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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적의 사제-25화 (25/18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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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도직입적으로 말하겠네. 채석장에서 일 해주게.”

달라진 어투는 놀라웠지만, 제의는 그리 놀랍지 않았다.

오히려 방금까지 몽블랑이 바라고 있었던 일이었다.

“월로 하실래요, 명으로 하실래요?”

“월 5만을 주지. 이 이상은 예산이 없어. 대신 부수입은 모두 인정해 주지.”

상당히 파격적인 대우였기에, 몽블랑은 아커만이 바라고 있는 게 무엇인지 알 수 있었다.

“좋습니다. 월 5만으로 하죠.”

“고맙군. 가지. 자네도 같이 식사를 하세.”

채석장에서 간수들과 함께 푸짐한 점심을 먹은 몽블랑은 태워다 준다는 아르민의 마차를 타고서 카우쉬카로 내려왔다.

아르민과 세실리아는 정말 아쉬워하는 표정을 지으며 다음 마을로 떠났다.

마차가 이젠 보이지 않을 정도로 멀어지자 몸을 돌리던 몽블랑은 순간 멈칫 했다.

“그러고 보니 그 싸가지 눈빛이 심상치 않던데...”

대체 자신이 무슨 실수를 한 것인지는 모르지만, 마차에 오르던 체르코프의 눈빛엔 분명 분노가 담겨 있었다.

“...아, 몰라. 어차피 평생 보지 않을 놈인데, 신경 써서 뭐해?”

고개를 저은 몽블랑은 애써 찝찝함을 털어버리며 걷기 시작했다.

뚝딱! 뚝딱!

“거기 좀 제대로 잡아! 기초는 튼튼해야 하는 거 몰라?”

사람들에게 물어물어 도착한 곳은 공사장일 뿐이었다.

“역시 허물어졌나?”

혹시나 하는 마음에 와 보았지만, 카우트예 신전은 자취조차 남아 있질 않았다.

서운하거나, 안타까운 마음은 없었기에 몽블랑은 그저 머리를 긁적이며 돌아섰다.

“에고, 저녁때까지 시간은 어떻게”

“호, 혹시 예거 사제님이세요? 맞으시군요! 아아, 카우트예님! 정말 카우트예님이 보살핀 게 아닐 수 없어요. 전 꼼짝 없이 사제님이 팔려가 신 줄 알았어요.”

‘전에 얘를 알던 사람인가보네.’

“그러셨습니까?”

몽블랑은 그저 어색히 웃을 수밖에 없었다.

그걸 어떻게 오해 한 것인지 중년 여성의 낯빛이 어두워졌다.

그녀는 갑자기 몽블랑의 눈을 피하기 시작했다.

“죄, 죄송해요! 저희가 어려울 때, 예거 사제님과 크라우치 사제님께서 발 벋고 나서주셨는데...”

몽블랑은 그제야 몸의 스승이 크라우치라는 것을 알게 됐지만, 별 감흥은 없었다.

‘원래 곳간에서 인심 나는 법이지.’

아무리 빚이 많았다 하더라도 도움을 받은 이들이 조금씩 보탰다면 채석장에 팔리는 상황까진 가지 않았을 것이다.

“그, 그럼 이제 다시 돌아오시는 건가요? 전처럼 싸게 치료해주시는 건가요?”

예전의 몽블랑과 지금의 자신은 전혀 다른 사람이기에 그녀가 뭐라고 하던지 별 감흥은 없었지만, 이렇게 잇속을 챙기려는 모습을 보이니 슬쩍 기분이 나빠지는 몽블랑이었다.

“아뇨, 머물 곳도 없고, 한곳에 머물 돈도 없습니다. 어쩌다 보니 연이 닿은 분께서 저의 사정을 듣고는 고맙게도 도와주신다고 하니 영도로 갈까 합니다.”

“아아... 머, 머무실 곳이 없으시면 저희 집에서 머무셔도 되는데요.”

‘그러면서 치료비 중 일부를 때어먹을 수작이겠지.’

아쉬움이 가득하면서도 탐욕이 섞인 얼굴은 없는 정도 떨어지게 하였다.

‘블랑아, 너 인생을 헛살았구나.’

대화를 계속 하다보면 어떤 말이 튀어나올지 몰라 몽블랑은 그냥 상대하지 않기로 했다.

“자매님의 앞날에 카우트예님의 은총이 깃들길 빌겠습니다.”

“사, 사제님!”

돌아선 몽블랑은 피곤한 얼굴로 고개를 저었다.

‘에고, 일단 자자.’

생각해 보니 어제부터 한숨도 자지 않은 것을 떠올린 몽블랑은 여관부터 들어가기로 했다.

