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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적의 사제-54화 (54/18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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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팔라와 헬미나가 떠나고 채석장에 있는 두 교단의 신전이 잠시 폐쇄 된 것에 기분이 좋던 몽블랑은 해치가 카우쉬카의 병사들을 끌고 채석장에 들이닥쳤을 때만 해도 그냥 그려니 하고 넘어갔다.

“오랜만이지?”

비릿하게 웃으며 든 그 두툼한 손에서 펼쳐진 양피지에 몽블랑은 뒷목이 싸해지는 경험을 느껴야 했다.

“대출...계약서?”

몽블랑은 너무 어이가 없었다.

“...야. 나 여기다 팔아 놓고, 뭔 개짓거리냐? 너하고 나 사이게 빚이 왜 있어.”

“그렇게 팔았는데도 빚이 많이 남아서 말이야. 요새 돈 많다며? 갚아줘야겠어.”

“해치씨. 이건 무슨 짓입니까!”

“아이고, 죄송합니다. 아커만 간수장님. 하지만, 어쩌겠습니까. 저도 먹고 살아야지요. 원금상환은 고사하고 이자가 너무 많이 늘었어요.”

능글맞은 웃음에 아커만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어이 해치. 지금 장난하자는 거냐? 네놈 한 번 털어볼까?”

“어이쿠 무서워라.”

해치는 으르렁 거리는 소리에 능글맞게 웃으며 게루안의 뒤로 물러섰다.

게루안은 비릿이 웃으며 양피지를 펼쳤고, 아커만과 체놈, 발로텔리는 하얗게 질렸다.

몽블랑은 그들의 반응에 불안해 졌다.

“으으음.”

“보이십니까? 시장님 직인이십니다. 시의 발전에 무궁한 기여를 해주시고 시의 명예 치안대장 및 홍보대사로 위촉되신 해치 사장님께서 악독 채무자가 돈 갚을 생각을 하지 않으신다고 하소연 하시기에 저희 시.장.님께서는 그러면 안되신다고 이렇게 집행권을 발부하셨습니다. 또한”

채석장에 험한 이들이 많기에 이렇게 많은 호위 병력을 내놓았다는 것이었다.

“...시장이, 왜?”

너무도 의아했지만, 당장 이 상황부터는 막아야 했다.

“이 새끼야, 몽블랑이 누군지 몰라? 이러고도 멀쩡할 것 같아?”

“글쎄요. 저는 다음 주에 로트모로 발령 날 예정이라 잘 모르겠는데요.”

“...개 같은! 코바치로 갈아 탄 거냐, 마르커스! 너 이새끼, 잠깐만 기다려! 내가 곧 아르민 공자님과 대면시켜 주마.”

“아아, 그러실 필요는 없습니다. 여기 해치 사장님께서 원치 않으시거든요. 해치 사장님? 마음대로 하시죠. 주위는 저희가 막아드리겠습니다.”

칼을 찬 기사들이 주위를 감싸자 아커만과 체놈을 이를 갈았다.

“마르코! 이럴 거냐!”

“어쩔 수 없소, 아커만 선배. 잘못된 명령이라도 해야 하는 게 기사 아니오. 아직까지 내 상관은 마르커스요. 미안하오.”

어느새 몰려든 채석장의 병사들과 게루안이 끌고 온 시의 기사, 병사들이 대치를 이루었고, 해치는 팔자걸음으로 몽블랑에게 다가가 입을 열었다.

몽블랑은 한 대 후려치고 싶었지만, 그랬다간 일이 꼬이기에 초인적으로 참아 내야 했다.

‘젠장, 이래서 대출 돈 갚으면 차용증부터 찢어버리라고 했지!’

“얼만데. 갚으면 되잖아!”

돈이 문제가 아니라 본능이 지금 끌려가면 안된다고 경고 하고 있었다.

“크흘흘. 전에도 그런 말 했었지? 이번엔 좀 비싸. 그 사이에 연체 이자가 복리로 꽤나 붙었거든. 꼬리 때고 3억페니다.”

