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기적의 사제-27화 (27/185)

<-- 28 회: 1-27(9. 사람으로서 고맙다는 인사는 해야 할 것 같아서.) -->

*****

9. 사람으로서 고맙다는 인사는 해야 할 것 같아서.

대부분의 고아들은 기꺼이 저택에 남는 것을 선택했다.

도시로 내려가 봐야 돈을 벌기는커녕 잠조차 제대로 잘 수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이었다.

그런데도 저택을 떠나는 이들이 있기는 했다.

그들은 분명 속셈이 있을 거라고 몽블랑을 불신하는 이들이었고, 대부분이 15~17살 사이의 성년이거나 성년을 앞둔 나이를 가지고 있었다.

남자는 15살, 여자는 18살이 라르세리아 대륙의 성년이었다.

전쟁이란 특수성 때문에 지금까지 내려 온 법률이었다.

몽블랑은 후에 분란의 싹이 될 그들을 단호히 내쳤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루시아가 그 결정에 반대 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오히려 루시아는 염치없다, 파렴치하다며 그들을 매도하기 까지 했고, 당황하던 그들은 곧 욕을 하거나 비아냥거리며 저택을 떠났다.

다음날, 몽블랑은 아커만을 설득해 루시아패거리를 정식으로 고용하게 끔 하였다.

위로 올라가기 위해 작은 티끌이라도 없애려 하는 아커만은 고민하다가 받아들였고, 10년이란 계약기간에 루시아는 다시 한 번 눈물을 흘려야 했다.

아커만은 몽블랑을 보배 보듯이 바라보았다.

“내가 5년 후에 시장이 되면 신전을 크게 지어 주지!”

“아이고, 삼십년 후라도 좋으니까, 절 잊지나 마세요.”

영주를 대신해서 각 도시를 다스리는 시장의 임기 기간은 5년이었는데, 별 다른 사유가 없으면 최고 30년까지 할 수 있었다.

현 카우쉬카 시장의 임기기간은 약 6년 정도 남았는데, 여태껏 별다른 사건이 없어서인지 임기가 확실시 되고 있었다.

“그나저나 아깝네요. 여기 시장이 코바치 일파였으면 그때 엮였을 텐데요.”

“쯧, 그게 아쉬워. 하지만, 어쩌겠나. 나와 뜻이 맞지는 않아도 엄연히 귀족에다 내가 몸을 담그고 있는 일파의 선배인데... 큭, 자네 샤블의 장부 때문에 영도가 얼마나 뒤집혔는지는 아나?”

“샤블이 장부도 썼어요?”

“그럼 그 많은 돈을 혼자 처먹었을까? 그놈의 장부로 인해 꽤 많은 이들이 징계를 먹었지. 아쉽게도 목이 달아난 놈은 없어.”

“꼬리를 바로 잘랐나 보네요. 암튼 정치인들이란... 그런데 그렇게 뒤집어졌는데, 간수장님한테 떨어지는 건 없어요?”

아커만은 말없이 음흉하게 웃으며 자신의 뒤를 가리켰다.

벽의 커다란 액자에는 작은 매달이 걸려 있었다.

“얼래? 훈장이네? 블록?”

“흐흐흐, 정기사의 첫 번째 칭호지. 오늘 아침에 도착했어.”

기사의 핏줄에, 기사 수업을 받지 않는다고 해도 세 번째 칭호인 나이트 까지는 평민이라도 습득 할 수 있었다.

계승 귀족이 아닌 단승의 준 귀족이었지만, 기사가 아닌데도 칭호를 받았다는 것이 중요했다.

평민이 귀족의 가신이 되어 정치를 하기 위해 가장 첫 번째 되는 조건이 바로 이 기사칭호였으니 말이다.

“1년 후에도 채석장이 지금처럼만 별 탈 없이 운용된다면 두 번째 칭호를 준다고 했어! 아주 파격적이지!”

“우와~ 그런데도 한 턱 쏠 생각을 안했단 말이에요?”

“안 그래도 오늘 맥주 세잔씩 돌리기로 했어.”

“...그거 알아요? 간수장님도 늙은 너구리라는 걸요.”

“흐흐흐. 시장을 위해선 지금부터 천천히 준비 해야지. 그러니까, 한번 읊어봐. 여기서 뭐가 부족한지 말이야.”

몽블랑은 잠시 생각해봤다.

“음... 남은 거라고 하면 역시 오락거리와 외출이랄까요? 하지만 외출은 큰 말썽을 일으킬 수 있으니, 한 달에 한 번씩 연극 같은 거나 보여주면 될 거예요. 가끔씩, 사람들이 열광 할 수 있게, 또 밖에서도 제대로 보지 못한...”

“벗는 거야겠지. 아주 떠들썩하겠구만.”

“명목은 수감자들의 인성 및 교양 발달 정도가 좋겠네요. 그렇다곤 해도 지금 바로 해서는 안되고요.”

