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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적의 사제-1화 (1/18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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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프롤로그

3평 남짓한 작고 허름한 방, 방의 반절은 이불이 깔려져 있고, 나머지 반절은 사각의 메탈릭한 박스가 놓여 있었다.

몸이 꽤 다부진 한 청년은 박스를 보며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었다.

“오늘 레이드만 뛰면 이 지긋지긋한 놈을 신제품 고글형으로 바꿀 수 있는 거지?”

가난한 사정에 의해 어쩔 수 없이 20년 전의 모델에다 안의 부품도 여기저기서 짜깁기하였다.

“메이드 차이나 보다 못한 똥컴아, 너도 이제 내일이면 안녕이다.”

청년은 메탈릭한 박스, 가상현실접속기의 해치를 열고 들어갔다.

청년은 해치를 닫으며 시트에 붙어 있는 아이실드가 달린 헬기 조종사나 쓸법한 두꺼운 헤드셋에 머리를 집어넣었다.

이것이 20년 전까지만 해도 과학은 여기까지 진보했다고 떠들썩하게 만들었던 가상현실접속기의 초기 모델, 고글과 기기의 일체형이었다.

청년은 고글을 쓰고 오른쪽 헤드셋에 달린 빨간 버튼을 눌렀다.

웽웽웽웽웽!

가상현실접속기는 금방이라도 터질듯이 시끄럽게 울어댔다.

“오늘은 유난히 시끄럽고 흔들리네. 너도 마지막이란 걸 아는 거냐. 안 봐준다, 짜식아. 넌 내일 무조건 아웃이야.”

벌 수천마리가 귀에서 우는 듯한 시끄러운 소리에 인상을 찌푸린 청년은 급히 왼쪽 헤드셋의 푸른 버튼을 눌렀다.

딸칵 소리가 나며 청년의 눈앞에 원의 파동이 생겨나며 정신이 몽롱해졌다.

곧이어 청년은 무언가에 빨려 들어가는 느낌을 받았고, 곧 익숙한 화면이 나타났다.

-(주) 일루전, 꿈과 낭만이 넘치는 라르세리아 대륙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익숙하다 못해 지겹기까지 한 광활한 대지와 하늘이 펼쳐졌다.

“꿈과 낭만은 개뿔. 돈과 아이템이지.”

로그인을 하고 캐릭터를 고르자 청년은 다시 한 번 어딘가로 빨려가는 느낌을 받았다.

퍼퍼펑!

“응? 아아악!”

이질적인 소리에 귀를 기울이는 순간 온 몸이 찢겨져 나가는 고통이 온 몸을 덮쳐왔다.

거기다 눈앞에는 WARNING 라는 붉은 글자가 위험하게 울어대고 있었다.

“가, 강제접속해제! 강제접속해제!”

튕겨지는 듯한 느낌과 함께 가상의 경계를 반쯤 벗어나 현실로 돌아오던 청년은 몽롱한 정신 속에 주위를 둘러보다 경악하였다.

덮었던 해치의 반이 날아가 있고, 그 너머의 방은 불타고 있었다.

온 몸은 개미 수백만 마리가 물어뜯듯이 끔찍한 고통을 토해내고 있었다.

청년은 약에 취한 듯 흐느적거리는 정신과 몸을 억지로 움직이며 고글을 벗고 나가려 했다.

그 순간 또 한 번 폭발음과 함께 온 몸이 찢겨가는 고통이 찾아오며 그는 정신을 잃었다.

‘시발... 이렇게 죽긴 싫은데...’

*****

이곳은 오늘 화재가 일어난 잠실의 원룸촌입니다. 오늘 오전 9시경, 여기 보이는 원룸건물의 1층에서 갑작스런 폭발음과 함께 불이 솟구쳤다고 합니다. 신고를 받고 출동한 구조대원들은 화재 현장에서 한 남성을 구출하였지만, 안타깝게도 사망했다고 합니다. 경찰은 화재의 원인을 구형 가상현실접속기에 있다고 보고 수사에 들어갔다고 합니다. 올해 23세의 청년 강모씨는.....

“네! 안타까운 사고가 아닐 수 없습니다. 다음 소식은...”

*****

1. 장기냐, 탄광이냐. 그것이 문제로다.

라르세리아 대륙, 메조른 왕국의 중부, 카쉬모프 자작령의 제 2 도시 카우쉬카의 성벽 외각, 작은 동산에 우뚝 솟은 나무에는 한 남성이 거꾸로 매달려 있었다.

형님, 이 새끼 다시 숨을 쉬는 데요!

뭐야! 그럼 깨워 새끼야!

피에 젖지만 않았더라도 꽤나 멋졌을 금발과 하얀 피부, 비쩍 마른 몸의 20대 초반의 젊은 청년은 몽롱한 정신 속을 뚫고 들어오는 소음들에 기분이 상해갔다.

‘뭐가 이렇게 시끄러워...’

