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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믿습니까? 믿습니다!
미녀의 관심은 감사합니다 하고 절을 해야 하지만, 캐릭터 외모 변경이 가능한 세상에서 워낙 많은 미녀를 봐오고 구른 덕분인지 미모에 그리 흔들리지 않는 몽블랑으로서는 세실리아의 초롱초롱한 눈빛이 그저 부담스러울 뿐이었다.
물론 남자로서 우쭐 거리기는 했다.
“하하하하. 정말 고맙습니다! 사제님 덕분에 우리 세실이 살았습니다! 만약 세실이 그 불한당에게 잡혔다면... 아아아.”
손을 잡고 뜨거운 눈빛을 보내는 아르민도 부담스러웠다.
“덕분에 모욕을 당할 수 있지 않게 됐어요. 고마워요. 사제님.”
“크흠흠. 무사하시다니 다행입니다.”
몽블랑은 최대한 초탈한 미소를 지었다.
“하아, 이 은혜를 어찌 갚아야 할지... 아! 아커만 간수장.”
“추, 충!”
두 번의 말실수로 인해 제대로 찍힌 아커만은 군기 바짝 든 모습으로 대답했다.
“예거 사제님의 빚이 얼마라고 했지?”
“아! 빚은”
몽블랑은 급히 ‘백, 백’이라고 입을 뻐끔거렸다.
“...백만 페니입니다.”
아르민의 미간이 순간 찌푸려지자 아커만은 황급히 입을 열었다.
“하, 하지만, 예배, 공부 등등 많은 좋은 일을 하였기에 제 제량으로 30%를 삭감했습니다. 죄송합니다!”
“아니네. 오히려 그런 상을 주었으니 칭찬을 받아 마땅할 일이지. 그나저나 70만이라... 50만이면 지금 가진 돈으로 충분히 낼 수 있지만... 으으음. 아커만 간수장 먼저 예거 사제님을 풀어드리게. 돈은 며칠 내로 보내”
“아니야 오빠, 내가 50만을 낼게. 날 구해주신 분이잖아. 빚은 빨리 털어버리는 게 좋아.”
“그러냐? 흠, 그럼 지금 바로 낼 수 있겠군. 첼퍼 경. 나와 세실의 주머니를 가져오시오.”
“충!”
곧 첼퍼라 불린 중년 기사가 주머니에서 돈을 꺼낸 아르민은 몽블랑의 모든 빚을 털어냈다.
몽블랑은 그것을 보며 허탈한 한숨을 내뱉었다.
‘결국 여태까지 뻘짓 한 건가? 아니야, 좋은 인연을 만들었잖아. 그거면 됐지. 계속 볼 사람들을 만들었잖아.’
몽블랑은 한 번 더 감사 인사를 하고 채석장을 빠져나가는 아르민과 세실리아를 보며 고맙다고 중얼거리다 몸을 돌렸다.
몽블랑은 주머니를 꼭 쥔 아커만의 팔뚝을 붙잡았다.
몽블랑은 당혹해 하는 아커만을 향해 활짝 웃었다.
“우리 계산 할 것이 남아 있지요?”
“...끄응, 일단 들어가자. 보는 눈이 많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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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빚이 얼마에요? 솔직히 털어 놓으세요.”
“...십만이다.”
“우라질, 해치 새끼. 잡히기만 해봐라! 아주 그냥!”
분을 터트리던 몽블랑은 심호흡을 하고서는 다시 아커만을 보았다.
“우리 딱 7:3으로 하죠? 이것까지 보태서!”
몽블랑은 아르민이 떠나기 전에 사람들을 돕는데 보태라며 쥐어 준 30만 페니를 탁자위에 내려놓았다.
63만과 93만은 아주 큰 차이였기에 아커만은 고민에 휩싸였다.
“...6:4로 하면 안될까?”
“헐! 장부도 내가 찾아줘, 간수장님 명성도 내가 높여줘, 용돈벌이수단도 마련해줘, 목도 간수하게 해줬는데 날강도가 되시겠다?”
