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기적의 사제-41화 (41/185)

<-- 42 회: 2-10(4. 홍보 관련 최고 책임자 불러와.) -->

*****

놀랍게도 면회소 완공 기념 축하회는 다시 이어졌다.

“거 되게 찝찝하네.”

몽블랑은 입맛을 다시는 발로텔리를 보며 코웃음을 쳤다.

“아예 안하는 것보다는 낫거든요? 어차피 저런 인간들은 사진, 아니 자기 얼굴 나온 그림만 그려 주면 좋아해요. 봐요, 좋아 죽는 거.”

귀빈들은 면회소의 앞에서 한 손엔 색 끈을 들고 다른 손으론 서로 손을 잡으며 웃고 있었다.

그리고 그 앞에는 십여명의 화가들이 캔버스에다 미친듯이 손을 놀리고 있었다.

지금은 각자 두세 명씩 맡아 빠르게 특징만 잡고, 나중에 합쳐서 큰 그림을 만들 것이다.

그렇게 화가들이 물러나자, 아르민과 세실리아, 귀빈들은 카우쉬카로 내려갔다.

몽블랑은 철조망이 걷어지기 시작하자 얼른 무대 뒤를 바라봤다.

“안단테, 제대로 놀아볼 준비 됐죠? 아, 표정들이 왜 그래요? 아까 폭동 때문에 그래요? 걱정 마세요. 곧 있으면 여태껏 단 한 번도 받아 본 적 없는 함성에 미쳐버릴 테니까요. 자제는 안 해도 되니까... 아, 다 걷었다. 자, 하이 큐! 음악 나갑니다!”

몽블랑은 아예 연주자들이 있는 곳에다 음성 증폭 아티팩트를 가져다 놨고, 우물쭈물 하던 그들은 아흘라니의 허락에 에이 모르겠다 하며 악기를 켰다.

“모두 의상 좋으시고! 자, 여성분들 이제 나가세요!”

쿠잔, 마르꼬네 등 여성들이 떨떠름해 하며 무대 위로 오르자 몽블랑은 슬그머니 귀를 막았다.

발로텔리는 그런 몽블랑의 행동에 의아해 하다가 곧 온 몸을 찢어발길 듯 울리는 함성에 황급히 귀를 막아야 했다.

“죄수, 노예들 모두 무대 앞으로 불러요!”

“뭐라고?”

“죄수 노예들 모두 무대 앞으로 부르라고요! 오늘 제대로 미쳐봐야죠!”

“아, 알았어!”

발로텔리는 허공에다 손을 저었고, 곧 죄수와 노예들이 미친 듯이 무대로 달려오기 시작했다.

간수들도 다르지 않았고, 그렇게 광란의 시간은 시작되었다.

몽블랑은 먹이를 향해 달리는 개 때가 따로 없는 그들을 보며 혀를 차다가 이내 아까의 귀빈들과 그 사이에 섞여 있던 사제들을 떠올렸다.

“거 되게 못마땅해 하는 것 같던데...”

미간을 찌푸리며 생각에 잠기던 몽블랑은 고개를 젓고는 음성증폭 아티팩트를 입 앞에 가져가며 크게 외쳤다.

“소리 질러--!”

우아아아아아아-!

*****

안단테는 남녀 할 것 없이 모두 얼굴이 상기되어 있었다.

공연이 끝난 지 꽤 시간이 흘렀어도 그들은 숨이 가빴다.

“공연소감은 어때요. 죽이지 않아요?”

안단테는 멍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난생 처음 느껴 본 환희고 감동이었다.

천명이 넘는 사람들이 자신들의 이름을 부를 때, 그들은 오줌을 찔끔 지릴 정도로 막대한 카타르시스를 느껴야 했다.

“어떤 남자 밑에 깔린다고 해도 이런 쾌감은 못 느낄 거야.”

