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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날, 조금 늦게 일어난 몽블랑은 체놈과 함께 카우쉬카의 관청으로 향했다.
카우쉬카 전체에 퍼져있는 게시판을 이용하기 위해서였다.
“면회소에 관한 것은 공문이 내려왔지만...”
한 잔에 수백 페니나 하는 고급차를 마시던 몽블랑은 슬그머니 체놈을 보았다.
“고작 한 귀퉁이 빌린다는 게 그렇게 어려운 건가?”
식은땀을 흘리던 중급관리는 마른침을 삼키며 머리를 굴렸다.
체놈은 미간을 좁혔다.
“홍보 관련 최고책임자를 불러와. 여기 몽블랑 사제가 누군지 알고 이런 홀대를 해? 어제 아르민 공자께서 여기 사제의 손을 잡고 감사 인사를 했다는 것을 봤을 테니, 대화를 할 수 있을 거야!”
“예에? 소, 손을 잡고 감사인사를 했다고요?”
“잘 부탁 한다며 눈물까지 흘리시더군. 아, 그런데 이 사제와 아르민 공자가 대화를 할 땐 존댓말로 하는 것은 아나?”
느긋이 차를 마시는 몽블랑을 본 관리의 얼굴은 검게 죽어갔다.
“...하하하. 그런 건 진즉에 말씀을 하시죠. 제 심장 아주 약합니다. 이런 깜짝 선물은 싫어해요. 자, 어떤 게시문 입니까?”
몽블랑은 공부 관련한 게시문을 넘겨주었다.
“정말 이 가격에 이렇게 가르치는 겁니까? 기초 산술이 겨우 5백 페니?”
“기초 공용어와 같이 배웠을 때입니다. 따로 배우면 2천페니죠.”
“허어~ 역시 사제님이라서 그런지, 자애가 넘치시는 군요. 저 같은 범인은 따라가지 못할 정도입니다!”
“북문 쪽으로 해서 두세 곳만 붙여 주십시오. 교사라곤 저 밖에 없다보니 너무 많으면 감당이 안 될 것 같아서요.”
“아, 네! 그러도록 하겠습니다!”
“그럼 잘 마시고 일어납니다.”
일어선 몽블랑은 체놈과 함께 응접실을 나오며 입을 열었다.
“체놈 면회소장, 아까 그분 정말 친절하신데요?”
“흠, 그래? 앞으로 채석장 관련 게시문은 그 사람에게 맡길까?”
몽블랑과 체놈은 관리가 뒤 따라 나온 것을 알았지만, 천연덕스럽게 대화를 하였다.
몽블랑은 뭔가 이상한 시선이 느껴졌다는 듯 힐끔 뒤를 보았다가 깜짝 놀랐다.
“아니, 언제 나오셨어요?”
“하하하, 어렵게 오셨는데 밖까지 배웅해 드려야지요.”
관리는 입이 귀까지 찢어져 있었다.
관청을 나와 많이 걸은 몽블랑은 멍한 얼굴로 머리를 긁적였다.
“이게 권력이구나...”
“푸핫핫! 이래서 권력이 재밌는 거지. 아! 아까 게루안 그놈의 얼굴 봤어? 아주 똥 씹은 얼굴로 도망치던데?”
“아까 그 쥐 닮은 중년남자요? 그 사람이 게루안이었어요?”
“지가 아무리 주택 관련해서 여러 사람을 울린다지만, 그래봤자 아르민 공자가 한마디 하면 끝인 거지, 큭큭큭. 아, 서점에 간다고 했지?”
“아, 네. 헌책들 좀 알아봐야죠.”
“그래도 비쌀 텐데...”
“조금씩 늘려가는 거죠. 첫술에 배부를 수 있나요. 그럼 점심때 봐요.”
“아니, 나도 같이 가지. 내가 아는 서점이 있는데 그곳으로 가지. 헌책이 꽤 있어.”
놀라는 몽블랑의 얼굴에 체놈은 얼굴을 붉혔다.
“아, 그래요? 그럼 거기로 가보죠.”
체놈이 데려 간 곳은 간판 하나 없는 건물이었다.
체놈은 문 앞에서 옷매무새를 다듬었고, 몽블랑은 그 모습을 기이하다는 듯이 바라봤다.
딸랑!
“어머, 오셨어요. 체놈씨. 오늘도 책을 사러 오신 건가요?”
꽤나 미색이 있는 30대 초반의 여성이 체놈을 반겼다.
몽블랑은 그제야 뭐가 어떻게 된 일인지 깨달았다.
‘체놈에게도 봄이 찾아 왔네.’
가게는 꽤나 작다고 할 수 있었다.
