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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임 속 바이킹이 되었다-173화 (173/205)

▣ 173화

지난밤에 둘에게 잔뜩 쥐어짜인 나는 다소 피곤한 몸을 이끌고 성 주변을 거닐었다. 코노트가 워낙 척박한 곳이라 그런지 수도라고 불릴 만한 도시인 골웨이조차 그렇게 크지는 않았다.

하긴, 반대쪽에 뭐가 있는 것도 아니다 보니 당연히 규모가 작아질 수밖에 없다. 지금 시점에 대서양 무역을 할 수는 없는 일 아니던가.

거기에 코노트 자체가 워낙 척박한 지형이다 보니 어쩔 수 없었다. 덕분에 사전답사는 생각보다 빨리 끝났고 나는 숙소로 발걸음을 옮겼다.

괜히 별다른 목적도 없이 영주성의 주변을 떠도는 건 경비들의 의심을 살 수 있기 때문이었다. 거기에 사실 주변 환경에 대한 답사는 내가 머무는 숙소에서도 가능했다.

아포피스의 힘을 다루는 이비라면 사역마들을 부리는 게 가능했고 그를 통해 상세하게 이동 경로를 짤 수도 있었다.

다만 지도를 통해서 보는 것과 내가 직접 땅을 거닐며 루트를 확인하는 건 하늘과 땅만큼 차이가 컸다. 거기에 암살을 시행하는 건 나였기에 이리저리 확인해봐서 나쁠 건 없다.

그렇게 짧게 정찰을 끝마친 나는 숙소로 돌아왔다. 꽤 고급진 방을 빌려서 그런지 힐데는 방 안의 침대에 누워서 뒹굴거리고 있었고 이비는 의자에 앉아 두 눈을 감고 있었다.

“왔습니까? 생각보다 빨리 왔군요.”

“어, 별로 볼 것도 없더라. 이비는 언제부터 저러고 있었어?”

“한 시간? 아니, 이제 두 시간 정도 된 것 같네요.”

“내가 나갈 때부터 보고 있었나 보네. 조금 있으면 깨어나겠네.”

그녀는 까마귀와 뱀의 눈을 통해서 주변을 관찰하고 있었다. 까마귀로 외부의 모습을 확인하고 뱀으로 내부를 뒤져보는 거겠지.

신성력을 사용할 때 건드리는 건 좋은 선택이 아니었기에 나는 이비 대신 힐데를 건드리기로 했다.

“그럼 이비가 깰 동안 충성맹세라도 한번 해볼까?”

“…뭐라고요?”

그녀는 어이가 없다는 표정으로 되물었지만 나는 편안한 표정으로 대답했다.

“네가 들은 게 맞아.”

그렇게 얘기한 나는 힐데가 도망치기 전에 그녀를 양손으로 끌어안은 채 꺼끌꺼끌한 수염을 그녀의 뺨에 비볐다.

“으읏… 미쳤습니까!?”

당연히 힐데는 싫다며 발버둥 쳤지만 내 손을 벗어날 수는 없었다. 그렇게 뒤에서 그녀를 꼭 끌어안은 채 수염을 문대고 있자니 힐데가 매도를 시작했다.

“아침부터 이러다니, 시도 때도 없이 발정 난 겁니까?”

“원래 사람은 365일 발정 나 있는 거 몰라?”

애초에 사람은 발정기가 없는 것만 봐도 알 수 있지 않은가. 단적인 예로 시도 때도 없이 발기하는 것만 봐도 명확하다.

“읏… 대체 냄새는 왜 맡는 겁니까?”

“글쎄… 나도 모르게?”

“취향 참 특이하군요. 당신처럼 일그러진 성벽을 가진 사람도 없을 겁니다.”

“푸하하, 네가 그런 말을 하는 거야?”

뭐, 침대 위에서 성인군자 없다고 하지만 그녀의 취향은 꽤 의외였다. 뭐, 평상시에 행동하는 걸 보고 어느 정도 짐작하긴 했는데 그녀의 취향 역시 나와 비슷할 정도로 일그러져 있었다.

