우쉬카뿐만 아니라 카쉬모프 자작령 전체를 지금까지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발전하게 만들 것이다.
여태껏 몽블랑의 행보만 보아도 그 정도 미래는 충분히 유추 할 수 있다.
어쩌면 왕도보다 더 커질 수도 있다.
그 거대한 역사가 카우트예 신전이 있는 이 저택에서 시작된다고 생각하니 아드리아나는 온몸이 저릿해지는 쾌감을 느낄 수 있었다.
‘새로 써지는 역사의 현장에 내가 함께하는 거야! 무조건 본 상단이 함께해야 해!’
이미 ‘카우트예&귀네슈 패스트푸드’로 대륙으로 뻗어 나갈 발판이 마련된 상태였다.
‘카우트예가 제대로 알려지지 않은 지금이 이 사람을 붙잡을 적기야! 마을 하나 규모로 이 사람을 잡을 수만 있다면 정말 싸게 먹히는 거야!’
그녀는 깜찍한 생각을 숨기며 어렸을 때부터 훈련받았던 대로 흔들리지 않는 눈동자로 몽블랑을 응시했다.
몽블랑은 뭔가 꺼림칙했지만, 받아들이는 수밖에 없었다.
카쉬모프 자작가에서 받은 지원금이 있다고 하더라도 임대받은 땅을 한꺼번에 드러내는 것은 무리였기 때문이다.
‘빚을 진 건가?’
머리를 긁적이던 몽블랑은 순간 무언가 떠오르는 게 있었다.
“그런데 인부가 있어요? 영립 아카데미 건설은요? 그리고 빌라와 아파트는?”
“그쪽은 관청에서 알아서 한다고 하더라고요. 빈민들을 인부로 쓴다고도 하고, 지어진 후에도 건물들을 빈민에게 나눠 준다고 해서…… 아무리 본 상단이 영주 가문 직속이라곤 하지만…….”
빈민을 위한 정책이기에 건물을 지어 주는 것 말고는 아무런 메리트가 없었다.
그렇기에 귀네슈 상단은 기술자와 자재를 싼값에 보내 주는 것으로만 그치기로 하였다.
무리하게 진입하여 영주의 심기를 상하게 하는 것보다는 그것이 훨씬 나았기에 귀네슈 상단은 자신들의 브랜드를 건 아파트와 빌라 사업에 신경을 쓰기로 하였다.
“흐음? 귀네슈는 체인을 운영하지 않는 건가요?”
“체인요?”
몽블랑은 체인에 대해 간단히 설명했고, 아드리아나는 상단 직원이 아니라 일반인을 상대로 점주를 모집한다는 것에 뒤통수를 후려 맞은 듯한 충격을 느껴야 했다.
‘자, 잠깐. 그렇게 되면?’
아드리아나의 머릿속에서 상상의 나래가 펼쳐졌다.
“그렇게 귀네슈는 일정한 자금을 빌려 주고 월 소득의 일부를 가져가는 거죠. 이후 돈을 다 갚아도 브랜드를 유지하도록 계약을 맺고요. 유통 마진만 줄인다면 계약이 끝나도 계속 물건을 받을걸요?”
“그렇게 된다면 계약이 끝나도 얼굴 붉힐 일이 없군요! 대, 대단해요!”
몽블랑의 말처럼 된다면 영주의 심기를 건드리지 않고도 막대한 이득을 취할 수 있다.
이미 ‘카우트예&귀네슈 패스트푸드’로 브랜드 효과가 무엇인지 톡톡히 느끼고 있기에 그녀는 더 이상 고민하지 않기로 했다.
‘이건 오빠를 넘어설 수 있는 절호의 기회야! 아니, 대륙 전체를 이을 다리가 더 길어지고 단단해졌어!’
아드리아나는 흥분했다.
“만약 돈을 갚지 못한다고 해도 저희한텐 손해가 하나도 없군요! 그 점포에 본 상단의 직원을 파견하거나 다른 점주를 모집하면 되는 거니까요!”
“그런 거죠. 그러면서도 소상인의 상권을 보호하여 대상단의 자비를 보여 줘야죠.”
“……그건 힘든 일이에요. 그들과 저희는 유통에서부터 차이가 나니까요.”
“그러니까 두세 구역에 하나 정도만 들어가게 해야죠. 대신 모든 것을 한 건물에서 구매할 수 있는 대형 마트를 짓는 겁니다. 많은 것을 채워 넣는다고 해도 분명 구멍이 있을 겁니다. 그걸 묵인하면서 일반인 점주에 대한 장점을 최대한 퍼트리세요. 그리고 영주 직속 상단의 최대 무기를 쓰세요. 이를 테면 몇 년간의 독점 같은 거? 타 상단만 타깃으로 삼아서요.”
“……나랑 결혼할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