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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임 속 바이킹이 되었다-170화 (170/205)

▣ 170화

물론 힐데가 ‘저는 웨식스의 여왕이 될 겁니다!’라고 말한다고 그녀가 여왕이 되는 건 아니었다. 왕위계승자가 왕이 되기 위해 필요한 건 압도적인 힘과 강력한 명분이었다.

명분이야 힐데가 웨식스 왕조 최후의 국왕이었던 해럴드 2세의 자손이었으니 차고 넘친다. 거기에 군사력 역시 용담공인 내가 그녀의 뒷배로 있으니 더 말할 것도 없다.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부족했다. 우선 나는 니스를 떠날 때처럼 북부를 버리고 갈 순 없었다. 그곳에 가서 무조건 승리한다는 확신이 있는 것도 아니잖은가?

자신이 없냐고 묻는다면 그건 아니었지만 이건 내가 처음 하는 퀘스트였다. 종종 인게임에서 영국을 조진 적은 많았지만 이건 강제력이 적용되는 메인퀘스트였다.

즉, 어떤 변수가 어떻게 적용될지는 고인물인 나조차 짐작할 수 없다는 얘기였다. 그 때문에 나는 최대한 변수를 통제하기 위해 사자공과 하랄에게 도움을 요청했다.

애초에 내가 북부에서 그렇게 공을 들인 이유도 둘의 조력을 얻기 위해서가 아니었던가. 그리고 내 예상대로 그들은 내 부름에 응해주었다.

“흠, 그럼 이제 잉글랜드로 진군할 생각인가?”

“예. 때가 무르익었는데 망설일 이유가 뭐가 있습니까?”

“하긴, 내부가 혼란스러울 때가 외부에서 개입하기 가장 좋은 시기긴 하지.”

“거기에 이쪽도 슬슬 안정되지 않았습니까? 안정화 과정에서 쌓인 불만들을 외부로 토해내야지요.”

굉장히 역겨운 생각이지만 뭐 어쩌겠는가? 중세란 원래 야만의 시대인 것을.

“그렇지. 그나저나 정화교단의 성녀께서 웨식스 왕조의 후계자였다니… 라그나르 자네 대체 언제부터 이걸 설계한 건가?”

“처음부터라고 하면 믿으시겠습니까?”

“솔직히 안 믿기네만, 지금까지 자네 행적을 보니 믿을 수밖에 없군그래.”

“동감입니다. 솔직히 라그나르가 절 돕기 위해 니스를 버리고 북부로 올라오는 걸 보면서도 저게 맞나 싶었는데… 잉글랜드를 염두에 두고 있을 줄 누가 알았겠습니까?”

어느새 사자공과 친해진 하랄이 고개를 끄덕이며 그에 동조했다.

“잠깐만… 그러면 자네 혹시 북부 동맹도 영국 침공을 염두에 두고 만든 것인가?”

영국은 섬이다 보니 병력을 상륙시키기 위해서는 배가 필요했다.

거기에 지속적으로 물자도 보급해야 하니 함대의 구성은 필수였다. 내가 쌍검을 쓰는 신관이라서 리콜을 할 수 있는 것도 아니잖은가.

다만 의도적으로 배를 모으면 의심을 살 수 있으니 무역이라는 이름 아래 함선들을 모아둔 것이다. 어차피 내게 필요한 건 병력을 운반할 배였지 해상전을 벌일 함대가 아니었으니까.

물론 약탈을 통한 현지조달도 가능하겠지만 굳이 원주민들에게 나쁜 인상을 심어줄 필요는 없다. 안 그래도 바이킹들에게 한번 정복당한 이들인데 또 PTSD를 심어줄 필요는 없지 않은가?

“뭐, 그런 것도 있고 돈도 필요하지 않겠습니까? 굶으면서 싸울 수 있는 것도 아니고.”

“거참. 자네 대체 몇 수나 앞을 내다본 건가? 우리 모두 자네의 손아귀에 놀아난 꼴이군.”

“그래도 좋은 게 좋은 거라고 일이 다 잘 풀리지 않았습니까?”

하랄은 외롭고 쓸쓸하게 죽어갈 운명에서 벗어나 복수에 성공함은 물론이요 덴마크―노르웨이 동군연합의 왕이 되었다.

