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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임 속 바이킹이 되었다-168화 (168/205)

▣ 168화

결국, 나와 사자공, 칼리나의 압도적인 지지를 받은 하인리히는 무사히 황제위에 오를 수 있었다. 물론 그 대가로 바이에른을 뱉어내야 했지만, 하인리히의 입장에선 충분히 감내할 수 있는 대가였다.

어릴 때 유리병 안에 손을 집어넣어 과자를 잔뜩 움켜쥐고 꺼내려 한 아기의 이야기를 한 번쯤 들어보지 않았던가.

그 아이의 손을 빼기 위해선 쥐고 있는 과자를 덜어내야 했다. 하지만 어린아이가 그런 생각을 할 수 있겠는가?

아이는 그 안에 있는 모든 과자가 자신의 것이라 생각했겠지만, 결국 아이가 꺼낼 수 있는 과자의 양은 한정되어 있다.

권력도 매한가지다. 하인리히가 멍청했다면 그는 황제위도, 바이에른도, 자신의 아비가 누리던 모든 것이 자신의 것이라 생각하겠지만, 그는 현실을 알았다.

그렇기에 자신이 가질 수 있는 게 무엇이고, 가질 수 없는 게 무엇인지 잘 알았고, 덕분에 우리와 극적으로 타협할 수 있었다.

애초에 우리의 제안을 받아들이는 것 말고는 선택지가 없었겠지만, 좋은 게 좋은 거 아니던가.

아무튼, 그렇게 긴장감을 불러모았던 황제 선출식은 의외로 맥없이 끝나고 말았다. 전쟁특수를 바라던 이들은 피눈물을 흘렸겠지만, 그것까진 내가 알 바 아니지.

그리고 모든 일이 끝난 지금, 우리는 다 같이 모여서 연회를 벌이고 있었다. 물론 연회라고 해봤자 이곳에 있는 건 나와 힐데, 이비, 사자공이 전부였지만 말이다.

칼리나도 오고 싶어 했지만… 안타깝게도 신성 제국의 변경백이자 검은 용군단의 수장은 그렇게 한가한 자리가 아니었다.

나머지 인물들은 보안상의 이유도 있고 이런 자리에 낄 격이 안 돼서 하나둘 빠지다 보니 이렇게 조촐한 연회 자리가 마련된 것이다.

“이런… 자네 술잔이 빈 것 같은데 내 술도 한잔 받게.”

사자공은 불콰해진 얼굴로 내 빈 잔에 맥주를 가득 따라주었다. 나 역시 비어있는 그의 잔에 맥주를 채워준 뒤 가볍게 잔을 부딪쳤다.

단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호탕하게 잔을 비운 사자공은 거칠게 입가를 훔치며 물었다.

“크흐… 좋구만. 그나저나 라그나르 자네 그 고집불통은 어떻게 설득한 건가? 하는 것만 보면 우리와 전쟁이라도 불사할 기세였는데.”

“감당할 수 없는 것을 욕심내지 않는 것. 그게 통치자가 가져야 할 덕목 아니겠습니까? 그걸 일깨워줬을 뿐입니다.”

“오, 제법 철학적인 이야기구만. 혹시 옆에 있는 성녀님이 가르쳐줬나?”

사자공이 내 옆에서 얌전히 와인을 홀짝이는 힐데를 보며 물었지만 나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냥 용병 일을 하면서 이리저리 발품을 팔다 보면 알기 싫어도 알게 되더군요. 용병 일이라는 게 원래 목숨과 직결된 일이 아닙니까?”

“하긴, 경험은 최고의 선생이지. 나도 그걸 진작에 깨달았다면 참 좋았을 텐데 아쉽구만.”

프리드리히에게 숙청당할 뻔했던 일을 이야기하며 사자공은 씁쓸하게 웃었고 나는 그런 그의 잔에 맥주를 따라주며 한마디 덧붙였다.

