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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적의 사제-4화 (4/18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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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쩌겠어, 일해야지.”

이러다간 큰일 나겠다고 생각한 몽블랑은 놀랜드의 팔뚝을 잡아 부축하면서 체놈의 천막으로 향했다.

“일단 물 좀 마시겠습니다. 간수님.”

“...어, 그래. 마셔.”

나무통에 가득찬 물은 흙먼지가 뿌옇게 서려 있었다.

흙먼지를 걷어낸 몽블랑은 한 컵 떠서 놀랜드에게 넘겼다.

겨우겨우 물을 넘기는 놀랜드를 보며 갈등하던 몽블랑은 이를 악물며 체놈의 앞에 섰다.

“간수님. 아무래도 우리 팀이”

“야, 오늘 뭐 상한 거라도 먹었냐? 아주 줄줄 싸더라?”

“...예. 저희 것만 좀 상했나 봅니다. 그런데 아시네요?”

전투의지가 활활 타올랐던 몽블랑의 표정은 금세 환해졌다.

“그 정도 눈치도 없으면 이 짓, 계속 못하지. 아무튼 진짜 아파보이니까 적당히 해. 그러다 내 앞에서 쓰러지면 안 봐줄 거다. 죽기 싫으면 처신 잘 하란 말이야.”

“하하, 옙! 역시 멋지십니다, 체놈 간수장님!”

“커흠흠, 아부 말고 어서 가서 일이나 해!”

“오늘 신세 좀 지겠습니다!”

몽블랑은 허리를 넙죽 숙이고는 놀랜드와 함께 팀이 있는 곳으로 향했다.

“험험, 너도 나만큼은 못해도 강단이 있구나.”

“앞으로 계속 볼 사람인데 얼굴 붉혀서 뭐해요.”

“자, 잘 생각했어. 그래도 다시는 대들려고 하지마.”

겁을 먹은 듯한 모습에 몽블랑은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모든 간수들이 저런가요?”

“아니야. 체놈이 맡은 여기 구역이 3년 동안 무사고여서 그래. 그래서인지 간수장에게 예쁨 받아. 차기 간수장 후보라는 소문이 있어. 경쟁자가 5명 정도야.”

“작업량도 중요하지만, 사고도 없어야 된 다는 건가요?”

“그렇지. 담당 간수가 체놈이어서 얼마나 다행인지 몰라.”

“정말 다행이네요. 아, 아저씨. 괜찮으세요?”

“으으으, 죽겠다. 여기 돌이다.”

“크윽! 또 싼다고 해도 물은 계속 드세요. 그럼 갔다 올게요.”

“블랑아 같이”

무거워지는 어깨에 놀랜드는 멀어지는 몽블랑을 따라잡으려다 순간 눈앞이 껌껌해 지는 것을 느꼈다.

놀랜드가 마지막으로 본 것은 지게를 벗어던지며 달려오는 몽블랑의 모습이었다.

“놀랜드! 임마, 허풍쟁이! 일어나봐!”

몽블랑은 바위에서 뛰어내린 조원들을 만류했다.

“충격을 주지 말고 일단 그늘로 데려가세요! 잭슨 아저씨는 저와 함께 가요!”

몽블랑은 급히 체놈의 천막을 향해 뛰었다.

깜짝 놀라 일어섰던 체놈은 옆을 지나쳐가는 몽블랑의 팔을 잡았다.

“어떻게 된 일이냐!”

몽블랑은 신경질 고개를 돌렸다.

“탈수에 일사병인 것 같습니다! 정신을 잃었습니다!”

“빨리 깨울 테니 조금만 참아 주십시오!”

“...으으음. 알았다. 10분 안에 깨어나지 못하면 치도곤을 칠 것이다. 뭣들 해! 일 해! 구경났어!”

체놈의 말이 너무 화가나 자신도 모르게 주먹을 들었던 몽블랑은 팔을 잡아당기며 고개를 젓는 잭슨의 행동에 참을 수밖에 없었다.

잭슨과 함께 물통을 들고 달린 몽블랑은 챙겨온 컵에 물을 담아 놀랜드의 얼굴에 뿌렸다.

촤악! 촤악! 촤악!

“어푸, 어푸! 그만, 그만...”

몽블랑은 안도의 한숨을 내뱉으며 주저앉았고, 그건 다른 조원들도 마찬가지였다.

상체를 일으킨 놀랜드는 어리둥절해 하다가 한숨을 탁 내뱉었다.

“그냥 뒈지는 줄 알았네. 어후, 끔찍해.”

멍해 있던 조원들은 곧 웃음을 터트렸다.

“크큭, 그래도 모두 맛은 좋았지? 블랑아, 내일도 부탁한다.”

“아니, 오늘 이 꼴을 보고도 고기가 목구멍으로 넘어가요?”

“죽어도 고기는 먹고 죽으련다. 야들야들한 살점이... 캬아~”

“어휴, 돌이나 올려주세요. 놀랜드 형은 좀 쉬시고요. 아직 5분 정도 남았어요.”

“아니야, 혼자가면 또 쓰러질 것 같아. 겨우 이틀 된 막내한테 신세 지네. 내가 꼭 갚을게. 윽!”