사자공은 프리드리히의 숙청에 속수무책으로 당해서 영국으로 도망칠 운명이었지만 반대로 호엔슈타우펜을 정계의 중심에서 실각시킴은 물론 자신의 아들을 황제로 만들었다.

“물론일세. 거기에 딱히 불만이 있는 것도 아니고. 지금에야 하는 말이지만 내 인생에서 가장 잘한 일을 하나 고르라면 자네와 적대하지 않은 것일세.”

“그렇게 칭찬하셔도 아무것도 안 나옵니다. 그나저나 하랄. 덴마크에선 얼마나 병력을 동원할 수 있지?”

“흐음, 자네가 원하는 게 뭐냐에 따라 다를 것 같은데?”

단순히 병력을 끌고 가서 한바탕 휘젓기를 원하느냐, 아니면 정착을 원하느냐는 하랄의 말에 나는 일말의 고민도 없이 대답했다.

“일단 정착은 기본이고 무조건 힐데에게 복종해야겠지. 물론 자네의 병력들이 점령한 땅은 자치령으로 남길 테지만, 충성의 대상이 헷갈리면 곤란해.”

“그렇다면… 아마 3천 정도 동원할 수 있을 걸세. 병력을 보내는 김에 불순분자들도 보낼 테니 적당히 처리해주게.”

아마 고기방패로 써먹거나 세력을 위축시켜 달라는 거겠지. 그 정도는 일도 아니었기에 나는 순순히 고개를 끄덕이며 사자공을 바라보았다.

“사자공 전하는 얼마나 동원 가능하십니까?”

“나도 얼추 그 정도 될 것 같네. 그리고 하는 김에 내가 직접 병력을 끌고 가고 싶네만 괜찮겠나?”

“나이도 있는데 너무 무리하시는 것 아닙니까?”

“나이가 있으니 하는 말일세. 나도 내 인생의 마지막을 장식해야 하지 않겠나? 자네에게 감화된 건지 모르겠네만 나는 내 마지막을 침대에서 보내고 싶지는 않네.”

스스로 마지막 불꽃을 태우고 싶다는 사자공의 말에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원역사에서 사자공은 프리드리히가 사망하고 5년 뒤에 사망했다.

꼭 원역사를 따라간다는 보장은 없지만, 그도 나이가 있으니 아마 10년 안에 생을 마감할 것이다. 그리고 그건 당사자인 사자공이 누구보다 잘 알고 있겠지.

“편하실 대로 하십시오. 저야 사자공 전하께서 참전해주신다면 영광이지요.”

“나야말로 라그나르 자네와 같은 전장에 설 수 있어 영광이지. 그래서, 어떻게 영국을 공격할 생각인가?”

그의 물음에 나는 잠시 입을 닫고 생각을 정리했다. 일단 바다라는 건 무슨 짓을 해도 인간이 정복할 수 없는 곳이다.

현대 시대에도 쓰나미 한번 들이닥치면 방파제고 지랄이고 그냥 도시가 초토화되는데 지금 시기에는 말해 무엇하겠는가.

아무리 내가 용담공이고 반신이라고 한들 바다를 통제하는 건 불가능하다. 내가 포세이돈의 대전사였다면 또 모르겠지만 그건 아니잖은가.

오히려 북유럽 신화 기준으로 바다는 요르문간드의 영역이니 오딘의 대전사인 나를 미워하면 미워했지 좋아하진 않을 것 같다.

아무튼 바다라는 건 변수가 많은 곳이고 특히 북해는 항로가 지랄맞기로 유명한 곳이었다. 괜히 바이킹들 항해 실력이 좋아진 게 아니겠지.

즉, 바다를 통한 보급은 믿을 수 없다는 얘기다. 자리를 잡을 때까지는 어쩔 수 없이 이쪽에서 지원해줘야겠지만 그것도 한도가 있지 않겠는가?

운송이라는 게 100을 보내면 100이 그대로 도착하는 게 아니다. 가다가 태풍 몰아쳐서 식량 다 수장되고 함대가 박살 나면 그 이후의 보급은 어떻게 한단 말인가?

