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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회하는 숲을 빠져나온 몽블랑 외 사람들은 앞장선 아흘라니의 뒤를 바짝 쫒으며 질주했다.
몽블랑과 세실리아는 도중에 퍼져버려 루카스와 쿠잔이 들고 뛰어야 했고, 몽블랑은 이들의 넘치는 체력에 경탄할 수밖에 없었다.
최대한 흔적을 줄이기 위해 그들은 카발 산맥을 통해 본프레레 백작령으로 향했다.
코르체프가 보낸 것으로 추정되는 이들은 정찰을 맡은 극단 안단테가 먼저 발견하여 우회하였다.
괜히 없앴다가는 추적의 빌미가 될 수 있기에 그들은 조금 시간을 지체하더라도 이렇게 우회를 해가며 차근차근 본프레레 백작령을 향해 나아갔다.
그들이 본프레레 백작령의 영도 프레레에 닿았을 때는 거의 20일의 시간이 흐른 후였다.
거지 중 상거지가 내성에 다가오자 질겁하며 막아섰던 병사들은 세베루스가 내민 패에 식겁하며 안으로 달려가야 했다.
그렇게 백작가의 내성을 밟은 몽블랑은 자신이 왜 여기에 와 있는지 이해가 가질 않았다.
-고생했다.
“별의별 꼴을 다 당합니다.”
-증거가 없다.
“전 당하고는 못삽니다. 아버지.”
-아르민이 승리하겠군. 빨리 복귀하거라.
“예!”
‘홀로그램이냐?’
몽블랑은 수정구에서 폭사된 빛이 허공에 만들어 낸 중년인의 모습에 입맛을 다셨다.
‘저 사람이 카쉬모프 자작인가? 상당히 무뚝뚝하게 생기셨네.’
세베루스와 대화를 나누는 카쉬모프 자작의 얼굴을 빤히 보던 몽블랑은 갑자기 이상해진 분위기에 주위를 둘러보다가 자신을 보고 있는 카쉬모프 자작, 세베루스, 그리고 세실리아의 모습에 눈을 깜빡였다.
-네가 카우트예의 사제더냐.
“아, 안녕하십니까! 몽블랑 예거입니다!”
넙죽 허리를 숙이자 세베루스와 세실리아는 고개를 돌리며 작게 웃었다.
-덕분에 내 두 자식이 살 수 있었다. 바라는 것이 있느냐.
“음... 없는 것 같은데요.”
-없다? 카쉬모프의 부는 이루지 못하는 게 없다.
“글쎄요. 돈도 이만하면 잘 버는 것 같고, 신전 땅도 세실리아 아가씨가 땅을 1백년간 무상임대 해줬고...”
손가락을 하나하나 꼽아 가던 몽블랑은 이내 고개를 저었다.
“역시 없는 것 같습니다. 굳이 말하자면 코르체프 그 개자식을 치워주시고, 카우쉬카에 있는 두 교단을 혼쭐 내주라는 거? 그 정도입니다. 아, 시장도요.”
-코르체프는 지금 어렵다. 가신들을 인정시킬 증거가 없다. 그리고 시장은 죽었다. 암살이었지. 두 교단의 일은 당연한 것이다. 그들은 잘못을 들켰다.
“...그러면 없습니다.”
-머지않은 미래에 본가의 제 1검과 백작가의 안주인을 구했다. 정말 없다는 거냐.
몽블랑은 뭔가 주고 싶어 안달이 난 것 같은 카쉬모프 자작을 보며 한숨을 쉬었다.
“정 그러시면 킵 해놓겠습니다. 언젠가 쓸 곳이 있겠죠.”
순간 카쉬모프의 냉막한 가면이 웃음으로 깨졌다가 복구 되었다.
-듣던 대로 재밌는 사제로군. 알았다. 원할 때 말하여라.
세베루스와 세실리아는 깜짝 놀라 카쉬모프 자작을 보았다.
빚은 만들지 말고, 설사 빚을 져도 바로 갚아라 라는 말을 입에 달고 사는 카쉬모프 자작이 이런 말을 할 지 몰랐기 때문이다.