촤아악!

“어푸! 어푸!”

허우적거리며 눈을 뜬 청년은 금세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하늘과 땅이 위치를 뒤바꾸고 있었고, 묘하게 머리로 피가 쏠리는 기분이었다.

“아니, 내가 거꾸로 매달린... 누, 누구세요?”

청년은 눈앞에 다가온 얍삽한 인상의 장년인을 보고 어리둥절해 했다.

“아이고, 사이비 사제님. 죽은 척 하면 그냥 포기 하고 가실 줄 알았어요?”

“아니, 당신은 누구신데요. 그것보다 저 좀 내려 주실래요?”

온통 이해 할 수 없는 상황의 연속이었다.

그러나 눈앞의 일그러지는 장년인의 얼굴을 보면 딱 한 가지는 알 수 있었다.

지금 이 상황이 결코 자신에게 이롭지 않다는 것을 말이다.

“야들아, 우리 소중한 연체자님께서 기억을 잃으신 것 같단다. 기억 돌아오시게 좀 도와드려라.”

“옛! 형님!”

큰 덩치와 작은 덩치가 몽둥이를 끌며 다가왔다.

“아, 아니 잠깐! 기, 기억 났!”

뻐어억!

“쿠헤에엑!”

*****

강연우, 아니 몽블랑은 무릎을 꿇고 앉아 있었다.

온 몸이 깨져 갈 듯한 아픔 속에서 그는 생각에 잠겨 있었다.

‘난 분명히 죽었는...데? 여긴 어디야? 저 사람들은 누구고? 아니, 딱 봐도 사체업자라는 것은 알겠는데... 대체 이 상황은 뭐지? 설마 돌발 퀘스튼가? 난 죽은 게 아니라 게임 속? 그건 환상? 근데 몸은 왜 이렇게 힘이 없어?’

몽블랑 예거, 분명 처음 들어보는 이름이었다.

“어이, 연체자님, 지금 내 말을 무시하는 거?”

“아, 아닙니다!”

“그럼 여기다 사인해.”

신체 양도 계약서

연체자 몽블랑 예거는 ______ 페니를 갚을 능력이 되지 않기에

머리털이 곤두서는 위험이 온 몸을 내달렸다.

‘씨발! 뭔 퀘스트가 이렇게 살벌해!’

“자, 잠깐! 우리말로 하시죠! 갚겠습니다! 갚을게요!”

“다른 새끼들 돈 갚아서 돈 한 푼 없는 악질 연체자님께서 무슨 수로?”

“저 사제입니다! 사제가 설마 돈 못 벌겠습니까?”

“푸훗! 사이비도 사제야?”

“사이비는 무슨! 사람 그렇게 보는 게 아닙니다! 보십시오! 신성한 치료!”

몽블랑의 손에 하얀 빛이 서리자 해치와 헤이먼, 칵트는 깜짝 놀라 물러섰다.

해치는 눈을 가늘게 뜨며 희미하게 맺힌 빛을 바라보았다.

“...신이 몰락했어도 정말 사제는 사젠가 보네. 하지만, 악질 연체자님, 고작 그 따위 능력으로 어쩌려고? 까진 무릎이나 치료하려고? 그래서야 이자나 갚을 수 있겠어?”

“뭐야? 랭킹 1728921위의 사제를 무시하는 거야? 그깟 돈이 얼만데? 얼마면 돼!”

“오호, 이자까지 합해서 1백만 페니입니다. 고객님.”

“...쳇! 겨우 1백만 페니였어? 줄게! 인벤토리 오픈!”

몽블랑은 눈을 껌벅였다.

“인벤토리 오픈? 열려라, 인벤토리? 상태창?”

그 외에도 여러 단어를 말해본 몽블랑은 눈을 데구르르 굴리다 어색히 웃었다.

“뭔가 잠깐 오류가 있는 것 같은데, 저에게 잠시 시간을 주시겠습니까? 제가 무조건 갚을 테니, 시간만 조금 주시면...”

“오호라, 그러시겠다?”

활짝 웃는 미소가 어쩜 이리 무섭게 느껴지는지 몰랐다.

해치가 물러서고 헤이먼과 칵트가 몽둥이를 손바닥에 두드리며 다가오자 몽블랑은 급히 머리를 굴렸다.

“자, 잠깐! 신전에 팔 것이 있습니다!”

“그 헛간에 팔 것이 남아 있다고?”

“저희 신전의 보물입니다! 여태껏 숨겨 놓았습니다!”

“어디다 숨겼는데?”

“...그걸 알려줄 것 같습니까?”

“당연히 못 알려주지. 애초에 그딴 건 없으니까. 이번에도 튈려는 것 같은데, 수작부리지마.”

으르렁 거리던 해치는 활짝 웃으며 신체 양도 계약서를 내밀었다.

“사인할래, 묻힐래?”

“...사인할게요.”

‘시발, 로그아웃만 해봐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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