마르꼬네가 저릿저릿한 몸에 고개를 젓자, 안단테의 극단원들은 동감이라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큭큭큭. 이거 다들 무대 체질이었네. 모두 수고하셨고, 씻고 주무세요. 뭐, 제대로 잘 수 있을지는 모르지만요.”

몽블랑도 죄수와 노예들을 상대로 한 첫 예배 때, 눈만 감으면 들리는 환호성과 박수에 가슴이 벅차도록 뛰어서 잠을 쉽사리 이루지 못했다.

몽블랑은 그들을 놔두고 저택 뒤의 우물가로 향했다.

가면을 벗은 아흘라니는 맑게 빛나는 눈으로 하늘을 바라봤다.

“의뢰는 실패했다.”

“모두 저 사제님 때문이지.”

병사들을 배치시키고, 옷을 길게 입으라고 했을 때부터 작전은 실패 했다고 봐야 했다.

“은퇴식이 실패로 끝나버려서 아쉽기는 하지만, 그렇게 나쁜 기분은 아니야. 오히려 실패로 끝나서 다행이라고 생각해. 왠지 개운하달까?”

쿠잔의 말에 눈을 감고 곰곰이 생각해본 사람들은 곧 동감이라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아흘라니는 바지춤에서 연주되는 피리가 조각된 작은 나무패를 꺼내었다.

“불을 피워라.”

“아, 응.”

순식간에 흩어진 이들은 곧 장작과 불 피울 도구들을 들고 왔다. 쌓인 장작은 순식간에 타올랐고, 아흘라니는 그곳에다 나무패를 던져 넣었다.

“럴러바이의 단장 아흘라니는 이제부터 극단 안단테의 단장으로 살아가리라.”

탁! 타닥! 뒤이어 다른 극단원들도 나무패를 던졌다.

“럴러바이의 마르꼬네. 극단 안단테의 일원이자 고아 아이들의 스승으로 살아가리라.”

극단원들은 저마다 한마디씩 하며 하늘을 보았다.

“아~ 뭔가 시원섭섭하다.”

“그러게 말이야. 평생 벗을 수 없는 굴레라고 생각했었는데... 이게 모두 단장 덕분이지?”

“맞아. 단장이 의뢰를 받을 때, 무조건 몸과 얼굴을 가리라는 방침을 세우지 않았더라면 이렇게 쉽게 은퇴 할 수 없었을 거야. 고마워, 단장.”

“우리 마지막이니 술이나 한잔 할까? 조촐하게나마 은퇴주 정도는 마셔야지.”

“...사제님 꼬셔서 술 가져 올게!”

“나는 허클 머리 쥐어박아서 안주 만들어올게!”

몇 명이 저택 안으로 뛰어 들어 가자 그들은 기지개를 펴며 저택 뒤로 향했다.

“아웅~ 그나저나 오늘 제대로 잘 수 있을까? 나 젖어버렸단 말이야.”

“흐흐흐. 내가 달래줄까?”

“토끼가 어디서 덤비니? 꺼지렴. 우리 사제님이면 몰라도...”

“헐! 너 남편 버리면 돌 맞는다!”

“웃기시네! 니가 왜 내 남편이야?”

그들은 하늘을 향해 웃으며 마지막 잔재를 털어냈다.

*****

코르체프는 마법수정구를 보며 어이없어했다.

“실패했다? 럴러바이란 것들은 무얼 한 거지?”

-아예 나타나지 않았던 것 같습니다.

“...하! 이 코르체프가 하찮은 어쌔신들에게 물을 먹었다는 건가? 찾아서 죽여 버려! 럴러바이를 소개시켜준 그 브로커도!”

-예. 알겠습니다!

“샤블 그놈들은 어떻게 됐나!”

-모두 감금되었다고 합니다. 전보다 훨씬 무거운 족쇄를 차고 있어서... 아커만 간수장은 아르민 공자를 따라갔기에 수사는 내일 한다고 합니다.

“잘됐군. 제거해.”

-예? 그러면 꼬리가 드러날 수 있습니다!

