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57 회: 2-25(9. 킵 해놓겠습니다.) -->
만족스럽게 웃은 세실리아는 계약서를 찢어버렸고, 몽블랑은 그제야 가슴을 쓸어내릴 수 있었다.
“흐미~ 이제 진짜 자유다. 아, 반갑습니다. 카우트예의 사제 몽블랑”
“예거. 사제가 사냥꾼이라는 성을 쓰는 게 특이해서 외우고 있었지. 그런데 내 질문에는 대답 안 해 줄 거야?”
“...지금 동생 분 손에 단검이 들려 있는데요.”
“...동생아. 오해하지 마라. 난 그저 오빠로서 동생이 얼마만큼 성장했는지 알고 싶을 뿐이란다. 사심은 전혀 없어.”
세실리아는 능글맞게 웃는 세베루스를 째려보았다가 콧방귀를 뀌며 마차로 들어가 버렸다.
“휴우, 죽을 뻔 했네. 음? 하하하. 내가 좀 귀족 같지 않지? 아, 그냥 반말 해. 동갑이잖아.”
“...그러지. 그런데 여긴 왜 온 거야?”
“아~ 홍염의 기사의 유산이 잠든 곳이 이 근처여서 말이야. 마스터를 꿈꾸는 기사로서 당연히 와야지! 그가 어떤 함정을 마련했을지는 몰라도, 유산을 얻으려는데 그게 무서 울까!”
“홍염의 기사?”
“오러블레이드가 마치 불처럼 넘실거린다고 해서 붙여진 명칭이지. 또한 자유기사임에도 불구하고, 그의 귀계는 따를 자 없었다고도 해. 그래서 대체 어떤 함정으로 이 세베루스를 가로막을 지 무지 기대하고 있는 중이지!”
“...하아?”
몽블랑은 세베루스가 자유분방한 게 아니라 그냥 철이 없는 것은 아닐까 하고 생각했다.
“그래도 실망이야. 거의 근처까지 왔는데 몬스터는커녕, 여태껏 변변한 짐승 한 마리보이지 않다니! 아무리 배회하는 숲이라지만 이건 너무하잖아. 하아, 결국 남은 건 트랩인가? 트랩은 별로인데...”
“무슨 소리야. 숲에 짐승이 없을 수도 있어? 난 거의 사람만 한 새를 봤는데? 순식간에 시야에서 사라지는 게 엄청 빨랐어.”
“...지금 뭐라고 했지? 그 정도 크기의 날짐승을 봤다고?”
순간 날카롭게 뿜어진 기세에 몽블랑은 마른침을 삼켰다.
“그, 그런데?”
“어디쯤에서?”
“한, 세 시간 전쯤?”
“...모두 마차를 호위하고, 전투대형을 갖춰라!”
“충!”
“뭐, 뭐야!”
“미안하지만, 그 정도 크기의 새 부터는 몬스터로 분류 된다! 그런데 그런 조류 형 몬스터는 본 자작령에 없다는 것이다! 전투 준비!”
기사들이 검을 뽑으며 사위를 경계 하자, 주위에서 욕지거리가 들리며 나무나 바위 뒤에서 잿빛 로브를 눌러쓴 사람들이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그 숫자는 삼십, 반면 이쪽은 겨우 여섯 명에 불과했다.
세베루스는 검을 빼들었다.
“그래, 그 문양 본적이 있지. 코르체프가 내 목을 원하더냐.”
당황과 웅성거림이 번져갔다.
“...공자께서 죽어야 그분께서 카쉬모프의 주인이 되실 수 있기 때문이오. 그분께선 공자의 어릴 적 모습을 기억하고 계시다오.”
“난 자작 따위는 필요 없다고 말하였다.”
“그래도 아르민 공자께서 죽으신다면 나서실 것 아니오?”
“...빌어먹을 외통수로군. 알았다. 대신, 세실리아와 여기 사제는 보내 주어라.”
“미안하지만, 아가씨와 거기 사제 역시 제거 대상이오. 그분께선 분란의 씨앗을 남기는 것을 싫어하신다오.”
“바보같은! 아버지께서 가만 계시리라 보는 것이냐!”
“걱정 마시오. 카발 산맥을 통해 내려온 오우거 한 마리가 곧 이곳에 나타날 예정이오.”
“푸하핫! 겨우 그딴 걸로 아버지의 눈을 속인다고? 백부님이나 코르체프가 철혈의 주인을 너무 얕보고 있구나!”
“유언은 끝나셨소?”
“오너라, 내가 왜 가문을 버리고 검을 택했는지 알게 해주마.”
