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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커만은 체놈을 비롯한 간수 다섯 명과 함께 13구역 근처를 샅샅이 뒤졌다.
1구역까지 정식인부 연장창고나 변소도 뒤졌지만, 종이 한 장조차 나오질 않았다.
“빌어먹을. 샤블 그놈이 찾지 못한 이유가 있었어.”
마지막으로 다시 한 번 13구역의 연장창고를 뒤졌던 아커만은 벽을 세게 치며 분개했다.
“뭐하는 거냐! 그냥 나와! 그놈 밑의 간수가 순찰 돌 시간이야!”
몽블랑은 거짓장부가 발견된 곳의 망치와 정들을 들어보다가 어색히 웃으며 일어섰다.
“흐음, 자기 것의 개념이 없는 건가?”
마구잡이로 쌓여 있는 망치와 정에는 그 어떤 표식도 없었다.
“하긴, 죄수와 노예니 자기 것이라고 생각하진 않겠...지?”
몽블랑은 갑자기 멈춰 서서 고개를 갸웃 거렸다.
‘그럼 군대도 마찬가지여야지 않나?’
군대에선 계급이 낮아질수록 공용물건의 상태가 나빠지는데, 그 사이에서도 좋은 것을 차지하기 위한 싸움은 있었고, 승자는 누구에게도 뺏기지 않기 위해 자기 것이라는 표식을 해두었다.
“그런데 이건 그냥 마모란 말이지?”
거기다 몇 개 구역의 연장을 모았다고 해도 망치와 정의 양이 많은 감이 있었다.
“어이 몽블랑. 나와야 한다니”
몽블랑은 냅다 망치와 정을 걷어찼다.
와르르르!
“딱 여기 밑에만 확인하고요. 좀 도와주세요.”
“쯧. 어서 도와. 정말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
“예!”
와르르 무너지는 소리는 연장창고 밖을 은은히 울렸다.
망치와 정이 모두 치워졌지만, 있는 것은 그냥 나무 바닥 일 뿐이었다.
얼굴이 일그러진 아커만이 주먹을 쥘 때, 헛바람을 들이킨 몽블랑은 재빨리 엎드려 바닥을 두드리는 시늉을 하였다.
이렇게라도 해야지 만이 아커만이 화를 가라앉힐 터였다.
‘어후, 나중에 계급장 때고 붙어 봅시다!’
“...후우, 빨리 일어나지 못해?”
딱! 딱! 딱! 똑!
순간 연장창고 안의 시간이 멈추었다.
몽블랑은 급히 나무판자를 뜯어냈고, 팔뚝만한 길이의 나무판자는 너무도 손쉽게 들려졌다.
몰려든 그들은 등불의 빛에 황급히 자취를 감추는 어둠속에서 모습을 드러낸 가죽 뭉치에 마른침을 삼켰다.
기름먹인 가죽뭉치를 들어 펼친 몽블랑은 누렇게 변색된 종이를 보며 활짝 웃었다.
“찾았다.”
안에는 부간수장 샤블을 비롯한 간수들에게로 향한 뇌물의 기록이 빼곡히 적혀 있었다.
“등하불명... 이 영감탱이 머리를 정말 굴렸네. 아, 어서 망치와 정을 쌓아야 해요!”
“알았다! 뭣들해!”
간수들은 급히 몸을 숙여 망치와 정을 원래 있던 자리로 밀었다.
아커만과 몽블랑이 돕자 망치와 정은 빠르게 쌓였다.
원래의 모습과는 달랐지만, 몽블랑은 오히려 낫겠다 싶었다.
“됐냐? 그럼 간다!”
아커만은 등불을 끄곤 몽블랑의 뒷덜미를 낚아채며 몸을 날렸고, 간수들은 급히 아커만의 뒤를 따랐다.
그들이 사라진 지 약 5분여의 시간이 흐른 후, 얼른 끝내고 쉴 생각에 빠르게 다가온 간수 두 명이 들고 있던 횃불로 13구역 연장창고 안을 비추어 보았다가 다음 구역으로 향했다.
쾅!
“허억! 헉! 헉!”
“제기랄, 이렇게 달린 적이 언젠지도 기억 안 나는 군.”
소파에 털썩 앉으며 비실 웃은 아커만은 몽블랑이 쥐고 있는 장부를 보며 입 꼬리를 비틀었다.
“드디어 부 간수장을 쳐낼 수 있겠군. 체놈, 간수들을 모아라.”
“잠깐만요! 이렇게 끝내기에는 너무 아쉽지 않나요?”
몽블랑은 배에 뼈칼이 들어왔던 것을 절대 잊지 않았다.