“내가 드러나는 것 보다는 나아! 그 전에 제거해! 뒷수습은 네게 맡긴다. 이 일에 대해선 너 외에 아무도 몰라야 할 것이다.”

마법수정구 속에서 마른침이 넘어가는 소리가 들렸다.

-충!

마법수정구가 꺼지자 코르체프는 이를 갈았다.

“레오파드 단장.”

“충!”

“가서 모든 걸 알아오세요.”

“알겠습니다! 그럼 바로 출발하겠습니다!”

코르체프는 문이 닫히는 소리는 들으며 눈을 감았다.

“빌어먹을, 천금 같은 기회가 날아가 버렸군. 어떤 놈들이 방해한 것인지는 모르지만... 빠드득!”

*****

4. 홍보 관련 최고 책임자 불러와.

몽블랑은 힘 빠진 얼굴로 사랑과 나눔의 집 앞에 앉아 있었다.

잭과 레벌, 등 몽블랑과 친한 이들은 그런 몽블랑을 안쓰럽다는 듯이 바라봤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잭은 혀를 차며 몽블랑에게 다가갔다.

“죽은 사람은 죽은 것이고, 산 사람은 살아야지. 벌써 이틀째다. 이러다 쓰러져.”

“...누굴까요. 케토씨를 죽인 범인은요.”

“루쳉이라는 하급 간수였다며. 면회소 간수로 뽑혔던...”

“아니요. 전 진짜 범인이 궁금해요. 예상은 가지 않는 건 아니지만... 하, 진짜 사람 목숨, 파리 목숨이네. 뭐, 이런 개 같은 세상이 다 있냐.”

케토는 폭동 사건이 일어난 다음 날, 얼굴이 전신이 검게 물든 체로 숙소에서 발견 되었다.

그 외에도 샤블, 지옥에 끌려갔던 전 간수들, 폭동에 깊이 관여했던 사람들도 모두 죽어 있었다.

그 중에는 토마스도 끼어 있었고, 숫자는 60명을 넘겼다.

그리고 독을 풀어 그들을 죽인 루쳉 이란 하급간수는 벽에다 피로 유언을 남기고 자살하였다.

‘실패자는 지옥으로.’

몽블랑은 그것을 보고 뱃속에서 치미는 욕지거리를 억지로 참아야 했다.

욕을 내뱉으면 구토까지 할 것 같아서였다.

“예상이 간다고?”

“아커만이 말해줬거든요. 아르민 공자와... 아뇨. 설마 사람이 그렇게 까지 할 수 있겠어요?”

‘그딴 건 영화나 드라마에서 나오는 짓이지. 어떻게 인두겁의 탈을 쓰고... 아니야. 내 망상일 거야. 그냥 그 간수 놈이 미친 것일 거야.’

머릿속에선 자신을 화난 듯 쳐다보았던 어떤 이가 떠올랐지만, 몽블랑은 고개를 저었다.

‘아커만도 설마 그러겠냐고 말했잖아. 아닐 거야.’

“하아, 케토씨는 좋은 곳으로 갔겠죠?”

“지금쯤 카우트예님의 곁에서 웃고 있을 거다. 제일 먼저 자리 잡았다고, 후에 올 놈들 괴롭히겠다고 벼르고 있을 거야.”

“큭큭큭. 그거 재밌겠네요.”

“드디어 웃는 구나.”

“처음이었어요. 나와 가깝다 생각한 사람 중 누군가 살해당한다는 거...”

“앞으로 익숙해 질 거다. 이 대륙은 괴물의 뱃속에 있거든...”

씁쓸히 웃던 잭은 갑자기 일어서는 몽블랑을 의아해 하며 바라봤다.

안으로 들어간 몽블랑은 곧 술병이 든 박스를 가져왔다.

“...설마 지금 마시려는 거냐?”

“아~ 몰라요. 자르라면 자르라지. 내가 언제 그런 거 신경 썼나? 생각 있으시면 잭 형님도 드세요.”