“...뭐? 지금 장난해? 어떻게 1백만이 고작 반년도 안되서 3억으로 늘어!”

“복리로 붙었다니까? 복리 몰라? 이거 왜 이러셔, 그러게 계약서 잘 보고 싸인해야지.”

몽블랑을 이를 갈았디.

“이번에도 뭔가 착오가 있다, 시간을 달라 라고 말할 거냐? 그거 안 믿는 거 알지? 가져와. 지금당장.”

“누가 3억 페니를 가지고 다니냐! 이 개새끼야!”

“그건 내가 알 바 아니지. 어쨌든 거부 한 거 맞지? 게루안씨, 채무자가 갚을 의사 없는 것 같습니다.”

“그렇습니까? 그럼 연행 해야죠.”

“우라질! 막아! 저렇게 끌려가게 놔둬선 안돼! 아르민 공자께 연락 할 때까지”

아커만은 목에 드리워진 검 때문에 더 이상 말을 하지 못했다.

“더 이상 말 하면 베겠습니다. 선배.”

“지랄!”

아커만은 검을 쳐내며 그대로 기사를 걷어찼다.

“내 쫒고 입구 틀어막아! 이렇게 된 이상 아르민 공자님께서 오실 때까지 버틴다! 아니 세실리아 아가씨가 올 때 까지만이라도!”

추웅-!

“우아아아압!”

아커만은 검을 빼들며 수십명의 기사들을 향해 달려들었다.

일이 이렇게 되어버리자 몽블랑은 이를 까득 갈며 해치의 얼굴에 주먹을 꽂아 넣었다.

“안 그래도 예전부터 한방 치고 싶었다! 새끼야! 신성한 심판!”

뻐어엉!

반투명한 하얀 해머에 얻어맞은 게루안은 비명을 지르며 날아갔고, 몽블랑은 정신을 차리지 못하는 해치의 멱살을 잡아끌며 박치기를 날렸다.

상황은 그렇게 난전이 되었지만, 오래 가질 못했다.

아커만을 순식간에 제압한 기사들이 본격적으로 나서자 전황이 역전되다 못해 삽시간에 끝나버렸다.

이상한 사태에 몰려들었던 채석장의 병사와 간수들은 모두 바닥을 기고 있었다.

거친 숨을 토해내던 기사들은 갑옷에 묻은 피를 털어내며 싸우는 소리 때문에 몰려오는 채석장의 병사와 간수들을 바라봤다.

“그마안-! 이들이 죽는 꼴을 보고 싶으면 오라!”

아커만의 목에 겨누어진 검은 그들의 돌진의지를 꺾어 버렸다.

상황은 그렇게 정리되어 버렸다.

그러자 힘을 얻은 해치는 몽블랑에게 달려들었지만, 몽블랑은 움츠리지 않고 그대로 해치를 후려 갈겼다.

“이렇게 된 거 이판사판이야! 신성한 커헉!”

허공에 가르며 발을 내지르던 몽블랑은 옆구리를 후려갈기는 아득한 고통에 그대로 바닥을 굴러야 했다.

옆구리를 부여잡은 몽블랑은 흔들리는 눈으로 피로 점철된 갑옷을 입은 기사를 노려봤다.

기사는 콧방귀를 뀌었다.

“포박해!”

몽블랑은 달려드는 병사들을 보며 이를 악물었다.

“빌어먹을...”

*****

몽블랑은 그대로 포박되어 쇠창살의 수레에 실려지게 되었다.

의외인 건 눈만 뚫린 두건을 쓴 몽블랑이 멀쩡하다는 것이었다.

그건 몽블랑을 후려쳤던 기사가 해치와 게루안을 말렸기 때문이었다.

‘인내심을 자극하지 말라’는 살벌한 말에 게루안과 해치는 자라목이 되어 물러나야 했다.

