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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임 속 바이킹이 되었다-175화 (175/205)

▣ 175화

다행히 아르단은 내 시험을 훌륭한 점수로 통과했다. 그는 자신의 병력뿐만 아니라 얼스터 내의 다른 영주들의 병력들도 훌륭하게 컨트롤하며 승리를 일궈냈다.

물론 그래봤자 모인 병력의 수가 2천을 간신히 넘기는 데다 상대가 내전을 벌이고 있었기에 공성전을 진행할 필요도 없는 쉬운 전투에 불과했지만 그래도 이 정도면 충분히 합격점이었다.

어차피 브론즈들이 모여있는 섬에선 골드 정도의 실력만 있어도 충분하지 않겠는가. 그 이상은 화웅의 말마따나 소 잡는 데 쓰는 칼을 닭 잡는 데 쓰는 꼴이다.

“승리를 축하하네. 아르단.”

“이 정도야 식은 죽 먹기지. 그래서, 이 정도면 시험에 통과했다고 봐도 되겠지?”

콧대가 잔뜩 올라가 있는 게 칭찬을 바라는 아이 같은 표정이었다. 남자가 저런 표정을 짓고 있는 게 굉장히 기분 나빴지만 그래도 나쁘지 않은 일 처리였기에 그가 바라는 대로 칭찬을 해줬다.

“조금 아쉬운 점이 있지만 그래도 이 정도면 그럭저럭 괜찮군.”

내 말에 아르단은 눈살을 찌푸리며 나를 바라보았다.

“그럭저럭? 평가가 너무 박하군. 골스터를 함락하는 데 이틀이 걸리지 않았네. 거기에 사상자도 30명 안팎이었는데 그럭저럭이라고?”

“왜냐면 자네의 비교 대상이 하랄 블로탄이거든.”

“…덴마크와 노르웨이 동군연합의 왕 말인가?”

“맞아. 그리고 하랄은 자네보다 더 열악한 상황에서도 더 훌륭하게 승리를 이끌어냈지.”

“비교 대상이 너무 대단해서 할 말이 없군.”

“너무 자학하지 말게. 하랄은 덴마크 역사상 다시 없을 명군이거든.”

“나는 아니라는 건가?”

“글쎄… 하랄은 이미 스스로를 증명했지만, 자네는 아니지 않나.”

물론 눈앞의 아르단 역시 언젠가는 쿠어거를 넘어 아르드리의 자격이 있음을 증명할 것이다.

아르단을 본 건 얼마 안 되지만, 내 안목으로 짐작건대 아르단 정도면 그래도 0.7하랄 정도는 되는 데다 아일랜드의 상황도 덴마크에 비하면 훨씬 나았으며 난이도도 훨씬 낮았다.

하랄 블로탄 키우기가 하드모드를 뛰어넘은 좆망겜 수준이었다면 아르단 키우기는 이지모드 그 자체였으니까.

“별다른 피해가 없다고 해도 연달아 전투를 하는 건 힘들겠지. 일단 코노트를 통제하는 데 심혈을 기울이게. 아르드리가 되려면 미리 서열정리를 해둬야 할 테니까.”

“말 안해도 그럴 생각이었네.”

“그리고 랜스터에도 뒷공작을 해두게. 싸우려고 해도 명분이 필요하지 않나.”

사용할 명분이야 많다. 국경 마을 근처에서 분쟁 거리를 만들어도 되고 국경지대에서 군사훈련을 하며 무력시위를 할 수도 있고 도적들을 이용해서 랜스터 소속의 상단을 조져도 된다.

요지는 어떤 식으로든 저쪽에 시비를 거는 것이다. 물론 이게 대놓고 얼스터 깃발 달고 국경 침략해서 조지라는 말은 아니었다.

왜, 그런 거 있잖은가. 깔짝거리는 게 좆같긴 한데 직접 따지자니 좀 그렇고, 그렇다고 그냥 넘어가려니 거슬리고. 딱 이런 느낌으로 살살 건드려줘야 한다.