건들거리는 모습에 순간 울컥한 아커만은 꽉 쥐었던 주먹을 필 수밖에 없었다.
“몽블랑 사제. 이걸 나만 먹겠나? 내 밑에 애들도 나눠줘야 하고, 또 죄수 노예들에게 맥주 한잔씩은 더 돌리려면...”
“...후우, 그렇게 사정하시니 사제된 도리로서 어쩔 수 없죠. 그럼 이렇게 하는 것은 어떻습니까?”
“자네 지인들의 형량이나 돈을 깎아 달라는 것은 안돼! 그랬다간 말이 엄청 나올 거야!”
몽블랑은 아커만이 선수를 치니 상당히 아쉬워했다.
고민을 하던 몽블랑은 순간 머리에 스치는 생각에 무릎을 쳤다.
“모범수! 그래! 가석방이라는 것을 도입하는 겁니다.”
“모범수? 가석방?”
“진짜 회개 하는 듯이 사고 안치고 일 열심히 하는 죄수와 노예들을 모범수에 올려서 형과 시간을 감소시킨 다음, 자작님 생일이나 건국일 같은 큰 날에 일시적으로 석방하는 겁니다.”
“...호오, 가석방이라.”
아커만은 순간 자신의 명예를 한 번 더 높여줄 기회가 왔음을 알아 차렸다.
“말을 잘 듣고 일을 열심히 해라. 그러면 일찍 나갈 수 있다. 그런 희망을 주라는 거냐? 일시적으로 석방해서 죄를 저지르면 더 심하게 처벌하고?”
“그렇죠. 그런 제도를 시범적으로 운용해서 결과만 좋게 나온다면?”
이죽이죽 웃는 몽블랑의 모습에 아커만은 몽블랑이 누굴 빼내고 싶은지 알 수 있었다.
“...그거 괜찮을 수 있겠군. 반절 쯤 형량이 지난 놈들 중 착실한 자들만 뽑아서 내 보내보면 되겠군?”
“거기에 덧붙여서 남은 형 집행기간이 모두 사라지면 죗값을 다 치룬 것으로 하고, 그때까진 이동의 자유를 도시 내로 제한해야죠. 만약 그걸 어기고 도망치면?”
몽블랑은 마치 포박을 받는 듯이 양 손목을 붙여 앞으로 내밀었다.
“일단 상신 해보도록 하지.”
말은 그렇게 했지만, 아커만은 통과 될 것이라는 확신을 가졌다.
그것은 몽블랑 역시 마찬가지였다.
몽블랑은 손을 내밀었고, 아커만은 미소를 지으며 마주 잡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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샤블 부 간수장의 세실리아 인질미수사건 때문인지 혹시 모를 사태를 막기 위해 모든 죄수와 노예는 간수와 병사의 엄중한 감시를 받으며 각 숙소에서 대기하고 있어야 했다.
5생활관 사람들은 몽블랑의 출소 소식에 상당히 아쉬워하면서도 제 일처럼 진심으로 축하해 주었다.
그러다 몽블랑이 전해준 모범수와 가석방 제도에 환호성을 지르며 기뻐하였다.
확정 된 것이 아닌데도 우는 사람이 있었고, 몽블랑에게 절을 하는 사람도 있었다.
특히나 몽블랑과 깊은 인연을 맺은 이들은 몽블랑의 손을 붙잡고 뜨거운 눈물을 흘렸다.
그날 오후, 몽블랑은 지인들의 배웅을 받으며 채석장 입구에 섰다.
그들의 사이엔 게스도 끼어 있었다.
오해가 풀린 게스는 사람들에게 신뢰와 미안함의 눈빛을 받고 있었다.
“하~ 이제 블랑이 없으면 심심해서 어쩌냐.”
“매주 일요일이면 만나잖아요. 전 형님과 아저씨들을 영원히 떠나는 게 아니에요.”
