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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하하하하! 그렇지, 해치는 사채업자일 뿐이지! 그렇게 우기더니... 쌤통이다, 이놈아.”
얼굴이 벌개 진 놀랜드는 몽블랑을 죽일 듯이 노려봤다.
“니가 어떻게 해치를 알아? 직접 봤어?”
“...내가 해치 때문에 여기 왔습니다. 돈을 빌렸거든요.”
사람들 얼굴에 안쓰러워하는 마음이 나타나자 몽블랑은 씁쓸해 졌다.
점호 30분 전!
몽블랑은 경악하며 목소리가 뚫고 들어온 숙소 문을 바라봤다.
“에고, 그런 사정이 있는지 몰랐네. 나머지 이야기는 조금 있다가 하고, 이것부터 차자. 내일 부턴 네가 차.”
양 발목을 차가운 금속이 감싸왔다.
“도망치지 못하게 하려고 이러는 거야. 이러는 편이 감시하기 편하잖아.”
“...너무 하네요.”
족쇄 바깥에 달린 쇠사슬은 양 옆의 사람과 연결 되어 있었다.
“일하는데 채우지 않은 것만 해도 어디야. 일어나있어. 곧 간수들이 점호 돌 거야.”
“발목 감싸게 천 좀 준비해 줄 수 있어요?”
“우리 숙소를 청소하는 얘한테 말해 놓을게.”
“고마워요. 놀랜드 형.”
“나랑 비슷한 처지니까 해주는 거야. 아니면 어림도 없었어.”
“하핫, 그런 줄은 몰랐죠. 미안합니다.”
삐친 듯 고개를 돌리는 놀랜드를 보며 몽블랑은 웃어버렸다.
점호 25분 전!
*****
날이 밝아지자 일어나 일을 시작해야 했던 몽블랑은 하늘이 노래지는 기분이 이런건가를 느낄 수 있었다.
“그러니까 내가 그때 말이지”
놀랜드의 입은 자는 시간 외에는 결코 쉬는 법이 없었다.
몽블랑은 그의 별명이 허풍쟁이가 아닐까할 정도로 그의 입에서 나오는 말은 대부분이 쓸모없는 자신의 영웅담이었다.
마음 같아선 입을 틀어막고 싶었지만, 그 안에는 몇 가지의 정보도 들어 있어서 가만두고 있었다.
삐익-! 삐익-!
의아해 하던 몽블랑은 곧 수많은 누더기 옷을 입은 소년들이 두 개의 통을 낑낑 거리며 들고 오는 것을 보곤 지게를 내팽겨 쳤다.
놀랜드는 그늘가로 온 몽블랑의 어깨를 두드렸다.
“나야 이 짓에 이골이 났다지만, 몽블랑은 의외인 걸?”
“채찍 맞지 않으려고 이 악물고 버텼죠.”
조금이라도 쉬려고 하면 체놈이 독사눈을 뜨며 일어났다.
“장하네. 2주일 정도만 흐르면 익숙해 질 거야. 일정한 속도로 가는 게 요령이니까, 천천히 해. 이 짓도 적응 되면 할 만해. 솔직히 빚 다 털고 나면 여기만큼 대우해 주는 곳도 없어.”
“그건 두고 봐야 알죠. 아, 나는 세 개 주라.”
“한 사람 당 두 개씩이에요.”
“얌마, 내 몸을 봐라. 너 내가 얼마짜린지 알아?”
“그래도 안 되요.”
“남는 거 뻔히 아는데 좀스럽게 이러지 말자.”
순간 눈이 동그랗게 떠진 소년은 조원들을 눈치를 보며 우물쭈물 하다가 몽블랑의 손에 세 개의 주먹밥을 올려놓았다.
소년은 사방에서 내밀어진 여섯 개의 손에 울상을 지으며 한 개씩 더 올리는 수밖에 없었다.
“소문 퍼트리지 마세요. 아저씨들.”
“내일은 너희가 먹는 것도 넣어서 가져와. 고기면 다 된다.”
얼굴이 일그러진 소년은 다급히 다른 무리로 향했고, 놀랜드를 위시한 4명은 퉁방울만한 눈으로 몽블랑을 바라봤다.
“옷에 비해 때깔이 너무 좋아요.”
“허어~ 깜찍한 놈 들이구만. 그런데 쟤들이 먹는다는 게 뭐야?”
“원래 짬 만드는 애들이 제일 잘 먹는 법이에요. 겪어봐서 알아요.”
“하하핫! 오늘은 우리 블랑이 때문에 포식하네! 잘 먹겠다. 막내야!”
“얼른 먹고 한잠 때려야지. 500번만 세면 간수 와.”
허겁지겁 점심을 우겨넣은 그들은 그대로 누워버렸다.
곧 채석장 곳곳에서 드르렁 소리가 울려 퍼졌다.
몽블랑은 주인이 없는 천막을 가만히 바라보았다.
“형, 원래 이렇게 일해요? 제 예상과는 좀 다르네요.”
“블랑아, 너는 다행으로 알아야 해. 영도 근처에 있는 철광산에서 일하다가 병신이 되어 온 놈이 있는데, 여기가 천국이라고 하더라. 광산은 햇빛에 구애 받지 않는다나?”
“그거 끔찍한 말이네요. 대리석인 걸 다행으로 알아야 하나?”
“그렇지. 벽돌로 쓰이는 돌이었으면, 새벽 같이 일어나서 저녁 늦게까지 일해야 됐을 거야.”
