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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적의 사제-14화 (14/18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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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몽블랑은 큰 나무판을 앞에 두고 미간을 잔뜩 찌푸리고 있었다.

“대체 뭐라고 쓸까잉?”

“쉿, 레벌 형님. 집중 깨져요.”

몽블랑의 주위를 감싼 사람들은 합죽이가 되었다.

‘뭐라고 쓸까, 채석장 갱생원? 아니야 너무 어두워. 카우쉬카의 공부방? 에이, 이건 아니다. 하아. 안 나오네... 아! 그게 있었지?’

목탄을 든 몽블랑은 일필휘지로 현판에 글자를 적어갔다.

사랑과 나눔의 집.

“어때요? 이름 괜찮죠?”

“오~ 정말 뭔가 있어 보이는 구마잉. 근디 사랑이라... 거참 쑥스럽게 시리...”

“이것만 보고 있어도 착한 사람이 될 것 같아요.”

사람들은 놀랜드의 말에 적극 동감했다.

사랑과 나눔, 그 두 단어는 왠지 죄로 얼룩진 몸을 깨끗이 정화시켜주는 것 같았다.

“자, 현판도 써졌으니 얼른 얼른 올리자고! 공부 해야제!”

몽블랑과 5생활관의 사람들은 다 세워진 건물을 보며 벅찬 가슴을 주체하지 못했다.

특히나 건물을 세운 17명은 몽블랑이 쓴 현판이 문 위에 달릴 때, 하마터면 울 뻔 했다.

몽블랑은 잭과 레벌의 어깨를 감싸며 활짝 웃었다.

“생에 최초로 남을 위해 건물을 만들어본 소감이 어때요?”

“쓰벌, 더럽게 죽여븐다야. 여자보다 더 죽여.”

“...갑자기 집을 짓고 싶은 생각이 무럭무럭 든다. 교습소 말고 건축일을 배울까?”

“음마? 나랑 같이 교습소 차리기로 했음시롱 그라믄 안돼제! 나는 우짜라고! 내 대가리는 돌빡이라서 니가 있어야 한당께!”

“오~ 사랑과 나눔의 집이라. 꽤 괜찮은 이름이군.”

아커만의 등장에 사람들은 얼른 머리를 숙였다.

“어느 곳의 색체도 들어나지 않는 단어를 찾다보니 이렇게 됐습니다. 괜찮습니까?”

“갱생원 같은 칙칙한 단어가 아니니 좋군. 나중에 자작님께서 오셔도 보여드릴 만하겠어. 그런데 좀 황량한 것 같군? 꽃이 있으면 좋을 것 같은데...”

순간 몽블랑의 볼이 파르르 떨렸다.

‘씨부린다고 다 말이 아니지! 아오, 씨!’

중대가 너무 삭막하다는 투 스타의 흘리는 말에 3박 4일 동안 자고 먹고 싸는 시간을 빼곤 허리를 펴지 못했던 악몽 같은 기억이 떠오르자 몽블랑은 아커만의 주둥이를 후려갈기고 싶었다.

“하하하, 역시 그렇죠? 공부 하는 곳인데 화사한 꽃밭 정도는 있어야죠. 내일까지 만들기로 하겠습니다!”

‘체놈 넌 또 왜 씨!’

속으로 이를 부드득 간 몽블랑은 애써 웃으며 입을 열었다.

“간수장님, 저희 제 1 숙소에다 공부할 분들을 모집한다고 말해도 되겠습니까? 저희 5 생활관만 아니라 다른 생활관에도 카우트예님의 뜻을 전하고 싶습니다.”

“흠, 차라리 다 하는 게 낫지 않아? 건물도 크잖아.”

“억지로 오는 사람이 제대로 공부 할 것 같지는 않습니다. 공부를 배우고, 늘어나는 사람들을 보다보면 알아서 올 겁니다.”

“흠, 그럴 수 있겠군. 그것에 대해선 네가 알아서 해. 대신...”

“분란은 절대 일으키지 않도록 하겠습니다.”

아커만은 굳어 있는 레벌과 잭을 보곤 고개를 끄덕였다.

아커만과 체놈이 돌아가자 몽블랑은 손뼉을 쳤다.

“자! 모두 안으로 들어가죠!”

*****

보르텡 영감은 볼을 푸들푸들 떨며 화를 참으려 노력했다.

“빌어먹을! 대체 왜 안한다는 거야! 돈을 준다잖아! 돈을!”

누구 한 명 선뜻 나서는 자가 없는 것도 모자라 자신이 다가가기만 하면 역병에 걸린 사람이라도 보는 듯이 도망치기 바빴다.

모두 제 2 숙소에서 보르텡과 거래한 모든 이가 지옥으로 끌려갔기 때문이었다.

혹여, 지옥으로 끌려 갈 까봐, 그들은 보르텡과 대화조차 나누지 않으려 했다.

그건 정식 인부들도 마찬가지였다.

