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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임 속 바이킹이 되었다-169화 (169/205)

▣ 169화

하인리히가 제국의 황제에 오른 뒤 1년 반의 시간이 지났다. 이 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을 시간 동안 우리는 각자 바쁘게 지냈고 그동안 여러 가지 일이 있었다.

우선 북부는 나와 수하들의 노력으로 간신히 안정됐고 그 결과 하랄은 노르웨이와 덴마크 동군연합의 왕이 됐다.

사실 이건 웃기게도 결과만 놓고 보면 크게 바뀐 건 없었다. 덴마크―노르웨이 동군연합은 군힐드와 에릭이 만들어 놨었고 하랄은 누이와 매부의 왕위를 물려받은 것에 불과하니까.

허나 그 과정은 다사다난하고 복잡했는데 우선 불순분자들을 제거하는 것부터가 난관이었다.

동양의 군주들… 그러니까 뭐 중국이나 한반도 같은 곳에서는 반역자와 그에 동조한 이들을 처형하는 건 왕의 정당한 권리행사였다.

흔히들 드라마를 보면 삼족을 멸한다든가 하지 않던가? 그처럼 반란을 일으킨 주모자의 사형은 당연한 일이었고 오히려 어떻게 죽일지를 논의하는 게 대부분이었다.

하지만 서양은, 적어도 신성로마제국의 황제는 하인리히만 봐도 알 수 있듯 선제후들 사이의 인기 투표나 매한가지였다.

그런 만큼 황제의 권한이 동양에 비해 약할 수밖에 없었고 서양식 봉건제 자체가 동양과는 판이하게 다르다 보니 사후 처리에 관해서도 차이가 날 수밖에 없었다.

왜 사회 시간에 영주와 왕의 관계는 쌍무적 계약관계라고 배우지 않던가? 이는 말 그대로 계약관계지 주종관계가 아니라는 말이었다.

그런 관점에서 보면 황제가 대영주와 싸울 때 각 영주들은 자신의 주군의 편을 들어 싸우는 게 일반적이었다. 그리고 누군가가 승리하더라도 승리자는 패배자의 밑에서 싸운 영주들을 처벌할 수 없었다.

실제로 프리드리히 바르바로사가 하인리히 사자공을 숙청하려 할 때도 황제 본인이 숙청 실패의 여파만 감내해야 했을 뿐 추가적인 뒷감당은 없었다.

황제뿐 아니라 사자공도 황제와의 싸움에서 자신의 편을 들지 않은 작센과 바이에른의 영주들을 처벌할 수 없었다.

생각이야 그들이 괘씸하고 좆같을 테지만 황제가 아웃로(outlaw)라는 형벌을 내렸고, 그 명분과 형벌이 정당하다 생각하면 중립을 지키거나 황제에게 붙을 수 있는 거니까.

그리고 이건 하랄과 군힐드 사이의 전쟁에도 똑같이 적용되는 얘기였다. 야를들은 본인이 맺은 계약에 따라 군힐드의 편에 서서 싸웠고 이를 이유로 숙청하는 건 역풍을 맞기에 딱 좋았다.

“참 불합리한 일이야.”

“뭐가 말입니까?”

뜬금없는 내 말에도 힐데는 평범하게 반응해줬고 나는 마지막 남은 살생부에 취소선을 그으며 어깨를 으쓱였다.

“영주들 조지는 거 말이야.”

“확실히, 생각보다 번거롭더군요. 마음 같아서는 싹 쓸어버리고 싶습니다만….”

“나도 할 수 있으면 그랬을 텐데 잘못하면 뒷감당이 안 되잖아. 또 반란 일어나면 진압하는 데 한세월은 걸릴걸?”

“그래도 1년 반이면 선방한 것 아닙니까?”

“그렇긴 하지. 아무튼 너도 이 기회에 대충 배워놔.”

중세는 특이하게도 사람 조지는 법을 따로 배워야 했는데 영주들을 잘못 조져서 망한 대표적인 예가 바로 잉글랜드의 존 왕이었다.

그는 자신에게 반란을 일으킨 영주들을 상대로 대승을 거뒀지만, 사후 처리 과정에서 큰 실수를 범했다.

승리의 흥분으로 눈에 뵈는 게 없어진 건지, 아니면 분노로 머리가 안 돌아갔는지는 모르겠지만, 그는 거진 20명에 달하는 영주들을 차디찬 지하감옥에서 굶겨 죽였다.

이것만으로도 경악할 일이건만 반란의 당사자인 브르타뉴 공작을 암살해서 시신을 유기한 것도 모자라 자신의 가장 강력한 동맹이던 앙주의 영주를 무시하는 처사까지 보였다.