깜짝 놀라서 본 놀랜드의 오른 무릎은 피투성이였다.

몽블랑은 손을 들어 자신을 말리는 놀랜드의 행동에 멈춰 섰다.

“일단 가자. 체놈이 째려보고 있어.”

몽블랑은 이를 악물며 부축하듯 놀랜드의 팔을 잡았다.

절뚝거리는 것 때문에 적재 창고까지 가는데 시간이 지체되었지만, 체놈이나 다른 천막의 간수는 아무 말 하지 않았다.

돌을 내려놓은 몽블랑은 다시 걸으려는 놀랜드를 멈춰 세웠다.

몽블랑은 무릎을 꿇고 앉아 놀랜드의 무릎에 손을 가져갔다.

“신성한 치료.”

놀랜드는 무릎에 스며드는 하얀 빛에 눈을 부릅떴다.

몽블랑은 놀랜드의 상처가 다 낫지 않자 혀를 차며 한 번 더 신성한 치료를 시전 했다.

그제야 놀랜드의 무릎은 피범벅인 것을 제외하면 말끔해 졌다.

“아, 이런 바보. 신성한 축복.”

몽블랑의 손에 어린 빛은 놀랜드의 전신을 파고들었다.

“형, 몸은 좀 어때요? 괜찮아졌어요?”

“어, 네? 아, 아니요?”

“음, 그래요... 이건 아닌가 보네. 그런데 왜 존댓말이에요? 어서 가죠. 늦으면 혼날 거예요.”

“어, 네, 네네.”

몽블랑은 계속 존댓말 하는 놀랜드의 모습이 이상해 고개를 갸웃 거렸다.

*****

“네 침상에서 죽은 듯이 쉬어. 오늘도 또 촐랑거리며 돌아다니다가 걸리면 가만 두지 않을 거야.”

놀랜드는 조원들과 웃음꽃을 피우는 몽블랑을 바라봤다.

“어이, 놀랜드. 씹냐?”

“아, 아닙니다. 걱정 마십시오. 체놈 간수님.”

“네놈은 걱정을 안 할 수가 없잖아.”

“억!”

놀랜드는 둔기로 후려 맞은 듯한 머리를 감싸 쥐며 자라목을 하였고, 체놈은 손을 털며 간수 숙소로 향했다.

놀랜드는 머리를 문지르며 몽블랑에게 향했다.

“몽블랑님, 아, 아니 블랑아. 잠깐, 나 좀 보자.”

몽블랑은 놀랜드를 뒤따라 간수 숙소가 정면에 보이는 지라 사람들이 잘 찾지 않는 숙소의 왼편의 벽으로 향했다.

몽블랑은 불러 놓고는 말을 하지 않고 끙끙 거리는 놀랜드의 모습에 의아해했다.

놀랜드는 찌푸려지는 몽블랑의 미간에 헛숨을 들이마셨다.

“여, 여태껏 몰라보아서 죄송합니다, 사제님! 부, 부디 목숨만 살려 주십시오!”

“...예?”

몽블랑은 눈을 껌뻑이며 의아해 했다.

“아니, 형. 제가 형을 왜 죽여요. 어서 일어나요.”

“아이고, 사제님! 부디 용서해 주십시오!”

엎드려 바들바들 떨고 있는 놀랜드의 모습은 몽블랑으로 하여금 착각을 깨게 만들었다.

‘사제가 엄청 대우 받는 거야? 그럼 내가 여태까지 좆뺑이 쳤던 것은?’

뭔가 허탈해지는 기분이 들던 가운데 해치의 말이 머릿속을 스쳐지나갔다.

‘몰락한 신! 염병할, 재수 없는 놈은 뒤로 넘어져도 코가 깨진다더니!’

“푸후, 형. 저는 형이 생각하는 그런 사제가 아니에요. 몰락한 신을 모시는 사제 따위가 얼마나 무섭겠어요.”

“...몰락한 신이라굽쇼?”

“카우트예 라는 분이세요. 아마, 사제라곤 저 혼자뿐일 거예요.”

동료라도 있었으면, 어떻게든 구해주려고 하는 게 사람의 인정이었다.

“저, 정말이지요?”

“아마도요. 그런데 묻고 싶은 게 있는데, 사제가 그렇게 무서워요?”

“아이고, 말이라고 하냐...요? 그놈들, 아니 그분들한테 잘 못 찍히면 일생이 더러워져...요.”

“말 편히 해요. 난 괜찮으니까.”

“그, 그럴까? 고, 고마워. 넌 뭔가 다른 것 같네.”

가슴을 쓸어내린 놀랜드 사제가 무서운 이유에 대해 설명해 갔다.

사제가 무서운 이유는 다른 게 아니었다.

귀족을 등에 업었다는 것. 하지만, 귀족은 멀리있고, 사제는 아주 가까이 있었다.

몽블랑은 더 참혹히 타락한 사제들의 모습에 혀를 찰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말이야, 너 사제라는 거 간수들한테 들키지 마라. 네가 정말 마음에 들어서 해주는 경고야.”

“에? 왜요?”

“넌 돈에 팔려 왔어.”

몽블랑은 무슨 말을 하려는지 알 수 있을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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