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기적의 사제-6화 (6/18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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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수가 오면 다시 일을 시작해야 하기에 몽블랑은 놀랜드가 만류하자마자 바로 손을 때었었다.

마지막 남은 주먹밥을 입에 가져가던 몽블랑은 입을 크게 벌리고 있는 조원들을 보며 아차 했다.

그때, 놀랜드가 나서며 몽블랑의 사정에 대해 급히 설명했다.

“맞아요. 저는 그냥 몰락한 신의 사제일 뿐이에요. 이런데 팔려온 것을 보면 모르겠어요?”

“카우트예라면 67구역 외각에 있는 사제 한명 있는 작은 신전을 말하는 거구만. 브, 블랑이 자네가 거기 사제였나?”

“...튠 아저씨도 아시네요?”

“오래전 죽은 처가 그 구역 사람이었어. 결혼하려고 무던히 드나들었지. 그런데 카우트예 신전은 세는 아예 없지만, 그래도 그 구역 사람들에게 인망이 있는 것으로 아는데...”

“인망이 돈이 되진 않더라고요.”

돈이 사람을 어떻게 만드는지를 모르는 사람은 이곳에 없었다.

씁쓸히 웃던 조원들은 서로를 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우리는 무조건 입을 다물겠네. 같은 처지의 동지 아닌가.”

“고마워요. 아저씨들.”

몽블랑은 단 3일인데도 이렇게 마음을 써주는 그들이 고마웠다.

그래서 더욱 부담스러웠다.

간수가 오지 않는다고해도 조원들은 계속 쉬지 않았다.

평소 점심시간보다 3배가량 쉬었을 때, 조원들은 움직이기 시작했다.

이미 그 전부터 움직이는 사람들도 있었다.

체놈은 1시간정도 지나고 나서야 불콰한 얼굴로 돌아왔다.

하늘에 황혼이 만들어 질 기미가 보일 때, 작업종료를 알리는 네 번의 호각소리가 울려 퍼졌다.

놀랐던 몽블랑은 눈치껏 놀랜드를 따라 지게를 벗어놓곤 체놈의 막사 앞에 정렬한 사람들 사이로 끼어들었다.

“다들 알다시피 오늘 저녁엔 간식이 주어질 예정이다. 그러니 모두 씻고, 숙소에서 대기하고 있도록. 숙소 바깥을 돌아다니는 놈이 있으면 제 1 숙소에는 간식이 없을 거다. 특히, 놀랜드. 또 돌아다녀라. 응?”

사람들은 웃음을 터트렸다.

“아, 아니 그게 언제 적 얘긴데 그러십니까.”

“닥쳐 새끼야. 안 온 사람 없지? 모두 숙소로 출발!”

죄수들과 노예들은 마치 군인들 마냥 오와 열을 지켰다.

사람들의 얼굴엔 간식에 대한 들뜬 마음이 그대로 드러났다.

“2주마다 한번씩 이런 행사가 있나 봐요?”

“고작 잼 바른 빵일 뿐이지만, 우리 같은 이들에겐 술 보다 더 달콤해. 술은 애초에 미련을 버렸어.”

몽블랑은 간수들이 생각보다 죄수와 노예를 더 잘 다룬다는 것을 깨닫곤 일이 점점 더 어려워져가는 것 같다고 생각했다.

“빨리 나와! 뒷사람 기다리는 거 안보여? 이러다 골드타임 놓치면 니들이 책임 질 거야?”

“최대한 빨리 씻고 있으니까, 재촉 좀 하지 마! 누군 안 먹고 싶은지 알아?”

제 1 숙소 옆 우물가에는 길게 늘어진 6개의 줄이 있었다.

한 번에 두세 명씩 함께 씻었다.

모두 남자만 있어서 그런지, 속옷까지 거리낌 없이 벗었다.

이름이 수놓아진 옷과 속옷은 잡일담당의 죄수가 수거해 갔다.