“굳이 시간을 끌 필요가 있나?”
“거짓장부가 망치더미를 조금만 무너트려도 나오게 끔 한 것을 보면 보르텡은 이미 샤블 부간수장과 이야기를 끝내놓은 상태 일 겁니다.”
“...그렇군. 모레가 이번에 오실 둘째공자와 함께 정기점사를 하는 날이란 걸 잊고 있었어. 망구스 그놈을 꼬여내기 위해 말했었거늘...”
그걸 떠올리자 아커만은 온 몸에서 소름이 돋는 것 같았다.
“모레가 그 둘째 공자가 도착하는 날입니까?”
“아니다. 내일에 도착하셔서 카우쉬카를 둘러본 다음 모레 아침에 채석장으로 오신다. 자작님의 다른 자제분들은 낮에 오시기에 그 전에 정기검사를 끝내지만...”
영지의 일에 관심이 많은 둘째공자는 채석장이 돌아가는 모습을 제대로 보고 싶다며 꼭 같이 정기검사를 하였다.
며칠씩 자리를 비울 수 없는 카쉬모프 자작은 일 년에 한번 영지순찰을 위해 날을 잡고 영지 전체를 돌지만, 그의 두 아들은 카쉬모프 자작의 명령에 두 달에 한 번씩은 꼭 영지순찰을 돌았다.
모두 가신들을 두루 살피라는 카쉬모프 자작의 배려였다.
“이제 제가 하려는 말을 아시겠죠?”
“...이거 망구스 그놈의 형량을 낮춰줘야 되겠군.”
아커만은 장난 식으로 말했지만, 몽블랑은 눈을 빛냈다.
“그럼 그 김에 제 빚도 탕감해 주시면... 안될까요?”
몽블랑은 최대한 비굴한 모습을 보였다.
아커만은 순간 반사적으로 주먹을 쥐었다가 이내 생각에 잠겼다.
‘하긴, 직접적인 당근을 줄때긴 하지.’
여태껏 몽블랑이 내놓은 아이디어나 오늘의 일은 충분히 몇십만 이상의 값어치를 했다.
아커만은 못 말리겠다는 듯이 웃었다.
“좋다. 30%을 깎아 주지! 단, 네가 여길 나간 데도 일요일마다 와서 예배를 해줘야 한다.”
“...감사합니다! 복 받으실 겁니다!”
‘그렇지! 역시 인생은 타이밍이지!’
몽블랑은 30%나 차감된 것이 의외긴 했지만, 그건 아무래도 상관이 없었다.
이번 일로 인해 아커만은 자신이 탈출할 생각이 없다는 것을 알게 될 것이고, 그로 인해 자신을 더 믿게 될 것이다.
탈출하려는 놈이 팔려온 값을 탕감하려 하진 않을 테니 말이다.
‘토요일에 간수와 병사들의 움직임을 외워야해!’
몽블랑은 토요일에 어떻게 그 무리에 낄 수 있을까 생각했다.
“그런데 어떻게 보르텡의 시선을 돌리죠? 장부가 사라진 것을 알면 보르텡이나 샤블 부간수장은 일을 저지를지도 모릅니다. 결국 아예 연장창고에 가지 못하게 해야 한다는 건데...”
곰곰이 생각하던 몽블랑은 손뼉을 쳤다.
“그래! 독방입니다! 독방에 가두는 겁니다!”
이 채석장에서 명분이 있으면서도, 가장 자연스럽게 시선을 돌릴 수 있는 방법은 그것뿐이었다.
“...그렇군, 그런 수가 있었군. 그건 나에게 맡겨라.”
아커만의 눈이 빛나기 시작했다.
*****
점심을 먹고 구역에 도착한 몽블랑은 무엇이 그리 기쁜지 어깨춤을 추고 있는 놀랜드를 발견 할 수 있었다.
“블랑아, 그 이야기 들었어? 보르텡 영감탱이가 독방에 갔데!”
“아, 정말요?”
“게스 놈과 함께 널 팔아넘긴 망구스 그 개자식 알지? 그놈하고 싸웠어! 게스 놈 때문에 찬밥신세가 되니까 열이 받은 거지!”
“게스 아저씨는 요?”
“넌 아직도 게스 그 새끼를 걱정 하냐? 흥! 그놈도 같이 독방에 갔어! 아주 사력을 다해서 막았다더라!”
“...그, 그럼 그 두 분, 부 간수장한테 엄청 맞는 거 아니에요? 보르텡은 부 간수장의 돈줄이잖아요.”