굶는 군대는 패배하기 마련이었고 이건 동서양을 불문하고 통용되는 진리였다. 멀리 갈 것도 없이 임진왜란 때 왜군들이 식량이 없어서 평양 이북으로 진군을 못 한 게 아니던가.

요점은 영국 내에서도 장기간 보급이 가능한 곡창지대와 거점이 있어야 한다는 말이었다. 여기까지 생각을 정리한 나는 진중한 어조로 얘기했다.

“일단 세 갈래로 나뉘어서 공격할 겁니다.”

내 의견에 사자공은 탐탁지 않다는 표정으로 고개를 갸웃거렸다.

“꼭 그래야 하나? 차라리 일괄적으로 상륙해서 순회공연하듯 밀어치는 게 좋지 않겠나? 괜히 병력을 분산했다가 각개격파 당할 염려가 있네.”

“그러면 전투는 승리할지라도 전쟁에서 승리할 수는 없을 겁니다. 이쪽의 자원이 무한정인 건 아니잖습니까.”

“으음, 그건 그렇지만 한 번에 밀어붙이지 못하면 전선이 고착화될 우려가 있네.”

“각 왕국들이 잘게 쪼개져 있으니 그건 불가능할 겁니다.”

“외부의 침입자에 대항해 연합할 수도 있는 것 아닌가.”

하긴, 과거 이교도 대군세 시기에도 그러긴 했지. 내가 이걸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고민하고 있을 때 하랄이 눈치껏 지원사격을 해줬다.

“사자공 전하. 일단 라그나르의 이야기를 좀 더 들어보는 게 어떻겠습니까?”

하랄의 말에 사자공도 그 말이 타당하다 생각했는지 순순히 고개를 끄덕였고 나는 하랄에게 고개를 살짝 끄덕이며 감사를 표한 뒤 말을 이었다.

“우선 저는 힐데와 함께 아일랜드로 가서 그곳을 완전히 장악할 생각입니다.”

“아일랜드? 뜬금없구만. 거길 가려면 빙 돌아가야 하지 않나?”

아마 그렇게 이동하면 항해 거리가 4~5배는 더 늘어날 것이다. 그러니 사자공이 저런 의문을 가지는 것도 타당하다.

“힐데의 모계와 고드윈 가문의 방계 일부가 얼스터에서 살아가고 있더군요. 그들의 도움을 받으면 빠르게 아일랜드를 점령할 수 있을 겁니다.”

내 고인물로서의 경험을 걸고 장담하건대 이건 잘 짜여진 미션이었다. 과거 이교도 대군세 시기에 바이킹들이 7왕국을 침공했던 것을 어느 정도 어레인지해서 이런 식으로 만든 거겠지.

새로 업데이트된 게임을 해보진 않았지만 추측하건대 라그나르를 플레이어블 캐릭터로 골랐다면 어떤 식으로든 힐데가 동료로 붙어있었을 것이다.

사실 생각해보면 힐데가르트는 그 명성에 비해서 뭔가 큰 반전이 없었다. 여기에 나오는 네임드 NPC나 동료들은 크건 작건 비밀이 있다.

이븐 시나는 악신 아포피스의 저주를 받았으며, 라그나르 로드브로크는 오딘의 힘과 의지를 이은 반신이며, 칼리나는 카노사의 굴욕에서 교황을 숨겨줬던 카노사 여백작의 후손이었다.

반면 힐데는 단순히 정화교단의 성녀로만 나왔었는데 이번에 새롭게 업데이트되면서 지금은 망해 없어진 웨식스 왕조의 왕위 계승권을 가진 계승자라는 설정이 추가된 모양이었다.

거기에 플레이어에게 아일랜드와의 연관성을 주기 위해 힐데의 모계가 켈트 출신이라는 설정도 추가했을 테고.

즉, 아일랜드를 기반으로 스코틀랜드와 웨일즈, 잉글랜드를 하나로 통합해라! 라는 게 개발사의 의도인 것이다.

다만 아일랜드가 스타팅 포인트로 썩 좋은 곳은 아니었기에 앵글로 색슨 7왕국도 모자라 노르만 왕조와 스코틀랜드로 나라를 쪼개서 난이도를 조절해 놓은 것이다.