물을 끼얹어 몸을 북북 문지른 몽블랑은 챙겨온 옷을 입고 숙소로 들어갔다.

숙소 침상에는 특이하게도 큰 접시가 있었다.

“오늘은 여기서 간식과 저녁을 함께 먹는 거예요?”

“그렇지! 오늘 저녁은 과일도 줄 거야!”

과일과 잼 바른 빵 때문인지, 생활관은 꽤나 들떠 있었다.

험악한 얼굴의 덩치 큰 죄수도 예외는 아니었다.

몽블랑은 조원 중 게스가 없는 것이 의아했지만, 아직 씻고 있는가 보다라고 생각했다.

“제스퍼 아저씨. 갑자기 든 생각인데 여기서 폭동이 일어난 적은 없는 건가요?”

“폭동? 듣기로는 10년 전에 한번 일어났다고 했어. 그때, 반수 이상이 죽었다고 했지. 5년 전 아커만이 간수장으로 오면서 그런 기미는 보이지 않았다는 걸로 아는데...야, 놀랜드. 내 말이 맞냐?”

“맞아요. 내가 알기로는 아커만이 오자마자 이렇게 군대식으로 바뀌었데요. 한 조에 죄수와 노예를 섞어 서로를 감시하게 시킨 것도 아커만 머리에서 나 온 거죠. 아, 4년 전에 한번 있다고는 했다.”

몽블랑은 눈을 빛냈다.

“일어났었어요? 왜요?”

“누군 땡볕에서 일하는데 누군 천막에서 쉬고 있으니까 배알이 꼴린 거지. 한 백 명이 들고 일어났다는데 금세 진압됐데. 상급 간수 10명이 투입되니까 폭풍처럼 스러졌다 더구만. 채찍 맞고 일하는 놈들 중 반수 이상이 4년 전 걔들일걸?”

“상급간수가 그렇게 세요?”

“상급뿐만 아니라 1년차 이하 빼고는 모두 일당백이야. 카우쉬카에서 악명 높은 블랙 스컬의 조직원이라도 간수들 앞에서 어깨를 펴지 못하는 이유가 그 때문이야.”

들을수록 한숨만 나오는 이야기였다.

몽블랑은 마음을 확실히 정할 수 있었다.

“자자, 우울한 남자 이야기는 그만 두고, 제가 한번 혓바닥을 풀어 보겠습니다. 저녁 나오려면 시간 좀 남았으니 알차게 보내”

“지랄, 또 여자 가슴 빠는 이야기나 하겠지. 니 레파토리 한 바퀴 돈 거 모르지? 눈만 감으면 니 목소리가 들려, 새끼야. 또 네 꿈꾸기 싫으니까, 차라리 막내의 건설적인 이야기를 듣겠다.”

몽블랑은 타깃이 자신에게로 돌아오자 눈을 껌뻑였다.

놀랜드를 타박한 잭슨은 몽블랑에게 바짝 붙어 귓속말을 했다.

“그래도 사제니까, 좋은 말은 알고 있을 거 아니야. 아무 거라도 좋으니까, 저놈 입만 다물게 해줘. 오늘은 좋은 꿈을 꾸고 싶어.”

“사제라... 그러죠 뭐. 안그래도 가슴이 답답했는데 잘 됐네요.”

탈출에 대한 몇 가지 시뮬레이션이 본격적으로 생각해보지도 못하고 박살나버렸다.

몽블랑은 들을수록 암울해지는 간수들의 정체 때문에 움츠려드는 어깨를 잠시나마 피고 싶었다.

“놀랜드 형, 그리고 아저씨들. 정말로 하늘이 우리의 운명을 정한다고 생각하세요?”

너무 뜬금없어서 인지 놀랜드와 조원들은 멍해졌다.

“...음, 정하지 않았을까?”

“전혀요. 하늘은, 즉 신은 우리의 운명을 정하지 않아요. 아니, 못한다고 해야겠죠. 왜 인줄 아세요? 신들이 게을러서예요.”

