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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수장의 허락이 나자 고아들과의 중개도 순풍에 돛을 편 듯이 순항을 하였다.
더 이상 몰래 만나지 않게 되자 그들의 대장이 바로 찾아왔다.
씻지 않아서 꼬질꼬질 하지만, 꽤나 꽃미남인 대장을 보며 몽블랑은 상당히 놀랐다.
“여자가 대장일 줄은 몰랐는데 말이야.”
“남자 거시기를 까버릴 줄만 알면 누구나 대장이 될 수 있어요. 다만, 드러내면 좋은 일이 생기지 않기에 남자로 위장 할 뿐이죠.”
더군다나 미색까지 출중하다면 말할 것도 없었다.
“난 루시아에요. 루덴이라고 불러주세요.”
“몽블랑 예거.”
“정말 간수들이 인정한 건가요?”
“조금 있다가 간수장 아커만을 봐야 하니까 마음 단단히 먹는 게 좋을 거야.”
“아, 알았어요.”
“이 직장을 놓치기 싫다면 무조건 원가에 공급하는 게 좋을 거야.”
“거, 걱정 마요. 절대 놓치고 싶은 마음은 없으니까요.”
“너도 간수장에게 기름칠도 좀 해야해. 같은 질의 물품이라도 가격이 다른 것을 찾아.”
“그건 우리의 특기에요! 다, 당신은 사람이나 잘 모아요.”
“첫 술에 배부를 순 없어. 조급함을 버려. 그럼 가봐.”
루시아는 황급히 돌아갔고, 몽블랑은 빈 지게를 들고 구역으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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몽블랑은 씻던 중 자신의 등이나 어깨를 토닥이며 감사하다고 말하는 사람들 때문에 인사하느라 진을 빼야 했다.
우아아아아아!
“우리의 호프! 동생아, 이제 왔냐!”
휘이익!
“간수들과 담판을 지었다며? 몽블랑, 최고다!”
“사제님 최고셔!”
5생활관의 모두가 일어나 박수를 치며 몽블랑을 맞이했다.
단 한잔뿐이었지만, 목구멍을 얼려버릴 정도로 시원했던 맥주는 그들에게 사막을 걷던 중 발견한 오아시스나 마찬가지였다.
눈앞의 채찍을 무시하며 맥주를 받아낸 몽블랑은 영웅이었다.
그들은 맥주를 받기 위해 얼마나 희생했을지 모를 몽블랑의 처절한 사투를 떠올리며 더욱 힘차게 박수를 쳤다.
그들은 상기 된 얼굴로 한 번 더 오늘 먹은 맥주에 대한 감상평을 떠들었다.
몽블랑은 서로를 향해 흥을 주체 못하는 그들을 보다가 조장들을 모아 중개에 대해 말해 주었다.
생활관은 다시 한 번 뒤집어 졌다.
그들은 자신들이 원하는 것을 소리쳤지만, 몽블랑은 그것을 전혀 받아들이지 않았다.
“나중이면 몰라도, 지금은 절대 안되요. 처음에는 무조건 배움에 관련된 물품이어야 합니다. 형님들과 아저씨들이 의지를 보여줘야, 간수들도 약간의 일탈을 눈감아 줄 거예요.”
그들은 실망했지만, 몽블랑을 타박 하진 않았다.
오히려 이렇게 많은 것을 얻어낸 몽블랑이 더 대단히 보일 뿐이었다.
“돈은 무조건 십시일반으로 모을 겁니다. 있는 분들은 없는 분들을 위해 조금 더 내세요. 노블리스 오블리주. 그거 귀족한테만 있는 말 아닙니다. 억울하시면 죗값을 덜어낸다고 생각하세요.”
몽블랑은 뒷받침을 위해 사후에 대해 간략히 설명했다.
사후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자 그들은 잠시 생각에 잠겼다.
“거참, 죽어서 좋은 곳 가려면 좋은 일 좀 해야쓰겄구마잉. 알았어야, 내가 좀 더 내면 되제.”
“좋은 곳으로 가기 위해선 신을 위해 돈을 바치는 게 아니라, 선업을 쌓아야 한다니... 카우트예님은 정말 공평한 분 같군.”
“아 잭 형님. 그걸 말이라고 하십니까? 그렇게 공평한 분이니까, 싸가지 없는 고 신 새끼들의 다구리에 밀려난 거 아니겠습니까?”
“놀랜드 너 이새끼! 니가 먼저 말하면 어떻게 해! 나도 그럴거라고 생각했는디!”
한바탕 웃음이 터졌다.
그곳에 껴서 눈물 나도록 웃은 몽블랑은 조장들을 둘러보았다.
“놀랜드 형, 그리고 여러분. 소문 좀 퍼트려주세요. 배움에 열망이 있는 분들도 찾아 올 수 있게요.”
“...걱정마! 내가 입 터는 거 하나는 자신 있다!”
그들은 자신들의 친구, 지인들에게도 이 희망이란 축복을 나눠주고 싶었다.
그간은 답이 나오질 않아서 근질거리는 입을 겨우 참고 있었을 뿐이었다.
