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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적의 사제-11화 (11/18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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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랑아, 그 이야기 들었어? 어제 정식인부들 중 서른 명 가까이가 반입금지물품을 가지고 들어오려다 해고 됐다더라.”

눈을 동그랗게 떴던 몽블랑은 곧 생각에 잠겼다.

‘아커만이 움직였다. 일단은 밀어 준다는 건가?’

여기서 소기의 성과를 달성하지 못하면 보르텡의 루트는 다시 살아나게 될 것이다.

“저런, 안타깝게 됐네요. 정식인부는 몇 명 없었는데요.”

“흥! 그래봐야 다 연줄로 들어온 놈들이지! 누구 고향 형, 누구 사촌 동생. 영주가 고용하라고 하지 않았더라면 그 치들이 여기서 일을 했을 것 같아? 우리만으로 충분하잖아!”

죄수와 노예는 2천명이 훌쩍 넘는 반면, 정식인부는 고작해야 3백명도 안되었다.

채석장에게 있어 정식인부는 그리 필요치 않다.

3백명의 인부는 보여주기 위한 식의 정치일 뿐이었다.

“보르텡 영감이란 자는 어떤 사람이에요?”

“장물업자였는데, 어쩌다 영주가문의 보물을 취급하는 바람에 40년 형을 선고 받고 들어왔어. 그때 나이가 마흔 살이었지. 지금은 예순 살이고.”

“여기서 뼈를 묻어야 한다는 거네요. 그나저나 그 영감, 영 머리가 안돌아 가는 사람인가 보네요.”

놀랜드는 입을 떡 하고 벌렸다.

보르텡은 만 단위의 곱셈도 할 줄 아는 인재 중 인재였다.

“내가 그 영감이었으면, 수익의 전부를 간수장에게 받쳤을 거예요. 1년 전 사건도 가물가물한데 하물며 10년 전이라면 말할 것도 없죠.”

“...넌 가끔씩 말을 어렵게 하더라?”

“입소시키는 것은 간수장 맘대로 안 되지만, 출소는 간수장의 재량이라는 거예요. 욕심 부리다가 된통 당했네요.”

‘이렇게 쉽게 쳐내는 것을 보면 간수장에게 돌아가는 수익은 20%도 안됐을 거야. 그나저나, 이제부터는 조심해야 하나?’

보르텡 영감을 비롯해서 여태껏 호사를 누리던 간수, 죄수들이 적이 될 것이다.

당장 5생활관 해도 보르텡과 거래한 듯한 죄수가 5명 정도였다.

잭과 레벌을 빼면 3명이었다.

“뭐해요? 어서 일해요. 웃챠!”

“...너 요새 몸이 좀 좋아진 것 같다?”

“잘 먹고 잘 자니까, 몸이 좋아지는 건 당연한 거죠.”

“아니 그래도 너무 빨리... 흠, 원래 몸이 좋았나?”

놀랜드는 의아해 하며 몽블랑의 뒤를 따라붙었다.

‘확실히 힘과 체력이 빨리 붙었어. 이것도 게임 시스템인가?’

한 대 툭 치면 억 하고 스러질 몸이 고작 십일 사이에 몸통 반절만한 대리석을 거뜬히 옮길 정도가 되었다.

상리에 어긋난다고 할 수 있는 속도였다.

더군다나 꾸준히 시전 했던 신성한 힘이 미세하게나마 강해진 느낌이었다.

힘이 늘어난 것 때문일 수도 있지만, 몽블랑은 숙련도에 무게를 두었다.

“어이, 몽블랑! 환자다! 이놈 따라서 달려!”

“아, 예!”

지게를 벗은 몽블랑은 하급간수를 따라 달려 20구역 떨어진 62구역에 도착했다.

몽블랑은 피가 철철 나는 양 무릎을 부여잡고 이를 악물고 있는 중년인을 보곤 눈을 동그랗게 떴다.

“드미트리?”

정신을 차린 몽블랑은 얼른 달려가 그의 무릎에 손을 올렸다.

“신성한 치료!”

무릎에 스며든 하얀 빛은 역시나 단번에 치료하지 못했다.

몽블랑은 두 번 더 신성한 치료를 외치고 나서야 출혈을 막을 수 있었다.