“그걸 누가 모를까봐? 면회소가 완전히 자리 잡으면 그때 할 거야. 그럼 집시 패거리를 수배해봐야 하나?”

“아, 그건 제가 알아서 할게요. 그래도 밖과 가장 많이 접하는 게 저잖아요.”

“...적당히 때 먹어.”

“내가 언제 실망시켜 드린 적 있어요?”

“크흠, 말이 그렇다는 거지. 그럼 그 일도 자네에게 맡기지.”

“기대에 보답해 드릴게요. 아, 그런데 샤블과 보르텡 영감은 어떻게 됐어요? 정작 그 인간들이 어떻게 됐는지 안 물어 봤네요.”

“크흐, 그놈들? 당연히 지옥에 있지. 그것도 183구역에!”

통쾌하다는 듯이 크게 웃는 아커만을 보며 몽블랑은 얼굴을 일그러트렸다.

“으에, 차라리 목을 자르시지...”

183구역은 남자나 어린아이를 강간한 악질 강간범만 모아 놓은 곳이었다.

큰 돌을 옮겨야 하는 지옥의 특성상 한 구역 당 일하는 죄수는 20명이었고, 더욱이 샤블은 지옥의 죄수들이 끔찍이도 증오하는 존재인 간수 중에서도 부 간수장이었다.

불과 며칠이 흐르진 않았지만, 샤블의 정신이 온전할 것이라곤 생각할 수 없었다.

‘여태까지 어떻게 참은 거야?’

몽블랑은 아커만의 독심에 고개를 저을 뿐이었다.

*****

하루 중 가장 더울 때 돌려진 세 잔의 맥주와 한 개의 소시지는 노역자들로 하여금 아커만을 칭송 하다못해 신으로 추앙하게 만들었다.

그리고 또 몽블랑을 더욱 좋아하게 되었다.

몽블랑은 놀랜드와 잭, 레벌 등의 면회소를 짓는 사람들과 함께 그늘 아래서 같이 즐기고 있었다.

그들에게는 소시지뿐만 아니라 훈제 칠면조를 비롯해 푸짐한 안주가 제공 되었다.

“캬~ 만날 이런다면 굳이 나갈 필요가 없겠다!”

“놀랜드, 이 쉬키는 꼭 내가 할 말을 먼저 하더라잉!”

사람들은 찔끔 자라목을 하는 놀랜드를 보며 웃음을 터트렸다.

같이 웃던 몽블랑은 누군가 다가오는 것에 반사적으로 고개를 돌렸다가 눈을 동그랗게 떴다.

그를 보며 사람들은 눈살을 찌푸렸다.

몽블랑은 살의마저 일으키는 사람들을 말리며 일어섰다.

“여기까진 어쩐 일이세요? 망구스씨?”

망구스는 자라목이 되어 사람들의 눈치를 살피며 입을 열었다.

“고, 고맙다는 소리를 하러 왔어. 자네가 만류하지 않았으면 나도...”

몽블랑은 망구스를 다시 제 2 숙소로 보내려던 아커만을 말렸었다. 망구스가 가짜 장부를 찾았기에 진짜 장부를 찾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이렇게 몽블랑이 말리지 않았더라면 망구스는 보르텡 패거리로 몰려 꼼짝 없이 끌려갔을 것이다.

망구스는 183구역으로 끌려간 샤블, 보르텡, 그리고 그들과 뜻을 함께 했던 이들을 떠올리며 부르르 떨었다.

“사, 사람으로서 고, 고맙다는 인사는 해야 할 것 같아서...”

잭과 레벌을 보며 두려움을 떠는 모습이 어찌나 안쓰러운지, 몽블랑은 이 망구스가 자신이 들었던 그 망구스인지 의심마저 들 정도였다.

“...같이 한잔 드실래요? 맥주나 안주는 넉넉하니까, 아저씨가 낀다고 티도 안나요.”

망구스는 술판을 보며 군침을 삼켰다가 이내 고개를 저었다.

“아, 아니야. 내가 무슨 염치로 끼겠어... 나, 난 내 몫을 먹으러 가 볼게. 그럼 쉬어.”

“어이, 망구스!”

화들짝 놀라며 멈춰서는 망구스를 보며 게스는 씁쓸히 웃었다.

“힘든 일 있으면 언제든지 말해라. 큰 도움은 주지 못해도, 중재 정돈 해줄 수 있을 거다. 우리 패거리가 이제 그 정도 힘은 있잖아.”

“그려, 이제부터 오다가다 마주치면 인사 하자고! 무시하면 아주 죽여 버릴 껴!”

‘...고, 고마워.’

자초하긴 했지만, 배신자란 타이틀 때문에 그간 몸과 마음고생이 심했던 망구스는 억지로 울음을 참으며 황급히 걸음을 옮겼고, 간수와 함께 멀어지는 망구스를 보며 몽블랑은 안쓰럽다는 듯이 혀를 찼다.

“채석장 양대 떠벌이가 저렇게 사라지네.”

“어라? 그거 놀랜드 네가 떠벌이라고 인정하는 거냐?”