“귀찮은 일은 나한테 다 떠맡기는군.”

“내가 다하면 내가 왕을 해야겠지? 혹시라도 왕관의 무게가 무겁다면 언제든지 말만 하게.”

꼬우면 왕 때려치우라는 내 말에 할 말이 없어졌는지 아르단은 궁색한 표정으로 말을 돌렸다.

“그럼 그동안 자네는 뭘 할 텐가? 설마 마냥 놀고먹진 않겠지?”

“글쎄… 일단 하랄이랑 사자공 전하가 어디서 뭘 하고 있는지 확인해봐야지. 일단 그쪽에서 먼저 영국을 흔들어줘야 이쪽도 눈치 안 보고 움직일 수 있으니까.”

늘 그렇지만 타국의 입장에서 근처에 있는 나라가 통일되는 건 그다지 좋은 소식이 아니었다.

당장 대한민국 옆에 있는 중국만 봐도 분열되어 있을 때는 자기들끼리 치고받고 싸우면서 지랄을 떨지만 통일되는 순간 눈초리를 주변국으로 돌리지 않던가.

딱히 중국만 그런 게 아니라 일본도 별반 다를 게 없었는데 수나라의 고구려침공이나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임진왜란이 좋은 예시였다.

코노트야 항상 치고받았으니 그렇다 치지만 아일랜드에서 가장 부유하고 강병을 보유한 랜스터까지 함락시킨다면 영국 내의 다른 국가에서도 이쪽에 신경을 쓰기 시작할 것이다.

아직 죽창이 날카롭게 갈리지 않았는데 벌써부터 눈에 띄는 건 곤란했기에 하랄이나 사자공과 발을 맞추려는 거다.

애초에 남의 집 불구경도 나한테 여유가 있을 때나 하는 거다. 당장 내 집에 불이 났는데 남의 집 불타는 거 구경할 여유가 어디 있겠는가?

“그럼 그 부분은 자네에게 맡기고 그동안 나는 내치에 전념하도록 하지.”

“편할 대로 하게. 그보다 랜스터를 공격하려면 얼마나 걸릴 것 같나? 나도 그걸 알아야 뭐 적당히 조율을 하든가 할 것 아닌가?”

아르단 왈, 코노트를 무너뜨린 뒤에는 랜스터와 전쟁을 한다고 했었지. 하지만 지금 돌아가는 상황을 보니 한동안 전투는 꿈도 못 꿀 것 같다.

우선, 코노트 내전의 여파가 생각보다 심각했다. 그 덕에 별다른 피해 없이 점령한 건 사실이었지만, 코노트를 내전 이전의 상태로 되돌리려면 엄청난 돈을 쏟아부어야 했다.

문제는 그 돈이 원래 군자금으로 쓰일 돈이었다는 거지. 그렇다고 안 그래도 가난했던 지역을 수탈할 순 없는 노릇이었다.

안 그래도 지역감정이 안 좋은 곳인데 그렇게 수탈하는 순간 바로 반란이 터질 것이다.

“으음, 랜스터를 상대로 공작을 펼치고 전쟁 준비를 끝마치려면 적어도 6개월 정도는 필요할 걸세. 그들은 코노트처럼 어중이떠중이들이 아니니까.”

“6개월? 그건 너무 긴데?”

“그래도 현실이 그러니 어쩔 수 없네. 원래라면 코노트를 완전히 복속시키고 얼스터와 코노트의 쿠어거로서 자리를 잡는 데만 1년은 걸리는 게 정상이라고.”

아르단의 말에 나는 생각에 잠겼다. 차라리 이쯤에서 내 정체를 드러내고 공세를 취하는 게 나을 것인가. 아니면 완벽한 한 방을 위해 6개월을 존버할 것인가.

하지만 고민은 오래가지 않았다. 나는 시간을 단축시키기 위해 이곳에 왔는데 굳이 질질 끌려다닐 이유가 뭐란 말인가.