‘흠, 하긴 대형서점 같은 게 있을 리는 없나?’
새 책은 아무리 싸도 2천페니는 하기에, 일반 평민이라면 쉽사리 살 수 없었다.
이정도 규모를 만드는 데에도 오랜 시간이 걸렸을 것이다.
몽블랑은 체놈과 서점 주인이 더 이야기 하도록 놔두기로 하며 안으로 들어갔다.
꽤나 많은 책장엔 책이 빽빽이 꽂혀 있었고, 그것도 모자라 탑처럼 쌓여 있기도 했다.
어떤 책이 있나 하고 둘러보던 몽블랑은 헌책이 꽤 많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역시 책이 별로 인기가 없나 보구나. 그렇다고 해도 너무 많은거 아닌가? 서점인지, 헌책방인지. 배시네 서점은 안 이랬던 것 같은데...’
책은 일반인들 사이에서 사치품에 들어가니, 당연하다고 볼 수 있었지만, 조금은 의아한 몽블랑이었다.
“어이, 몽블랑!”
“아, 예. 갑니다!”
*****
서점 주인인 루타냐는 다행이도 몽블랑의 제의에 상당히 긍정적인 반응을 보였다.
허름하고 더러운 고서는 잘 나가지 않는지라, 공간만 차지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밀고 당기는 흥정 끝에 몽블랑은 권당 1천 페니씩 총 3백권의 계약을 맺었다.
책은 아무리 상태가 좋지 못해도 값이 많이 떨어지지 않으니, 거저에 가져왔다고 볼 수 있었다.
“반성하죠?”
“...응.”
체놈은 루타냐에게 잘 보이기 위해 2천 페니를 불렀었다.
만약 몽블랑이 잠시 둘만의 대화를 가지지 않았다면, 체놈은 아마 아커만에게 약간의 실망을 안겨줬을 것이다.
“만나지는 얼마 정도 됐어요?”
“두 달? 정식으로 교제 한 건 그 정도야.”
“잘 해봐요. 면회소장에게는 아까운 분 인 거 알죠?”
“당연하지! 내 모든 걸 바쳐 사랑 할 거야. 얼마나 운명적인 만남이었는데?”
“어이구, 로맨티스트 나셨네. 잡혀 살지나 마세요.”
몽블랑은 채석장으로 향하는 길 입구에 다다를 때쯤에야 주위를 둘러보았다.
얼마 전만해도 입구 근처에는 수십, 수백 명의 사람들이 왔다 갔다 하던 길이었는데, 지금은 단 한명도 찾아 볼 수 없었다.
“흠, 이젠 여기가 북적이겠네.”
“북적인다? 왜?”
“여기에 면회자 명단을 세울 건데, 당연한 일이죠. 아, 가족에게 보낼 노역번호 편지는 어떻게 되고 있어요? 다 됐어요?”
“음, 내일이면 다 끝날 것 같아.”
“쯧, 그러니까 얼른 하라고 했잖아요. 에이, 우리 꼬맹이들만 죽어나겠네. 대체 몇 통이야?”
체놈은 자신이 해 놓은 짓이 있어서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그래도 욹그락붉그락 해지는 얼굴에 몽블랑은 황급히 체놈의 팔뚝을 잡으며 흔들었다.
“에이~ 장난인거 아시잖아요. 이럴 때 인내심 길러놔야 루타냐씨 만날 때, 잘 리드하죠. 루타냐씨, 현숙하고 괜찮아 보이던데요? 잘 해봐요.”
“...암튼 말이나 못하면, 쯧.”
피식 웃은 체놈은 벌개진 얼굴을 한 체 주위를 둘러보았다.
“흐음, 그럼 여기도 깔끔히 정리해놔야 하나? 이 새끼들 작업 안하려고 지랄을 할 텐데... 쯧.”
“아, 그러고 보니 그걸 깜빡하고 있었네요.”
몽블랑은 다시 한 번 둘러봤다.
채석장으로 향하는 길의 입구와 북문과는 꽤나 거리가 있었다.
즉, 그 사이의 공간은 널따란 공터라고 봐야했다.
그렇다고 농사를 짓기에는 면적이 좁았고, 벌목을 하려고 해도 판매 용도로 쓰일 나무는 없었다.
장작용으로 쓰려고 해도 그리 좋지 못하는데다, 일반인은 진입금지이니 사람들의 왕래는 거의 없다 시피 해야 했다.
“아무래도 감시자 한 명은 배치시켜 놔야겠네요. 때어 가면 어떻게 해요? 그때마다 다시 붙이러 내려 올 순 없잖아요.”