*****

어제 진하게 회포를 풀어선지 몽블랑은 술을 많이 마시진 않았다.

한 바탕 하였기에 씻고 돌아온 엘리샤는 따뜻한 물로 적신 수건으로 몽블랑의 전신을 닦고, 주물렀다.

침대에 기댄 몽블랑은 물었던 시거를 내려놓았다.

‘맛이 거지같네. 몸에서도 안 받아. 에혀, 이참에 끊자.’

“오늘은 무슨 일 있으셨어요? 안색이 안 좋아 보여요.”

“어제 그렇게 마셔뎄는데 정상이면 그게 사람이냐?”

“피이~ 거짓말. 그런 것 치고는 어제보다 더 뜨겁던데요? 정말, 어떻게 사람을 그렇게 못살게 굴 수가 있어요?”

몽블랑의 남성을 받아들이기도 전에 몇 번이나 가버린 엘리샤는 말은 그렇게 하면서도 고혹적인 눈빛으로 몽블랑을 바라봤다.

‘다른 남자와 틀려.’

술집에 오는 남자들은 모두 제 욕정만 풀려고 하지, 몽블랑처럼 보물을 다루듯이 정성스럽게 애무를 하지 않았다.

머릿속이 하얗게 타버려 미쳐버릴 때까지 몽블랑은 절대 멈추지 않았다.

대화를 나누어도, 몽블랑은 자신을 절대 술집 여자로 대하지 않았다.

조금은 무시하는 어투지만, 술집 작부가 아니라 한 사람의 여자로 대해 준다는 것은 그녀의 마음에 너무도 큰 풍랑을 일으켰다.

‘아마 다른 언니들도 이런 상황이 되면 나 같은 마음일 거야!’

팔뚝에 뭉개지는 가슴의 따뜻한 감촉에 몽블랑은 비실 웃었다.

“나 좋아하지 마라. 그러다 너만 다친다.”

순간 엘리샤의 얼굴이 어두워졌다 펴졌다.

몽블랑이 자신을 사랑하지 않는 다는 것은 이미 알고 있었다.

“솔직히 말해 봐요. 정말 무슨 일이 있었던 거예요?”

“찝찝한 일이 좀 있어서 그랬어. 별로 신경 쓸 만한 일은 아니야. 하아, 그나저나 집은 어디로 얻어야 할까.”

정식인부를 위한 숙소는 있지만, 상태가 너무 나쁘다는 것과 쉴 틈 없이 불려갈 수 있기에, 결국 빠르게 출근 할 수 있는 곳에 얻어야 했다.

문제는 채석장이 도시에서 떨어진 곳에 있다 보니 살만한 곳이 없다는 것이었다.

“집이 없어요?”

“그럼 있겠냐? 나 돈에 팔려 갔었다.”

“...그, 그럼 나랑 같이 살래요?”

“아서라. 이 나이에 미라 되고 싶지 않다. 우리 관계는 이정도가 딱 좋아.”

“...내가 매력이 없는 건 아니죠?”

“내가 감당이 안돼.”

분명 변명이었지만, 단 한 번도 그런 소릴 들어본 적이 없는 엘리샤로서는 그리 싫은 기분이 아니었다.

‘남자들은 어떻게든 같이 살려고만 하지 절대 이런 말을 하진 않아.’

“이래서 더 마음에 드는 거예요.”

“좋아하지 말라니까. 나 나쁜 남자야.”

“마음을 잡을 수 있나요... 그런데 앞으로 어디서 살 거예요?”

“나도 그게 문제란 말이지. 35만으로 살 곳이 있으려나?”

“단언컨대 없어요. 빈민가로 들어가면 모를까요.”

빈민가는 아무 빈집이나 들어가면 되었다.

누가 뭐라 할 사람 없고, 관청에서도 관리를 하지 않으니 말이다.

몽블랑도 그런 빈민가를 생각해 보지 않은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빈민가는 위험하고 더럽다는 이미지를 가지고 있었다.

“내가 돈이 없는 것은 아니니 빈민가는 패스.”

“그러니까 제 집에 와서 살라니까요. 이틀, 아니 삼일마다 어제 오늘 같이 만 해주면 되요.”

“...거 끈질기네. 나 그냥 간다?”

“안돼요! 미안해요!”

엘리샤는 어딜 가지 못하게 몽블랑의 팔을 꽉 잡았다.

그 모습이 꽤 귀여워 몽블랑은 엘리샤의 코를 잡고 흔들었다.

“...아, 그러면 되겠네.”

“뭐가요? 설마 머물 곳이 떠오른 거예요? 어딘데요?”

“그런 곳이 있다. 날 열렬히 환영해 줄 그런 곳. 어? 야, 뭐하냐? 씁, 이게 어디서 허락도 없이 올라가? 안 내려와?”