사제가 신을 욕하고 있자 놀랜드와 조원들의 눈은 동그래졌다.

“형, 잘 생각해봐요. 신은 전지전능이라 생각만하면 맛난 음식이건, 미녀건 만들 수 있잖아요. 형이라면 부지런해지겠어요?”

“아니, 뒤룩뒤룩 돼지가 되겠지... 푸핫, 그거 말 된다? 씨발, 존나게 부러운데? 그럼 사제들은 뭐야?”

“누군가에게 받들어지는 거, 죽이지 않아요? 하지만 자기가 하기는 귀찮고, 또 움직이자니 명색이 신인데 폼이 살지 않잖아요. 그런데 음마? 나를 부르짖으며 눈물 흘리는 애들이 있네?”

“...푸하하하하하핫!”

“크하아하핫! 그거 걸작이다!”

놀랜드와 조원들은 배를 잡고 굴렀다.

주위에서 풋 하는 작은 실소가 들려오자 몽블랑은 조금 당황했지만, 이야기를 계속 이어갔다.

“그래도 신으로서 인간들 관리는 해야 하는 데 귀찮잖아요. 그래서 그들은 니들 맘대로 해라며 그냥 모든 가능성을 열어 두는 거예요. 어디를 어떻게 걷느냐는 하늘이 아니라 형과 아저씨가 정하는 거죠.”

튠의 눈은 퉁방울만 해졌다.

“우, 우리가 정한단 말이냐? 이 빌어먹을 운명을?”

“튠 아저씨는 소매치기가 되고 싶어서 됐어요?”

“당연히 아니지. 먹고 살려고 보니까 그렇게 된 거지!”

“만약에 아저씨가 시골로 내려가 농사를 지었다면 어떻게 됐을까요? 몸을 단련해서 병사로 지원했다면요? 그 빠른 손을 이용해서 지갑이 아니라 카드를 훔쳤다면요?”

어느새 웃고 있는 사람은 없었다.

놀랜드와 조원들을 제외하고도 많은 이들이 몽블랑을 바라보고 있었다.

“아저씨가 출소해서 그 독수리 같은 눈과 손을 이용해 청과상을 운용해 봐요. 어떻게 될 것 같아요?”

범죄자란 타이틀이 낙인처럼 따라붙는 그에게는 꿈과 같은 이야기라 튠은 몽롱한 눈으로 천장을 바라봤다.

“누구보다 더 좋은 야채를 확보해서 손님을 모으겠지. 그럼 때 돈은 아니더라도 뒤탈 없는 돈을 벌 테고...”

“놀랜드 형은 현란한 입담으로 이야기꾼이 될 수도 있죠.”

몽블랑은 같은 조원인 놀랜드, 잭슨, 제스퍼에게도 그들로서는 꿈같은 미래를 생각하게 하였다.

손만 뻗으면 닿을 수 있지만, 잡을 수 없기에 꿈처럼 달콤한 미래는 집중하고 있던 제 1숙소 5생활관의 사람들의 엉덩이를 들썩이게 하였다.

“나, 나도 손 털고 정상적으로 돈을 벌 수 있겠나? 나는 튠 형과 같은 소매치기네!”

“...오~ 튠 아저씨, 경쟁자 등장이요.”

“뭣이? 청과상은 안돼! 딴 거 알아봐!”

“형님, 쪼잔하게 그러지 맙시다. 같은 처지 아니오.”

“나, 나는 남의 집 벽을 넘다 들어왔네!”

한명이 입을 열자 주위 모든 이들의 입이 열렸다.

몽블랑은 당황했지만, 입을 다물기엔 늦었는지라 맞장구를 쳐주었고, 그들은 손만 뻗으면 잡을 수 있는 미래에 취해가기 시작했다.

“니미 누군 벗어나고 싶지 않아서 안 벗어나는 줄 아나! 지랄하지 말고 아가리 닥쳐라잉!”

몸은 말랐지만, 팔뚝에 문신이 있는 사람이 소리치자 5생활관에 얼음물이 끼얹어졌다.