세베루스의 검 끝이 땅을 향하자 잿빛거미들도 전투태세를 갖춰갔다.
숨이 막힐 듯 피어오르는 긴장과 살기에 숲이 겁에 질려 떨기 시작했다.
햇빛에 부딪쳐 부서지는 은색의 시퍼런 죽음의 공포가 가슴을 옥죄자 몽블랑은 절망과 두려움이 드는 한 편, 뱃속 깊은 곳에서 헛웃음이 솟아올랐다.
“하, 씨발.”
큰 음성 때문에 사람들의 눈이 몽블랑에게로 향했다.
하지만, 몽블랑은 하늘을 보며 웃고 있을 뿐이었다.
“눈 뜨자마자 노예로 팔리질 않나, 죽을 똥 살 똥 다 싸가면서 겨우겨우 채석장에서 기어 나왔더니 웬 조폭이 저택을 노리고, 이제 좀 적응하고 잘사나 싶었더니 다시 팔린데다 어딘지 모를 곳에서 죽어야 해?”
실성한 듯 웃던 몽블랑은 세베루스를 향해 손을 뻗었다.
“신성한 힘. 신성한 바람. 신성한 정신. 신성한 지혜.”
몽블랑은 다른 기사들에게도 네 가지의 버프를 걸어주고는 자신에게도 시전 했다.
잿빛거미들은 그걸 막지 않았다.
하급사제 한명이 전황을 뒤집을 순 없기 때문이었다.
“검 남는 거 있으면 하나만 주쇼. 어차피 뒈질 거라면 차라리 반항이나 하다가 죽을라요.”
“...이걸 써라.”
기사가 쥐고 있던 검을 넘겨주자 몽블랑은 의아해 했지만, 그가 곧 등에서 도끼를 꺼내자 고개를 끄덕였다.
몽블랑은 검을 이리저리 휘두르다가 잿빛거미를 바라봤다.
“와봐, 이 씨벨놈들아. 최소한 한 놈은 끌고 갈 테니까! 형이 이래보여도 소싯적엔 트롤하고도 맞짱 뜬 놈이야!”
“쳐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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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 킵 해놓겠습니다.
챙챙챙! 크아압! 차아압!
죽음을 향해 달려가는 청명한 검명과 기합이 울려 퍼지는 공간, 하늘을 향해 뻗은 나무 꼭대기에 올라 밑을 내려다보는 극단 안단테는 방금 울린 몽블랑의 유언에 입을 헤 벌리고 있었다.
“우리 사제님 격하다는 건 알고 있었지만, 정말 남자답구나. 새삼 반해버릴 것 같아.”
“...전투에 익숙하군. 치료라던지, 기사와의 스위칭. 포박 류의 신성마법 모두 괜찮은 타이밍이 발휘되고 있다.
“그러게 말이야. 의외인 걸? 하지만 움직임이 많이 딱딱해. 사람과는 첫 실전 인 걸까? 아니면 글로만 배운 실전? 마치 정신이 먼저 나가고 몸이 뒤 따르는 것 같은 간극이 보여.”
뻐어엉!
“아, 날려 보냈다. 우리 사제님 완전 사기 아니야?”
허공을 날아 체중을 모두 실어 검을 내려치던 잿빛거미가 반투명한 큰 해머에 맞고 날아가 버렸다.
“...카우트예님은 정말 자비가 넘치는 것 같아. 20미터를 날려 보냈는데, 어떻게 저렇게 타격이 없는 거지? 봐봐, 어리둥절해 하면서도 바로 복귀하잖아. 흐음, 슬슬 전황이 불리해 지네. 아, 저쪽도 본격적으로 오러를 쓰기 시작한다.”
“개입할 때가 된 것 같군. 모두 준비해라.”
그들은 어디선가 꺼낸 검은색 로브를 두르고는 음표가 그려진 가면을 썼다.
“명심해라. 어디까지나 구출이다. 숲이라곤 하나 빛은 우리의 시간이 아니다.”
음흠흠~
대답 대신 그들이 쓴 가면 속에서 콧노래가 흘러나왔다.
아흘라니를 시작으로 그들은 나무에서 뛰어내리며 무기를 꺼내들었다.
목표는 착지 지점에 있는 잿빛 거미였다.
푸우욱!
*****
서걱!
기사의 허벅지가 베어지자 몽블랑은 손을 뻗었다.
“신성한 치료! 신성한 포박!”
촤르르르!
“스위치!”