-장인께는 말해 놓을 테니, 빠른 시간 안에 회복하고 오너라.
카쉬모프 자작의 말이 끝나자 수정구는 빛을 잃어버렸다.
“야, 네 아버지. 성격 좋으시다? 듣던 것과는 완전히 다른데?”
세베루스와 세실리아는 그 말을 절대 인정할 수 없었다.
“방금 못 들었나요? 큰오빠는 미래의 첫 번째 검, 저는 백작가의 안주인이라고 했어요.”
“바라는 거 있냐고 세 번이나 물었잖습니까. 거기다 둘을 걱정하던 게 말 곳곳에 녹아 있던데... 빨리 복귀하라는 것도 얼른 얼굴을 보고 안심하고 싶다는 거잖아요. 완전히 무뚝뚝한 아버지의 표상이신데요?”
“혹시 저희 모르게 눈과 귀를 다치셨나요?”
“멀쩡합니다만?”
‘친구 아버지가 딱 저러셨는데... 하긴, 걔도 결혼하고 애기 낳기 전에는 그걸 몰랐다고 했지?’
몽블랑은 시간이 지나면 자연스럽게 해결 해 줄 문제에 더 이상 신경을 쓰지 않기로 했다.
세베루스와 세실리아는 곧 찾아온 집사를 따라 본프레레 백작을 보러가야 했고, 몽블랑은 일행들이 있는 곳으로 안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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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베루스와 세실리아가 왔다고 백작성에서는 성대한 파티가 열렸다.
아흘라니와 극단 안단테는 방에서 머물러야 했지만, 몽블랑은 세베루스와 세실리아의 조름에 어쩔 수 없이 파티에 참석할 수밖에 없었다.
법복이 없는 지라 연미복을 입은 몽블랑은 가죽바지처럼 달라붙는 바지에 불편해 하고 있었다.
“내가 다시 이 옷을 입으면 몽블랑이 아니라 몽쉘이다.”
“많이 불편하냐?”
몽블랑은 다가온 세베루스의 전신을 훑고는 와락 얼굴을 일그러트렸다.
그는 바지통이 넓고, 하얀색인 기사예복을 입고 있었다.
“나도 그거 주라.”
“...이 예복의 의미를 알고는 말하는 거냐? 예복과 갑옷은 언제든 적의 손에서 레이디를 구하고, 주군을 보호하겠다는 기사의 다짐과 같은 거다. 즉, 이걸 입는 이상 한 사람의 기사이고, 기사는 적의 결투신청에 응하여 명예를 지켜야 한다.”
“예복 입으면 칼 맞을 수 있으니 입지 마라는 말을 참 어렵게 한다?”
“정답이지.”
악동처럼 웃는 세베루스에 몽블랑은 고개를 저었다.
“여기 계셨군요. 세베루스 대공자.”
“아, 브라이텐 남작. 오랜만이오. 그간 건강 하셨소?”
“모두 대공자께서 걱정해주신 덕분이지요. 아, 이 아이는 제가 이번에 들인 첩입니다. 엘리샤, 인사 하거라. 이분이 카쉬모프의 대공자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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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 카우트예의 부름.
엘리샤는 차마 입이 떨어지지 않았다.
떨리는 눈으로 바라보는 몽블랑 때문이었다.
이 잔혹한 운명에 부채로 가린 엘리샤의 입술은 하얗게 질리도록 짓이겨지고 있었다.
“카...쉬모프 가의 대공자를 뵙습니다.”
“반갑소. 세베루스요. 아, 이쪽은 어쩌다보니 친구가 된 몽블랑 예거라고 하오. 카우트예라는 교단의 사제라오. 몽블랑, 인사해. 이쪽은 외조부의 최측근이신 브라이텐 남작이다. 브라이텐 남작가는 대대로 본프레레 백작가를 지탱해 온 가장 큰 기둥이지.”
몽블랑은 그제야 엘리샤에게서 시선을 때고 브라이텐 남작을 향해 정중히 목례를 하였다.