*****

똑똑똑.

간수실에 있는 자신의 책상에 앉아 서류를 정리하고 있던 체놈은 고개를 들어 다른 간수들을 보았다.

다른 간수들은 모두 자신과 같이 서류에 열중할 뿐, 대답을 할 생각을 하지 않고 있었다.

입술을 이죽거린 체놈은 들어오라고 소리쳤다.

문이 열리며 들어온 자는 쥐상의 어떤 사내와 게스였다.

“니들이 무슨 일로 온 거냐? 아, 어이 코첸! 니 구역의”

“아닙니다. 간수님 전체에 할 말이 있어서 왔습니다.”

간수들은 고개를 들어 쥐상의 사내를 바라봤다.

“...허튼 소리면 아작을 내버린다? 해봐.”

“헤헤, 제가 오늘 아주 재밌는 것을 목격했는데 말입니다. 저희 조원에 드미트리라고 있잖습니까.”

간수들의 미간이 찌푸려졌다.

드미트리는 그들로서도 요주의 감시대상이었기 때문이었다.

“그가 오늘 작업을 하다가 튀긴 돌 때문에 배에 큰 상처를 입었습니다. 그때, 놀랜드 놈이 와서 호들갑 떨더니 드미트리를 데리고 갔죠. 그런데 말입니다. 그가 돌아오니 어떻게 된 줄 아십니까?”

“빨리 말해, 새끼야. 확!”

“헤헤헤. 놀랍게도 배의 상처가 반쯤 아물어 있었습니다. 20분도 되지 않는 짧은 시간 내에 말입니다.”

“...어떤 새끼가 포션이라도 꿍쳐 왔겠지. 아님, 보르텡 영감탱이가 팔았던가! 그게 뭐!”

“그게 아닙니다! 이놈 조에 사제가 있습니다! 몽블랑이란 놈입니다!”

“...뭐?”

간수들은 순간 얼음이 되어 게스를 바라봤고, 게스는 어두운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 뿐만 아닙니다. 그 사제 놈이 돌을 나르면서 신성마법을 쓴 사람을 본 게 한 두 명이 아닙니다. 여태까지는 그냥 잘 못 본거니 했는데... 드미트리 때문에 제가 이놈을 추궁해서 확실히 알 수가 있었습니다.”

“엄청난 사고를 밀고 하면 감형을 해준다고 해서... 제가 출소하려면 10년 정도 남아서 말입니다...”

게스는 자신의 죄목과 자신이 몽블랑이 사제임을 밀고하는 이유를 밝혔다.

사제라곤 단 한명 뿐인 교단, 아마 게스는 몽블랑이 거대 교단의 사제였다면 절대 밀고할 생각을 하지 않았을 것이다.

체놈은 그런 게스의 마음을 알아차릴 수 있었다.

‘암튼 범죄자 새끼들이란...’

“알았어, 일단 나가서 대기하고 있어봐.”

“헤헤헤, 그럼 저희의 감형은...”

“해 줄 테니까 나가보라고, 새끼야!”

눈치 없이 말을 꺼냈던 망구스는 찔끔 자라목이 되어 얼굴이 밝아진 게스와 함께 나갔고, 체놈은 저와 같이 심각한 얼굴의 간수들을 바라봤다.

“나 그놈들 데리고 간수장님께 갔다 온다.”

“어떻게 하시려고 그러시지 말입니다?”

“어떻게 하긴, 몽블랑 그 새끼를 엮어야지. 비싼 사제를 공짜로, 평생토록 쓸 수 있는 기회잖아. 흐흐흐, 이러면 차기 간수장은...”

“되시면 저희 잊지 말지 말입니다. 망구스 제 죄수지 말입니다.”

“얌마, 내가 너희를 잊겠냐? 기다려, 금방 뛰어갔다 오마.”

“예, 수고하십시오!”

간수실을 뛰쳐나가는 체놈의 입가엔 함지박한 미소가 걸려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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