덜컹 덜컹 흔들거리는 수레 안에서 망연한 눈으로 하늘을 바라보던 몽블랑은 루시아와 아이들의 ‘잡아 가지 마라. 저리 비켜라’ 는 외침이 귓가에 울리는 것 같아 쓰게 웃었다.

저택에 있던 이들도 몰려 나와 힘을 쓰려고 했지만, 역부족이었다.

수레는 카우쉬카 안으로 들어가지 않고 성벽을 끼고 돌아 동문으로 향했다.

동문 입구에는 험악한 인상들이 대기 하고 있었다.

‘또 팔려가는 건가? 인생 참...’

“어이, 해치. 계약서 꼭 찢어라.”

“크흐흐. 내가 왜?”

몽블랑은 아커만을 막아섰던 기사를 바라봤다.

“저 새끼들한테 넘겨지는 순간 난 해치에게 진 모든 채무를 갚았다고 생각하는데, 거기 기사님은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해치 홍보대사. 계약서를 찢도록.”

“아, 아니 기사님! 이건 말이 틀리 헉!”

해치는 온 몸을 옥죄는 끔찍한 살기에 하얗게 질렸다.

“지금 대 카쉬모프 자작가의 기사 앞에서 위법을 하겠다는 거냐. 이딴 더러운 일에... 까드득. 내가 아직 네 번째 칭호를 받지 않은 것을 다행으로 여겨야 할 것이다!”

“아, 알겠습니다. 저들과 계약서를 쓰고 바, 바로 찢겠습니다.”

“내가 할 수 있는 호의는 여기까지다. 예거 사제.”

“이해합니다. 군인이라는 게 무조건 상명하복 아닙니까.”

“...고맙군. 다음부터는 그 되 먹지 않은 주먹질은 하지 마라. 크게 다칠 거다.”

“그래도 양아치 새끼들한테는 통하지 않습니까.”

한 번 팔렸던 경험 때문인지 몽블랑은 여유가 있었다.

거래는 너무도 빨리 이루어 졌다.

서로 계약서를 쓰고 해치가 돈을 넘겨받는 것으로 몽블랑의 소유권은 검은 옷의 노예 상인들에게로 넘어가게 되었다.

보기만 해도 두둑한 지폐뭉치였지만, 3억 페니에는 턱없이 미치지 못한다는 것을 안 몽블랑은 정말 더럽게 얽혔다고 생각했다.

빠르게 멀어지는 카우쉬카의 성벽을 보며 몽블랑은 가슴 깊은 곳에서 올라오는 한숨을 내뱉었다.

*****

“크륵... 왜...”

마르커스는 심장에 박힌 검을 보며 불신에 찬 눈빛을 보냈다.

“고작 사제 한명 처리하는 걸로 본프레레를 적으로 돌릴 수 없어서 말입니다. 게루안이란 사람도 잠시 후, 마르커스님의 뒤를 따르게 될 겁니다.”

“거지같은... 이미 들켰을...”

“심증과 물증은 무게가 다른 법이죠. 그럼 안녕히.”

검이 비틀린 순간 마르커스의 눈에 서린 생기가 빠르게 사라져갔다.

검을 뽑아 피를 털어낸 사내는 고개를 저었다.

“후, 몽블랑이란 자도 참 불쌍하군. 사제만 아니었더라면 이런 꼴은 당하지 않았을 텐데 말이야.”

사제는 원하기만 하면 언제든지 막대한 숫자의 신도를 만들 수 있었다.

신도의 숫자는 곧 세력, 몽블랑이 이룬 세력은 곧 아르민의 세력이 된다고 봐야 했다.

“물론 몽블랑이란 자는 그런 생각 따윈 없는 것 같았지만...”

혀를 찬 사내는 검신에 묻은 피를 닦아낸 천을 버리고선 몸을 돌렸다.

“더 늦기 전에 움직여야겠군. 내가 없어도 목표를 충분히 없앨 테지만, 늦장 부렸다고 혼나겠지. 하, 이번 일만 끝나면 휴가를 신청해야겠어. 피곤해.”

