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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임 속 바이킹이 되었다-184화 (184/205)

▣ 184화

“전하. 웨식스가 정화교단의 성녀. 힐데가르트 고드윈에게 왕위를 양도했다고 합니다.”

수하의 보고에 필리프 2세는 두 눈을 감았다. 결국, 웨식스도 사자공의 압박에 버티지 못한 것인가?

고작 며칠도 버티지 못한 웨식스의 나약함에 분노가 차올랐지만 그를 탓할 순 없었다. 칼만 안 들었지 완전 날강도 같은 놈들이 옆에서 윽박지르면서 겁박하는데 그 누가 버텨내겠는가?

아무튼, 이로써 아일랜드와 켄트, 웨식스가 라그나르의 손아귀에 들어갔다. 그리고 이는 잉글랜드와의 외교 관계가 완전히 단절됐음을 의미했다.

물론 아직 서식스와 에식스가 남아있었지만, 그들이 신성 제국을 상대로 오래 버틸 거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심지어 그들 자신조차도.

서식스는 켄트보다 더 작은 국가였으며 에식스는 대도시인 런던을 수도로 두고 있었지만, 용담공 앞에서 그런 건 아무런 의미가 없었다.

용담공은 그보다 더 큰 요새들을 함락시킨 경험이 차고 넘쳤고 아무리 수성이 공성에 비해 유리하다고 해도 뭐 상대가 될 때나 통하는 법이었다.

어린아이가 갑옷을 껴입어봤자 어른의 발길질 한 번에 바닥에 드러누워 버둥거릴 뿐이잖은가.

결국, 에식스와 서식스의 함락은 기정사실이었기에 필리프 2세는 그 전에 어떻게든 외교 문서에 서명을 하고 싶었다.

하지만 다른 영주들, 특히 앙주와 부르고뉴의 영주가 문제였다. 그들 역시 용담공과 협약을 맺는 것에는 찬성했지만 그가 내민 제안들이 과하다 생각했는지 추가적인 협상을 해야 한다고 드러누웠다.

특히나 노르망디의 조차는 절대 안 된다고 못 박은 걸 보면 바이킹에 대한 공포가 뼛속까지 각인된 모양이었다.

그 모습에 어이가 없었지만, 그렇다고 그들을 무시한 채 조약을 맺는 건 불가능했다. 아직 왕권은 그렇게 강하지 않았고 이를 빌미로 자신이 용담공에게 굴복했다며 물고 늘어지면 곤란하지 않겠는가?

이제 겨우 잉글랜드의 그림자를 프랑스에서 지웠는데 새로운 숙적을 만들 순 없었다. 자신의 조국 프랑스가 갈 길이 한참 남았는데 시작도 전에 발목을 잡힐 순 없지 않은가.

“멍청한 놈들 같으니라고.”

속에서 열불이 났지만 모든 걸 자신의 뜻대로 하기에는 아직 지닌 힘이 미약했다. 자신에게 용담공과 같은 힘이 없음에 탄식하며 필리프 2세는 앙주와 브르고뉴 공작을 불렀다.

어차피 반대 목소리를 내는 것도 저 둘이었고 노르망디와 제일 긴 경계선을 맞댄 것도 저 둘이었기에 둘만 설득할 수 있다면 나머지 잡소리는 무시할 수 있었다.

애초에 당사자가 상관없다는데 다른 이들이 큰소리를 내는 것도 웃긴 일 아니던가.

“앙주 백작. 부르타뉴 공작. 어떻게, 짐의 제안에 대해 생각해보셨소?”

필리프의 물음에 둘은 매우 안타깝다는 얼굴로 대답했다.

“전하. 몇 번이고 말씀드렸듯 다른 건 다 인정합니다만 노르망디의 조차는 불가능합니다. 어찌 저희에게 옆집에 살인마를 두고 살라 하시는 겁니까?”

“후우… 앙주 백작. 내 그대들의 마음을 모르는 바는 아니오. 하지만 생각해보시오. 이 이후로 용담공이 조건을 바꾼다면 난 어찌할 도리가 없소. 지금 이 제안을 받아들이는 게 제일 좋은 조건이란 말이외다.”

외교 관계에서 동맹의 가치는 불변이 아니다.