남성을 엉덩이로 깔아뭉갠 엘리샤는 베시시 웃었다.

남성에 닫는 촉촉한 습기와 열기에 몽블랑은 순간 미간을 찌푸렸다.

“앞으로 자주 못 올 거잖아요. 그러니, 할 수 있을 때 해놔야죠. 내가 언제까지고 당할 거라고 생각했어요? 오늘 미치게 해드릴게요.”

“풋! 니가 그럴 깜냥은 되겠냐? 곧 울고불고 할 거면서...”

“그건 두고 봐야 아는 거예요.”

엘리샤는 몽블랑의 유두를 맹렬히 물어갔다.

*****

다음 날 아침, 씻긴 했지만, 부스스한 얼굴로 파르바티를 나온 몽블랑은 느긋이 채석장을 향해 걸었다.

“하이고, 허리야. 어제 너무 무리했나? 얘가 정말 뽕을 뽑았네.”

몸을 이리저리 비틀던 몽블랑은 카우쉬카에서 채석장으로 가는 길 중간에 나있는 꽤 넓은 샛길로 들어갔다.

몽블랑은 곧 거대한 저택을 발견할 수 있었다.

수풀이 우거진 것도 있지만, 꽤나 안쪽으로 들어 가야해서 바깥에서는 절대 보이지 않을 위치에 있는 저택은 나무를 얼기설기 묶어 놓은 바리케이트가 대문의 역할을 하고 있었다.

나무를 잡고 훌쩍 뛰어 넘은 몽블랑은 마치 자신의 집을 들어가는 것 마냥 잡초들이 무성한 넓은 앞마당을 가로 질렀다.

나무 같은 것은 모두 가져갔는지, 여기저기 다 덮지 않은 구덩이 들이 있었다.

“왜 이런 게 버려진 거지?”

아무리 접근성이 낮다고 해도 수백명은 거뜬히 살 대저택이 버려졌다는 것은 상식적으로 이해가 가질 않았다.

“귀신이라도 나오는 건가? 그렇다고는 해도... 에이, 모르겠다. 일단 출근이나 하자.”

몽블랑은 다시 길을 돌아 나와 채석장으로 올라갔다.

“에고고, 수고하십니다~ 모두 믿습니까?”

“...풋! 믿습니다.”

입구를 지키던 병사들은 한바탕 뒤집어 졌다.

“루체노 이등병, 혹시 저 아래 저택에 대해 알아?”

“...아~ 귀신 나온다는 그 저택? 그거 몇 년 전에 버려졌을 텐데? 지금은 산다는 사람도 없고 말이야. 나도 어렸을 적엔 담력 시험하러 몇 번 가봤지.”

“하지만, 크잖아. 분명 사겠다는 사람이 나왔을 텐데?”

“왜 없겠어. 하지만, 모두 1달을 못 버티고 도망쳤데. 그래서 완전히 똥값까지 떨어졌어. 듣기로는 1백만이라던가? 사겠다는 사람만 나오면 바로 팔아버릴 걸?”

“그런 대저택이 그 가격까지 떨어 질 수 있는 거야?”

“내 말이! 왜, 사려고? 돈은 있어?”

“돈이야 벌면 되는 거지. 내가 조금만 열심히 움직이면 거긴 금방 사.”

“...쩝, 그 재주가 부럽기는 하다.”

“절실히 카우트예님을 외치면 사제가 될 수 있을 지도 모르지.”

“됐네요. 1백인장만 되도 넉넉히 버는데 왜 사제가 되겠어? 성실한 사람 유혹하지 말고 어서 들어가기나 해.”

“그래, 수고해.”

별다른 검문 없이 입구를 통과한 몽블랑은 바로 간수장실로 향했다.

‘사람이 산다는 게 들키면 금방 팔려 버릴 텐데...’

루시아 패거리가 그곳에 사는 게 소문이 난다면 팔리는 건 시간문제라고 할 수 있었다.

그렇게 큰 저택이 굳이 필요한 것은 아니었지만, 채석장과 접근성이 좋으면서 그 가격에 집을 살 수 있다는 것은 상당히 매력적이었다.

“왔으면 들어가지 않고, 뭘 그렇게 생각해?”

“응? 체놈 간수?”

“...썩을, 풀려났다고 바로 존칭은 생략하는 거냐?”

“그럴 이유가 없잖아요. 그런데 여긴 왜?”

“부 간수장 대리가 됐다.”

“승진했네요? 이런, 몰라서 미처 선물을 준비 못했네요.”

“나 그렇게 염치없는 놈 아니다. 들어가자.”

부 간수장 대리가 된 것은 어찌 보면 몽블랑의 덕이 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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