“흐흐흐, 그래도 이제 노후는 편하게 지내실 수 있지 않습니까?”

“글쎄… 나도 그러고 싶네만 자네는 죽기 전까지 날 부려먹을 생각이잖나.”

“부려먹다니요. 그 누가 사자공 전하를 부려먹을 수 있겠습니까?”

너스레를 떠는 나의 말에 사자공은 콧방귀를 뀌며 지랄하지 말라는 표정으로 대꾸했다.

“마음에도 없는 말은 하지 말게. 애초에 누가 하인리히를 황제라고 생각하겠나? 사정을 아는 이들이라면 오히려 자네를 황제라고 생각할 걸세.”

어찌 보면 굉장히 오만한 말이었지만 그게 마냥 근거 없는 얘기는 아니었다. 우선 제국의 남부를 꽉 잡고 있는 칼리나와 나는 거진 사실혼 관계다.

베네치아? 베네치아는 거의 몰락해서 숨만 붙어있는 상태고, 새롭게 지중해의 패자로 떠오른 제노바와는 강력한 혈맹관계를 구축하고 있다.

중부? 본래 중부는 슈바벤과 상, 하 로트링겐을 필두로 호엔슈타우펜과 그의 강력한 우군들로 가득했다.

하지만 사자공 숙청 실패의 여파로 로트링겐과 슈바벤의 사이에는 냉기가 흘렀으며 기껏 뺏은 바이에른은 내게 협조적인 필리프의 손에 들어갔다.

북부? 하인리히 사자공과 작센은 이미 내 최대의 우군이었고 폴란드의 카지미에슈 정의공 역시 나에 대한 지지를 천명했으며 하랄 블로탄과는 거진 운명공동체나 다름없었다.

거기에 나름 규모가 큰 종교집단인 정화교단의 성녀가 나와 함께 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막말로 내가 기침 한 번 하면 영지 하나 작살나는 건 일도 아니었다.

하지만 나는 결코 황제의 자리에 앉을 생각은 없다. 삼국지의 동탁이 왜 황제의 자리에 오르지 않고 상국의 자리에 만족했겠는가?

왜 나는 새도 떨어뜨린다는 권력을 지닌 조조가 끝까지 황제위에 오르지 않고 후한 최후의 승상이자 위왕으로 남았겠는가?

그게 다 눈치가 보여서 그런 거다. 실제로 선을 넘지 않은 대가로 조조는 천수를 누렸지만 동탁은 여포의 방천화극에 생을 마감하지 않았던가? 난 동탁의 전철을 밟을 생각이 없었다.

“그런 자리에 앉고 싶은 생각은 없습니다. 이미 황제처럼 살고 있는데 굳이 황제가 되어야 할 이유가 어디 있습니까?”

“호오, 황제처럼 산다라? 그게 어떤 삶인가?”

“이렇게 아무 걱정 없이 양옆에 아름다운 미인이 있고, 돈 걱정 없이 술을 사주는 친우가 있으며, 일을 믿고 맡길 수 있는 수하들이 있는 것. 이게 곧 황제의 삶이 아니겠습니까? 어쩌면 황제보다 더 나은 삶일지도 모르겠군요.”

내가 힐데와 이비의 어깨에 손을 올리며 얘기하자 사자공은 어이없다는 표정으로 물었다.

“허, 자네 방금 자기 입으로 감당할 수 없는 건 욕심내지 말아야 한다고 하지 않았나?”

“바꿔말하면 제가 감당할 수 있다는 게 아니겠습니까?”

뭐, 조금 무리하면 하룻밤에 세 명까지는 가능하지 않을까? 이래 봬도 반신 아니던가? 물론 오딘이 그런 의도로 날 반신으로 만든 건 아닐 테지만 말이다.

“푸하하핫, 그렇게 해석할 수도 있겠구만. 아무튼, 자네가 그렇게까지 얘기하니 번거로운 건 우리가 다 맡아서 처리하도록 하겠네. 그게 자네에게도 편하지 않겠나?”