맛있는 파이도 시간이 흘러 식고 곰팡이가 피면 쓰레기로 전락하듯 지금이야 용담공이 프랑스와 적대해봤자 얻을 게 없고 당장 잉글랜드와의 전투가 급하니 이 정도 선에서 협상을 하려는 것이다.

하지만 시일이 지나서 7왕국을 하나둘 점령해 나간다면 프랑스의 전략적 가치는 하락할 것이다. 그때가 되면 저들의 보급선도 어느 정도 안정될 테니 굳이 노르망디에서 퍼줄 것 없이 하노버에서 지원하는 걸로 충분할 테니까.

그때가 되면 자신들은 이전보다 더 가혹한 조건이 적힌 조약서를 받게 될 것이다. 미래가 불 보듯 뻔한데 어찌 이들은 그걸 모른단 말인가.

“전하. 정녕 노력은 하고 그렇게 말씀하시는 겁니까? 말이야 바른말이지만 사실 전하께서도 존 왕의 편에 서서 싸웠던 저희가 부담스러운 건 사실이지 않습니까?”

용담공을 이용해서 자신들을 조지려는 게 아니냐는 말에 필리프는 분노가 머리끝까지 차올랐지만, 꾹 눌러담은 뒤 차가운 목소리로 대답했다.

“빌어먹을. 그럼 내가 전권을 줄 테니 그대들이 직접 용담공과 합의하시오. 어떤 식으로 합의해 오든 기존의 조건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면 내 인정하고 도장을 찍어주겠소.”

“전하. 어찌 그런 말씀을….”

“그대들이 노르망디는 절대 안 된다고 못을 박지 않았소!? 난 능력이 안 되니 그대들이 가서 직접 해결하시오.”

말을 마친 필리프는 기분 나쁘다는 얼굴로 자리를 비웠고 남겨진 앙주 백작과 부르타뉴 공작은 서로의 얼굴만 쳐다보다 일단은 용담공을 만나보기로 했다.

자신들에게 전권을 준다 하니, 일단 만나봐서 나쁠 건 없지 않은가. 굳이 준다면 노르망디보다 아키텐을 건네주는 게 더 나을 테고.

물론 전체로 보자면 아키텐의 가치가 더 높았지만, 노르망디가 넘어가게 되면 당장 자신들에게 영향을 끼치지 않겠는가? 그것도 대부분 안 좋은 쪽으로. 그 꼴은 절대 두고 볼 수 없었다.

그렇게 마음을 다잡고 협상을 하기 위해 용담공과 만난 앙주 백작과 부르타뉴 공작이었지만 그들은 용담공이 생각보다 또라이라는 걸 깨닫는 데 그리 긴 시간이 필요하지 않았다.

“자네들은 본 공작이 우습나?”

“전하. 갑자기 그게 무슨 말씀이십니까?”

“감히 내게 역제안을 해? 그대들의 왕이 하도 애걸복걸해서 조건을 적당히 완화해줬는데 상황 파악이 안 되는 것 같군.”

“무례하오!!!”

내 말에 조금 젊어보이는 사내가 탁자를 치고 일어나며 소리쳤지만 나는 그를 노려보며 말을 이었다.

“진짜 무례한 건 지금 네놈들이 내 앞에서 핏대를 높이는 거야. 솔직히 프랑스 따위는 언제든지 쓸어버릴 수 있어. 내가 못 할 것 같나?”

“우리 프랑스는 결코 외압에 굴하지 않을 것이오. 그리고 무너지는 건 다름 아닌 용담공 당신이 될 테고.”

“글쎄… 내게 그렇게 얘기하던 놈들이 다 발할라에서 정모를 하고 있는 것 알고 있나?”

“감히 우리를 협박하는 것이오!?”

“협박? 오, 이건 진실을 얘기하는 걸세.”

“프랑스의 저력을 무시하지 마시오. 그대는 우리 프랑스가 가진 힘의 절반도 보지 못했으니.”

아직도 상황파악을 하지 못하는 걸 보니 헛웃음이 나왔다. 물론 이해를 못 할 건 아니다.

현대 시대를 살아가는 이들조차 안아키니 지구 평면설이니 뭐 이딴 것들을 믿는 이들이 많은데 중세는 오죽하겠는가.