몽블랑은 굳은 얼굴로 고개를 끄덕이는 그들을 보며 조금 미안해했다.
자신의 욕심 때문에 이들을 이용하기 때문이었다.
지형지물을 파악하고 탈출로를 조사하기 위해선 활동 영역을 넓혀야 할 필요성이 있었고, 그러려면 수많은 사람과 부대껴야 했다.
자신이 본 것, 그리고 그들이 무의식중에 말하는 것 모두가 몽블랑에게는 귀중한 정보였다.
그래서 정체를 밝힌 것이지만, 사제라는 것 하나만으론 부족하여 중개업을 하려는 것이었다.
‘더 많은 사람들을 만나고 모아야해. 이왕이면 채석장 죄수 노예 전부를!’
그들이 좋아해주고 있다지만, 그래도 양심의 가책이 목구멍에 걸려 있었다.
‘미안 할수록, 더 잘해주면 되는 거야. 나만 잘 살자고 하는 짓이 아니잖아?’
몽블랑은 콕콕 찔리는 양심을 애써 무시하며, 작게 웃어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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햇빛이 대지를 비추기 시작하면 카우쉬카는 깨어나기 시작한다.
허름하지만, 질긴 작업복을 입은 평민남자들은 비척비척 채석장으로 향한다.
채석장의 대리석이 마를 때까지 직업을 잃어버릴 염려가 없기에, 인부들의 발걸음은 가벼웠다.
새벽녘인데도 부인과 자식들의 입맞춤을 받은 인부들의 얼굴엔 함지박한 미소가 걸려 있었다.
톰 역시 그런 인부들 중 한명이었다.
“쯧쯧, 오늘도 저렇게 몰려 있구만.”
점심 보따리를 들고 있는 톰은 채석장 입구에서 제발 한번만 가족의 얼굴을 보게 해 달라고, 이 음식이라도 전해달라고 입구의 병사들을 조르며 애원하고 있는 많은 사람들을 보며 혀를 찼다.
어떤 이들은 출근하는 평민들이나 아이들을 붙잡고 제발 이것 좀 건네 달라고 애원했지만, 모두 애써 무시했다.
“들고 갔다가 걸리면 바로 잘리는데, 누가 하겠어?”
“양심 없는 사람들 같으니.”
죄수와 노예들의 가족에게 매일 시달림을 받은 인부들은 짜증마저 내고 있었다.
톰은 채석장으로 들어가기 위한 줄에 섰다.
입구를 틀어막은 병사들은 인부들의 짐을 검사하고 있었다.
오늘은 좀 꼼꼼하다고 생각한 톰은 잠시 점심 보따리를 만지작거렸다.
“수고하십니다.”
평소처럼 보따리를 풀 때까지만 해도 아무렇지 않았던 톰은 병사가 빵을 쪼개기 위해 양손을 가져가는 순간 헛숨을 들이마실 수밖에 없었다.
“...어이 톰, 이거 뭐냐?”
큼지막한 빵 속에는 시거 5개가 들어 있었다.
“그, 그건 점심때 피려고... 헛!”
“그럼 이건?”
기름종이로 싸진 하얀 가루는 분명 반입금지품목인 소금이었다.
보자기를 만지작거리던 병사는 그대로 찢어버렸고, 그 안에선 여자 나체가 그려진 손바닥 만 한 양피지 한 장이 들어 있었다.
심장이 내려앉은 톰은 어찌 할 바를 모르고 안절부절 못했다.
“톰 스미스, 넌 오늘부로 해고다. 집으로 돌아가도록.”
“...켄토 중급간수님을 불러 주십시오! 그분께서”
“입구 담당 켄토 중급간수는 어제부로 187구역 담당으로 이동됐다. 치도곤을 내기 전에 꺼져!”
병사가 잡고 있는 창대가 흔들리자 새파랗게 질린 톰은 주춤 거리며 물러섰다.
“이, 이건 거짓말이야... 대체 왜 5촌 매형이 악랄죄수들이 있는 곳으로...?”
187구역은 가만히 서서 열만 세어도 채찍을 맞는 곳이었다.
현실을 부정하는 톰의 옆으로 큼직한 보따리를 둘러 멘 12세가량의 소년이 병사 앞에 섰다.
“안녕하세요. 듀런 병사님.”
“얌마, 이렇게 늦게 오면 어떻게 해? 니 가족들 다 들어갔어.”
“에헤헤. 이것 좀 구하느라고요. 아, 간수장님이 허락한 품목이에요.”
소년은 아커만의 인장이 새겨진 패를 내밀었다.
“어디보자, 기초공용어서적 5권이군. 아직까진 이상 없군. 맡기고 들어가. 검수하고 나서 주마. 한, 이틀 걸릴 거다.”
“네! 아, 그리고 이건 서점 누나 베시 누나가 전해주래요.”
“그, 그래?”
입이 찢어지며 편지를 받아든 듀런은 얼른 들어가라며 손을 저었고, 소년은 쪼르르 안으로 들어갔다.
톰은 그 광경을 황망히 쳐다보았다.
잠시 후, 그런 톰의 옆으로 또 한명의 사람이 멍한 얼굴로 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