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4 회: 2-12(5. 차라리 벗으라면 벗겠어요.) -->
“알았어. 조치 취해 둘게. 아니, 자네 아이들 말곤 거기서 일하지 못하게 해 둘게. 자작님께서 내게, 정확히는 채석장 간수장에게 관리를 맡긴 땅이니까, 하고 싶은 거 다해.”
“오오~ 감사합니다. 그럼 가볼게요.”
“그래, 수고해!”
아커만은 마음의 빚을 어느 정도 턴 것 같아서 기분이 좋았다.
간수장실이 있는 건물을 나온 몽블랑은 입술을 이죽거렸다.
“개새끼들, 나 혼자 다 차린 밥상에 겨우 숟가락 몇 개 놓고 같이 차렸다 하시려고? 씨발 새끼들이네. 아오 씨발.”
몽블랑은 사랑과 나눔의 집 옆에서 지어지는 도서관으로 향했다.
튠과 다른 이들은 몽블랑의 말을 듣곤 크게 분개하며, 절대 그 예배당에 가지 않겠다고 말했다.
“다른 놈들에게도 말해 놓으마.”
몽블랑은 순간 혹 했으나 고개를 저었다.
“그냥 갈 사람들은 가게 둬요. 차별하지 말라고 하세요. 신외엔 모두 평등하다고 외친 놈이 막아 봐요. 똑같은 놈 되는 거예요.”
놀랜드는 걱정스런 표정을 지었다.
“괜찮겠냐? 그놈들은 자기들 신 외에는 아무도 믿지 말라고 하잖아. 꽤 마찰 있을 것 같은데... 카우트예 교단도 그렇지 않아?”
“...그런 거 없습니다~ 너를 위해 어떤 형상을 만들지 말고, 숭배 하지 말라는 말은 있어도요. 아, 이거 계명입니다. 다른 건 상황이 맞아 떨어질 때 알려 드릴게요. 그래야 오래 기억하죠.”
사람들은 의아해 했지만, 일단 알았다고 대답했다.
“거참, 엄청 너그러운 분이네. 그래서 믿은 거지만.”
사람들은 동감이라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이제 아셨습니까? 아 그리고 두 교단이 함께 들어오는 거니까, 서로 이단이니 뭐니 태클은 걸지 않을 겁니다. 만약 그러면 난 둘이 싸움 붙여놓고 뒤로 물러나면 되죠.”
“...레벌형님. 나 갑자기 걔네들이 불쌍하다는 생각이 들어요. 내가 미친 걸까요?”
“나, 나도 방금 그 생각을 했는디? 게스 형님은 어쩌요?”
“정말 우연이로군. 나도 마찬가지다.”
“우악! 내가 뭘 어쨌는데요!”
사람들은 크게 웃음을 터트렸고, 방방 뛰며 억울해 하던 몽블랑도 곧 피식 웃어버렸다.
떠들다 보니 어느 정도 기분은 나아졌지만, 몽블랑은 쉬이 화가 가라앉지 않았다.
‘어떻게 물을 먹일까...’
곰곰이 생각하던 몽블랑은 번뜩 떠오른 생각에 씩 웃었다.
“이번 일요일 예배엔 각자 빵이 하나씩 지급되니까, 소문 퍼트리지 마세요. 나 돈 없습니다. 작은 호밀 빵이니까 기대하지”
“오오오!”
“말면 좋겠는데요...”
몽블랑은 괜히 이 이야기를 했나 싶었지만, 이내 콧방귀를 뀌었다.
‘군대에선 간식 많이 주는 종교로 사람이 몰리는 법이지. 걔들도 따라하겠지만... 들어오는 돈은 없는데 나가는 돈만 있으니, 속 좀 쓰릴 거다. 이럴 때 보면 혼자 하는 게 참 좋아, 응?’
*****
몽블랑은 대로변에 위치한 커다란 건물을 보며 눈살을 찌푸렸다.
간판에는 ‘귀네슈 상단 카우쉬카 총 지부’ 라고 적혀 있었다.
“쯧, 여긴 오기 싫었는데...”
2주마다 한 번씩 죄수와 노예들에게 나눠지는 빵은 귀네슈 상단에서 공짜로 지급하는 것들이었다.
영주직속상단이라 검열 없이 통과 되었다.
즉, 귀네슈 상단에서 빵을 공급 받으면 별 다른 검열 없다는 말이었다.
간수와 병사, 정식인부를 제외하면 외부음식은 반입이 금지니, 몽블랑으로서도 어쩔 수 없었다.
“아오, 그냥 장사한다는 말을 하지 말 걸 그랬나?”
몽블랑은 머리를 긁으며 갈등하다가 이내 혀를 차며 안으로 들아 갔다.