요점은 중세에도 자신의 잣대만으로 멍청한 판단을 하는 놈들은 많았고 그건 영주라고 크게 다를 게 없다는 말이었다.

당장 예루살렘 왕국의 왕이었던 뤼지냥의 기도 굳이 안 싸워도 될 전투를, 삽질까지 해서 전투 한 번에 나라를 홀라당 말아먹지 않았던가.

“젠장. 이쯤 되니 필리프 2세가 내 손을 통해 자네들을 치워버리려는 게 아닐까 의심이 드는군.”

나는 한숨을 내쉰 뒤 인내심을 가지고 그들에게 차근차근 설명해주었다.

“프랑스가 가진 바 힘의 절반도 보지 못했다고? 그 얘기는 오히려 내가 자네들한테 해 줘야 할 것 같군. 자네들은 지금 내가 쓸 수 있는 패를 전부 다 동원했다고 생각하나?”

저들은 입을 다물었고 나는 손가락을 하나하나 접으며 말을 이었다.

“폴란드와 제노바는 아직 전쟁에 참전하지도 않았고, 칼리나 변경백과 검은 용군단은 내가 명령만 내린다면 언제든지 프랑스 남부를 침공할 거라네.”

물론 폴란드나 제노바, 그리고 검은 용군단이 이곳까지 오기에는 거리가 너무 멀었기에 배보다 배꼽이 더 커지는 꼴이었지만 중요한 건 하려면 얼마든지 할 수 있다는 점이었다.

“폴란드의 윙드후사르가 프랑스의 넓은 평야를 짓밟고, 검은 용군단이 남부에서 상륙해 모든 것을 불태우며 북상하며, 제노바가 프랑스의 해안을 틀어막으면 제법 볼만할 거야. 그렇지?”

“그걸… 그걸 다른 국가들이 두고 볼 거라고 하시오? 거기에 명분도 없지 않소!?”

“바이킹이 언제부터 명분 따위를 따지던가?”

내 말에 순식간에 분위기가 싸늘해졌고 나는 굳어있는 그들의 모습에 호탕하게 웃음을 터뜨리며 한마디 덧붙였다.

“~라고 할 뻔했구만.”

“…뭐요?”

“나도 모르게 화나서 저렇게 말할 뻔했다~ 그 말이네. 하하하하하.”

둘은 어이가 없는 얼굴이었지만 나는 개의치 않고 웃으면서 둘의 잔에 와인을 따라주었다.

“자네들이 뭘 걱정하고 있는지는 잘 알고 있네. 어쨌거나 노르망디가 내 손에 들어오면 가장 먼저 영향을 받는 건 자네들이 아닌가?”

어쨌건 새로운 이웃이 생기면 긴장하는 법이다. 위나 옆집에 사는 놈이 지랄 발광을 하며 층간 소음을 유발하는 놈일지, 아니면 친절한 이웃일지는 겪기 전에는 모르는 일 아니던가.

“믿을지 모르겠지만 솔직히 나는 노르망디 땅에는 별 관심이 없네. 자네들의 이권을 뺏을 생각도 없고 다툴 생각도 없어.”

“정말이오?”

“내 말은 결코 가볍지 않네. 그래도 못 믿겠다면 내 이름으로 각서라도 써주지.”

차마 그렇게까지는 하지 못하겠는지 결국 두 영주는 제대로 된 말도 못 꺼낸 채 방을 나서야 했다. 그리고 그다음 날 나는 협약서를 든 채 웃고 있는 필리프와 마주했다.

“라그나르 공작. 생각보다 설득하는 능력이 좋구려.”

“원래 미친개에게는 몽둥이가 약이라지 않던가. 그래도 짐승은 아니고 사람이었는지 두들겨 맞기 전에 알아서 사리더군….”

“그 몽둥이가 프랑스를 향하지 않기를 빌겠소”

“노력해보지. 아무튼, 그대는 제법 운이 좋은 것 같아. 서식스는 진작에 땅을 가져다 바쳤고 에식스와도 협상을 진행 중이었거든.”

웃으면서 얘기하는 라그나르를 보며 필리프 2세는 침을 삼켰다. 만약 자신의 예상대로 에식스와 서식스까지 넘어갔다면 자신들은 더 가혹한 협정서를 받아야 했을 테니까.