“좋으실 대로 하십시오. 그게 원래 우리가 맺었던 계약이지 않습니까?”

내 확답에 사자공은 만족한 표정이었는데 아무래도 나날이 커져 가는 내 위세가 불안했던 모양이다. 권력은 부자간에도 나눌 수 없다는 말처럼 황제라는 자리는 사람의 눈을 멀게 만드는 마성이 있었으니까.

만약 내가 오토를 황제로 만들겠다는 약속을 내팽개치고 스스로 황제위에 올라도 사자공으로서는 할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었다.

거기에 본래 동맹이라는 건 서로 간에 이익을 주고받을 수 있을 때 성립하는 게 아니던가?

미국이 과거 전쟁을 벌였던 일본과 동맹을 맺은 것도, 6.25 전쟁 때 수많은 군인들을 투입해서 남한을 수호했던 것도 그게 자국에 이익이 됐기 때문이다.

“그나저나 잉글랜드는 어떻게 할 텐가? 솔직히 난 공격할 거라면 왕국이 분열되어 있는 지금이 기회라 생각하네만.”

사자공의 말대로 사자심왕 리처드 사후 새롭게 잉글랜드의 왕위에 오른 결지왕 존은 열심히 똥볼을 차고 있었다.

아무리 형만 한 아우 없다지만 존은 사실 프랑스에서 키운 스파이가 아닐까라는 의문이 들 정도로 시원하게 나라를 말아먹고 있었다.

브르타뉴 공작이자 조카였던 아서와 왕위 계승 다툼을 시작으로 하나둘 지지기반을 잃어가더니 어느덧 지금 와서는 노르망디와 아키텐 지역 일부를 제외하고는 전부 다 잃어버렸다.

그가 잃어버린 영토가 얼마나 큰지는 리처드가 왕으로 있던 시기와 존이 왕으로 있던 시기의 영토만 비교해봐도 한눈에 알 수 있을 정도였다.

오죽하면 수많은 별명 중에서 결지왕(缺地王)이라고 불렸겠는가? 아마 이완용이 존 왕을 보면 엄지를 치켜들며 역시 나라는 저렇게 말아먹는 거라고 감탄하지 않을까?

아무튼, 잉글랜드의 상황이 개판이다 보니 내부에서 반란의 기미가 스멀스멀 기어 올라오고 있었다.

우선 윌리엄 1세에게 멸망한 앵글로 색슨의 7왕국(노섬브리아, 머시아, 동앵글리아, 웨식스, 서식스. 에식스, 켄트)이 다시 일어서기 위해 결집하고 있었다.

또한, 노르만의 공격을 받고 있던 스코틀랜드는 잉글랜드가 휘청이는 틈을 타서 스코틀랜드 왕국을 세웠다.

물론 시기에 걸맞지 않게 300년 전의 인물인 카우산틴 2세가 왕위에 오른 건 이해가 되지 않았지만… 애초에 원역사대로 흘러가는 것도 아니지 않은가.

중요한 건 스코틀랜드가 독립 왕국을 세웠다는 점이었다. 그리고 이게 자극을 줬는지 아일랜드 역시 새롭게 지각변동이 일어나고 있었다.

음지에서 숨죽이고 있던 게일인들이 들고 일어나기 시작했으며 그 중심지는 과거 4왕국(얼스터, 먼스터, 렌스터, 코노트)의 수도였다.

하지만 지금은 그저 반란의 씨앗이 뿌리내린 것에 불과했으며 잉글랜드의 영향력은 여전히 건재했다. 우리가 제대로 행동을 시작하는 건 그들이 싹을 틔웠을 때다.

“틀린 말씀은 아니지만 저희는 최근 전쟁을 너무 많이 벌였습니다. 이대로 전쟁을 벌이면 뒷심이 받쳐주지 못할 겁니다. 거기에 모든 후환이 제거된 건 아니잖습니까?”