앙주가 노르망디의 남부, 브르타뉴의 동부에 있다는 걸 감안해보면 받들어 모셔도 모자랄 판국에 무시하기까지 했으니 그가 한 번의 승리로 얼마나 오만에 가득 차 있었는지 알 수 있을 터였다.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자신의 형이자 사자심왕이라고 불렸던 리처드에 대한 열등감이 이런 식으로 나타난 게 아닌가 싶다. 모두에게 자신도 리처드 못지않은 왕이라고 보여주고 싶었겠지.

하지만 뒤틀린 사랑의 결말이 파국이듯, 그의 행동 하나하나는 영주들에게서 공분을 샀고 결국 프랑스령의 영주들은 존 왕에게서 이탈해 필리프 2세의 편을 들었다.

한국인 입장에서 보면 이게 뭔 개소리인가 싶겠지만, 이는 영주들의 정당한 권리였다.

그들은 프랑스의 왕인 필리프 2세와 프랑스의 대영주인 존 왕 사이에서 고민하다가 존 왕의 편을 들었는데 병신 짓을 하고 폭정을 펼치니 프랑스 왕인 필리프 2세의 편을 든 것이다.

그 결과 그는 필리프 2세와 제대로 싸우기도 전에 수많은 땅을 잃어야 했다. 여기서 뭔가 깨달음을 얻었다면 좋을 테지만 사태는 점점 나락으로 흘렀고 결국, 그에게 남은 건 노르망디와 아키텐뿐이었다.

이처럼 존 왕의 일은 우리가 보고 배워야 할 사례였고 그 때문에 하랄도 적대적인 영주들에 대해서 몸값을 받거나 작위를 몰수한 뒤 배상하는 형식의 처벌밖에 내릴 수 없었다.

몽골이 미친놈들 소리 들은 것도 몸값이고 나발이고 협상조차 하지 않고 모조리 몰살했기 때문이었고.

여담이긴 한데 종종 이 게임을 처음 접한 뉴비들이 이런 중세 감수성을 이해하지 못하고 게임오버 당하는 경우가 잦았는데 리플레이를 보면 그들 대부분 존 왕처럼 플레이를 했다.

물론 이해 못 할 건 아니다. 신나게 정복 사업하고 내정 다 돌려놨는데 아무것도 안 하고 쌀먹만 하고 있던 수하라는 놈들이 반란을 일으켰다.

당연히 눈 돌아가서 반란을 진압한 뒤 주모자들에게 씻을 수 없는 모멸감을 주며 그가 가진 모든 것을 빼앗는 것도 모자라 자식과 부모에게도 죄를 묻는 것은 물론이요 조리돌림까지 하면서 반란의 대가를 톡톡히 치르게 한다.

헌데 그 이후 뭔가 상황이 이상해지는 것이다. 간이고 쓸개고 내줄 것처럼 행동하던 동맹들이 전부 자신을 손절하고 교회의 파문빔을 맞는 것도 모자라 믿고 있던 수하들까지 돌아서는 상황에 처하는 것이다.

상황이 이렇게 돌아가면 대부분의 뉴비들은 과정은 다르지만 비슷한 결말을 맞이한다.

수하의 칼이 등 뒤에 찔리든, 전투에 패해 참수당하든, 아니면 지하 감옥에 갇혀서 비참하게 굶어 죽든, 모두가 공평하게 게임오버라는 결과를 맞이하는 것이다.

당연히 뉴비 입장에선 뭐지? 버근가? 싶을 것이다. 그래서 분노의 5700자를 공략 사이트에 올려보지만 안타깝게도 올드비들의 일용할 웃음거리로 전락하고 마는 것이다.

아무튼, 뭐 이런 이유들 때문에 실제로 군힐드와 전쟁을 하는 것보다 그 뒤처리가 더 힘들었다.

군힐드와 에릭을 공개처형 한 건 그럴듯한 명분과 혼란을 틈타서 시행한 거지 그게 정당해서 그런 건 아니었다.

이마저도 다른 이들에게는 죄를 묻지 않는다는 약조를 걸고 나서야 가능했던 거지만 하랄 입장에서 불안 요인을 그대로 내버려 두고 갈 수는 없었다.

중립을 지키거나 전쟁이 벌어지자 군힐드의 편에 서서 싸운 놈들이라면 몰라도, 자신이 왕일 때 앞장서서 배신한 놈들까지 용서할 수는 없었다.

그러나 하랄이 직접 나설 수는 없었고 그 고민을 해결해준 게 바로 나였다. 그래도 묵은 감정이 있는 하랄보다는 내가 좀 더 공정하지 않겠는가.