“듣고 보니 그렇기는 하지만...”
배치할 병사나 간수의 여유는 없었고, 성 내부에 도움을 청할 수도 없었다.
“간수장님은 이걸로 인해 시장과 공을 나눠먹으려 하지 않을 텐데... 그렇다고 고작 한 두 명 뽑자고 모집공고 내는 것도 그렇고... 아! 몽블랑, 너희 애들 중 두 명만 쓰자.”
“돈만 준다면 괜찮아요. 놀면서 돈 버니 아무나 하려고 하겠죠.”
“달에 딱 4천페니. 어때?”
“그 정도면 괜찮겠네요. 그런데 왜 때어가지 못하게 하냐고 하면 뭐라고 말해요? 협박하면요?”
“북문에서부터 여기 그리고 저기 숲과 채석장 까지 모두 자작님께서 아커만님에게 맡겼는데, 건드렸다가는 바로 죽음이지. 맞으면 바로 올라와서 이야기 해. 작살을 내줄 테니까.”
“그러지 말고 명예병사? 뭐 그런 거라도 해주시죠? 그래야 애들도 자부심 가지고 일할 수 있잖아요. 혹시 알아요? 나중에 커서 간수로 지원할지?”
“명예병사? 푸핫! 그거 재밌는 말인데? 그거 좋겠다. 알았어, 해줄게. 부지런하고 눈치도 빠르니 간수가 된다면야 나야 좋지.”
거기다 몽블랑에게 공부와 인성을 교육받고 있으니, 이대로만 커준다면 간수로서 더할 나위가 없을 것 같았다.
채석장에 오른 몽블랑은 아커만이 부른다고 해서 간수장실로 향했다.
“이거 봐라.”
몽블랑은 편지를 읽어 내리다 비실 웃었다.
두 장의 편지는 쓴 사람이 달랐지만, 내용의 요점은 똑 같았다.
“사제 놈들이 정치를 잘한다고 생각은 했지만, 이렇게 행동이 빠를 줄은 몰랐다. 어떻게 할 거냐? 솔직히 내 입장으로선 들어줘도 그만, 안 들어 줘도 그만이다.”
“하라고 해요. 종교에도 자유가 있는데, 막을 순 없잖아요.”
편지의 요점은 자신들도 일요일에 예배를 하게 해달라는 것이었다.
“그래도 되는 거냐?”
“솔직히 기분이 좋은 건 아니죠. 하지만, 어쩔 수 없잖아요.”
아커만의 말과 다르게 아커만은 결국 두 교단의 요구를 들어 줄 수밖에 없을 것이다.
“맘대로 하라고 하세요. 단, 죄수와 노예들을 이용해 건물을 짓거나 일을 시키는 건 안 됩니다. 간수장님을 위해서 라도요.”
“...그렇군. 내가 채석장 안으로 들여보내 주는 것만으로도 큰 양보를 한 것이군. 알았다.”
아커만은 매번 이런 조언을 해주는 몽블랑이 참으로 고마웠다.
오물오물 거리던 아커만은 혀를 차며 입을 열었다.
“어떻게 할 거냐.”
“별거 있습니까? 치료하고, 예배하고, 공부 가르치고. 뭐, 이런 게 다죠.”
“결국 사제를 상주 시킬 거다.”
“하라고 해요. 어차피 돈 못 버는 건 똑같을 텐데요, 뭘. 내가 채석장에서 돈 받고 치료 합니까?”
“안 받았나?”
아커만은 크게 놀랐다.
“주는 사람만 받습니다만? 그거 인부아저씨들도 다 알고 있는데요? 그러니 요새는 조금만 긁혀도 찾아오는 거죠. 암튼, 농땡이 필만 한 명분은 기가 막히게 찾지.”
“허어~ 그랬나? 결국 내가 도와 줄 수 있는 건 없는 거로군. 쯧, 마음에 안 들어.”
“전 괜찮으니까, 신경 쓰지 마세요. 그런데 걔들 언제 온데요?”
“...지금 답신을 보내면 내일에나 오겠지.”
“흠, 그래요? 알았... 맞아. 아까 체놈 면회소장하고 이야기를 나눴는데요.”
아커만의 흐려진 얼굴에 작은 빛이 서렸다.
“그건 바로 승인해 주지. 두 명, 아니 차라리 자네 애들 모두를 명예병사로 만들어 주지.”
“그래 주면, 저야 땡큐죠. 이젠 신분패 만들기도 쉽겠네. 아, 혹시 거기서 장사해도 돼요?”
“장사? 어떤?”
“간단한 먹거리 장사죠. 성문이 열리자마자 오는 사람도 있을 거 아니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