“만약 그랬으면 도망쳤을 거예요.”
몽블랑은 눈을 가늘게 뜨며 채석장 전체를 훑어봤다.
“꾸, 꿈에도 그런 생각 마. 탈출하려면 간수장이 버틴 입구를 지나쳐야 하는데, 걸리면 채찍 50대가 기본이야. 어떤 놈은 맞다가 죽었어.”
놀랜드는 생각하기도 끔찍하다는 듯이 몸을 떨었다.
“정말 탈출에 성공한 사람은 없어요?”
“없지. 탈출하다 걸리면 그 숙소에 있는 놈들은 모두 저기의 큰 돌 옮기는 작업장으로 가. 그러니 친한 사이라고 해도 서로를 감시 할 수밖에 없어.”
개미처럼 작은 사람들이 큰 돌을 옮기는 모습이 놀랜드의 손끝에 걸려 있었다.
쫘악 하는 소리가 환청처럼 들려오는 것 같자 몽블랑은 몸을 떨었다.
“아, 간수 오네요. 아저씨들, 일어나세요.”
*****
그날도 무사히 넘어갔다고 할 수 있었다.
몽블랑은 겨우 이틀째지만 채석장 일에 익숙해져가는 자신을 발견할 수 있었다.
여전히 근력을 올려주는 신성한 힘이 아니면 몇 발 내딛기도 힘들지만, 그래도 나름 적응해 가고 있었던 것이다.
놀랜드와 조원들은 그런 몽블랑이 놀라우면서도 대견하기도 했다.
투덜거리거나, 울어 분란을 만들지 않으니 놀랜드와 조원들은 하나라도 더 챙겨주려고 하였다.
몽블랑은 그런 조원들의 호의가 고마우면서도 한편으론 부담되기도 했다.
‘여기서 5년간 썩을 수 없어.’
돈 벌기 위해 채석장을 택했더라면 5년이고, 10년이고 만족할 때까지 일을 하며 결혼도 하고, 아이도 낳아 평범한 가정을 꾸렸을 것이다.
하지만 5년 간 자유를 구속 당 한 체 살아야 한다는 것은 몽블랑을 미치게 하였다.
군대에 끌려온 신병마냥 바깥으로 나가고 싶은 욕구가 온 몸을 가득 채우고 있었다.
몽블랑은 창머리 끝에 걸린 3개의 달을 보며 이를 악물었다.
‘탈출을 하던가, 아니면...’
몽블랑의 눈빛은 생각과 함께 깊은 곳으로 가라앉았다.
일의 시작은 빠르면 빠르다고 할 수 있지만, 몽블랑의 예상보다는 늦다고 할 수 있었다.
최소한 동이 트고도 1~2시간이 지나고 나서야 일을 시키니 말이다.
또한, 천막에서 눈에 불을 키고 있는 간수들 대부분은 결코 나태하지 않았다.
그들은 죄수와 노예를 감시하면서도 자기 관리를 소홀치 않았다.
몽블랑은 많은 준비가 필요하겠다고 생각하였다.
여름이 다가오는지 안 그래도 아침나절부터 뜨거운 햇빛이 절정에 이르는 오후가 되자 사람들은 더 힘들어 했다.
몽블랑은 정수리를 태울 듯한 햇빛에 욕지거리를 하며 터질 것 같은 다리에 힘을 주었다.
“아주 땀까지 증발시킬 기세네.”
“그래도 잘 하고 있어. 보기보단 통뼌 가 봐?”
“그러게요. 속은 좀 괜찮아요?”
놀랜드의 얼굴은 핼쓱해져 있었다.
점심을 먹고 난 이후에 변화된 모습이라 몽블랑은 이를 갈았다.
“싹수 노란 꼬맹이 새끼, 어떻게 먹는 거 가지고 복수를 하냐?”
“됐어, 몇 년 만에 고기를 먹어서 그런 걸 거야. 위험을 감수하면서 간수들 먹을 것도 가져왔는데 고마워해야지. 그런데 블랑이는 멀쩡한 것 같네?”
“저도 속이 좀 더부룩해요. 이 새끼도 원체 고기를 처먹지 못했나 봐요.”
“응?”
“아, 아니에요. 그런데 물은 언제든지 먹을 수 있다고 했죠?”
“그렇지, 간수 눈치가 보여서 잘 못 마실 뿐이지만... 2년째 일하고 있지만, 영 어려워.”
“어차피 지가 떠오는 것도 아니잖아요. 이거 놓고 오는 길에 물 좀 드세요.”
“끄응, 물을 먹으면 나을까? 오히려 더 죽죽 싸지 않을까?”
“그래도 수분을 보충하는 게 좋아요. 안 그래도 휘청거리는데 그러다 정말 쓰러져요.”
몽블랑의 표정이 단호해서인지, 놀랜드는 멍하니 고개를 끄덕였다.
“어흡! 빠, 빨리 가자!”
놀랜드는 괄약근에 힘을 주며 급히 걸었고, 몽블랑은 더부룩한 배를 문지르며 뒤 따랐다.
옮기는 이에 의해 돌이 들리자마자 놀랜드는 황급히 근처로 달려가 바지를 내렸다.
몽블랑은 멀찍이 떨어져 코를 잡았다.
“저러다 똥구멍 헐겠네.”
“으으, 가자.”
“괜찮겠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