군대에서 마음에 안 드는 놈은 주특기로 갈구고, 회사에서 마음에 안 드는 놈에게 과중한 업무를 주고 실수하면 갈구듯, 영주들을 갈구는 방법도 따로 존재했다.

그건 예상외로 감찰이었는데 털어서 먼지 안 나는 인간은 없었고 대부분의 영주들은 알게 모르게 불법을 저지르기 때문이었다. 불법의 정도가 심대한지 사소한지는 상관이 없었다.

민주국가라는 대한민국에서도 배고파서 라면 훔친 건 징역 3년이요, 몇천억을 횡령한 놈이 휠체어 타고 들어와 집행유예를 받는 세상이다.

하랄의 친우이자 신성 제국의 용담공이며 오딘의 대전사이자 북부 동맹의 맹주인 내가 마음먹고 조지는 걸 막을 이들은 아무도 없었다.

물론 감찰은 다르게 바라보면 내정간섭으로 비칠 수도 있지만 적어도 덴마크에서 북부 연맹의 손길이 닿지 않은 지역은 없었다.

북부 연맹의 맹주로서 패악질을 하는 것도 아니고 정당한 법에 의거해 맹주의 권한을 행사하는 걸 어떻게 막는단 말인가.

거기에 받는 놈이나 하는 놈이나 감찰은 결국 핑곗거리라는 걸 알고 있기 때문에 미치고 팔짝 뛰는 상황에 처하게 되는 것이다.

억울함을 호소하려 해도 표적 수사를 하는 꼴을 보면 어디 선에서 맺고 끊으려는 게 보였기에 대부분의 영주들은 침묵했다. 결국 제일 중요한 건 자신의 안위가 아니겠는가.

표적의 대상이 된 영주들이 이건 말도 안 되는 폭정이라며 항거했지만 그들의 외침은 소리 없는 아우성으로 끝날 수밖에 없었다.

결국 그들은 가지고 있는 모든걸 내려놓으며 하랄에게 절대복종해야 했고 하랄은 관대하게 그들을 받아주며 내부 숙청을 마무리 지었다.

이게 우리가 근 1년 반 동안 한 일이었다. 고작 이거 하는데 1년 반이나 걸렸어? 라는 말이 나올지도 모르지만, 솔직히 이 정도면 엄청 선방한 거라고 생각한다.

아무튼, 결과적으로 덴마크도 과거 전쟁의 상처를 극복했고 북부 연맹을 통해 경제적으로 정비를 끝마쳤으며 동원된 병력들은 전사로 탈바꿈해 새로운 땅을 정복할 준비를 끝마쳤다.

그리고 얼마 전에는 예상대로 하인리히 6세가 죽음을 맞이했고 그 자리를 오토가 차지했다. 다만 이전처럼 분위기가 험악해지거나 유혈사태가 벌어진 건 아니었다.

여기에는 여러 가지 이유가 있는데 우선 황제가 될만한 사람이 없었다.

하인리히 6세의 아들은 황제가 되기에는 너무 어렸고 필리프는 본인이 생각이 없다며 고사했다. 그렇다고 여성인 칼리나가 황제가 될 수도 없고 야만인인 내가 될 수도 없었다.

사자공은 본인도 부담스러워했고 다른 이들도 그를 부담스러워했기에 결국 그의 아들인 오토가 황위에 오를 수밖에 없었다.

물론 몇몇 선제후들이 눈치 없이 황제의 자리에 도전하려 하다가 내 눈치를 보고 빠진 해프닝이 있기는 했지만… 그건 말 그대로 해프닝일 뿐이었다.

거기에 최근 반(反)호엔슈타우펜 기치가 심해진 것도 오토가 황제가 될 수 있던 원인 중 하나였다.

많은 사람들이 호엔슈타우펜의 긴 통치에 염증을 느끼기도 했고 하인리히 6세가 슈바벤을 복구하면서 다소 강압적으로 통치를 했기 때문에 호엔슈타우펜에 대한 인식이 좋은 편은 아니었다.

그 때문에 주교나 다른 선제후들은 자신들에게 터치를 안 한다는 전제조건하에 오토를 황제로 밀어주었고 덕분에 나는 의도치 않게 사자의 비상 퀘스트를 깰 수 있었다.

물론 그래봤자 호감도와 지지를 얻는 게 전부였기에 별로 깨는 의미가 없는 퀘스트이기도 했다. 이미 나와 벨프가는 서로의 이권이 거미줄처럼 엮여 있는 관계가 아니던가.

아무튼, 그 이외에도 약간의 영지 조정이 있었는데 슈바벤은 다시 필리프의 손에 들어갔다. 뭐 이건 정당한 작위 승계였다. 원래도 슈바벤은 호엔슈타우펜 가문의 영지였으니까.