그녀의 명예를 위해서 자세히는 얘기해주지 못하지만, 몇 가지만 얘기해주자면 묶인 채 거칠게 당하는 거나, 제발 그만해달라고 엉엉 울 때까지 가버리는 게 그녀의 취향이었다.

물론 이게 그나마 순한 맛이라는 걸 생각해보면… 아무튼 그렇게 아침부터 힐데에게 여러모로 충성맹세를 하고 있자니 이비가 피곤한 기색으로 의자에 몸을 기댔다.

“아, 이비. 고생했어. 피곤할 텐데 여기에 와서 좀 쉬어.”

“괜찮습니다. 주군.”

하지만 그런 그녀의 대답에 내가 시무룩한 표정을 짓자 이비는 어쩔 수 없다는 듯 조심스럽게 침대로 다가와서 걸터앉았다.

그러자 나는 기다렸다는 듯 그녀의 허벅지를 베고 누웠다. 늘 생각하는 거지만 어째서 이비의 피부는 이렇게 부드러운 걸까?

나도, 그녀도 똑같은 사람이지만 그녀의 피부 감촉은 내 딱딱한 몸과는 차원을 달리했다. 그 때문에 이 찹쌀떡 같은 느낌을 더 느껴보고자 나는 그녀의 허벅지에 코를 박은 채 얼굴을 비볐다.

“읏….”

숙소 안이어서 그녀는 가벼운 원피스를 입고 있었는데 내가 뺨을 문대자 치마 부분이 조금씩 말려 들어가고 있었다.

그렇게 뭔가가 보일 듯 말 듯 한 모습에 절로 시선이 집중되던 찰나 힐데가 심술궂은 얼굴로 나를 걷어찼다.

“헛짓거리 그만하고 일할 준비나 하십시오. 솔직히 지금 한번 시작하면 내일 아침까지 할거잖습니까.”

힐데의 말대로 최근 반신화의 영향인지 내 정력은 늘어만 가고 있었다. 그런 만큼 그녀의 말대로 한번 불이 붙으면 다 탈 때까지 절대 꺼지지 않을 것이다.

거기에 지금은 힐데와 이비 둘이나 있지 않던가. 와! 가슴이 4개!

“으음… 그러네. 아쉽지만 일단 일을 해야겠지? 이비. 사역마를 통해 보고 들은 걸 얘기해봐.”

“예. 일단 대략적인 저택의 구조는 이렇습니다.”

그녀는 종이에다 슥슥 그림을 그렸는데 의사라서 그런지 그림도 잘 그렸다.

의사와 그림이 대체 무슨 상관이냐고 할 수 있는데 현대와는 다르게 실제로 인체나 내부의 장기 등을 직접 그려야 했기 때문에 절로 그녀의 그림 실력도 늘 수밖에 없던 것이다.

“음, 밖에서 보는 거랑 다르게 그렇게 크진 않네?”

“예. 아무래도 실제 크기에 비해 거주지는 얼마 안 돼서 그런 것 같습니다. 다른 건물들의 용도는 모르겠지만 코노트의 쿠어거… 그러니까 하이나르손이 이곳까지 올 것 같지는 않습니다.”

“이런 촌구석에서 쿠어거는 무슨.”

솔직히 자기 딴에 쿠어거라고 뻗대는 모양이지만 객관적으로 보면 동작구의 왕 정도가 아닐까? 얼스터는 마포구의 왕 정도 될 테고.

애초에 코노트에서 가장 번창했다는 골웨이가 이 정도면 다른 데는 더 볼 것도 없다. 이놈들이 왜 죽자고 싸워봤자 아르드리가 안 나왔는지 알 것 같다.

간단히 얘기해서 인구수도 안 되고 이 넓은 땅덩이를 다스릴 능력이 안 돼서 그런 거다. 노르만 왕조의 바이킹들도 아일랜드 한번 찔러봤다가 별반 먹을 것도 없으니까 그냥 적당히 약탈하고 빠지는 선에서 돌아간 거고.

게르만의 대이동처럼 눌러살기 위해 이동한다면 모르겠지만 여기보다 입지도 좋은 잉글랜드를 두고 굳이 아일랜드까지 올 이유가 뭐가 있겠나.

“그래서, 경비들의 동태는 어때??”

