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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임 속 바이킹이 되었다-198화 (198/205)

▣ 198화

“헤헤, 나으리들.”

경비대들에게 끌려가던 라그나르는 최대한 비굴한 표정으로 실실 웃으면서 앞서가던 경비대들에게 말을 걸었다.

물론 그 와중에도 소시민 특유의 어리숙함과 겁먹은 표정을 짓는 건 덤이었다.

“뭐지?”

“그… 제가 깊이 반성하고 있으니 혹시 한 번만 은혜를 베풀어 주실 수는 없으십니까?”

“안 돼. 나도 평상시라면 그럴 테지만 자네가 건드린 인물이 문제야.”

“예? 누구를 말씀하시는 건지….”

두 눈을 동그랗게 뜨고 되묻는 야만인 용병의 모습에 경비대장은 알 만하다는 듯 혀를 차며 물었다.

“자네 혹시 외지인인가?”

“예? 예. 그렇습니다. 바로 어제 도착했습죠.”

“쯧쯧, 분명 제노바에 들어오면서 문제 일으키지 말라고 듣지 않았나?”

경비대장의 말에 라그나르는 억울하다는 얼굴로 항변했다.

“그건 그렇습니다만 그 여성… 음… 그러니까 그 아가씨가 마음에 들어서 제 마음을 표시한 것뿐입니다. 그게 죄는 아니잖습니까?”

“미안하지만 여기선 죄라네. 그 아가씨가 이래 봬도 귀족의 영애거든.”

“허억, 귀, 귀족이란 말씀이십니까?”

“그래, 이 멍청한 친구야.”

“아이고. 나으리. 제발 저 좀 구해주십시오.”

경비대장이 곤란하다는 표정을 짓자 라그나르는 재빨리 허리춤에 있는 돈주머니를 꺼내서 경비대장에게 바쳤다.

“여, 여기 제가 가진 걸 전부 다 드리겠습니다. 부디 그 아가씨에게 말 좀 잘해주실 수 없으십니까?”

그 말에 힐끗 돈주머니를 가늠해본 경비대장은 고민에 빠졌다. 사실 이 사건은 타지에서 온 용병이 술에 취해 술집에 있던 카노사 영애에게 추파를 던진 것에 불과하다.

말하는 꼴을 보니 카노사 영애가 귀족인지도 몰랐던 것 같고 이대로 끌고 가서 조사해봤자 새로운 사실이 나올 것 같지도 않았다.

기껏해야 감옥에 하루 이틀 가두고 풀어주는 정도겠지. 하지만 지금 여기서 적당한 훈방조치를 하고 저 사내를 풀어준다면?

“흠, 뇌물은 곤란하네만.”

어디 가서 뇌물 주고 풀려줬다는 얘기를 하면 곤란하다는 말을 슬쩍 돌려서 이야기하자 야만인 용병은 눈치 빠르게 고개를 숙이며 대꾸했다.

“뇌물이라니요. 그저 미천한 용병에게 현실을 가르쳐주신 경비대원 나으리들에게 드리는 제 소소한 성의입니다.”

“자네가 그렇게까지 말한다면 그 성의를 받아들이도록 하겠네.”

경비대장은 못 이기는 척 돈주머니를 받아들었고 그 안에 담겨있는 돈을 확인하고는 입이 헤벌쭉 벌어졌다. 하지만 이내 표정을 지우며 근엄한 목소리로 얘기했다.

“크흠, 생각해보니 자네도 술에 취하기도 했고 카노사 영애가 처벌을 주장하신 것도 아니고 별다른 범죄행위가 일어난 것도 아니니 훈방조치면 충분할 것 같네.”

“아이고. 감사합니다. 나으리. 복 받으실 겁니다.”

“그래, 아무튼, 늦었으니 서둘러 숙소로 돌아가게. 어이, 이 친구한테 횃불 하나 줘.”

경비대장의 명령에 경비대원들은 신속하게 묶었던 밧줄을 푼 뒤 횃불을 건네주었고 라그나르는 그들이 사라질 때까지 굽신거리며 연기를 계속했다.

그렇게 어두운 길가에 홀로 덩그러니 남게 되자 라그나르는 오기 전에 예약해두었던 여관으로 발걸음을 옮기며 생각에 잠겼다.

“흐음, 경비대가 오는 속도를 보면 제노바에서도 제법 관심을 가지고 있는 모양이네.”

자신이 난동을 부린 지 채 5분도 되지 않아서 경비대가 출몰했다. 근처를 순찰하고 있지 않은 이상 불가능한 속도였다.

하지만 자신은 이미 이곳 경비대의 순찰 루트를 파악해 두고, 일부러 순찰을 도는 경비대들이 최대한 멀리 떨어졌을 때 칼리나에게 추파를 던졌다.

그런데도 이렇게 빨리 왔다는 건 제노바에서 그녀를 예의주시하고 있다는 걸 의미했다. 아마 그녀가 머무는 숙소에도 제노바에서 보낸 스파이가 잠복하고 있겠지.

“천상 몰래 빼돌려야겠네.”

