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54 회: 2-22(8. 오랜만이지?) -->
*****
북문 입구, 룸펠은 채석장으로 향하는 길 입구에 섰다.
옆 게시판에 줄줄이 서있는 간의천막을 바라보던 룸펠은 서쪽과 동쪽에서 다가와 뒤에 선 2백명이 넘는 로브인들에 작게 웃었다.
“순식간에 치고 빠진다. 그리고 흩어져 3일 후, 다시 조직으로 복귀한다. 그때, 보스가 큰 포상을 내릴 거다. 연장은?”
“모두 애새끼들이라고 해서 그냥 몽둥이만 가져왔습니다. 형님.”
“잘했다. 어디까지나 목표는 그 사제 한 놈뿐이다. 괜히 채석장을 들쑤셔 봐야 좋을 것 하나 없다. 애새끼들은 연약하니까, 특히 조심해라. 그런데 누가 사제 놈, 허리를 끊기로 한거냐.”
“저, 접니다. 룸펠 큰 형님!”
룸펠은 다가온 앳된 청년의 얼굴을 빤히 바라봤다.
“괜찮겠냐? 지금이라도 싫으면 물러나도 된다. 막내 놈에게 담금질 시킬 정도로 사람 없는 거 아니다.”
룸펠의 따뜻한 음성에 청년의 눈시울이 붉어졌다.
“괘, 괜찮습니다! 그 새끼를 담가버리려고 여태껏 칼을 갈고 있었습니다!”
“...악감정이라도 있는 거냐?”
“그 새끼가 내쫒은 바람에 저는... 저희는... 흑흑흑!”
토마스에게 걸려 남자들은 만신창이가 되고, 여자들은 창녀로 팔아 넘겨지려다가 겨우 구출되었다.
하지만 그것도 며칠 가지 못했다.
도시는 아무런 연고가 없는 고아가 살기엔 너무 팍팍하고 위험했고, 거지패거리에게 험한 꼴을 당한 여자들은 제 스스로 술집의 문을 두드려야 했다.
남자아이들은 뿔뿔이 흩어져 호객꾼이나, 술집 문지기, 암흑가의 똘마니가 되어야했다.
저택에 남은 아이들이 날이 갈수록 살이 찌고, 웃음이 떠나지 않는 모습을 보며 청년은 얼마나 이를 갈았는지 몰랐다.
사연을 들은 룸펠은 속으로 일이 쉽게 됐다는 듯 웃었다.
“길은 우리가 열어 줄 테니, 넌 가서 그어버리기만 해라. 그렇게 되면 출소 후 내 오른 팔은 네가 될 것이다.”
“가, 감사합니다! 충성을 다하겠습니다! 큰 형님!”
“모두들 들었나? 무조건 막내를 위해 사제 놈을 향한 길을 연다. 알았나!”
예, 큰형님!
“저 북문 경비 놈들이 소란스러워 지기 시작했으니 얼른 끝내자! 가자!”
*****
8. 오랜만이지?
웃고 떠드는 사람들을 보며 흐뭇이 웃고 있던 몽블랑은 어떤 신호를 보내곤 일어서는 루시아의 모습에 떨떠름해 하며 일어섰다.
저택 옆으로 돌아가니, 어둠 그림자에 숨은 루시아는 고개를 숙이고 있었다.
“무슨 일이야?”
몽블랑은 왜 그런지 대충 예상 됐지만, 애써 외면했다.
“사제님 절 어떻게 생각하세요? 장난치지 마시고요.”
혹시나가 역시나자 몽블랑은 한숨을 쉬었다.
“네가 왜 그런 말을 하는지 이해 못하는 건 아니야. 하지만, 네가 느끼는 그 감정이 진짜일까? 잠깐, 내 말부터 들어. 네가 나에게 호감을 느끼는 건 알아. 하지만, 그게 사랑이진 않을 거야.”
어려울 때 도와주고, 세상의 모진 풍파를 막아주며, 어둔 곳에서 끌어 올려 주었다.
“고맙다는 마음을 사랑으로 오해해선 안돼. 넌 아직 어리고, 미숙해. 분명 혼동하는 거야. 나중에 나이를 더 먹고 너 자신을 냉정히 바라보게 되면 결코 이 감정이 사랑이 아니었음을 알게 될 거야. 그러니 그렇게 성급해 하지마.”
“난 진심이라고요!”
울음이 가득한 외침에 몽블랑은 가슴이 답답해지는 것을 느꼈다.
애원하고 갈구하는 루시아의 눈동자에서 또르르 흐르는 눈물에 몽블랑은 순간 헛바람을 삼켰다.
‘얘다. 몽블랑아, 얘야. 미성년자라고!’
이 세상에서 가장 강한 무기는 여자의 눈물이라고 누가 그런 말을 했는지는 몰라도 몽블랑은 적극 동감하고 싶었다.
몽블랑은 당황에 주춤 거리며 물러났고, 루시아는 그에 몽블랑에게 한발 다가섰다.