로브의 사내가 그림자 속으로 사라진 후, 꽤 시간이 흐르자 다시 마르커스의 침실에 드리운 그림자가 요동치기 시작했다.

복면을 쓰고 나타는 극단 안단테는 죽어 있는 마르커스에게 다가가 상처를 찔러 본다던지, 주위를 살피기 시작했다.

“죽은지는 약 20분. 전문가의 솜씨야. 그런데 검술을 제대로 배웠어. 귀족의 사냥개 같아.”

“그렇다면 흔적을 찾을 수 없다는 거로군. 철수 한다.”

“바로 사제님 구출하러 가는 거야?”

“노예상인들은 룸페인 노예시장으로 갈 것이다. 사제님의 알리바이를 위해서라도 배회하는 숲에서 구출한다. 루카스는 무슨 일이 있더라도 사제님의 계약서는 꼭 없애버리도록.”

“알았어, 단장. 그럼 그 해치란 놈은 어떻게 하지?”

“사제님에게 맡긴다.”

극단 안단테는 나타났던 것과 마찬가지로 그림자 속으로 녺아 들며 사라졌다.

똑똑똑!

시장님, 야식을 가져 왔습니다.

잠시 후 문이 열리며 한손에 쟁반을 바쳐 든 하녀가 들어왔다.

“왜 이렇게 어둡지? 주무시는 가요, 시장님? 아이참, 소파에서 주무시지...”

딸그랑.

“꺄아아아아아악!”

******

따각! 따각!

이틀 동안 빠르게 달린 마차는 삼일 째 접어드는 날, 속도를 평범하게 늦추었다.

“우욱!”

“...거참, 그놈의 멀미는 그만 둘 수 없는 거냐? 이불도 좋은 걸로 깔아 주고 햇빛 받지 말라고 천도 덮어 줬잖아.”

“이불이랑 멀미랑은 상관없어.”

몽블랑은 벌렁 누워 숨을 골랐다.

“정말 더럽게 익숙해지지 않네. 그냥 걸을까?”

“대장이 거부 할 걸? 네 몸값이 얼만지 몰라?”

“1천만 페니 아니야?”

“룸페인에 팔 때는 3천만 주고 팔 거야. 그러니 대장이 있는 돈 없는 돈 싹싹 긁어모아서 널 산거지. 아마 룸페인은 널 최소 5천만 페니에 팔 걸? 들어 보니 치료 능력이 끝내 준다며?”

“손가락은 붙이지 못해도 잘린 상처는 한 번에 아물게 할 수 있다. 들어보니 꼭 그렇게 타고 난 것처럼 위화감이 없데.”

“대단 하구만. 잘하면 국경에 팔려가겠는데?”

“으잉? 국경? 그건 뭔 개소리야?”

“휴전협정을 맺었다고 해도, 국지도발은 일어나잖아. 귀족 놈들 기 싸움에 애꿎은 병사들만 죽어나가는 거지...”

로토의 말은 결국 치료만 하다가 일평생을 보낼 수 있단 소리여서 몽블랑은 얼굴을 일그러트릴 수밖에 없었다.

“야, 술이나 내놔.”

“술이나 시거는 절대 안돼. 넌 룸페인에 넘겨 질 때까진 무조건 몸 상태가 최상이어야만 해.”

“우라질!”

“큭큭큭! 아, 그런데 넌 어쩌다 팔려 온 거냐?”

“더럽게 빨리도 물어본다. 사흘 동안 입 근질거려서 어떻게 살았냐?”

“니가 우울해서 그런 거였지. 너 정도 몸값이 되니까 이렇게 대우해 주는 거야. 안 그러면 어림도 없어. 그래서 어떻게?”

“어떻게 긴, 귀족 놈들의 더러운 정치싸움에 휘 말린 거지. 내가 기필코 그 짐승보다 못한 새끼를 물 먹이고 만다.”

아커만이 외쳤던 코바치란 이름에 몽블랑은 대충 감을 잡을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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