“반갑습니다. 몽블랑입니다. 귀족을 향한 예를 잘 모르니 이점 양해해 주셨으면 감사하겠습니다.”
정중하고, 막힘이 없는 음성과 흔들리지 않는 표정에 브라이텐 남작의 눈은 이채를 발했다.
“오~ 카우트예라면 현재 카우쉬카에서 단시간에 엄청난 세를 이룩한 교단이 아닌가. 그곳에 한명 뿐인 사제가 있다고 하였는데, 그게 예거 사제였군. 소문의 주인공을 만나보게 되어 영광이네. 이쪽은 내가 이번에 들인 첩이라네. 이름은 엘리샤”
“허진스. 지금은 브라이텐이겠군요. 알고 있습니다. 오랜만이야. 엘리샤.”
“알고 있는 사이였나?”
“우리 교단의 신도야. 먼 곳으로 갔다는 소리를 들었지만, 여기서 만나게 될 줄은 몰랐네.”
“오호~ 그런 인연이 있었어? 너희 교단에 이런 미녀 신도가 있을 줄이야...”
“미녀는 많다. 다 유부녀, 미망인, 미성년자라서 그렇지. 요샌 처녀들도 많이 오고 있어. 속셈이 조금 보이긴 하지만... 끄응.”
“하핫! 맞아, 자네 교단은 결혼이 가능하다고 했지? 골치 좀 썩겠군. 아, 저분은 라우렌 단장이 아닌가! 난 잠시 저분과 이야기를 하고 오겠네! 귀족자제이기 전에 나는 한명의 기사! 전설적인 저분과 이야기 할 수 있는 기회를 놓칠 수 없지!”
세베루스가 떠나자 셋 사이의 긴장감이 더욱 고조되었다.
“잠시 이야기 좀 나눌 수 있겠나? 예거 사제.”
브라이텐이 발코니로 걸음을 옮기자 몽블랑은 엘리샤를 바라보다 몸을 돌렸다.
서늘한 가을바람이 부는 발코니에 기댄 브라이텐 남작은 별이 가득한 밤하늘을 보며 나지막히 입을 열었다.
“엘리샤에게 미련이 남은 건가.”
“...미련이 없다면 거짓말일 겁니다. 하지만, 전 그녀의 선택을 존중합니다.”
“포기하게.”
“이미 포기했습니다.”
브라이텐 남작은 몽블랑의 흔들리지 않는 눈을 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속사정을 들으면 달라질 거네.”
브라이텐 남작은 숨기지 않고 모든 것을 털어 놓았다.
“그랬군요. 하아, 바보 같은...”
“...달려가지 않는 군? 그녀는 아직 자네를 사랑하네.”
몽블랑은 멀리서 초조하니 이쪽을 보고 있는 엘리샤를 보다 브라이텐 남작을 보며 고개를 저었다.
“못난 놈은 여자를 잡을 자격이 없습니다. 더군다나 자기 때문에 남의 여자가 됐다면 말입니다.”
“...그래, 정말 못난 사람이로군.”
하지만, 브라이텐 남작의 얼굴엔 안도가 서려 있었다.
“그럼 가보겠네. 곧 백작님께서 입장하시면 자네를 따로 부를 거네. 준비 하고 있게나.”
“한 가지 묻고 싶은 게 있습니다.”
“...자네를 향한 마음 빼고는 행복해 보이더군. 아니, 이제부터 내가 행복하게 만들 생각이네.”
“감사합니다. 마지막으로 한 가지. 행복하라고 전해 주시겠습니까? 차마 제 입에 담기엔 너무도 잔혹한 말이군요.”
“알겠네. 내 도움이 필요하면 연락하게나. 다 죽어가는 늙은이가 가진 것은 돈과 인맥뿐이라네. 그리고 호위는 내가 힘을 써 보지.”
몽블랑은 브라이텐 남작이 다가가 뭐라고 하자 얼굴을 붙잡고 무너지는 엘리샤를 차마 더 보지 못하고 몸을 돌렸다.
“이것으로 완전히 끝난 건가.”
몽블랑은 별이 가득한 하늘을 보며 씁쓸히 웃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