“자, 잠깐. 우리말로 하자. 진정하고 말로”
씨, 씨발! 이런 말은 없었잖아! 왜 이렇게 많아!
“응?”
몽블랑은 고개를 뒤로 돌렸다.
공터가 갑자기 조용해지더니 부산해 졌다.
면회소장, 이거 정당방위요. 우린 죄 없는 거지라잉?
씹어먹어도 내가 다 막아 줄게. 감히 우리 여보야와의 알콩달콩한 시간을 방해해? 모두 포박해! 범죄자 들이다!
우아아아아아!
도망치기엔 글렀다! 쳐! 죽여 버려!
무언가 심상치 않은 일이 생겼다.
몽블랑은 순간 이 상황을 벗어 날 수 있게 되어 기쁜 한 편, 머리가 아파왔다.
“진짜 해버렸네...아, 우리, 나중에 이야기 하자. 너나나나 맨 정신에, 진정하고! 알았지?”
“사, 사제님!”
루시아는 뛰쳐나가는 몽블랑을 망연히 바라보다가 입술을 깨물었다.
“다 넘어 왔는데, 이씨! 누군지 몰라도 죽었어!”
루시아는 음성증폭 아티팩트를 찾아 뛰었다.
몽블랑은 지인들과 얽혀 있는 수백명의 로브인들을 보곤 이를 갈았다.
몽블랑은 달려 나가며 손을 앞으로 내밀었다.
“신성한 포박! 신성한 심판!”
뻐어엉!
반투명한 거대 해머가 쏜살같이 날아가 한사람을 날려 보내는 순간 잠시 시간은 멈추었다.
“...죽여 버려!”
우아아아아아!
*****
채석장의 특성상 일대 다수의 전투에 특화되어 있는 간수와 병사들은 거의 날아다니다 시피 로브인들을 무력화 시켜갔고, 잭과 르벌, 그 동생들은 왜 암흑가 조직원이었는지를 여실히 보여주며 치열한 전투를 벌였다.
몽블랑은 로브가 보이는 족족 신성한 심판을 쏘아 사람들을 날려 보냈다.
로브인들은 빠르게 무력화 되어갔고, 도중에 칼을 빼들었던 어떤 청년은 날아든 채찍에 비명을 지르며 스러졌다.
거기다 음성 증폭 아티팩트를 통해 증폭된 루시아의 분노에 찬 고함에 내려온 병사들까지 합심하니 상황은 순식간에 정리되어 버렸다.
몽블랑은 아커만에게 맞은 뒤통수를 문지르며 억울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아니 이게 제 탓이에요? 같이 계획까지 짜셔 놓고!”
“자네가 사건사고를 몰고 다니잖아. 사제란 걸 밝혔을 때부터 읊어 볼까?”
그렇게 말하니 몽블랑도 할 말은 없었다.
죄다 자신과 직간접적으로 관계된 일들이었으니 말이다.
“다음엔 또 어떤 사고를 터트릴지... 그런데 아까 그 신성마법은 뭐야?”
“아~ 신성한 심판이라는 건데 적을 20미터 밖으로 날려 보내는 거에요. 대신에 공격력, 아니 타격은 별로 없죠. 지금은요.”
“확실히 그래 보이더라.”
20미터를 날아간 로브인은 벌떡 일어나 의아해 하다가 고개를 털곤 달려들었다.
“아무튼, 우리 조용히 좀 살자. 얼마나 식겁했는지 알아, 응?”
“그래도 채석장 복지를 위한 사고는 좀 칠게요.”
“으이그! 암튼 말이나 못하면... 그나저나 이 새끼들, 완전히 작정하고 온 것 같은데, 정말 블랙 스컬 맞나?”
“저 새끼는 블랙스컬의 보스 제랄의 왼팔인 룸펠이란 놈이요.”
“흐미, 이렇게 본께 죄다 익숙한 얼굴들이 구만.”
잭과 르벌이 확인시켜 주자 아커만은 이를 갈았다.
“감히 이 아커만이 봐주는 카우트예를 암흑가 버러지들 따위가 해하려고 해? 이번은 못 참는다! 체놈!”
“충!”
“저놈들 포박해서 관청으로 간다! 일벌백계가 무엇인지 보여 줄 것이야!”
면회소 완공 축하회 때, 아르민이 직접 두 번째 칭호와 매달을 주고 가면서 몽블랑을 지켜 봐달라고 부탁했다.
그게 아니더라도 몽블랑은 아커만의 보배였다.
아커만은 몽블랑의 계획을 착실히 따르기로 하였다.
“몽블랑, 자네도 참고인으로 따라와!”
“당연하죠!”
몽블랑은 루시아를 힐끔 보곤 냉큼 대답했다.
그렇게 그들이 떠난 어수선한 자리, 서로를 보던 안단테 단원들은 나른히 웃었다.
“도망치겠지?”