“그렇지. 네가 원할 때면 언제든 볼 수 있지. 갈 곳 없으면 41구역의 주점 파르바티를 찾아라. 마담에게 잭이 보냈다고 하면 잘 자리는 만들어 줄 거다. 내가 출소 하면 정말 좋은 곳에서 살자.”
“잭 말이 통하지 않으면 83구역의 식당 고라고를 찾아서 내 이름을 말하면 되야. 그놈이 내 동생인께 절대 박대하지 않을 거여.”
“크흠흠!”
몽블랑과 잭 외 다른 이들은 헛기침을 한 체놈을 못마땅하게 바라봤다.
“시간이 다 된 것 같네요. 내일 봐 요.”
잭과 다른 이들은 입을 꾹 다물며 고개를 끄덕였다.
사나이의 뜨거운 악수를 한 몽블랑은 체놈에게 목 인사를 하곤 입구를 나섰다.
잭과 다른 이들은 그것을 보다가 몸을 돌렸다.
기분 좋게 입구의 병사들과 목 인사를 하며 나왔던 몽블랑은 채 몇 발 때지 못하고 사람들에게 붙잡혀야 했다.
“아, 안에서 나온 것인가요? 우리 체리 아빠는 잘 있나요?”
“내 아들이 살아 있는지만 말해주세요!”
‘이런 면회부터 해야 했구나. 내일 건의를 해봐야겠다.’
몽블랑은 손을 들어 그들의 입을 다물게 했다.
“전 제 1숙소 5생활관에서 나온 몽블랑 예거입니다. 다른 숙소에 대해서는 잘 모릅니다.”
“모, 몽블랑? 서, 설마 당신이 그 사제님?”
사제란 말에 사람들은 기겁하며 물러났는데, 그중 몇 명은 몽블랑에게 다가와 손을 꼭 잡으며 눈물을 흘렸다.
“감사합니다. 정말 감사해요. 사제님 때문에 우리 체리 아빠의 편지를 받을 수 있었어요.”
“체리 아빠라 하심은... 혹시 저희 생활관의 딸 바보 쟝 씨의 부인 되십니까?”
“네! 제가 쟝의 아내인 메리에요!”
“...정말 체리가 대륙 최고의 미인입니까?”
“풋! 저와 그이의 눈에만 그렇게 보이는 거죠.”
눈물 진 눈으로 웃음을 짓는 그녀의 모습에 체리가 엄마를 닮았다면 꽤나 미인 일 것 같았다.
“쟝 씨가 평생을 쓸 운을 부인을 만나느라 다 썼나 보네요.”
‘어머’ 하며 볼을 붉히는 메리를 일견한 몽블랑은 뜨거운 눈을 하고 있는 사람들을 둘러보았다.
“지금 여러분의 자식, 남편, 형제남매는 낮에는 죗값을 치르고, 저녁에는 글공부를 하십니다. 모두 변하려고 노력하고 계시니 여러분께서도 그에 맞추어 노력해 주셔야 합니다.”
“어떤 노력을 말하는 건가요?”
“여기에 오셔서 허송세월을 보내실 게 아니라 집에 가셔서 남는 시간에 글을 배우십시오. 그리고 편지를 쓰십시오. 비록 값은 비싸지만, 한 달에 한 통 정도는 무리 없이 보낼 수 있을 겁니다. 그 편지 한통에 그분들은 힘든 노역을 웃으며 버팁니다.”
“하, 하지만 글을 배우는 것은 비싸요. 저희 사정으로는...”
“부인들께서 시장에 가셨을 때, 잘 하시는 게 있지 않습니까.”
여성들의 고개가 모로 기울여 졌고, 몽블랑은 짓궂게 웃었다.
“후.려.치.기.”
“...아!”
그들 사이에 웃음이 퍼졌다.
“책 도둑은 도둑도 아니라고 했습니다. 수십명이 한꺼번에 몰려가 강짜를 놓으면 누가 손을 들지 않을까요. 물론, 뒤탈이 없게 먹을 것이라던지, 술이라던지를 줘서 조련해야겠죠?”