“...마시려면 문 닫고 마시자. 넌 모르지만, 우린 죽어. 어이, 모두 들어와! 들어오시오! 거기 올란도 간수도 한잔 해!”

*****

놀랜드가 식당으로 뛰어갔다 온 덕분에 안주는 꽤나 푸짐했지만, 아커만에게 걸려 꽤나 많은 숫자의 간수들이 사랑과 나눔의 집으로 들어왔다.

그런데 아커만은 별 다른 말없이, 아니 오히려 같이 끼어 술을 들이켰다.

그도 내색은 안했지만, 꽤나 충격을 받았던 것이다.

이후로 몽블랑에게 치료를 받으러 왔던 사람들도 끼기 시작했고, 술에 취한 아커만은 ‘그냥 오늘은 재껴!’ 라고 외치며 채석장의 모든 사람들에게 술을 돌려버렸다.

그렇게 채석장은 비명에 떠나간 사람들의 넋을 기리며 취해갔다.

“으허~ 취한다~”

수많은 무리와 함께 채석장을 내려가는 몽블랑은 헤실 거리며 어둔 밤하늘을 보았다.

방금까지 술을 마셔서 그런지 몽블랑은 몸을 가누지 못했고, 루시아는 한숨을 푹푹 내쉬며 몽블랑을 부축했다.

“대체 이기지도 못할 술을 왜 이렇게 마신 거예요?”

“아이고~ 우리 루시아~ 귀여운 루시아~ 아이고 이 귀엽고 기특한 것. 자, 이건 오빠의 선물~ 우~”

몽블랑은 루시아의 얼굴을 잡고 입술을 쭉 내밀었다.

“에에에?”

루시아는 그대로 굳어 멍하니 몽블랑을 바라보다 가까워지는 입술에 질끈 눈을 감았다.

하지만, 원하던 감촉은 느껴지지 않았다.

슬그머니 눈을 뜬 루시아는 몽블랑과 마주보고 있는 중년인을 보며 이를 갈았다.

“그럼요. 괜찮죠. 그냥 편히 오시면 됩니다.”

“정말 입니까? 저희 같은 무지렁이들이 참석해도 되는 겁니까?”

“데릭씨. 신을 믿고 따르는데, 신분이나 직업의 귀천은 필요 없습니다. 그저 신을 믿는 마음 하나면 충분합니다. 언제든 오셔서 카우트예님의 은총을 받으셨으면 좋겠네요.”

몽블랑의 눈은 초점이 흔들리고 있었지만, 눈매는 진지하면서도 매섭게 떠져 있었다.

“하~ 말을 하길 잘 한 것 같군요. 안 그랬으면 얼마나 속 앓이를 했을지...”

“그런데 갑자기 예배에 나오실 생각은 왜 하신 겁니까?”

“오늘, 사제님의 행동 때문이었습니다. 기껏해야 죄수와 노예 따위들을 위해 가슴으로 울어주시던 그 모습 말입니다.”

입을 다문 몽블랑은 술이 점점 깨는 것을 느꼈다.

“세상이 손가락질을 하는 그런 이들을 위해 울어줄 분이면, 저 같은 놈이 죽어도 울어줄 것 같더군요. 그런 사람, 믿을 만하잖습니까? 그래서 한번 믿어 보려고 합니다. 사제님 같은 분을 세상에 내린 카우트예님을 말입니다.”

“갑자기 부담이 팍팍 드네요.”

“하하핫! 그럼 내일 뵙도록 하겠습니다.”

“조심히 내려가세요.”

몰튼 외에도 같이 내려가던 정식인부들은 몽블랑에게 인사를 하며 몰튼의 뒤를 따랐다

“이젠 그만 해도 돼. 어느 정도 깼어.”

“...내리막길이라 위험해요. 저택까지만 이렇게 부축 할 게요.”

“고마워, 루시아. 네가 수고가 많다.”

“아, 아니에요.”

루시아는 붉어지는 얼굴을 보이지 않기 위해 슬그머니 몽블랑을 외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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