거기에 상황이 여의치 않다면 강제로 상대를 이쪽의 판에 끼워 맞추는 것도 전략이었다.

“그럼 이렇게 하지.”

나는 그에게 내가 생각한 계획을 이야기했고 아르단은 화들짝 놀라서 되물었다.

“자네 미쳤나? 랜스터만으로도 벅찬데 잉글랜드까지 끌어들이겠다고?”

“안 미쳤으니 걱정 말게. 애초에 내가 전투에 참여하면 죽은 사자심왕이 돌아온다고 하더라도 날 막을 수 없을 걸세.”

물론 내 말에 아르단은 미친놈을 보는 표정이었지만 나는 당당했다.

“아무튼 자네는 얘기한 대로 래스터를 상대로 공작이나 펼쳐주게. 애초에 존 왕도 웨일즈로 쫓겨난 만큼 영향력을 높이고 주도권을 가져오기 위해 뭔가 액션이 있을 거야.”

“너무 위험한 것 같은데 굳이 도박을 할 필요가 있나?”

“그 정도는 해줘야 먼스터도 알아서 기어들어 오겠지. 만약 그놈들이 자네의 제안을 무시하고 맞서 싸우면 어쩔 텐가? 거기는 지형도 지랄맞던데 또 몇 개월간 시간 끌릴 텐가?”

“으음….”

“상대를 굴복시키려면 압도적인 힘으로 짓밟아야 하네. 아예 저항이라는 선택지가 떠오르지 않도록 막강한 힘을 보여주는 거지.”

4개의 왕국 중 가장 강하다는 랜스터와 잉글랜드의 병력을 갈아버린다? 그걸 보고 나서도 싸우겠다고 하는 놈들이 어디 있겠나.

아르단이 얘기했던 것처럼 자치를 보장하되 일정량의 세금과 필요할 때 군사지원만 받기로 한다면 싫다고 해도 찾아와서 아르드리로 섬길 것이다.

“너무 걱정하지 말게. 내가 일개 야만인 용병단장에서 제국의 용담공까지 오른 건 다 이유가 있으니까.”

사실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무력보다는 지식과 정치질, 그리고 칼리나의 지원으로 공작위에 오른 거지만… 어쨌든 무력도 한 팔 거들지 않았는가.

“자신감이 넘치는군.”

“내 실력을 보고 충성맹세를 하겠다며 젖꼭지를 핥으려 들지나 말게.”

내 말에 아르단은 얼마 전 코노트의 영주들에게 젖꼭지를 빨린 기억이 생각났는지 표정이 삽시간에 어두워졌다.

하긴, 남자가 자신의 젖꼭지를, 그것도 예쁜 여자도 아니고 시커먼 사내놈들에게 빨린다는 건 썩 기분 좋은 경험은 아니겠지.

이건 하는 사람도 굴욕적일 테지만 받는 사람도 굴욕적인 행동이니까. 대체 이딴 전통은 어떤 놈이 생각해냈는지 모르겠다.

“으음… 좋네. 그럼 자네를 믿고 한 달 안에 공작과 진군 준비를 끝마치겠네.”

내 말대로 안 하면 그냥 다 때려치우고 퇴각할 수도 있다는 모션을 취하자 그는 탐탁잖은 얼굴을 하면서도 고개를 끄덕였다.

사실 아르단 본인도 이번 기회를 놓치면 아르드리가 될 기회는 영원히 오지 않는다는 걸 누구보다 잘 알고 있겠지.

그러니 그는 이게 독이 든 성배라는 걸 알면서도 마실 수밖에 없는 것이다.

“탁월한 선택이야. 절대 후회하지 않게 해주지.”

* * *

<웨일즈 지역 – 잉글랜드 왕국>

쫓겨나듯 웨일즈에 온 뒤로 존 왕은 처음 며칠간은 술에 절어 살았다.