몽블랑이 윙크를 하자 여자들은 자지러졌다.
“자자, 모두 이렇게 있지 말고 어서 가서 공부 합시다!”
사람들은 크게 대답하고선 길을 따라 내려가기 시작했다.
입구를 지키는 병사들은 몽블랑은 존경스럽다는 듯 바라봤다.
“저 사제님.”
“네, 메리씨.”
“실례가 안된다면 저희가 식사를 대접해 드려도 될 까요?”
몽블랑은 메리의 손을 덥썩 잡으며 뜨거운 눈길을 보냈다.
“메리씨! 전 지금 사제 음식이 너무 먹고 싶습니다!”
“...풋! 제가 최대한 실력을 발휘해 볼게요!”
“오오오!”
환호하는 몽블랑을 보며 사람들은 놀랐다가 곧 어색히 웃었다.
넓은 길 양 옆으론 울창한 숲이 우거져 있었다.
바닥에서 올라오는 흙냄새와 물기를 품은 풀냄새는 코를 간질였고, 저 아래 펼쳐진 도시의 모습은 가슴을 뻥 뚫리게 만들었다.
몽블랑은 천천히 걷다가 길이 꺾여 더 이상 입구가 보이지 않게 되었을 때, 돌연 양팔을 훌쩍 들었다.
천천히 걷겠다며 사람들을 먼저 보냈기에 몽블랑은 거침없었다.
“에헤라디여, 자진방아를 돌려라! 얼씨구나, 좋구나!”
한참 어깨춤을 추던 몽블랑은 숨을 깊게 들이마셨다.
“파하~ 겨우 입구에서 몇 발자국 걸었을 뿐인데 공기가 이렇게 다르냐? 역시 사제공기가 최고야!”
“아하하하하하!”
커다란 나무 뒤에서 루시아가 웃으며 걸어 나왔다.
“...어디부터 봤어?”
“처음부터요.”
“...무덤까지 가지고 가면 안되겠니?”
“봐서요.”
몽블랑은 얼굴을 일그러트리며 앓는 소리를 냈다.
“그래서 무슨 일이야? 아직 안에 있을 시간이잖아.”
“얘들한테 맡겨두고 왔어요. 은인을 배웅해야죠.”
“그래? 그럼 길 끝까지만 같이 걸을까?”
루시아는 고맙다는 듯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몽블랑과 루시아는 말없이 걸었다.
루시아는 무언가 말 하려는 듯 입을 달싹 거렸지만, 주위를 둘러보는데 정신이 팔린 몽블랑은 그걸 알지 못했다.
어느덧 메리와 사람들이 기다리고 있는 길 끝에 도착했다.
“잘 봐. 저 사람들이 너희의 고객이야. 얼마간은 저들이 너희 아지트까지 올 테지만, 그 이후부터는 너희가 찾아가야 해. 저들을 너희의 편으로 만들어. 그러면 밥줄이 끊기는 일은 없을 거야.”
“고, 고마워요. 사제님. 정말 이렇게 받기만 하고...”
몽블랑은 눈시울을 붉히는 루시아의 머리를 헤집었다.
깜짝 놀라는 그녀를 향해 웃어준 몽블랑은 간다는 말을 하곤 사람들에게로 다가갔다.
“생각 있으면 내일 예배에 참가해.”
루시아는 반갑게 맞이하는 사람들과 함께 멀어지는 몽블랑을 멍하니 바라보다 돌연 한숨을 내뱉었다.
카우트예 신전이 있던 자리에 새로운 건물이 올라가고 있다는 소리를 들은 루시아는 몽블랑이 자신들의 아지트에 머물며 글 선생을 해주길 바랐다.
하지만 그것은 너무 염치없다는 생각에 차마 입이 떨어지지 않다 보니 이렇게 말 한마디 제대로 건네지 못하고, 끝내 또 도움을 받아 버렸다.
“이 빚을 어떻게 갚아야 할지...”
낯빛이 흐려진 루시아는 한 번 더 한숨을 내쉬며 몸을 돌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