“낮이라 그런지 인원이 얼마 안 되더군요. 대강 확인한 배치도는 이렇습니다.”

그녀는 기억을 더듬는 건지 잠깐 얼굴을 찌푸리더니 이내 자신이 그린 지도에 동그랗게 점을 찍었다.

“가만히 서서 경계하는 놈들이 5쌍, 이동하면서 순찰하는 놈들이 3쌍이라… 밤에는 좀 더 늘어나겠지?”

그냥 목만 따고 나올 거면 적의 허를 찔러서 낮에 들어가는 것도 괜찮지만 귀신같이 암살하려면 역시 밤을 이용해야 한다.

모든 일은 밤에 이루어진다는 말이 괜히 나온 게 아니잖은가.

“아무래도 그럴 겁니다. 이따가 저녁 이후에 한 번 더 확인해보겠습니다.”

“기력은 괜찮겠어? 사역마 다루는 게 쉬운 일은 아니잖아.”

“글쎄요… 주군께서 도와주신다면 괜찮을 것 같네요.”

그녀는 노골적으로 내 아랫도리를 보며 말했고 나는 나도 모르게 웃음을 터뜨리고 말았다.

“푸하하하, 이비 네가 그런 말을 할 줄은 몰랐네.”

“아무래도 주군과 함께 있다 보면 저도 모르게 어리광을 부리게 되더군요.”

“흐음, 앞으로도 계속 네가 어리광을 부리는 모습을 보고 싶은데.”

“주군께서 원하신다면.”

나와 이비가 의도치 않게 꽁냥거리자 힐데는 미묘한 얼굴로 그걸 바라보고 있었다. 뭐라고 한마디는 하고 싶은데 중간에 끼어드는 것도 좀 그렇다고 생각하고 있겠지.

대신 그녀는 아까처럼 발로 가볍게 나를 툭툭 건드렸고 나는 참지 않고 힐데의 발을 붙잡았다. 갑작스러운 내 행동에 그녀는 당황해서 발을 빼려고 했지만 나는 손아귀에 힘을 준 채 그녀의 발을 간질였다.

“으흣! 흣… 으흐흣.”

힐데에게서 숨넘어가는 소리가 들렸지만 나는 개의치 않고 진중한 얼굴로 이비에게 물었다.

“내부 구조는 어때?”

“일반적인 성과 크게 다를 게 없습니다.”

“들어갈 만한 개구멍은 있어?”

“일단 뱀들을 통해서 여기저기 확인해보고는 있는데 주군께서 들어가실 만한 크기는 없습니다. 아무래도 탈출하실 때는 발코니에 밧줄을 묶고 내려오시는 게 제일 빠를 것 같습니다.”

물론 나는 그녀와 대화를 하면서도 힐데의 발을 간질이는 걸 잊지 않았다. 솔직히 지금의 내게 힐데를 홍콩으로 보내버리는 것 정도는 쉬운 일이었다.

“그럼 뭐 따로 특이사항은 없으니까 오기 전에 얘기했던 것처럼 해야겠네.”

사실 작전이라고 할 것도 없었다. 사람 암살하는 데 뭐 그리 허술하게 준비하냐고 할 수도 있는데 이처럼 변수가 많은 상황에서는 작전을 세워도 어긋나는 경우가 많다.

가령, 10시 교대인데 갑자기 근무자가 화장실을 가서 교대 시간이 틀어진다면? 이동하면서 순찰을 하다가 술주정뱅이들이 싸워서 그걸 진압하러 가면 동선이 꼬인다.

수많은 사람들을 내 마음대로 통제하는 건 애초에 말도 안 되는 얘기이기 때문에 결국 큰 틀만 잡아놓고 그때그때 임기응변으로 대처해나가야 한다.

그러다 걸리면 어떻게 하냐고? 그럼 뭐… 다 죽여야지 별수 있나. 원래 암살과 학살은 비슷한 뜻을 가진 단어가 아니던가.

그렇게 대략적인 배치도를 확인해서 품속에 집어넣은 나는 이비가 저녁이 돼서 달라진 경계근무 루트를 확인하자마자 방을 나섰다.