이건 삼국지 게임이랑 똑같은데 위, 촉, 오 3개의 세력이 고착화된 것보다 수많은 군소 세력들이 각 지역에 난립하는 게 플레이어 입장에서 더 편하지 않던가?

물론 난이도 특성상 어느 정도 페널티가 있겠지만 상관없다. 나는 이미 영국을 제외한 유럽의 북부 태반을 장악했고 이는 아무것도 없이 아일랜드에서 시작할 때보다 더 쉽게 메인 퀘스트를 깰 수 있다는 얘기였으니까.

“아일랜드에서 적들의 후방을 압박해 양면 전선을 강요하겠다는 말이군. 그리고 우리는 자네가 아일랜드를 점령할 동안 적들의 시선을 끌어줘야 할 테고.”

“정확하십니다.”

“으음… 괜찮은 방법이네만 할 수 있겠나? 자네가 얘기한 것처럼 자원이 한정되어 있으니 길게 시간을 끌 수는 없을 걸세.”

“6개월이면 충분합니다.”

“좋아. 우리가 뭘 어떻게 하면 되겠나?”

“우선 사자공 전하께서는 먼저 노르망디를 점령해주십시오. 함부르크에서 런던까지 가기에는 길도 험하고 항해 거리도 길어지지 않습니까?”

“노르망디를? 프랑스가 가만히 있겠나?”

“당연히 가만히 있지는 않겠지만 1년만 조차한다고 하시지요.”

물론 프랑스 입장에서는 자기네 땅을 가지고 엉뚱한 놈들이 싸우는 것처럼 보이겠지만 뭐 어쩌겠는가?

거기에 노르망디 전체를 다 공격하는 것도 아니고 존 왕의 직할지 일부와 항구도시만 공격할 테니 그쪽도 괜히 이쪽과 싸우려고 들지는 않을 것이다.

“이쪽에서 쓰다가 일이 다 끝나면 돌려준다고 하자는 거군.”

“그렇습니다. 설사 저희와 적대한다고 하더라도 아키텐부터 먹으려고 할 겁니다. 사자공 전하께서도 아시다시피 그쪽 동네의 생산량이 어마어마하지 않습니까?”

“그건 그렇네만 그래도 혹시 모를 일 아닌가?”

“불안하시면 칼리나에게 얘기해 검은 용군단을 추가로 파견해 달라고 하겠습니다. 너무 걱정하지 마십시오.”

“하긴, 필리프 입장에서도 괜히 이쪽과 시비붙는 것보다 얌전히 구경이나 하다가 챙길 것만 챙기는 게 이득이겠지.”

뭐, 솔직히 나는 프랑스가 우리를 적대해도 상관없다. 그럼 하는 김에 프랑스도 갈아버리면 그만이니까.

“아무튼, 노르망디 관련해서는 사자공 전하께서 잘 처리해주십시오.”

“알겠네.”

“그럼 노르망디 방면은 됐고… 하랄 자네는 스코틀랜드를 침공해주게.”

“스코틀랜드라… 알겠네. 이전에도 몇 번 갔던 곳이니 크게 문제 될 건 없을 걸세.”

“자네를 믿네만 스코틀랜드 왕국의 왕인 카우산틴 2세는 걸출한 인물이니 조심하게.”

후대에 명군이라고 이름을 떨칠 정도니 나름대로 능력은 있을 것이다. 하랄을 믿긴 하지만 그래도 혹시 모르는 일이다.

“일단 작전의 큰 개요는 그렇고 추가로….”

그렇게 나는 밤새도록 둘과 작전에 대해 논의했다. 따로따로 움직이기에 수많은 변수가 생겨날 수밖에 없었고 각자 임기응변으로 대응하더라도 큰 골자는 정해놔야 했기 때문이다.

북쪽으로 가기로 했으면 동쪽이나 서쪽, 심지어 남쪽을 경유해 돌아가더라도 결과적으로 다 같이 북쪽으로 가야 하지 않겠나.

그렇게 긴 시간 동안 회의를 마친 나는 함부르크로 돌아왔고 작전 실행일이 되자마자 제노바에서 끌고 온 내 기함. 궁니르에 올라 아일랜드의 얼스터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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