“쯧, 그것도 아닌가 보더라. 간수장이 모레 올 귀빈에 신경 쓰라고 부 간수장 파벌을 모두 내 쫒아 버렸어. 하지만, 속내는 아마 이번 기회를 통해 부 간수장의 약점을 잡으려는 거겠지.”
몽블랑은 안도의 한숨을 내뱉었다.
“부 간수장이 가만히 있었어요?”
“나도 그게 이상해. 무슨 속셈인지 부 간수장이 바로 물러났어.”
몽블랑은 그 이유를 알고 있었지만, 뭔가 의심쩍은 것이 있었다.
생명의 위협을 느낀 보르텡이 진짜 장부 위치를 발설 할 수 있는 위험성이 남아 있는 것이었다.
‘그만큼 믿는 건가? 하긴, 자기도 해볼 것은 다 해봤겠지.’
“며칠이나 갇힌 데요?”
“일주일. 그런데, 귀빈이 오는 날에는 잠깐 석방한데.”
‘일단, 시간 한 번 확실히 벌었네.’
“에고고, 그나저나 지옥 놈들, 모래까지 살판나겠네. 아, 우리도 맞을 일 없지. 아~ 만날 이랬으면 좋겠다.”
“...그렇구나.”
“응? 뭐가?”
“아, 아뇨.”
몽블랑의 부 간수장이 왜 변수를 놔두고 순순히 물러났는지 알 수 있을 것 같았다.
‘부 간수장은 아커만이 보르텡을 죽일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는 거였어. 그건 보르텡도 마찬가지인 거야. 둘째 공자의 성격이 착한가 보구나.’
몽블랑은 이쪽으로 다가오는 체놈과 다른 간수를 보며 확신할 수 있었다.
“어이, 몽블랑. 이놈 따라서 지옥에 좀 갔다 와라. 간수장님 특별 지시다.”
*****
멀리서 보던 것과 가까이서 보는 지옥은 큰 차이를 보였다.
지옥에서 일하는 죄수와 노예는 죽은 자의 눈을 가지고 있었다.
간수의 손이 허리로 향할 때 마다 그들은 몸을 움츠리고 두려움에 떨었다.
몽블랑은 거미줄보다 더 복잡하게 얽힌 등의 흉터를 보자 그들이 흉악범임에도 안쓰러워졌다.
‘인과응보긴 하지만... 그래도 이건...’
몽블랑은 피딱지가 내려앉는 등을 향해 손을 가져갔다.
“신성한 치료.”
“...고맙습니다. 사제님.”
“...힘내세요.”
“이 역시 제가 걸은 길이지요. 행복할 내일을 위해 카우트예님이 안배하신 길이라니, 참고 견뎌 보렵니다. 사흘 후 예배 때, 잘 부탁드립니다.”
“...신도셨군요. 카우트예님의 은총이 형제님과 함께 하기를 빌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사제님.”
힘없이 쳐진 입술에 미소가 감돌았지만, 몽블랑은 이런 말 밖에 해줄 수 없다는 것이 참으로 답답했다.
몽블랑은 그 날 하루와 다음 날의 반나절을 지옥의 사람들을 치료하며 보냈다.
놀랍게도 지옥 사람들 3백여명 중 30%가 카우트예의 신도였다.
몽블랑은 신성력의 증가가 이들 때문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이미 저버린 흉터는 어쩔 수 없지만, 그래도 상처는 다 치료하면서 ‘신성한 치료’의 레벨을 올릴 수 있었다.
‘푸후, 그 영감 노려보던 눈빛이 정말 살벌하던데...’
만신창이가 된 보르텡을 치료해야 했던 몽블랑은 꿈에 나타날까 무서운 눈빛에 진저리를 치다가 흙바닥을 쓸고 있는 사람들의 모습을 보곤 뒷목을 잡아야 했다.
흙바닥뿐만이 아니라 더러운 옷도 양잿물로 빨아야 했고, 숙소 내부도 번쩍번쩍 광이 나도록 쓸고 닦아야 했다.
혼이 나간 것 같이 멍한 사람들 사이로 몽블랑은 뻐근한 어깨를 돌리고 있었다.
“할 만 하네. 1시간 전에 온다고 통보하지 않은 게 어디야.”
“이, 이게 할 만 하다고?”
놀랜드는 입을 떡 벌렸다.
“오늘 하루 종일 한 걸 1시간 안에 끝낸다고 생각해 봐요.”
“그게 가능 하겠냐!”
“...되더라고요.”
몽블랑은 창문 밖을 바라보며 애잔히 웃었다.
그 웃음이 얼마나 허무하고 위험해 보이는 지 사람들은 식겁하며 물러났다.
‘우리의 주적은 비와 눈. 그리고 행보관과 별... 후후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