탈출을 위해 사용할 밧줄과 단검 하나만 챙긴 나는 옷을 두껍게 입어 내 인상착의를 숨겼는데 인구수 5천 언저리의 이 작은 도시에선 순식간에 꼬리를 밟힐 수 있기 때문이었다.

내가 암살을 들키지 않아야 하는 이유는 간단한데 배후가 명확히 드러나지 않아야 혼란에 빠지기 때문이다. 자칫 잘못해서 얼스터의 사주라는 게 들키게 되면 코노트가 하나로 합심해서 얼스터와 대적하게 될 것이다.

이를 방지하기 위해서 학살도 염두에 두고 있는 것이다. 괜히 어설프게 동정해서 목격자를 남겼다가 배후가 드러나게 되면 복수심에 가득 찬 코노트를 상대로 전쟁을 벌여야 할 테니까.

그런 생각을 하고 있는 사이 항구 쪽에서 엄청난 폭발이 일어났다. 엄청난 연기와 함께 불길이 삽시간에 타오르는 걸 보니 이비가 제법 잘해주고 있는 모양이다.

잊고 있었지만 그녀는 뛰어난 약사였고 이는 화학 쪽으로도 조예가 깊다는 것을 의미했다. 그 때문에 그녀는 폭탄을 이용해 순식간에 불을 키웠고 모두의 이목을 끌어모을 수 있었다.

어떻게 보면 이건 테러 행위였지만 그래도 뭐… 사람이 안 죽었으면 괜찮지 않은가. 애초에 지금 와서 양심이 어떻고 도덕이 어떻고 하기에는 내 손에 묻은 피가 너무 많았다.

그렇게 마음을 다잡은 나는 경비병들이 혼란스러워하는 틈을 타서 조심스럽게 성으로 잠입했다.

사실 잘 훈련받은 병사들이라면 이럴 때일수록 왕이 머무는 왕성에 대한 호위를 보강하고 경계를 철저히 해야 할 테지만 저들에게 그런 상황판단을 기대하는 건 솔직히 무리였다.

물론 잠입했다고 바로 움직일 생각은 없었기에 일단 근처 창고로 슬쩍 들어가 몸을 숨겼다.

창고 안에는 이비가 얘기했던 대로 지푸라기가 쌓여 있었고 나는 짚 더미를 헤집고 그 안에 몸을 숨겼다. 그렇게 미묘한 푹신함에 몸을 맡긴 채 밤이 오기를 기다렸다.

본래라면 조금씩 이동하면서 신중하게 암살할 타이밍을 잡아야 했다. 지난번에도 내부의 조력자가 있어서 하루 만에 암살을 성공했던 거지 원래는 그 이상이 걸리는 경우도 많았다.

심한 경우에는 별장에 하인으로 취직해 언제 올 거라는 기약도 없이 몇 날 며칠간 기다리다가 간신히 암살에 성공했던 적도 있었다.

거기에 한번 숨으면 몇 날 며칠을 숨어있어야 하는 경우도 허다했다. 원래 완벽한 암살을 위해선 여러 가지를 희생해야 하는 법이었으니까.

하지만 내가 대머리 바코드 암살자도 아니고 지금의 내겐 상관없는 얘기다. 내겐 오딘의 힘이 있었고 그 힘을 이용한다면 건물 벽을 올라가는 것쯤은 일도 아니었으니까.

벽이 매끈하니 올라갈 틈이 없어도 상관없다. 그냥 손으로 구멍을 만들어서 올라가면 그만이니까.

그렇게 중간중간 혹시 모를 상황을 위해 안전장치를 해가며 최상위층으로 올라간 나는 유리창을 통해 이번 암살 대상인 하이나르손이 자고 있는 것을 확인했다.

그를 영원한 안식으로 데려다주기 위해 품속에서 번뜩이는 단검을 꺼낸 나는 깊게 심호흡을 했다.

“옛날 생각나네.”

이게 수미상관인가? 내가 라그나르로 빙의하고 난 뒤 첫 갈림길의 시작도 암살이었는데 그 끝도 암살이라니.

물론 이게 완전한 끝은 아닐지라도 지금 나는 이야기의 종장에 와 있지 않던가.

나와 라그나르의 이야기가 대체 어떤 결말을 맞이할지 궁금할 따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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