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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액션을 취하지 않은 거지?’
몽블랑이 이상한 점이 바로 그것이었다.
성과물을 내지 못하고 있는데도 너무 느긋했던 것이다.
놀랜드나 다른 사람들에게 들은 신전사제의 모습과는 전혀 동떨어진 모습이었다.
“야, 넌 집에 가. 정말 한번 만 더 걸리면 얄쨜 없어!”
“...네.”
입술을 비죽 내민 마르코가 사라지자 몽블랑은 둘이 들어가는 골목으로 재빨리 걸음을 옮겼다.
놓치지 않을 정도의 거리를 두고 쫒던 몽블랑은 둘이 식당 앞에 서자 멈추었다.
“뭐야, 둘이 그렇고 그런 사이야? 그런데 대체 무슨 이야기를 저렇게 심각하게 하는 거지?”
들어가기 싫은 걸 억지로 끌고 들어가려는 모습은 아닌 것 같았다.
몽블랑은 좀 더 가까이 가기로 했다.
“...하루 뒤... 간 후.”
“......갈까요?”
“갈 거요. 그녀가 여기 계속 있을 이유가 뭐가 있겠소?”
“그렇긴 하네요. 그럼 결사일은 가석방 하루 뒤가 좋겠군요.”
“흐흐흐, 그놈은 꿈에도 모르겠지.”
“오호호호호! 그 놈이 병신이 되어 사라지면, 아커만도 어쩔 수 없이 우리를 지원해야 할 걸요?”
“그래야겠지! 그럼 교단에서도 우릴 달리 보겠지! 솔직히 이렇게 상황이 급박하게 흘러가지만 않았더라면 다른 방법을 썼겠지만...”
“교단이 너무 빠르게 저희를 포기 했어요. 다른 년이 대신 들어오면 저는 영원히 대사제가 못 될 텐데, 절대 그럴 순 없죠!”
“마찬가지라오. 역시 가장 확실하고 빠른 방법은 방해물을 부셔버리는 것이지... 자, 이제 이 이야기는 그만 합시다. 이곳은 본 교단에서 운영하는 곳이라 소문이 날 일이 없다오. 아주 뜨거운 밤을 보내게 해드리리다.”
“그거 기대 되는 걸요?”
혀로 입술을 핥은 헬미나는 코팔라의 팔짱을 꼈고, 둘은 식당 안으로 들어갔다.
남겨진 몽블랑은 헛웃음을 지었다.
“이젠 놀랍지도 않네.”
그들은 누구라고 지칭하지 않았지만, 대상은 뻔 했다.
“앉아서 당할 순 없지. 아커만을 만나야겠어.”
몽블랑은 이를 갈며 골목을 떠났다.
바로 채석장에 오른 몽블랑은 아커만과 이야기를 나누었고, 아커만은 길길이 화를 내며 몽블랑의 계획에 적극 찬성했다.
채석장을 나온 몽블랑은 별이 가득한 밤하늘을 보며 입술을 비틀었다.
“어디 제대로 엿 먹어 봐라. 발가벗겨서 내쫒아 주지!”
*****
가석방 행사 준비까지 맡게 되자 더 이상 다른 일에 신경 쓸 틈이 없을 정도로 정신이 없던 몽블랑은 전혀 보고 싶지 않은 손님을 맞이하여 기분이 바닥을 찍는 것 같았다.
“일찍 오셨군요. 세실리아 아가씨.”
“식이 시작되는 날, 아침에 온 게 빨리 온 건가요?”
“솔직히 점심 때 쯤에나 오실 줄 알았습니다. 식은 오후에 하니까요.”
채석장의 노예와 죄수들이 희망과 열망을 가질 수 있도록, 모든 노예와 죄수들을 행사에 부르려고 했기에, 식은 오후로 미뤄 질 수밖에 없었다.
하루의 작업량을 어느 정도 맞춰야 하기 때문이었다.
“흐응~ 제가 반갑지 않나보군요. 그럼 선물은 취소해야겠어요.”
그러며 뒤를 보았는데, 세실리아의 뒤에는 온통 사람들뿐이었다.
“후훗, 궁금하신가 보군요? 예거 사제님의 이야기는 영도에서도 듣고 있답니다. 요새 사람이 부족하시다고요?”
몽블랑의 또래로 보이는 남녀 5명이 세실리아의 뒤로 바짝 섰다.
