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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임 속 바이킹이 되었다-202화 (202/205)

▣ 202화

라그나르의 말에 칼리나는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으로 되물었다.

“진심이야? 이대로 쉬지도 않고 바로 투스카니로 간다고? 지금 당장?”

“투스카니가 100km가 조금 넘으니 카노사가 함락당한 소식이 전해지기 전에 빠르게 행군하면 먼저 도착할 수 있을 거야.”

“하지만 공성을 하면 시일이 끌릴 수밖에 없을 텐데? 거기에 카노사처럼 병력들이 우리에게 우호적인 것도 아니잖아.”

“그래서 여기 인질이 있잖아. 자세한 건 내가 알아서 할 테니 칼리나 너는 일단….”

“어떻게 점령할 건지부터 얘기해.”

“지금 중요한 건 그런 게 아니라….”

“아니! 이게 나한테는 제일 중요해!”

입을 꼭 다문 채 자신을 노려보는 칼리나를 보며 라그나르는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보아하니 자신이 제대로 얘기해주기 전까지는 꼼짝도 안 할 기세였다.

“물론 피아 식별이 안 되는 새벽에 저 녀석은 반쯤 죽여서 기절시켜놓은 뒤 성문으로 갈 거야. 그럼 이쪽이 누군지 들키지는 않겠지?”

칼리나는 더 해보라는 표정이었기에 라그나르는 생각을 정리하며 말을 이었다.

“그리고 적들에게 얘기하는 거지. 레이디 칼리나가 병력을 끌고 카노사를 공격했고 패퇴해서 간신히 영주님만 구출해서 도망 왔다. 영주님의 상태가 안 좋으니 지금 당장 문을 열어라… 뭐 이런 식으로.”

“설마 그게 먹힐 거라고 생각하는 거야? 너무 안일한 것 같은데?”

“안 먹힐 이유는 또 뭐야? 애초에 실제로 영주를 데려가는 데다 사태가 사태인 만큼 저들도 확인할 수밖에 없을걸?”

솔직히 어설픈 작전이라고 생각했지만 칼리나는 일단 말을 끝까지 들어보기로 했다.

“거기에 실제로 반쯤 죽여놓을 거니까 거짓말은 아니지. 애초에 카노사가 습격당한 것도 진실이고 영주가, 발리에르 가문 장남의 상태가 안 좋은 것도 사실이잖아?”

“그래서?”

“당연히 장남의 상태를 확인하려면 성문을 열겠지? 그 틈을 타서 내가 적들을 죽이고 성문을 활짝 열 거야. 그럼 그때 숨겨뒀던 병력들이 뛰쳐나와 성을 점령하는 거지.”

짜잔~ 문제 해결이라는 듯한 얼굴을 하고 있는 라그나르를 향해 칼리나는 머리가 아픈 듯 관자놀이를 감싸 쥐었다.

“아니… 외성은 그렇다 쳐. 내성은 어떻게 점령하려고?”

“그러니까 단숨에 들이쳐야지.”

“아무리 생각해도 자살 희망자가 할 법한 생각 같은데… 안 돼. 너무 위험해.”

“하이리스크 하이리턴이라는 말 들어봤어? 필요하다면 위험을 감수해야지.”

“아니. 당신은 자신 목숨이 소중한 줄 알아야 될 것 같아. 난 허가 못 해.”

칼리나는 절대 안 된다는 듯 고개를 흔들었고 라그나르는 곤란하다는 표정으로 그녀를 설득했다. 사실 여기서 이러고 있을 시간이 없었지만 어쨌든 고용주는 그녀였기에 어떻게든 납득시켜야 했다.

“영주라면 때로는 수하에게 위험을 강요해야 할 때도 있는 법이야.”

“난 당신을 그런 식으로 잃어버리고 싶지 않아. 분명 다른 방법이 있을 거야.”

“흐음. 벌써 내게 반한 건가? 곤란한데?”

“그, 그런 뜻이 아니잖아!”

얼굴이 새빨개져서 소리치는 그녀의 모습에 키득거리며 웃음을 터뜨린 라그나르는 그녀의 머리를 쓱쓱 쓰다듬으며 이야기했다.

“걱정 마. 내가 투자한 게 아까워서라도 살아 돌아올 테니.”

이전과는 다르게 얌전히 라그나르의 손길을 받아들이던 칼리나는 아까보다는 한층 누그러진 어조로 물었다.

“설사 당신 말대로 어찌저찌 투스카니를 점령한다고 쳐도 그게 얼마나 가겠어? 당장 주변의 하급 귀족들이 백작을 구출하겠다고 계속 반란을 일으킬걸?”

“물론 이렇게만 하면 투스카니에서 말라 죽겠지. 그걸 방지하기 위해서 네가 해줘야 될 게 있어.”

눈을 동그랗게 뜨며 내가? 라고 되묻는 칼리나를 향해 라그나르는 고개를 끄덕이며 설명을 시작했다.

