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기적의 사제-61화 (61/185)

<-- 62 회: 3-2 -->

가신 회의 후, 자작령 전체로 퍼져 갈 것이라 생각한 피바람은 예상보다 그리 짙고 크지 않았다.

이번 반란에 가담한 이들은 모두 재산이 몰수되고, 그 가족 중 남자는 노역소로, 여자는 노예 낙인을 찍고 직물 공방으로 보내졌다.

하지만 너무 급박하게 벌어진 상황 때문에 미처 가담하지 못했던 코바치 일파의 가신들은 발언권을 약화시키고 재산과 세력의 일부분을 뺏는 것으로 그쳤다.

그들은 살기 위해 세베루스를 지지하려는 움직임을 보였지만, 세베루스가 그들의 소원을 들어줄 확률은 전혀 없었다.

코바치 준남작과 코르체프는 카쉬모프 자작가의 귀족명부에서 제외되고, 귀족 자격을 박탈당한 채 어느 고성에 유폐되어야 했다.

로트멧의 가족들 중 삼족까지 남자는 참수를 당하고, 여자들은 노예로 팔려 가야 했다.

애초에 첩자로 키워졌기에 카쉬모프 자작에게 용서란 없었다.

이번 반란 때문에 자작령은 어수선해졌는데, 카쉬모프 자작이 평민을 위한 아카데미에 대해 발표하자 백성들은 열광하다 못해 온 거리에 그 말만 나돌게 되었다.

“어려운 게 있으면 지체하지 말고 저 칼로스에게 서신을 보내 주십시오! 제가 뭐든지 해결해 드리겠습니다! 그럼 가 보겠습니다! 아, 배웅은 안 하셔도 됩니다! 허허허허허!”

“조심히 들어가세요.”

나이가 꽤 지긋이 든 장년인이 나가자 몽블랑은 의자에 무너지듯 앉으며 피곤한 눈가와 입가를 주물렀다.

“피곤해 보이네.”

문을 열고 들어온 세베루스는 10년은 족히 늙은 듯한 몽블랑의 모습에 낄낄거리며 웃었다.

“세상만사 참 새옹지마다.”

예전에 찍어 내려 했던 것이 찔리기라도 하는 듯, 어떻게든 잘 보이려고 노력하는 그들의 작태에 몽블랑은 화가 나기도 했다.

‘엘리샤…….’

“에휴, 더 이상은 안 되겠다. 이젠 가야겠어.”

“벌써 가려고?”

“소식을 전했다곤 하지만 기다리는 사람이 많아. 이제 나도 자리를 찾아가야지.”

“어머니가 아쉬워하겠군.”

“음…….”

몽블랑을 보자마자 손을 잡고 고맙다고 뜨거운 눈물을 흘리던 자작 부인은, 이후 친어머니도 이렇게 해 줄 수 없을 정도로 살뜰하게 그를 챙겨 주었다.

세베루스나 두 자식보다 먼저 찾고 챙겨 주며 여러 가지를 가르쳐 주니 몽블랑으로선 부담스러워 죽을 것 같았지만, 그럼에도 싫지 않은 것은 귀족의 권위를 내세우지 않고 여느 어머니같이 아들의 친구도 내 아들이라고 생각하는 그 마음 때문이었다.

“어머님껜 미안하지만, 그래도 집엔 가야지.”

“알았다. 준비해 놓으라고 할게.”

“준비는 무슨 준비. 아흘라니 씨나 단원들도 있으니 그냥 마차나 하나 사서 가면 돼.”

“허~ 얘가 귀족 얼굴에다 똥칠을 하려고 하네? 너 그러면 아버지가 엄청 섭섭해하실 거다.”

“야, 여기서 더 이상 받으면 나 배 터져 죽어.”

반란을 제외한 그 어떤 죄를 저질러도 세 번은 용서해 준다는 면죄부와 감사패, 카우트예 교단에 주는 막대한 지원금 등등 카쉬모프 자작이 준 것은 목숨값을 이미 넘겼다고 봐야 했다.

하지만 그것도 부족한지 카쉬모프 자작은 몽블랑을 자주 불러 뭘 또 해 줄 것이 없을까 하며 몽블랑을 떠보았다.

“야, 대 카쉬모프 자작가의 주인을 살린 값이 고작 그것밖에 안 된다고 생각하냐? 뭔가 불쾌해진다?”

“시끄러! 준비시키려면 어서 준비시켜. 난 어머님, 아버님께 인사드리러 갈 테니까.”

몽블랑이 자작 부인의 성화에 어머님이라 부르게 되자 카쉬모프 자작도 은근히 아버님이란 말을 바랐고, 몽블랑은 하는 수 없이 그렇게 부를 수밖에 없었다.

“쩝, 알았다. 인사하고 와.”

세베루스가 나가자 몽블랑은 바로 카쉬모프 자작과 자작 부인을 찾았고, 둘은 너무도 아쉬워하면서도 몽블랑을 순순히 보내 주었다.

“언제든 내 집이다 생각하고 찾아와요.”

“네, 어머님. 그럼 가 볼게요.”

“크흠!”

“아버님도 안녕히 계세요.”

“사내가 큰일을 하려는데 잡을 순 없지. 힘든 일 있으면 언제든 찾아오너라.”