“올해 카쉬모프 아카데미의 졸업생들이에요. 역사학, 수학, 공용어 등을 전공한 인재들이죠.”
몽블랑은 이 소리가 어디서 들어간 건지 대충 알 수 있었다.
‘고맙네. 슈마씨.’
몽블랑은 순간 혹 하는 한편, 무언가 의뭉스러웠다.
“너무 과한 선물이 아닌가 싶습니다만...”
어서 속내를 털어 놓으라는 눈빛에 세실리아는 안되겠다는 듯이 고개를 저었다.
“잠시 이야기 좀 나눌 수 있을 까요?”
“예. 이쪽으로.”
몽블랑과 세실리아는 찻잎이 비치 된 도서관에서 마주보며 앉았고, 그녀가 데리고 온 기사와 아카데미 졸업생들은 밖을 지키고 있었다.
세실리아는 따끈한 김이 올라오는 찻잔을 만지작거리다 한숨을 내뱉었다.
“이건 제 뜻이 아니라 둘째 오빠의 뜻임을 먼저 밝히겠어요.”
세실리아가 온 이유는 바로 몽블랑의 예배 연설을 녹음하기 위해서였다.
카쉬모프에는 광산, 채석장, 벌목장 등 많은 노역소가 운영되고 있는데, 그곳에다 몽블랑의 예배 연설을 틀어주고 싶다는 것이었다.
카쉬모프 채석장이라는 성공한 케이스가 있으니, 아르민은 망설이지 않았다.
“이 때문에 아르민 오빠는 본 메조른 왕국에 있는 다섯 교단의 예배에 참석해 보기도 하고, 그들의 예배 연설이 녹음 된 것을 듣기도 했지만, 예거 사제님만큼 가슴을 절절히 울리는 말은 없다고 했어요. 그건 저도 동감이라고 생각해요.”
아르민의 마음 같아선 몽블랑을 모든 노역장에 보내고 싶었지만, 잠깐 눈을 땐 사이 몽블랑은 신도가 5천명이 넘는 엄청난 세를 이룩하여 버렸다.
차선으로 카우트예의 다른 사제라도 끌어 들이고 싶었지만, 안타깝게도 카우트예에는 몽블랑 혼자뿐이었다.
“어때요, 사제님에게도 그리 나쁜 조건은 아닐 텐데요?”
“으음. 제가 채석장에서 일하는 분들의 마음을 잡은 것은 첫 예배에 그들의 소망을 건드렸기 때문입니다.”
“그건 걱정 마세요. 첫 예배 연설부터 저희에게 있으니까요. 간수장이 보고를 위해 녹음을 했죠. 그리고 사제님이 노역수 들에게 어떤 식으로 희망을 심어 줬는지도 적어서 보냈죠.”
몽블랑은 자신도 모르게 눈살을 찌푸렸지만, 펴지는 않았다.
“무섭군요.”
“무섭지 않으면 귀족이 아니죠.”
싱긋 웃는 미소는 온 몸에 소름이 돋게 할 정도로 서늘했다.
“좋습니다. 한 가지 조건만 들어주신다면 그렇게 하겠습니다.”
“조건이라... 재밌네요. 뭐죠?”
“카우트예의 신전 겸 제가 사는 저택을 아십니까?”
“...흐응. 겨우 그런 건가요? 좋아요. 주위의 땅을 원하는 만큼 임대해 드리죠. 지원금도 드릴까요?”
“아뇨. 지원금은 됐습니다. 돈이 없는 게 아니라서요.”
“지원금 형식으로 1백년간 무상임대를 해드리죠. 나중에 돈이 생긴다면 매입하셔도 되요. 그때쯤이면 이 채석장도 사실지 모르겠네요.”
“그때쯤이면 대리석은 한 조각도 남아있지 않겠죠.”
“정답이에요. 임대계약서는 간수장을 통해 보내도록 할게요.”
“감사합니다. 아가씨.”
“무얼요. 전 능력 있는 자에게 관대하답니다.”
‘얘는 독사구나.’
예쁜 얼굴과 몸으로 아무것도 모르는 듯 순진한 척 하고 있으면서 속으로는 진한 독기를 품고 있었다.
“방금 이 말은 쉿! 저는 둘째 오빠를 사랑해요.”
귀엽게 웃으며 혀를 살짝 무는 모습은 본질을 알게 되었더라도 순간 가슴을 두근거리게 만들었다.