그 후환이 새롭게 황제에 오른 하인리히라는 걸 알고 있는 사자공은 주변을 한 번 둘러보더니 조심스럽게 물었다.

“그렇다고 이대로 두 손 놓고 황제가 죽을 때까지 기다릴 수도 없지 않나?”

“너무 걱정하지 마십시오. 길어야 2년을 못 갈 겁니다.”

미래에서 온 것처럼 확고하게 단언하는 내 모습에 사자공은 고개를 갸웃거리며 물었다.

“뭘 믿고 그렇게 확신하나? 프리드리히도 당장 죽을 것처럼 하더니 1년 정도는 버텼다네. 그마저도 천수를 다한 건지 저쪽에서 죽인 건지 알 수 없지만 말일세.”

“이비가 확신하니 믿으셔도 될 겁니다. 그렇지 이비?”

“물론입니다. 주군. 감히 주군의 명예를 걸고 단언컨대 그는 2년 안에 죽을 겁니다.”

사자공 역시 이비의 의술 실력을 알고 있기 때문인지 그는 순순히 고개를 끄덕였다.

“흠, 자네의 주치의가 그렇게까지 확신한다면야… 일단은 믿어보겠네.”

“너무 걱정하실 것 없습니다. 2년 안에 안 죽으면 암살하면 그만 아닙니까.”

이랬거나 저랬거나 죽기만 하면 그만이다. 그게 자연사든, 암살이든 무슨 상관인가. 물론 사자공은 어이없다는 표정이었다.

“그래도 한 제국의 황제인데 암살한다는 얘기를 그렇게 쉽게 하는 건 자네밖에 없을 걸세.”

과거 게임을 하며 칭기즈 칸의 목까지 따봤던 나다. 현실이 되긴 했지만, 하인리히의 목을 따는 게 그렇게 어려울 거라 생각하진 않는다. 탈출이 문제라서 그렇지.

어쨌든 그건 그때 가서 생각해봐야 할 문제다. 지금 당장 해결해야 할 문제들이 산적했는데 오지도 않은 미래까지 걱정할 필요는 없지 않은가.

“어쨌건 당장은 황제에게 관심을 끄고 내실을 다지는 데만 힘을 쏟아주십시오.”

“흠… 황제가 헛짓거리를 하지 않을까 불안하구만.”

“프리드리히의 장례식 문제도 있고 본인 대관식도 있고 하니 한동안은 눈코 뜰 새 없이 바쁠 겁니다. 거기에 자기 애비가 싼 똥을 치워야 될 테니 말 그대로 죽을 때까지 일만 하다 가겠군요.”

“거참, 그 친구도 불쌍한 인생이구만.”

“본인이 선택한 황제인데 어쩌겠습니까? 악으로 깡으로 버텨야지요.”

“알겠네. 그럼 그 문제는 넘겨두고… 자네는 그동안 뭘 할 생각인가?”

“저도 내실이나 다져야지요. 어차피 다들 바쁠 것 아닙니까?”

황제가 된 하인리히는 민심을 달래는 한편 경제 복구에 힘쓸 테고, 새롭게 바이에른공이 된 필리프는 바이에른을 장악하는 데 힘을 쏟겠지.

사자공 역시 작센의 영주들을 보듬는 한편 오토에게 마저 권력을 승계해야 할 것이다.

나는 나대로 영국 침공을 위해서 정비가 필요했다. 거기에 새롭게 만들어진 북부 동맹까지 관리하자면 몸이 열 개라도 모자랄 지경이었다.

“그럼 우리가 다음에 다시 보는 건 황제의 장레식이 되겠구만.”

“어쩌면, 오토의 대관식이 될지도 모르고요.”

내 대답이 마음에 들었는지 사자공은 오랜만에 아이처럼 활짝 웃으며 내게 악수를 청하며 손을 내밀었다.

“내 그날이 오기를, 이곳에서 손꼽아 기다리고 있겠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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