프랑스 전선에서의 대패와 죽은 자신의 형에 대한 자격지심, 수도를 뺏기고 이곳 웨일즈까지 쫓겨났다는 치욕감을 잊게 해주는 건 한 잔의 술밖에 없었다.

하지만 무슨 심경의 변화가 있던 건지 그는 곧 마음을 다잡았고 잉글랜드를 재통일하기 하겠다는 일념 하나로 자신을 불태우기 시작했다.

그렇게 늦은 밤까지 서류와 씨름하고 이제 막 잠에 들려던 존 왕에게 피곤한 표정의 보좌관이 집무실 안으로 들어왔다.

“무슨 일인가?”

“전하. 랜스터 왕국에서 지원 요청이 들어왔습니다. 피곤하실 줄은 알지만 급박한 일이기에 실례를 무릅쓰고 찾아올 수밖에 없었습니다. 부디 용서해주십시오.”

“괜찮네. 그보다 지원? 우물 안 개구리들이 또 자기들끼리 이름뿐인 왕이 되겠다고 설치는 소꿉놀이에 한 팔 거들어 달라던가?”

“아니요. 오히려 그걸 막아달라고 왔다는군요.”

“그게 무슨 소리인가?”

“저도 전령에게 들은 것만 말씀드리는지라 상세한 내용은 모릅니다. 자세한 건 편지를 읽고 직접 판단하시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말을 마친 보좌관은 조심스럽게 편지를 존 왕에게 가져다 바쳤고 존은 이불을 옆으로 치운 뒤 피곤한 표정으로 봉인된 인장을 뜯었다.

편지는 생각보다 두툼했는데 이런저런 미사여구와 구구절절한 사연들을 제외하고 나면 그 내용은 몇 줄 정도로 요약할 수 있었다.

― 한 달 전에 코노트의 쿠어거인 하이나르손이 암살당했다. 그러자 코노트는 혼란에 휩싸였고 그 틈을 타 얼스터의 아르단이 군대를 이끌고 진군해 코노트를 병합했다.

― 그리고 한 달이 지난 지금, 얼스터가 자신들의 국경지대에서 의도적으로 무력시위를 하고 상단을 습격하는 등의 행동을 보니 의도적으로 전쟁을 일으키려는 것처럼 보인다.

― 이런 일련의 행동으로 보아 하이나르손의 암살 배후도 아르단으로 추측된다. 아마 영국이 혼란에 빠진 틈을 타서 아르드리가 되고 싶어 하는 것 같다.

― 얼스터와 아국 간에는 국력 차가 존재하지만, 저들이 작정하고 전쟁을 준비하는 걸로 봐서 막아내는 게 쉽지는 않을 것이다.

― 그러니 지원을 해달라. 이번 공격만 막아낸다면 모든 것을 불태운 얼스터는 스스로 자멸할 것이다. 그 틈을 타서 자신들이 통일 전쟁을 벌여 남은 왕국들을 통합하겠다.

― 그러면 지원의 대가로 추후 잉글랜드가 7왕국들을 공격할 때 아낌없이 지원하겠다.

“흐음… 아일랜드… 아일랜드라. 이쪽의 병력을 투자하면서까지 그들을 도와줄 가치가 있는지 모르겠군.”

다만 아일랜드의 쓸모 유무와는 별개로 존 왕은 실적이 필요했다. 신성 제국의 하인리히 사자공이 자신의 영지인 노르망디를 공격했다는 사실이 전해졌음에도 자신은 아무것도 하지 못했다.

정확히는 할 수 없던 거지만 이유 여하를 불문하고 자신의 영지가 공격받는데도 아무런 행동도 취하지 못하는 주군을 어느 영주가 섬기겠는가.

그 때문에 존 왕은 어떤 식으로든 잉글랜드가, 그리고 자신이 건재하다는 사실을 만천하에 증명해야 했다. 그리고 그를 위해서 아일랜드는 최고의 제물이었다.

“내일 아침이 되는 대로 회의를 소집하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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