“신성한 치료!”

파아앗!

‘...어?’

신성력이 평소보다 조금 더 빠져나가는 것을 느낀 순간, 날카로운 돌에 찍은 듯이 조금 패어있던 살이 빠르게 차올랐다.

‘신성한 치료가 강해졌다? 어디 한번.’

“신성한 치료!”

‘역시 그랬구나! 대충 (주)일루전과 비슷하나?’

2센티미터 깊이의 상처가 그냥 넘어져 까진 정도로 변하자 몽블랑은 마지막 신성한 치료로서 깔끔하게 고칠 수 있었다.

드미트리의 무릎은 그냥 피를 발라 놓은 것 같았다.

‘이거 정말 열심히 써야겠는 걸?’

그때, 몽블랑의 머리위에서 하급간수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다 된 거냐?”

“아, 네! 완벽히 완치 됐습니다! 후유증은 없을 겁니다.”

“거, 사제는 정말 사제인가보군. 네 구역으로 돌아가자.”

몽블랑은 왜인지 복잡한 심경을 보이고 있는 드미트리를 바라봤다.

“애들을 협박해서라도 밥을 한 덩이씩 더 드세요. 다 체력이 없어서 넘어지는 겁니다.”

“...어디의 사제지?”

“카우트예입니다. 들어보지는 못했을 거예요.”

몽블랑은 입을 다무는 드미트리를 보다 몸을 돌렸고, 드미트리는 멀어지는 몽블랑을 보며 복잡한 심경을 드러냈다.

“카우트예라...”

달려왔던 것과 달리 하급간수와 몽블랑은 조금 빠를 정도로 걷고 있었다.

“그런데 왜 이렇게 달린 거예요?”

간수들의 입장에서 죄수나 노예는 천천히 치료해도 상관없는 존재였고, 일어나지 못하면 후려치면 되는 것이었다.

그건 아커만이 채석장을 커리어로 생각하여 좋게 운영하려고 한다고 해도 마찬가지였다.

말로 타이르는 것보단 채찍이 훨씬 효과적이니 말이다.

“요주의 감시대상이라서 그런다. 그렇게만 알아.”

강압적인 말투에 몽블랑은 더 이상 묻지 못했다.

‘놀랜드 형한테 물어보면 되지.’

구역으로 돌아온 몽블랑은 아쉽게도 궁금증을 풀 수 없었다.

놀랜드와 움직이는 시간이 틀어진 것이다.

도중에 붙잡았다가는 채찍이 날아오니 몽블랑은 결국 저녁에 묻기로 하였다.

황혼도 이제 어두워져 가자 작업은 끝을 맺었다.

몽블랑은 자신들을 인솔해 가는 체놈의 곁으로 붙었다.

“감사하다고 인사 전해 주십시오.”

“크흠. 알았다. 간수장님께서도 지켜보신다고 했다.”

“걱정 마십시오. 기대에 충분히 응답하겠습니다. 그런데 그 인부들, 다시는 일할 수 없는 겁니까?”

“당연하지. 그놈들뿐만 아니라 뇌물 먹은 간수들도 모두 힘든 구역으로 빠졌다. 몇 놈은 계급이 강등됐지.”

‘아커만이 정말 제대로 움직였구나! 이 기회에 다 쳐내려는 건가?’

“그럼 보르텡 영감은요?”

“그놈은 음... 부 간수장과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어서 결정적인 증거가 아니면 건드리기가 힘들어. 부 간수장은 아커만 간수장님과 다른 파벌에 있는데...”

다 듣지 않아도 알 것 같았다. 그런데 의문이 들었다.

“그 때문에 보르텡이 있는 제 2 숙소로 들어가기가 힘들어. 거긴 부 간수장의 간수들뿐이거든. 그래서 장부 위치를 찾기 위해 첩자를 투입시키려 하지.”

“첩자를 투입할 수가 있어요?”

“그것 때문에 골치란 말이지.”

죄수와 노예들은 서로에 대해 빠삭하니 안다고 봐야 했다.

서로를 감시하려니 어쩔 수가 없었다.

그런 상황에서 첩자를 넣자는 것은 첩자를 죽이려는 것 밖에 안되었다.