“토끼도 제가 도망칠 구멍을 몇 개나 파놓는데, 하물며 암흑가 보스라면 말할 것도 없지. 아까 유일하게 칼 든 놈이 하는 말 들었지? 우리 사제님 죽이러 온 거야.”
“흐응~ 갈사람 손?”
안단테 단원들은 모두 손을 들어 올렸고, 아흘라니는 가면을 고쳐 썼다.
“명심해라. 우린 럴러바이가 아니다. 죽이는 건 안돼.”
“흐응~ 단장은 너무 걱정이 많더라. 우리가 한두 번 해봐?”
“큼. 그럼 가지.”
아흘라니를 비롯한 안단테의 단원들은 저택 안으로 들어가는 순간 자취를 감추었다.
*****
밤사이 카우쉬카에 피바람이 불었다.
카우쉬카의 경비대 전원이 블랙스컬의 영역을 휩쓸며 조직원과 조직에 연관된 자를 모두 포박한 것이다.
블랙 스컬의 보스 제랄은 자신의 저택에서 사지의 힘줄이 잘리고, 입이 뭉개 진체 ‘허밍, 어쌔신’ 이란 말만 반복 하고 있었다.
그런 제랄의 금고에서 녹음 수정구를 발견한 경비대는 경악 할 수밖에 없었다.
이 더러운 일에 지그문트와 루나 두 교단이 끼어 있었기 때문이다.
다행이라 할지, 교단의 이름은 나오지 않았지만, ‘대사제’ 라는 단어와 남녀의 목소리에 두 교단은 시장의 엄중한 경고를 받아야 했다.
누가보아도 두 교단이 나날이 세가 불어나는 카우트예를 견제 한 것이 분명했지만, 심증만 있을 뿐 녹음 수정구로선 물증이 부족했다.
이게 고작 하룻밤사이에 벌어진 일이었다.
한 손에 술잔을 쥔 카우쉬카의 시장 마르커스는 떠오르는 해를 보며 회한에 젖은 목소리를 내뱉었다.
“내 정년도 어느덧 6년 밖에 남지 않았군.”
6년 후면 정치판에서도 물러나야 했다.
애초에 그런 약속을 하며, 다른 경쟁자를 젖히고 시장을 맡았기 때문이었다.
“참 생각 없고, 욕망만 있던 시절의 망언이었지. 그러나 후회스럽진 않아. 아쉬울 뿐이지. 더 이상 이 달콤한 과실을 맛 볼 수 없다는 게 말이야. 그래도 참고 은퇴하려고 했어. 그런데!”
호박빛 술을 머금은 술잔이 마르커스의 손아귀에서 박살났다.
“감히 네놈 따위가 날 협박해? 두 번째 칭호를 받으니 눈에 보이는 게 없다 이거냐!”
정중히 경비들을 빌려 달라 말했지만, 그 눈은 분명 위협을 하고 있었다.
아커만이 그렇게 오만해 질 수 있었던 이유는 역시 아르민의 비호도 있지만, 아르민이 욕심내고 있는 몽블랑의 뒷배를 자청하고 있어서였다.
마르커스는 이를 갈았다.
“코르체프 공자께서 이 늙은이에게 한 약속은 아직 유효 한 건가.”
방에 드리운 그림자에서 회색 후드를 깊게 눌러쓴 사내가 걸어 나와 한 장의 백지지폐를 내밀었다.
“원하는 만큼 쓰라고 하셨습니다. 또한 로트모의 시장 자리 역시 마르커스님에게 맡기신다고 하시더군요.”
“로트모... 본 자작령에서 가장 궁핍한 도시로군.”
“하지만, 다른 자작령의 하상급 도시 정돈 됩니다. 왕처럼 군림하셔도 무어라 할 사람은 한명도 없습니다.”
이제 결정해야 할 시간이지만, 마르커스는 조금 망설였다.
하지만, 망설임은 짧았다.
오만방자한 아커만의 눈빛도 있지만, 관청에 있는 자신의 수족들이 파벌을 나누어 아커만을 지지하고 있었다.
이 모두 정치 인생이 겨우 6년 밖에 남지 않았다고 못 박아져 있기 때문이었다.
또한, 약속되어 있던 다음 임기가 불확실해진 것도 모자라, 내년 시장에 아커만이 될 거란 말이 공공연히 나돌고 있었다.
그럼에도 아르민에게선 아무런 말이 없었다.
‘아무리 철혈의 피라지만, 지난 충성의 대가가 고작 이정도 밖에 안되었던가.’
“후, 역시 정치엔 영원한 적도 영원한 친구도 없나 보군. 좋네. 내 인장을 내어주지.”
“공자께서도 크게 기꺼워하실 겁니다.”
“조만간 뵙자고 전해 주게나.”
회색 후드를 눌러쓴 사내는 그림자 속으로 사라졌고, 마르커스는 다시 떠오르는 태양을 바라봤다.
“끝났다고 생각한 정치인생이었거늘... 껄껄껄껄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