몽블랑을 배웅 나왔던 모든 이들은 멍하니 카쉬모프 자작을 바라보았다.

그 눈길을 모른 척한 카쉬모프 자작은 성큼성큼 내성 안으로 들어갔고, 사람들은 당혹해했다.

“어머니, 아버지가 원래 이런 말을 하는 분이셨습니까?”

자작 부인은 입을 가리며 웃었다.

“네 아버지는 감정을 표현하는 데 서툰 것뿐이야. 그래서 가만히 지켜보면 얼마나 귀여운지 몰라. 이걸 아직도 몰랐니?”

세베루스, 아르민, 세실리아는 절대 동의할 수 없다는 듯이 고개를 저었다.

“원래 가까이 있는 사람들이 더 모르는 법이죠, 어머님.”

“호호호! 그렇죠? 역시 몽블랑은 잘 아네요?”

“원래 아버님 같은 타입이 오해하기 쉽지만 진국이시죠. 아, 어머님이 그 모습에 반하셨구나?”

“그렇죠. 무심하게 꽃을 툭 던져 주는데, 혹여 제가 거부하지 않을까 귀가 빨개져서 안절부절못하던 모습이 얼마나 귀여웠는데요. 그 모습이 꼭 이 아이들의 외할아버지 같아서 결혼하기로 마음먹은 거였죠. 이제 알겠니, 아들, 딸?”

멍하니 고개를 끄덕인 세베루스, 아르민, 세실리아는 이내 기이하다는 듯이 몽블랑을 바라봤다.

몽블랑이 나타나고서부터 여태껏 자신들이 몰랐던 점들이 속속 드러나고 있었다.

그렇다 하여도 여전히 자신들보단 가문을 위하는 모습이 달라진 것은 아니었지만, 자신들을 사랑하지 않는다는 것은 아니었기에 그들은 그간의 오해를 풀고 미소를 지을 수 있었다.

그들은 처음으로 카쉬모프 자작과 술을 마셔 보고 싶다는 생각을 하였다.

“그럼 전 이만 가 보겠습니다.”

“그래요. 해 지기 전에 가 봐요.”

몽블랑은 카쉬모프 자작가가 가족이나 정말 귀한 손님에게만 내어 준다는 황금사자 깃발을 단 마차에 올랐다.

편히 자리를 잡던 몽블랑은 갑자기 들어오는 세실리아를 보고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세실리아는 싱긋 웃으며 양피지 한 장을 보여 주었다.

“감찰사…… 임명서?”

“카우쉬카에서 일어나는 개혁의 바람을 실시간으로 보고하라는 아빠의 명령이에요. 같이 가서 기쁘지 않나요? 오, 빠?”

자작과 자작 부인을 아버님 어머님이라 부르게 되자 자연스럽게 아르민과 세실리아도 몽블랑을 형, 오빠라고 부르게 되었다.

몽블랑은 다급히 세베루스와 자작 부인을 찾았지만, 둘은 환하게 웃으며 손을 흔들 뿐이었다.

“잘 가라! 또 보자! 마부, 출발해!”

“자, 잠깐!”

시장 자리를 오래도록 공석으로 둘 수 없기에 아커만은 바로 임명식을 걸쳐 시장에 오르게 되었다.

마르커스가 인수인계조차 하지 못하고 비명에 가 버렸기 때문에 아커만은 손이 열 개라도 부족한, 정신없는 나날을 보내고 있었다.

그건 갑자기 간수장직을 맡게 된 체놈 역시도 마찬가지였다.

“면회자 게시판 근처의 먹자거리 형성은 일단 보류. 지그문트 교단 지원금 상향 지급? 이딴 걸 안건이라고 올린 놈은 누구야? 재고 관리로 발령시켜! 여기 루나 교단의 지원금 상향 지급을 올린 놈도 같이!”

“예, 시장님!”

“전 시장의 심복들은 어떻게 됐어?”

“현재까지 열두 명의 재산을 몰수했으며, 나머지는 아직 조사 중입니다.”

“숨겨 놓은 것도 있을 테니까, 샅샅이 조사해! 최고 성과를 낸 감찰조는 10박 11일 휴가에 보너스 10배 지급이다!”

“아, 알겠습니다! 그렇게 전하겠습니다!”

“아카데미 부지는 확보됐나?”

“열 곳으로 좁히긴 했지만…… 중앙 쪽에 위치하여 백성들의 반발이…….”

“빌어먹을, 애초에 이 땅 모두가 자작님의 것이거늘!”

카우쉬카 전체의 평민들을 커버할 정도의 큰 아카데미를 세울 예정이었는데, 문제는 카우쉬카 내에 그 정도로 남는 땅이 없다는 것이었다.

함부로 몰아냈다가는 오히려 역효과를 낼 수밖에 없기에 아커만은 머리가 아파 왔다.

“그 문제는 나중으로 미루지. 다음 안건!”

“예! 여기 있습니다!”

벌컥!

“시, 시장님!”

“뭐야! 지금 공무 중인 거 안 보…….”

“와, 왔습니다! 세실리아 아가씨께서 예거 사제와 함께 방금 동문을 넘었다는 전갈입니다!”

“……코트! 얼른 코트 가져오고 관청에 비상 걸어!”

“옛!”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