생각을 하는 사이 여관에 도착했고 라그나르는 자신의 방으로 올라가 방문을 잠그고 짚단으로 만든 침대에 몸을 눕혔다.

사실 짚단으로 만든 침대는 침대라고 부르기에도 민망한 수준이었지만 노숙에 비하면 훨씬 아늑했기에 라그나르는 곧바로 잠에 빠져들었다.

물론 가벼운 선잠에 불과했기에 곧장 새벽에 눈을 뜬 라그나르는 곧바로 행동을 개시했다. 미리 잠금장치를 해제해 둔 창문을 조심스럽게 연 뒤 미리 봐두었던 곳을 향해 거리낌 없이 뛰어내렸다.

땅이 패이며 약간의 소음이 일었지만, 주위 사람들이 깰 정도는 아니었기에 라그나르는 조심스럽게 칼리나가 있는 여관으로 향했다.

이 야심한 밤에 불도 켜지 않고 돌아다니는 건 불법이었기에 들키면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경비대로 끌려갈 터였다.

하지만 이미 경비대원들의 순찰 루트를 머릿속에 넣어둔 데다 칼리나가 머무는 여관이 그리 먼 곳은 아니었기에 들킬 위험은 없었다.

그렇게 칼리나가 머무는 여관에 도착한 라그나르는 담벼락에 몸을 기댄 뒤 그녀가 머무는 방을 바라보았다. 다행히 자신이 보낸 쪽지를 읽었는지 창문에는 파란색 천이 매달려있었다.

“두 번 일할 필요는 없어서 다행이네.”

민첩하게 여관의 담벽을 넘은 라그나르는 곧바로 벽에 달라붙어 원숭이처럼 벽을 타고 올라가기 시작했다. 사실 3층 이상이라면 힘들 테지만 다행히 그녀가 머무는 방은 2층이었다.

그렇게 창문에 대롱대롱 매달린 채 조심스럽게 창문을 두들기자 창문이 열렸고 라그나르는 누가 볼 새라 곧장 안으로 들어갔다.

사실 밤에 돌아다니는 건 어떻게 변명할 여지가 있다고 쳐도, 벽을 타는 걸 들키면 현행범으로 감옥에 직행이었기 때문이다.

애초에 한눈에 봐도 의도가 불순하지 않은가. 이 야심한 밤에 벽을 타는 이유가 도둑질 이외에 다른 게 있을 리도 없고.

“초대해줘서 고맙소. 카노사 영애.”

라그나르의 인사에 칼리나는 긴장한 얼굴로 눈앞의 사내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녀는 안절부절못하며 눈동자를 이리저리 굴리더니 이내 라그나르를 향해 협박하듯 이야기했다.

“허튼짓을 하면 소리치도록 하겠어.”

“오, 편한 대로 하시길. 그보다 내가 준 편지는 읽으셨소?”

“읽었으니까 네놈이 여기에 있는 것 아니겠나? 그보다 글씨를 좀 잘 쓸 수는 없나?”

거참. 까칠한 아가씨구만. 내심 혀를 내두른 라그나르는 심드렁한 표정으로 대꾸했다.

“미안하지만 본인은 까막눈이오. 그 편지도 글을 썼다기보다는 그림을 그린 거지.”

라그나르의 말에 그녀는 이해했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글을 쓸 줄 모른다면 어쩔 수 없다. 오히려 읽을 수 있게 그려낸 것을 칭찬해줘야겠지.

“혹시 오늘 내게 추파를 던진 건 이 쪽지를 건네주기 위해서였나?”

“내 비록 글은 읽고 쓸 줄 몰라도 예의가 없는 건 아니오.”

“근데 이렇게 조심스럽게 만나야 할 이유가 있나?”

“그 질문에 답하기 전에 일단, 창문과 커튼은 닫겠소. 당연하겠지만 여기에도 감시가 붙어있을 테니까.”

아무리 방 안이라지만 감시당하지 않는다는 보장도 없었기에 라그나르는 커튼을 빈틈없이 친 뒤 호롱불에도 얇은 천을 덮어서 최대한 빛이 새어 나가지 않게 만들었다.

“행동이 꽤 조심스럽군. 이런 일을 많이 해봤나 보지?”

“직업이 직업이다 보니. 아무튼, 만나서 반갑소. 카노사 영애. 본인은 라그나르 로드브로크. 레이븐 용병단의 단장이오.”

“나는 칼리나 디 카노사. 긍지 높은 카노사 가문의 백작이다.”

“백작님치고는 신세가 굉장히 궁핍해 보이오만….”

라그나르가 히죽 웃으며 도발했지만 그녀는 태평한 얼굴로 대꾸했다.

“날 비웃으려고 찾아온 건 아닐 테고… 용건이 뭐지?”

“용병단장이 그대를 찾아온 이유가 뭐라 생각하오?”

“내게 고용되고 싶다는 건가?”

“그게 아니라면 이 비천한 야만인이 아가씨를 찾아올 이유가 어디 있겠소?”