“병력을 일부 놔두고 갈 테니 내가 떠나고 하루 안에 카노사를 안정시켜. 지금은 영주만 조졌지만 네가 알아서 감옥에 처넣을 놈은 처넣고 죽일 놈들은 죽여. 중요한 건 하루 안에 카노사를 안정시키는 거야. 이해했어?”

“대강은. 그다음은?”

“그리고 이전에 얘기했던 것처럼 이틀 안에 주변에 있는 하위 귀족들을 전부 접수해. 그래야 혹시 모를 불상사가 일어났을 때 막아낼 수 있을 거야.”

“알겠어. 그게 끝이야?”

“아니, 몇 가지 더 있는데 일단 네 이름으로 제노바에 사신을 보내 도와달라고 해. 굳이 도와주진 않더라도 최소한 중립은 지켜달라고 해야 돼.”

“제노바에?”

제노바에 별로 좋은 기억이 없어서인지 칼리나는 탐탁지 않은 얼굴로 되물었고 라그나르는 설명을 덧붙였다.

“자신을 보호해준 대가를 섭섭지 않게 지불한다고 하면 못해도 중립은 지킬 거야. 괜히 내버려 뒀다가 밀라노에 빌붙으면 그땐 진짜 골치 아파질 거야.”

“그것도 그렇네. 근데 밀라노는 어쩔 생각이야?”

“그쪽이랑은 영지전을 벌여야겠지. 그건 어쩔 수 없어. 애초에 밀라노같이 큰 성을 날로 먹는 건 불가능하니까.”

“근데 그렇다고 해도 우리가 싸우면 지지 않을까? 아무리 당신이 대단하다고 해도 병력의 숫자와 질을 뛰어넘을 수는 없잖아.”

“그러니 당분간은 밀라노를 막아줄 방파제가 필요해. 그래서 말인데….”

라그나르가 칼리나의 귀에 조용히 속삭이자 칼리나는 눈살을 찌푸리면서도 고개를 끄덕였다.

“좋아. 당신 말대로 할게. 확실히 그렇게 하면 당분간은 시간을 벌 수 있겠네.”

그 이외에도 라그나르는 그녀가 주의해야 할 것들을 얘기해줬고, 그걸 조용히 경청하던 칼리나는 그의 말이 끝나자 감탄한 듯한 표정으로 얘기했다.

“그나저나 당신 정말 야만인이야? 내 입으로 이런 말 하기는 그렇지만 당신이 나보다 귀족 같은 거 알아?”

“문명화된 야만인이라는 거지.”

그 말에 칼리나는 푸흐흣 하고 웃음을 터트리더니 라그나르를 향해 할 말이 있다며 손짓했다.

그러자 라그나르가 의아한 표정으로 무릎을 굽힌 채 귀를 가져다 댔고 칼리나는 부지불식간에 그의 볼에 입술을 가져다 댔다.

갑작스레 느껴지는 부드러운 감촉에 라그나르가 멍청한 얼굴로 칼리나를 쳐다보자 그녀는 자신의 부끄러움을 숨기기 위해 짐짓 화난 듯한 얼굴로 소리쳤다.

“반드시 살아 돌아와야 돼. 멋대로 죽는 건 절대 용서 못 해.”

그 모습이 제법 귀엽다고 생각한 라그나르는 과장된 몸짓으로 대답했다.

“여부가 있겠습니까. 마이 레이디.”

* * *

라그나르는 본인이 얘기했던 대로 카노사에서 아침 식사를 마친 뒤 곧바로 투스카니를 향해 떠났다.

물론 카노사의 영주이자 발리에르 가문의 장남이었던 남자도 데려갔는데 그는 정신이 들자마자 묶여있는데도 불구하고 라그나르를 향해서 고래고래 소리쳤다.

“이, 이 비천한 용병 놈 같으니라고. 감히 내가 누군지나 알고 이런 일을 저지르는 것이냐?”

“그 대화는 아까도 했던 것 같은데… 대화에 발전이 없는 친구구만.”

“지금 당장 날 풀지 못할까? 그리하면 내 이번 일은 잊고 지나가 주마.”

“사람 말을 들을 생각이 없어 보이는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든 라그나르는 부관을 향해 턱짓했고 그는 능숙하게 밧줄을 가져가서 그에게 재갈을 물렸다.

지금이야 힘이 넘쳐나니 시끄럽게 굴겠지만 몇 대 쥐어패 주면 조용해지겠지. 그래도 입을 나불거리면? 그때는 수면제를 먹이면 그만이다.

사실 애초에 죽일 생각이긴 했지만, 죽은 지 며칠 된 시체를 들고 가는 것보단 이제 막 죽은 따끈따끈한 시체가 적들을 속이기에 좀 더 낫지 않겠는가?

물론 이 고귀하신 귀족 나으리는 이런 자신의 생각도 모르고 매 식사 때마다 지랄을 해댔기에 물이 담긴 말 여물통에다 그 고귀한 머리통을 처박아주었다. 그렇게 친히 물의 무서움을 보여주자 말 많던 놈도 마침내 쥐 죽은 듯 입을 다물었다.