“아, 아니 말이 그렇다는 거죠! 전 떠벌이가 아니라 정보꾼입니다, 정보꾼! 아시겠습니까, 튠 형님!”

“...그래, 그런다고 치자. 블랑아, 어서 와서 먹자! 따뜻할 때 먹어야지!”

“아, 예!”

몽블랑은 망구스에게서 시선을 거두며 사람들에게로 향했다.

“딱 취하기 전까지만 마시죠! 자, 위하여!”

*****

술의 힘 덕분인지, 아니면 곧 가족들을 볼 수 있다는 희망 때문인지 사람들은 열심히 일하였다.

비록 누군가는 올 사람이 없다고 하더라도 기뻐할 채석장 친구를 떠올리니 그들은 나태해 질 수가 없었다.

저녁식사까지 간수식당에서 때운 몽블랑은 루시아와 함께 채석장을 나섰다.

말은 하지 않았어도 언제 쫒겨 날지 모른다는 불안한 생각이 말끔히 사라져서 인지 그들의 발걸음은 경쾌하기 까지 했다.

나무를 얼기설기 엮은 대문을 열고 들어간 몽블랑은 이불을 들고 저택으로 향하는 아이들을 볼 수 있었다.

아이들은 들어오는 패거리를 보곤 우르르 달려왔다.

“오케이, 스탑! 모두 이불을 안에 놓고 나오도록! 기껏 빤 이불 흙먼지 씌울 거냐?”

“네! 사제님!”

“다른 꼬맹이들은 어서 가서 씻어!”

“에에~ 안 씻으면 안돼요?”

“응, 안돼. 발가벗겨서 여자들 방에 처넣기 전에 어서 가!”

씻기 싫어하는 건 대부분 남자들이었는지라 소년들은 입술을 삐죽 내밀며 우물가로 향했고, 소녀들은 꺄르르 웃었다.

“하이고, 저렇게 씻는 걸 싫어해서 어디다 쓸까.”

“사제님이 유별난 거예요.”

귀족이 아닌 이상 한 달에 한번 씻으면 많이 씻는다고 봐야 했다.

“잘 씻어야 병에 안 걸려. 그리고 주방을 책임지는 니들이 깨끗해야 간수와 죄수 노예들도 병에 안 걸려. 내 말대로 주방은 깨끗이 물청소까지 했지?”

“하긴 했지만... 정말 자주 씻으면 병에 안 걸려요?”

없는 자들에게 가장 무서운 것은 굶는 것이었고, 그 다음은 병에 걸리는 것이었다.

흔한 감기라도 돈이 없으면 꼼짝 없이 죽어야 하니 말이다.

“완전히 안 걸리는 건 아니지만, 깨끗이 살아야 병에 걸릴 확률이 적어져. 그게 아니라도 루시아 너라면 냄새 심하게 나는 사람 옆에 가고 싶겠냐?”

“저, 전 냄새 안 나거든요! 구석구석 씻거든요!”

“...머리도 매일 감아. 냄새나.”

“저, 정말요?”

머리칼 냄새를 맡은 루시아는 얼굴이 빨개져 고개를 푹 숙였다.

“비누도 있으면서 왜 그렇게 안 씻냐?”

기초적인 비누를 만드는 제조법은 널리 퍼져 있는 상태였다.

누가 퍼트렸는지는 모르지만, 지금은 누구라도 비누를 만들어 쓸 수 있었다.

‘그렇지만, 그런 비누를 쓸 봐 에는 차라리 2백 페니 짜리 하급 비누를 사고 말지. 1백원짜리도 안 되는 걸 누가 써?’

어찌나 물에 잘 녹는지, 몇 번 쓰다보면 금세 반절로 줄어 든 것을 볼 수 있었다.

하지만, 최하층민은 그것도 살 수가 없어서 기름만 따로 구해 집에서 만들어 썼고, 그건 루시아 패거리도 마찬가지였다.

“얼른 가서 씻기나 해.”

“안 그래도 그럴 거예요!”

루시아가 쿵쿵 거리며 멀어지자 15살 정도 된 소년이 다가왔다.

“사제님, 정말 일층을 전부 치워야 해요?”

“그래. 벽하고 기둥만 놔두고 모두 치워버려. 나중에 건축업자 불러서 가능하다 싶으면 벽을 허물 거야.”

“안 된다면요?”

“...그럼, 마는 거지.”

1층 로비만 해도 2백 명은 족히 수용할 수 있을 정도로 넓었다.

‘정 안되면 간수장한테 샤바샤바 해서 음성증폭기를 얻으면 돼.’

원래 정원이었던 넓은 공터가 있으니 천막만 치면 예배는 충분히 할 수 있었다.

“왜, 니들 개인 공간이 줄어드니까 싫냐?”

“...조, 조금?”

“그럼 지하를 창고와 목욕탕으로 개조한다면 더 싫겠다?”

소년은 깜짝 놀라 눈을 동그랗게 떴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