“휴우, 치명적이군요.”
“호호호. 곧 백작가의 안주인이 될 사람인데 이정도도 못하면 안돼죠. 부디 부탁 하오니, 제 매력에 빠지지 마세요. 헤어 나올 수 없거든요.”
“저 좋다는 여자는 많으니 그럴 일은 없을 겁니다. 저희 카우트예는 결혼이 가능하거든요.”
“그거 천만 중 다행이네요. 당신의 자식이라면, 그 능력을 타고 날 테니 말이죠.”
몽블랑은 세실리아가 보고 있는데도 머리를 신경질 적으로 헤집었다.
‘미안하다, 미래의 자식아. 아빠가 어떻게든 노력해 볼게.’
“호호호. 그럼 나가실까요?”
몽블랑은 고개를 저으며 뒤를 따랐다.
몽블랑은 다시 가석방 행사 준비를 위해 떠났고, 남겨진 세실리아는 입술을 비틀었다.
“참 재밌는 남자야. 굽히면서도 얻을 것은 다 얻어갔어. 거기다... 쿡. 귀족 앞에서 저렇게 자유분방한 사람이 또 있을까? 어떻게 생각해? 조르딕.”
포효하는 사자가 조각 된 흉갑을 입은 웃는 낯의 기사는 입꼬리를 비틀었다.
“왜 아르민 공자와 아가씨께서 신경을 쓰는지 알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는 꼭 잡아야 할 인재입니다.”
“맞아. 하지만, 지금은 아니야. 더욱 큰 후에 잡아도 늦지 않아. 지금은 성장하는 걸 지켜 볼 때야.”
“방치한 나무는 결국 이상하게 자랄 뿐입니다.”
“어머, 자유분방하게 큰 나무를 조금만 다듬으면 얼마나 멋지게 변하는지 모르는 구나? 아~ 어떻게 자랄지 기대된다. 조르딕, 먼 방계 쪽에서 마음씨 좋은 애들을 수배해봐. 깜찍하게도 본가의 가신들을 침묵하게 만든 브라이텐 남작의 첩, 엘리샤 같은 여자로 말이야.”
“둘째 공자께서도 움직이고 계실 텐데요. 도움을 드리지 않는 겁니까?”
“본가가 고작 자작가문인데도 본 국에서 무시 할 수 없는 세를 쌓을 수 있었던 이유가 뭐라고 생각해? 카쉬모프 자작이 되기 위해선 철혈을 지녀야 하기 때문이야. 힘없는 지금의 나는 아무 도움이 안되. 걸림돌만 될 뿐이지. 조르딕 명심해. 본가나 외할아버지 같은 진짜 귀족은 괴물이야. 괴물은...”
“...상식 밖에 있지요.”
“진짜 귀족은 혈육이 아니라 가문을 지켜야 해. 그것을 위해선 뭐든지 하는 괴물이야. 큰 오빠는 그러기 싫어서 밖으로 도는 거야.”
“원망하시진 않으십니까?”
“난 오히려 큰오빠와 둘째 오빠가 싸우지 않아서 다행인 걸? 이 싸움에 큰 오빠까지 껴들었다고 생각하면... 으으으.”
세실리아가 어렸을 적 본 세베루스는 카쉬모프 자작이 강조하던 진짜 귀족의 표상이었다.
어쩌다 엇나가서 이렇게 됐지만, 세실리아는 어렸을 적 세베루스의 눈에 서린 차가운 위엄을 잊지 못하고 있었다.
“하아, 제발 5년 후까지만 지금의 균형을 이루고 있으면 좋으련만... 아, 큰 오빠가 내일이면 카우쉬카의 경계에 지나친다고 했지? 내일은 아빠 생일인데 왜 여기까지 온 거지?”
“2백년전 홍염의 기사라 불리었던 이의 유산이 잠든 곳을 가리키는 지도를 얻었다고 하더군요.”
“아~ 소드 마스터였다는 그 자유기사? 흐응. 그래서 온거구나. 재밌겠다. 오랜만에 큰 오빠랑 여행이나 해야겠는 걸?”
“자작님께서 싫어하실 텐데요.”
“그럼 아빠 애장품을 다 부셔버리면 돼.”
조르딕은 카쉬모프 자작에게 보고 할 때 이 말을 꼭 해야겠다고 다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