* * *

<잉글랜드 ― 웨일즈>

“지금… 지금 그걸 말이라고 하는 건가!?”

존 왕은 궁정백이 가져온 편지를 그의 면상에 집어 던지며 소리쳤다.

“이따위 편지를 들고 오려고 그곳까지 가서 시간을 보내고 왔단 말이냐!”

“저, 전하. 하지만 라그나르 공작이 직접 와서 저도 어쩔 도리가….”

라그나르라는 말에 존 왕의 분노는 한층 더 격해졌고 그는 옆에 있던 와인잔을 집어 던지며 소리쳤다.

“이 무능한 새끼들! 다 나가! 전부 다 나가란 말이야!!!!”

존의 역정에 경비병들까지 그의 눈치를 보며 자리를 비웠고 혼자가 된 존은 씩씩거리며 탁자를 뒤집어엎었다.

그 위에 있던 와인잔과 필기구들이 뒤집어엎어지며 바닥의 융단을 적셨지만, 고작 그걸로 존의 화를 풀수는 없었다.

“으아아아아아!!!”

존은 끝없이 추락하는 기분이었다. 대체 자신이 뭘 잘못했단 말인가? 사자심왕 리처드. 그를 뛰어넘는 왕이 되고 싶었다.

그래서 이 지독한 열등감에서 벗어나고 싶었다. 하지만 자신이 손을 댈수록 상황은 점점 안 좋아졌다.

그리고 어느 순간 정신을 차려보니 자신은 이곳 웨일즈로 도망쳤고 그 자리마저도 위협받고 있었다. 아마 시간이 지나면 자신은 라그나르에게 개처럼 끌려가 참수당할 테지.

그렇게 생각하자 몸에서 기운이 쭉 빠져나갔다. 정말 자신은 왕의 재목이 아니란 말인가? 왕의 자리는 자신이 아닌, 조카이자 부르타뉴의 공작이었던 아서가 받아야 했는가?

지금 자신은 아서와 다른 귀족들을 지하감옥에서 굶겨 죽인 대가를 지금 치르는 것일까?

“하…하하하…… 내가 바라는 왕의 자리는 이런 게 아니었는데….”

그렇게 스스로를 자책하던 그 순간, 아무도 없는 허공에서 목소리가 들렸다.

―힘을 원하는가? 필멸자여―

아무도 없는 허공에서 목소리가 들려오자 존 왕은 벌떡 일어나 들고 있던 검으로 주변을 경계했다. 어쩌면, 라그나르가 보낸 암살자일지도 몰랐다.

스스로의 안일함을 탓하며 조심스럽게 주변을 샅샅이 뒤졌지만 아무것도 나오지 않자 존은 자신이 피곤해서 환청을 들은 거라 생각했다.

하지만 그런 그를 비웃기라도 하듯 목소리는 이전보다 더 뚜렷하게 들려왔다.

―힘을 바라지 않는가 보군. 꽤 절박해 보였는데…―

“대체 이게 무슨… 내가 악마의 환청을 듣고 있는 것인가.”

악마는 인간이 가장 필요할 때 나타난다고 했던가. 어쩌면 자신은 지금 악마의 유혹을 받고 있는 걸지도 몰랐다.

―다시 한번 묻겠다. 필멸자여. 내 힘이 필요한가? 이 모든 난관을 헤쳐나갈 힘을 원하는가?―

그리고 이야기 속에 나오는 대부분의 이들은 악마의 유혹을 이겨내지 못했다. 말했듯 악마는 인간이 자포자기 상태일 때 희망으로 포장된 절망을 내미니까.

“그렇소. 그대가 누구인지 모르겠지만, 힘을 준다면 내 영혼이라도 바치겠다!”

―계약은 성립되었다. 필멸자여―

자신의 몸 안에 활력이 깃드는 걸 확인한 존은 긴장한 표정으로 물었다.

“그대는 누구요. 사탄인가? 아니면 루시퍼? 벨제뷔트?”

존의 물음에 목소리는 잠시 생각하는 듯하더니 장난기가 가득 담긴 목소리로 대답했다.

― 나 말인가? 글쎄… 오딘의 영원한 대적자라고 해두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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