노예와 죄수들은 형량을 감해 준다고 해도 절대 가지 않으려 할 것이다.

“흠, 그럼 불시검문은 어때요?”

“불시검문?”

“요지는 첩자가 자연스럽게 들어갈 수 있는 환경만 만들면 되잖아요. 보르텡을 엮진 못하더라도, 금지품목을 가진 이들은 있잖아요?”

체놈은 눈을 동그랗게 떴다.

“...씨발 빨리 걸어! 빨리 빨리! 아니, 그냥 달려!”

몽블랑은 뛰면서도 어이없어 했다.

‘불시검문은 공권력의 특기 아니었나? 왜 생각하지 못한 거야? 그나저나, 오늘 여러 사람 입에서 곡소리 나겠네.’

받아먹을 대로 처먹었을 테니, 동정심은 들지 않았다.

씻는 가운데 부산해지는 간수들을 바라보다 어깨를 으쓱이곤 생활관으로 들어가던 몽블랑은 둥글게 몰려 있는 생활관 사람들을 보곤 멍해졌다.

얼떨떨해 하거나 헛웃음을 짓거나 작게 흥분 하는 등 일단은 좋아 했지만, 사람들은 만지면 안되는 보물이라도 되는 듯이 둥그렇게 모여서 그것을 바라보고만 있을 뿐이었다.

드디어 십시일반으로 모은 책이 도착한 것이다.

“뭘 그렇게 멀찌감치 떨어져 있어요?”

“마, 만지다가 때라도 타면 어쩌냐잉. 찢어지기라도 하면?”

“어이고, 레벌 형님. 조직 생활 하신다는 분이 왜 그렇게 간이 작아요?”

레벌의 조름에 몽블랑은 형으로 부르기로 했다.

“얌마, 그거랑 이거랑은 달라야! 우리 같은 놈이 언제 책을 사봤겄냐? 그때야 그냥 팔 물건에 지나지 않았지만... 하이고메, 왜 이렇게 가슴이 벌렁벌렁 거린다냐.”

이러다간 끝이 없을 것 같다고 느낀 몽블랑은 책을 들어 한 사람에게 안겨 주었다.

순간 헛바람을 들이킨 사람들은 주춤 물러섰고, 책을 받은 사람은 아기를 처음 안는 아빠같이 뻣뻣이 굳어 버렸다.

“모두 한번 씩 안아 봐요. 아마도 여러분이 최초로 산 마음의 양식일 테니까요. 자, 레벌 형님도 안으시고.”

“음마마!”

“...책아, 한번 안아보자.”

“혼자만 안지 말고 얼른 넘겨! 사람들 기다리잖아!”

안을 때는 감격에 겨워하더니, 다른 사람에게 넘겨질 때는 정말 아쉬워했다.

“모두 한번씩 안아보셨죠? 점호까지 얼마 남지 않았으니 바로 시작하죠! 한권은 저 주시고, 나머지는 서로 같이 보세요.”

“알겠습니다. 사제 슨상님!”

“서, 선생님이요?”

“우리한테 글을 가르쳐주는디, 슨상님이제. 다들 그렇제?”

“아암! 거기다 사제니까 사제 선생님이지!”

“사제 선생님께 개개는 놈 있으면 말만 하십쇼. 내가 대가리를 박살내버릴게요.”

“자, 얼렁얼렁 앉드라고.”

몽블랑은 그들의 입에 걸린 짓궂은 미소에 고개를 저으며 자신 몫의 책을 폈다.

“하루에 한 단어라도 꾸준히 배울 겁니다. 그럼 공용어의 첫 번째 스펠링인 아! 따라 해보세요. 아!”

죄다 성인이 넘은 사람들이 어미 새에게 입을 벌리는 새끼 새들 마냥 입을 벌리는 광경은 꽤나 코믹스러웠지만, 몽블랑은 초인적으로 웃음을 참아냈다.

‘그런데 내가 놀랜드 형한테 뭘 물으려고 했는데... 뭐였더라? 에이, 생각 안 나는 거 보면 별거 아닌가 보네.’

“허벅지나 손바닥에 써보면서 외우면 외우기가 쉬워요. 다시 한 번 아!”

“아!”

“두 번째 스펠링은 베!”

“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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