문제는 바이에른의 처우였는데 벨프가는 바이에른을 돌려받기를 원했다. 반면 호엔슈타우펜 가문은 황제위까지 가져갔는데 바이에른까지 가져가는 건 욕심이라 생각했다.

결국 내가 나서서 둘을 중재했고 바이에른은 적당히 갈라서 나눠 가졌다. 물론 이 같은 처사에 일부 바이에른의 영주들이 반발했지만 뭐 어쩌겠는가? 법도 주먹도 우리가 더 가까운데.

사실 이건 내가 의도하긴 했다. 나는 황제가 될 생각은 없었지만 그렇다고 신성 제국 내에서 가지는 패권까지 양보할 생각은 없었다.

호엔슈타우펜이든 벨프든 내가 통제하기 위해서는 나 자신도 힘을 가지고 있어야 했다. 그런 점에서 바이에른은 가치가 큰 지역이었고 이곳의 생산력은 타의 추종을 불허했다.

사자공이 동방 식민지 운동을 할 돈이 어디에서 나왔다고 생각하는가? 왜 프리드리히가 무리수라는 걸 알면서도 바이에른의 통치권을 두고 사자공과 다퉜겠는가?

이렇게 신성 제국이 크다면 큰, 작다면 작은 변화를 거치고 있는 동안 옆 나라 잉글랜드에서는 환상의 똥꼬쇼가 벌어지고 있었다.

우선 잉글랜드에서는 과거 앵글로색슨 7왕국이 재현되었다. 존 왕은 웨일즈 지방에 일어난 반란을 진압하러 갔다가 런던에서 반란이 일어나는 틈에 그대로 웨일즈에 머물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잉글랜드가 혼란에 빠진 틈을 타서 아일랜드도 독립을 선포했으며 스코틀랜드는 독립 왕국으로 만족하지 못하고 자신들이 영국을 통일할 생각으로 가득 차 있었다.

즉, 이미 판이 깔렸고 이는 곧 바이킹이, 이교도 대군세가 다시 한번 영국으로 진군할 시간이 왔다는 얘기였다.

다만 그 전에 나는 힐데에게 한 가지 확언을 받아야 했다. 평양감사도 저 싫으면 안 한다고 했었지. 내가 밥을 차려놔도 당사자가 먹기 싫다고 뱉어내면 그만이었다.

“힐데. 이제 선택할 시간이다.”

내 말에 그녀는 들리지 않는다는 듯 일부러 모른 체했고 나는 좀 더 강하게 얘기했다.

“힐데가르트 고드윈. 나는 과거 네 아버지인 해럴드와 약속을 했다. 그는 고드윈이라는 이름의 굴레와 과거의 망령을 자신의 선에서 끊어달라고 했었지.”

“그래서 나는 의도적으로 네게 이에 대해서 얘기하지 않았다. 하지만 너도 이제 성인이 됐으니 너 스스로 선택을 해야될 때가 왔다.”

“선택해라. 힐데가르트 고드윈으로서 살아갈 건지, 아니면 빙옌의 힐데가르트로서 살아갈 건지.”

내 차가운 말에 잠시 뜸 들이던 그녀는 내 눈동자를 바라보며 물었다.

“만약 제가 여왕이 된다고 하면 라그나르 당신은 어떻게 할 겁니까?”

“너희 가문과 한 맹세에 의거해 네가 여왕이 될 때까지 옆에서 돕겠지.”

“그 약속이 끝나면 어떻게 되는 겁니까? 이전에 칼리나 변경백의 곁을 떠난 것처럼 제 곁을 떠날 겁니까?”

“글쎄, 그때가 되어봐야 알겠지?”

솔직히 나도 모르겠다. 메인 퀘스트를 깨면 어떻게 되는 것일까? 이 꿈에서 깨어나 원래의 삶으로 돌아가는 걸까? 아니면 또 다른 퀘스트가 이어지는 것일까?

“그럼 저와 하나만 약속해주십시오.”

“글쎄… 백지 약속이 얼마나 무서운지 너도 잘 알잖아. 일단 들어나 볼게.”

“당신의 죄의식과 부채감을 전부 탕감하더라도, 저희의 관계는 지금과 달라질 게 없겠지요?”

“물론이지. 우리가 지금껏 이어온 인연이 그렇게 쉽게 변할 리 없잖아?”

내 끄덕임에 그녀는 깊게 숨을 들이쉬더니 스스로의 운명을 천명했다.

“그렇다면 저는, 웨식스의 여왕으로서 당당히 잉글랜드로 돌아가도록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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