몽블랑의 외침에 뒤에 있던 기사가 뛰쳐나가며 포박된 잿빛거미에게 검을 휘둘렀지만, 도중에 날아온 검에 의해 막혔다.
그때, 몽블랑의 몸 중앙에서 신성한 심판이 날아가 기사의 검을 막았던 잿빛 거미를 날려 보냈다.
기사는 검이 튕겨지는 반동을 이용해 포박되었었던 잿빛 거미에게 검을 휘둘렀다.
째앵!
포박에서 풀려난 잿빛거미는 기사와 힘 싸움을 시작했다.
“버텨! 차압!”
허공을 날은 몽블랑이 그대로 검을 내리 그었다.
쩌어엉!
또 도중에 난입한 잿빛 거미 때문에 튕겨져 버린 몽블랑은 뒤로 날아가 나무에 부딪쳤다.
“쿨럭! 이 씨발! 느림의 공포!”
몽블랑의 손에서 쏘아져 나간 보랏빛은 잿빛거미와 검을 맞댄 체 힘겨루기를 하고 있는 기사를 베어가는, 자신을 날려 보낸 잿빛거미의 전신을 뒤덮었다.
마치 그만이 물 깊은 곳에 빠진 듯이 시간이 느려졌고, 기사는 자신과 힘겨루기를 하는 잿빛거미에게 어깨를 찔러 넣는 척을 하면서 뒤로 훌쩍 물러났다.
갑옷이나 옷 여기저기가 갈라져 있지만, 상처는 전혀 보이지 않는 몽블랑과 세베루스, 싸움이 시작되자 옷을 갈아입고 나온 세실리아, 조르딕 외 5인의 기사는 몽블랑 주위로 몰려들어 가쁜 숨을 골랐다.
반원을 그린 체 포위한 잿빛기사들의 얼굴엔 작은 짜증이 서려 있었고, 세베루스와 세실리아는 몽블랑을 경악한 얼굴로 바라봤다.
“대단해! 스펠이 아예 없는 거냐!”
“맞아요! 마법사의 마법보다는 짧지만, 그래도 스펠이 있는 걸로 아는데요! 그리고 아예 없다시피 한 딜레이! 정신력은 아예 소모하지 않는 건가요!”
하급사제는 간단한 치료 마법을 발휘하기 위해서는 꽤나 긴 기도문을 외워야 했다.
그리고 한번 쓰고 나면 다시 쓰는데 꽤나 시간이 걸렸다.
이는 신성력을 끌어올리기 위해 많은 심력을 쏟기 때문이었고, 그게 회복되기 전까지 사제는 웬만해선 다시 신성마법을 발휘하지 않았다.
“정말 하급사제가 맞는 건가요? 대사제가 아니라?”
“카악! 퉷! 그건 그놈들이 게을러서입니다. 모든 일은 열심히 하다보면 요령이 생기는 법입니다.”
“그러면 그 전투센스는 어떻게 설명할 거냐. 손을 보니 검 같은 건 잡아 보지 않은 것 같던데?”
“...사제는 보조자면서도 조율자다. 사제가 무너지면 그 어떤 파티도 해산 될 수밖에 없어. 그렇기에 사제는 냉철하고 빠른 판단력을 탑재하고 있어야 해.”
‘안 그러면 한번 사냥하고 내 쫒아 버리지.’
몽블랑은 그 정도로 밖에 설명할 수 없었다.
“카우트예. 정말 흥미진진한 교단이야. 내가 마법사였으면 아마 모조리 파해치겠다고 달려들었을 거야.”
“맘대로”
우우웅!
대화는 순간 벌 때가 나타난 듯한 소리에 중단 될 수밖에 없었다.
세베루스와 기사들은 잿빛 거미의 검에 서리는 희미한 빛에 입술을 깨물었다.
“빌어먹을, 이제 진짜로군. 숙부가 제대로 마음먹고 키웠어!”
세베루스와 기사들도 오러를 일으켰다.
그러자 잿빛거미보다 조금 더 선명한 오러가 나타났고, 세베루스의 오러는 시리도록 차가운 청색으로 빛이 났다.
몽블랑은 이를 악물며 세베루스를 향해 손을 뻗었다.
“신성한 힘!”
“사제 놈부터 죽”
파라라라락!
잿빛거미의 대장은 고개를 뒤로 들었다가 기겁하며 자리를 이탈했다.
그건 다른 잿빛거미들도 마찬가지였지만, 반응이 늦어 피하지 못한 이들도 있었다.
푸우욱!
갑자기 나타난 10명의 방해자들은 잿빛거미에게 찔러 넣은 무기를 포기하며 몽블랑에게로 달려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