“그 여자 만나기 전에 후딱 처리하고 가자.”
문을 열고 들어간 상단은 상당히 넓고 깔끔했다.
의외인 것은 사람이 몇 명 없다는 것이었다.
“어서 오십시오. 귀네슈 상단입니다.”
레이스 달린 하얀 블라우스와 검은 치마는 귀네슈 상단의 유니폼 같았다.
“빵을 좀 대량으로 사고 싶어서 말입니다. 매주 일요일 마다 최소 1천개씩? 크기는 손바닥 만 한 호밀빵이고요.”
“아, 그러신가요? 그렇다면 가격은”
“미안하지만, 본 상단에선 빵은 취급하지 않습니다. 몽블랑 예거 사제님.”
순간 여종업원의 말을 자르며 들어오는 낯익은 목소리에 몽블랑은 이를 악물었다.
“방금 이 아가씨가 가격을 말하려는 것 같았는데요. 아드리아나 부 지점장님.”
“첼시 양, 저희 상단에서 빵을 따로 팔던가요?”
“아, 아닙니다, 부 지점장님. 제가 착각했던 것 같습니다. 죄송합니다. 고객님.”
몽블랑은 이를 빠드득 갈며 아드리아나를 노려봤다.
“거 더럽게 쪼잔하네.”
“어머, 그런가요? 그렇게 말씀하셔도 판매 하지 않는 걸 팔수는 없는 거잖아요? 어떻게 다른 물품의 카달로그라도 보여 드릴까요?”
“됐습니다.”
몽블랑은 완전히 글렀다는 것을 느끼곤 바로 돌아섰다.
다른 사람이라면 몰라도, 처음부터 엇나간 아드리아나에게 머리를 숙여가면서까지 빵을 얻고 싶진 않았다.
딸랑!
몽블랑이 씩씩 거리며 상단을 나가자, 아드리아나는 눈을 가늘게 떴다.
“왜 갑자기 빵을 그렇게나 많이 구하려는 거지? 그나 채석장에서 무슨 일이 있는 건가?”
“카우쉬카에 있는 두 교단이 앞으로 채석장에 사제를 파견한다는 것 말고는 특이사항이 없습니다.”
옷을 깔끔히 차려입은 젊은 남성이 아드라아나의 뒤에 섰다.
“풋, 두 교단이 어지간히 몸이 달았나 보네. 하긴, 차기 자작이라 불리는 둘째 공자가 주목하는 곳이니 어련할까. 흠, 잠깐. 설마 죄수와 노예를 빵으로 유혹하려는 건가? 뭐야, 역시 행동거지처럼 생각도 천박하잖아.”
“어떻게 할까요.”
“일단 당분간 본 상단의 손길이 닿는 곳에다 채석장으로 향하는 음식 주문은 받지 말라고 해줘요. 채석장 소속 병사와 간수들을 제외하면 그 누구라 도요.”
“그런 수가 있었군요. 그런데...”
“그저 작은 심술일 뿐이에요. 그러니 당분간이죠. 걱정 마세요.”
“알겠습니다. 그럼 그렇게 전달하겠습니다.”
한편, 몽블랑은 수업시간이 가까워 졌기에 하는 수 없이 북문으로 향해야 했다.
“그 여자 말하는 꼬라지를 보니 그쪽에선 빵을 구할 수 없을 것 같던데...아놔, 짜증나네.”
“뭐가 그렇게 짜증나시는데요?”
“아, 매리씨. 이제 오시나요?”
몽블랑은 말할까 하다가 이내 그만 두었다.
괜히 매리의 기분만 상할 것이 빤하였기 때문이다.
“매리씨, 조금 있다가 청과상이나 생선가게 같은 식재료 파시는 분들 좀 뵐 수 있을 까요?”
“왜 그러시는데요?”
몽블랑은 게시판과 장사에 대한 이야기를 해 주었고, 매리는 덮썩 손을 잡았다.
“걱정 마세요! 저희가 최고의 재료들로 공급해드릴게요!”
매리는 이렇게 작게나마 은혜를 갚을 수 있게 되니 너무도 기뻤다.
몽블랑의 성격이면 공짜로 드리면 받지 않을 테니, 무조건 원가에만 넘기기로 마음먹은 매리였다.
고맙다며 웃어준 몽블랑은 저택으로 향하는 샛길 옆에 서 있는 엘리샤를 보곤 피식 웃었다.
*****
5. 차라리 벗으라면 벗겠어요.
공부를 배우기 위해 로비에 모인 사람들은 처음보다 족히 다섯 배는 늘어 있었다.
그 중 70%가 6~15세 사이의 아이들이었고, 모두 죄수와 노예, 정식인부들의 가족과 자식들이었다.