1년간 놀고먹을 돈을 준다고 해도 모두 마다하였다.

채석장이 얼마나 험하고 위험한지는 그들이 더 잘 알았기에 절대 범죄를 저지르려 하지 않았다.

“방법이 없어, 방법이!”

아커만이 바보가 아닌 이상, 간수를 교체하는 것을 가만두고 보진 않을 것이다.

그렇다면 청상 죄수나 노예인데, 그 누구도 하려지 않는 게 문제였다.

“어이, 영감. 루트를 어떻게 뚫을 건지는 생각해 봤어?”

“흥! 그 사제 놈만 죽는다면, 고아 놈들을 이용하면 되지. 괜히 쓸데없이 돈을 썼어!”

“크흐흐, 사제 놈 때문에 골치 아프지?”

“그걸 말이라고 하느냐! 네놈은 알아보고는 있는 거야?”

“흐~ 나는 이미 구했지요? 들어와!”

문이 열리며 얼굴이 붓고 찢어진 게스가 들어왔다.

“이놈이 말이야, 원래 그 사제 놈과 같은 조원이었단 말이지. 그런데 나랑 같이 밀고하는 바람에 저 모양 저 꼴이 됐지, 뭐야? 여기서도 맞고 있는 걸 내가 구해왔어!”

“...그럼 네가 게스겠군. 그런데 듣기로 5생활관에선 괜찮다고 하던데? 사제가 용서해줬다고 하지 않았나?”

보르텡은 따로 정보라인이 있는 듯, 제 1숙소의 사정에 대해서도 꽉 꿰고 있었다.

흠칫 놀랐던 게스는 금세 감정을 수습하며 씁쓸히 웃었다.

“여기 망구스처럼 그냥 누군가를 싫어하는 잡놈도 있소. 이놈이야 박쥐처럼 이리 붙었다 저리 붙었다 하니 원래 그런 놈이라 그나마 덜 맞았지만...”

“하긴, 네놈의 평판은 그럭저럭 좋았지. 사람이 무거운 맛이 있다고 말이야. 크흥, 그래서 네놈이 나서겠다고?”

“몽블랑 그 개잡놈은 용서한다고는 했지, 내가 맞고 들어오니 신경도 쓰지 않았소. 그놈도 똑같은 사제였을 뿐이오. 난 배신하는 놈이 정말 싫소!”

살벌하게 갈리는 이는 산전수전 다 겪은 보르텡이 놀랄 정도였다.

“...진심이로군. 그런데 방법이 있나?”

“사랑과 나눔의 집인가 뭔가를 지었소. 제 1숙소의 죄수, 노예들을 대상으로 원하는 자만 공부를 가르친다 하오. 이놈에게 듣자하니 부 간수장과 은밀한 관계가 있다고?”

보르텡은 순간 망구스를 죽일 듯이 노려봤고, 망구스는 자라목이 되어 간사하게 웃었다.

“...그렇군. 공부를 가르치는데 숙소를 가리면 안되지. 알았다. 넌 칼이나 갈고 기다려. 곧 뼈를 구해주지.”

“대신 약속해 줘야 할 것이 있소.”

“클클클. 네놈도 욕심을 차리는 거냐? 그럼 이야기가 편하지.”

“내가 걸린 데도 절대 지옥으로 보내지 말 것, 그리고 앞으로 당신의 오른팔로 인정해 줄 것. 이 두 가지요.”

“그거야 쉽지! 이 몸의 사람이 된 것을 축하한다. 게스.”

죽일 듯이 노려보는 망구스의 시선을 느낀 게스는 입꼬리를 비틀며 내밀어진 보르텡의 손을 잡았다.

*****

“공격용 스킬 숙련도도 올리긴 해야 하는데...쩝, 마땅한 타깃이 없네.”

작업복과 다르게 간수들이 준비해 준 하얀 옷을 입은 몽블랑은 계속 버프나 치료만 쓰는 것 같아 조금 불만이었다.

“블랑아! 블랑아! 준비 다 됐어?”

“아, 다 됐어요!”

몽블랑은 튠이 깎아 준 지팡이를 들고 일어났다.

웅성웅성

공부방 겸 예배당은 사람들로 가득 차다 못해 문 뒤로도 사람들이 엄청나게 많았다.

예배에 참석하면 오전 일과 제외라는 소리에 이렇게 몰려든 것이었다.

“모두 조용! 조용히 하지 못해?”

죄수와 노예가 몰려 있으니 당연히 출동하게 된 간수들의 외침에 모두 입을 다물어야 했다.

터져버릴 듯이 벌렁거리는 심장을 진정시키며 단상에 선 몽블랑은 단상에 놓인 음성 증폭 아티팩트를 톡톡 두드렸다.

이 아티팩트는 군대용으로 제작이 되어 아직 민간에는 보급이 되질 않았다.

“맨 뒤에 잘 들립니까?”

잘 들립니다!