역시 물은 언제나 옳다고 생각한 라그나르는 행군 속도를 높였다. 도로의 상태도 나쁘지 않았고 무장한 용병단을 상대로 시비를 걸어오는 간 큰 도적놈들도 없었기에 예정대로 사흘 만에 100km를 주파할 수 있었다.

그렇게 투스카니 인근의 숲에 캠프를 차린 라그나르는 저녁을 먹으며 용병단원들에게 간단히 작전의 개요를 설명했다.

“좋아. 이곳에서 저녁을 먹고 푹 쉰 뒤 새벽 4시부터 일을 진행하겠다.”

원래 해가 뜨기 전이 가장 어둡다고 하던가? 그 말인즉슨 적을 속이기도 편하고 적들도 가장 방심하고 있을 시간대라는 점이었다.

거기에 다소 늦게 도착한 만큼 충분히 쉴 시간을 부여하다 보니 4시가 된 것이다. 비록 별다른 일 없이 계속 걷기만 했다지만 그것 자체만으로도 힘 빠지는 일 아니던가.

그렇게 새벽 3시 30분까지 불침번을 제외하고 휴식을 취한 라그나르는 늘어지게 하품을 하며 주섬주섬 갑옷을 주워입었다.

투스카니만 점령하고 나면 며칠 동안은 아무것도 안 하고 잠만 잘 거라고 다짐한 라그나르는 뒷머리를 긁으며 밖으로 나왔다.

서늘한 밤공기가 남아있던 잠을 몰아냈고 라그나르는 한기에 가볍게 몸을 떨며 이미 준비를 마친 부관을 향해 물었다.

“우리 귀족 나으리께선 아직 자고 있나?”

“예. 저녁 식사에 수면제를 타서 그런지 죽은 듯이 자고 있습니다.”

“음식을 버리거나 한 건 아니겠지?”

“예. 목울대가 넘어가며 음식을 삼키는 걸 확인했습니다.”

칼리나가 직접 죽이고 싶어 했던 것을 떠올린 라그나르는 수면제를 먹일까 하다 그냥 처리하기로 했다. 이놈이 갑자기 정신을 차려서 고래고래 소리치면 곤란하지 않은가.

“데려가서 최대한 상처 없이 깔끔하게 보내주게.”

라그나르의 명령에 부관은 병력들을 몇 끌고 숲속으로 들어갔고 5분 정도 뒤에 축 늘어진 시체를 끌고 왔다. 확실히 장남이 죽은 걸 확인한 라그나르는 말 위에 오르며 물었다.

“적의 시야가 닿지 않는 곳에서 성문까지 오면 얼마나 걸릴 것 같나?”

“아까 간단하게 정찰해봤는데 넉넉잡고 10분 정도는 걸릴 것 같습니다.”

“10분이라… 애매하구만. 알겠네. 성문을 열고 버티고 있을 테니 최대한 빨리 병력을 끌고 와주게.”

그렇게 병력들과 함께 캠프를 떠난 라그나르는 중간에 무리에서 떨어져나와 슬슬 굳어가는 장남의 시체를 등에 고정시킨 채 투스카니를 향해 달렸다.

그렇게 5분 정도 내달리자 성문 앞에 도착했고 라그나르는 어느새 자신을 발견하고 모여든 수비병들을 향해 소리쳤다.

“허억… 헉. 어서 문을 여시오!”

“네놈은 누구냐!? 정체를 밝혀라!”

“이런 젠장. 지금 카노사 영애가 병력을 끌고 카노사를 공격해 함락시켰소. 본인은 지금 영주님을 모시고 왔는데 오다가 화살에 맞아 영주님의 상태가 안 좋으니 서둘러 문을 열고 의사를 데려와 주시오.”

그 말에 성벽 위에서 잠시 소란이 일더니 저들은 확인을 위해서 이쪽으로 횃불을 던졌다.

당연히 이런 확인 절차를 거칠 것을 알고 있었기에 라그나르는 횃불을 높이 들어 자신은 물론이고 자신의 등 뒤에 매달려 있는 장남의 모습을 비춰주었다.

“이런 젠장! 정말이었잖아!?”

장남의 얼굴을 아는 이가 있던 건지 그 이상의 확인은 없었고 저들은 곧장 성문을 열어주었다.

만일 저놈들이 제대로 훈련받았다면 나를 물러나게 한 뒤 확인을 위해 두세 명만 내려와야 할 테지만 내 등 뒤에 있는 게 발리에르 가문의 장남이었으니 모든 절차를 무시한 거겠지.

안타깝지만 어쩔 수 없다. 딱 봐도 상태가 안 좋아 보이는데 만약 이러다 장남이 잘못되기라도 하면 자신들도 덤터기를 뒤집어쓸 테니까.

그렇게 자신의 예상대로 성문이 활짝 열리는 모습을 보며 라그나르는 히죽 미소 지었다.

“투스카니도 이제 끝이군.”

저들은 저게 돌이키지 못할 실수였다는 걸 알고 있을까? 몰라도 상관없다. 어차피 이제 곧 알게 될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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