하긴, 자신의 가문이 몰락하지만 않았다면 이런 용병과 만날 일도 없었을 것이다. 너무 당연한 소리를 했다고 생각한 칼리나는 헛기침을 한 뒤 물었다.

“본 백작이 원하는 바는 알고 있나?”

“물론이오. 잃어버린 영지를 되찾고 원수를 갚고 싶다고 했었나?”

“그리고 그 원수에는 밀라노에 있는 그 늙은이의 목도 껴있지.”

“늙은이라면 그 발데크 가문의 가주를 말하는 거요? 제법 원한이 깊은 모양이군.”

“말해 무엇 할까?”

말을 하며 칼리나는 분하다는 듯 이를 갈았고 라그나르는 어깨를 으쓱였다.

“그 전에 어떻게 된 건지부터 알려주시오. 우리의 적이 누구인지, 적들이 어떤 방법으로 아가씨의 가문을 몰락시켰는지 알아야 하니까.”

“긴 이야기가 될 텐데 상관없나?”

“밤은 길잖소. 이 기나긴 밤에 미인을 앞두고 이야기만 해야 하는 현실이 안타깝기 그지없지만.”

노골적인 성희롱에 칼리나는 기가 막혔지만 어쨌건 아쉬운 건 자신이었기에 이야기를 시작했다. 말하는 데 따로 돈이 들어가는 건 아니니까.

“파멸의 시작은 발데크 가문의 그 노망난 새끼가 내게 청혼을 하면서 시작됐어.”

“내가 귀족들의 생리에 대해 잘 아는 건 아니지만, 그래도 카노사 가문 입장에서 밀라노를 다스리는 발데크 가문과 맺어지면 이득 아니오?”

“하, 당신은 아무리 가문을 위해서라지만 70 먹은 노인네와 결혼할 수 있어?”

따지듯 묻는 칼리나의 말에 라그나르는 저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였다. 아무리 돈이 좋아도 할 수 있는 게 있고 할 수 없는 게 있는 법이다.

“음… 비유가 확실하군. 도저히 반박할 수가 없어.”

“거기에 정식 부인도 아니고 첩의 자리를 제안했는데 내가 미쳤다고 갈까? 아버지 역시 나와 같은 생각이셨기에 당연히 거절했지.”

“거기에 앙심을 품은 건가?”

“아니! 그 자식은 애초부터 우리 카노사를 탐내고 있었어. 그러니까 핑계와 명분을 위해서 이런 말도 안 되는 제안을 건넨 거야. 애초에 그딴 제안을 수락할 귀족이 어디 있겠어?”

“딴에는 그렇군.”

“다만, 본인이 직접적으로 손을 쓰면 그림이 안 좋으니 우리와 사이가 나빴던 투스카니의 발리에르 가문을 끌어들인 거야.”

라그나르는 그녀가 흥분으로 목소리가 커지는 걸 감지하고 코에 조용히 검지손가락을 올리며 소리를 낮출 것을 주문했고 그녀는 씩씩거리면서도 충실히 라그나르의 요구를 받아들였다.

“그 개자식들은 우리 가문의 상단을 약탈했어. 당연히 아버지도 보복으로 발리에르 가문의 마을을 약탈했고, 그렇게 영지전이 벌어진 거야.”

“그리고 거기에 밀라노의 영주가 개입했다는 말이군.”

“맞아. 밀라노의 병력들이 카노사의 군대를 기습하자 순식간에 무너졌고 아버지는… 아버지는 모든 책임을 지고 자살을 하셨, 아니 정확히는 자살을 당하셨지.”

제법 흔한 이야기였기에 라그나르는 자신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였다. 저 말이 사실이라면 카노사 가문은 처음부터 끝까지 공사를 당한 셈이었다.

전후 사정은 알게 됐지만 여전히 해결되지 않는 문제가 있었으니 왜 오딘께서 이 귀족 영애를 도우라는 신탁을 내렸냐는 것이었다.

애초에 자신의 눈앞에 있는 이 영애는 가슴에 걸려있는 십자가로 볼 때 카톨릭을 믿는 모양이었다.

자신이 섬기는 신인 오딘과의 연관성은 찾아보려야 찾아볼 수가 없어 보이는데 대체 왜 자신의 주신이 그런 신탁을 내렸는지 의문이다.

“내 이야기는 이게 전부야. 그래서, 우리 용병단장께서는 날 도와줄 텐가?”

“흠… 그 전에 하나만 묻겠는데 혹시 조상 중에 바이킹이 있다거나 뭐 피가 일부 섞였다는 얘기를 들은 적이 있소?”

뜬금없는 질문에 카노사 영애는 짜증스러운 표정을 지으면서도 성실하게 대꾸해주었다.

“그게 뭔 개소리야?”

“그냥 해본 소리요. 그래서 백작님께서는 나와 내 용병단이 그대를 도와준다면 그 대가로 우리에게 무엇을 줄 수 있소?”

라그나르의 물음에 칼리나는 당당한 모습으로 대답했다.

“내 미래를 주겠어. 그리고 내 곁에서 나와 함께 걸을 수 있는 영광도 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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