멀리서 희미하게 소리가 들리자 몽블랑은 사람들을 둘러봤다.

“어, 음...”

사람들의 시선이 모이자 몽블랑은 머리가 하얘지는 것을 느꼈다.

“간수님! 저 지금 오줌 싸고 싶은데... 싸고 와도 될까요?”

“...푸하하하하하!”

크하하하하하!

“아, 웃지 마십쇼. 아저씨들이라고 2400명을 앞에 두고 지릴 것 같지 않겠습니까? 똑같은 사람들 끼리 놀리지 맙시다!”

휘익! 멋지다! 재밌다!

사람들이 환호해주자 팽팽하게 당겨진 긴장감이 어느 정도 느슨해진 몽블랑은 양팔을 벌려 사람들의 입을 다물게 했다.

“이번 예배를 위해 많은 말을 쓰긴 했지만, 솔직히 여러분을 보니 어떻게 말문을 열어야 할 지 모르겠네요. 음, 일단 아시는 분은 아실 테지만, 신은 정말 게으르고 욕심 많은 존재들입니다.”

5생활관을 제외한 모든 이들의 입이 크게 벌어졌다.

그건 간수들 역시 마찬가지였다.

몽블랑은 5 생활관에서처럼 전혀 안면이 없는 이들을 콕콕 찍어가며 그들의 희망사항을 말하도록 했다.

다시 조직생활을, 범죄를, 돈을 빌리는 것을 하겠다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막연히 생각만 했던 꿈에 젖어가는 그들을 향해 몽블랑은 해낼수 있다며 자신감을 북돋아 주었다.

사람들의 눈에 서린 열망은 점점 짙어져 갔다.

“우리는 죗값을 치루기 위해, 돈을 갚기 위해 이곳에 오게 되었습니다. 분명 억울한 이도 있을 것이고, 짜증이 나는 이도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여러분. 이곳은 당신들의 과거를 털어버리는 곳이기도 하면서 미래를 준비하는 곳이기도 합니다.”

몽블랑은 그러며 평일 밤에 공부를 하는 사람들을 예로 들었다.

사람들의 시선이 맨 앞줄로 몰렸다.

“보십시오! 이분들은 모두 밖에서 손가락질을 당하는 범죄자고, 무책임한 사람들입니다! 하지만, 변하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똑같은 처지인 이들도 노력하는데 당신들이라고 못할게 있겠습니까! 공부가 하기 어렵다고요? 자격이 없다고요? 틀렸습니다. 그렇게 생각하는 사람들이야 말로 인생의 패배자고 죄인입니다. 왜 부딪쳐 보지도 않고 멋대로 깨지는 미래를 재단하는 것입니까! 신께서 당신들을 이곳에 보낸 이유를 왜 외면하는 겁니까!”

“신께서 우리를 이곳에 보냈다고? 왜! 모든 길을 열어 놓으셨다며! 그런데 왜 이 모양 이 꼴이냐!”

“당신들이 그 길을 걸었기에!”

쩌렁쩌렁한 울림은 사람들의 입을 다물게 하였다.

숨죽이는 사람들을 보며 몽블랑은 처연히 입을 열었다.

“그런 길을 걸었기에, 이 채석장을 지나 더 좋은 길로 가라며 그분께서 안배하신 겁니다. 이곳에서 여러분이 배울 것은 단 하나입니다! 그것은 인내!”

눈을 동그랗게 뜬 사람들은 숨을 죽이며 몽블랑을 바라봤다.

“인내를 온전히 이루라. 이는 너희를 온전하고 구비하여 조금도 부족함이 없게 함이라! 이렇듯 그분께선 여러분이 인내를 배우길 원하십니다! 여러분이 그때 조금만 참았다면 지금 이 시간에 여기에 있겠습니까!”

쿠웅!

많은 사람들의 눈동자가 풍랑을 맞은 듯 흔들렸다.

“저 역시 인내를 이루지 못했기에 여기에 당신들과 같은 처지로 서 있습니다. 무조건 인내하라고 강요하는 게 아닙니다. 여러분과 같은 처지인 저와 같이 천천히 인내를 배워 가면 되는 겁니다. 참다보면 좋은 날이 오듯이 우리 함께 좋은 날을 맞이합시다.”

사람들은 ‘우리 같이’ 라는 단어에 멍하니 몽블랑을 바라봤다.

“그럼 여기서 예배를 마치도록 하겠습니다.”

몽블랑은 사람들에게 목례를 하곤 몸을 돌려 칸막이로 향했다.

짝!

심장을 찌르는 소리에 멈칫했던 몽블랑은 다시 걸었다.

짝짝짝! 짝짝짝짝짝!

휘이이익! 와아아아아아!

온 몸을 뒤흔드는 환호에 몽블랑은 저릿저릿해지는 가슴을 쓰다듬었다.

“끝장나네.”

활화산이 폭발하듯이 커져가는 신성력은 온 몸을 황홀경에 빠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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