거저나 다름없는 싼값에 가르친다니 너도나도 보낸 것이다.
몽블랑은 떠들거나 수업에 방해되는 아이들은 가차 없이 머리를 쥐어박으며 눈물을 쏙 빼게 만들었다.
대신 누군가를 따돌린다거나 도리에 어긋난 짓을 할 땐 눈물콧물을 흘리고 빌어도 멈추지 않고 체벌을 하였다.
그러자 그들의 부모, 조부모가 고맙다고 더 때려달라며 몽블랑을 존경스럽다는 듯이 바라봤다.
“후, 곧 있으면 더 늘어 날 텐데... 믿을 수 있는 교사라도 한명 구해야 하나? 일단 얼마나 오는지 보고 생각하자.”
묘하게 어두운 얼굴로 생글생글 웃으며 수업을 듣던 엘리샤는 수업이 끝나자 몽블랑의 볼에 입을 맞추곤 돌아갔다.
그게 조금 아쉽긴 했지만, 면회소도 완공 됐으니 만날 시간은 많았던 지라 몽블랑은 나중을 기약했다.
채석장에 오른 몽블랑은 입구에서 간수장이 부른다는 소리를 듣고 간수장실로 향했다.
문을 열고 들어가자 법복을 입은 남녀가 있었다.
남성은 30대 중반의 느끼한 인상이었고, 푸른 눈의 여성은 눈만 드러내는 사각 천을 두르고 있었다.
셋은 서로를 바라 볼 뿐, 입을 열지 않았다.
“인사들 해. 이쪽은 지그문트의 코팔라 중급 사제, 이쪽은 루나의 헬미나 중급 사제.”
코팔라는 콧방귀를 뀌며 고개를 끄덕였지만, 헬미나는 육성으로 자신을 소개했다.
“카우트예의 몽블랑 예거입니다.”
“계급은 뭔가.”
“세스타입니다.”
“고작 하급사제였나?”
“승급 전에 스승님께서 저 위로 가셔서 말입니다. 그런데 그 손은 뭡니까? 아~ 악수하자고요? 반갑습니다.”
몽블랑은 손등을 위로 향하게 하며 내민 코팔라의 손을 잡고 힘차게 흔들었고, 아커만과 헬미나는 고개를 돌리며 웃었다.
“자신 보다 높은 계급에 있는 사제와 만날 때, 존경을 표하는 법을 배우지 못한 거냐!”
“그랬습니까? 몰랐네요. 뭐, 악수를 했으니 했다는 셈 치죠. 그런데, 저희 같은 교단이었습니까?”
코팔라의 얼굴은 울그락붉그락 해졌다.
천연덕스럽게 고개를 모로 기울인 몽블랑은 그들의 맞은편에 앉았다.
“하시던 말씀이나 계속 하세요. 난 신경 쓰지 마시고요.”
몽블랑을 죽일 듯 노려보던 코팔라는 이내 아커만을 바라봤다.
“어째서 신전을 짓지 못하게 하는 겁니까.”
“난 자네들보고 짓지 말란 적은 없어. 대신, 자제나 인부들을 모두 알아서 해결하라고 했지.”
“하지만, 제가 알기로 카우트예의 신전은...”
헬미나는 마치 자기 집처럼 간수장실을 뒤져 자기 몫의 차를 타오는 몽블랑을 바라봤다.
“그건 몽블랑이 이 채석장에서 노역을 할 당시에 지은 거네. 노역수들을 쓰고 싶나? 그럼 노역수가 되게.”
코팔라와 헬미나는 불쾌함을 드러냈다.
“...후, 이 문젠 넘어가기로 하죠. 다음으로 왜 저희를 도와줄 견습 사제들을 데리고 오지 못하게 하십니까.”
코팔라의 말에 아커만은 몽블랑을 바라보았다.
“견습사제 같은 거 필요하나?”
몽블랑은 약속된 질문에 약속된 대답을 내뱉었다.
“없어도 잘 해요.”
“치료비는?”
“개미 똥구멍을 빨아먹으라고요?”
“예배 시간을 늘려 줄까?”
“일요일엔 일 안하시게요?”
“호위 두 명 이상 필요해?”
“배때지에 칼 박히면 치료하면 되죠. 신성력 뒀다가 뭐하게요? 아, 나 앞으로 일요일에 주방 좀 이용할게요. 우리 신도들 점심 그걸로 해결할게요. 오케이?”
“맘대로 해. 들었나?”
코팔라와 헬미나는 똥 씹은 얼굴이 되었고, 아커만은 눈을 게슴츠레 떴다.
“그래서 또 원하는 게 뭔가? 검문? 몽블랑 검문은 어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