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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임 속 바이킹이 되었다-167화 (167/205)

▣ 167화

나는 옷매무새를 가다듬은 뒤 칼리나와 힐데를 끌고 하인리히의 저택으로 향했다.

사실 지금 시점에서 힐데와 칼리나를 함께 데리고 있는 건 화약고 앞에서 불놀이를 하는 것과 다를 바 없었지만 어쩔 수 없다.

칼리나야 명실상부 남부의 지배자이자 검은 용군단의 수장이었으며 프리드리히가 임명한 제국의 선제후였다.

힐데 역시 전투력 하나는 최고라고 소문난 정화교단의 성녀이자 내 옆에서 수많은 전투를 승리로 이끈 조력자였다.

이 둘만 데려가도 하인리히가 받는 압박감은 한층 더 커질 것이다. 물론 그것과는 별개로 저택에 가는 와중에 힐데와 칼리나는 서로를 비꼬면서 끊임없이 삐걱거렸다.

“얌전한 고양이가 부뚜막에 먼저 올라간다더니… 어제 재미 좀 봤나 봐? 앙앙거리는 소리가 내 침실까지 들려오던데?”

선빵은 칼리나였다. 그녀는 두 눈을 가늘게 뜨며 힐데를 향해 톡 쏘아붙였지만 힐데는 아무렇지도 않게 받아쳤다.

“아, 저와 라그나르가 사랑을 나누는 소리가 거기까지 들렸습니까? 이것 참 부끄럽군요.”

물론 힐데는 전혀 부끄러운 표정이 아니었고 그 모습에 칼리나는 기가 찬다는 얼굴로 대꾸했다.

“혹시 성녀의 성이 성(聖)이 아니라 성(性)이었나? 그렇다면 그런 뻔뻔한 태도가 이해가 안 가는 것도 아닌데.”

“괜히 비꼬지 말고 부러우면 부럽다고 말로 하시지요. 아, 혹시 본인보다 라그나르가 절 마음에 들어할까 봐 그러는 겁니까?”

잠시 숨을 고르며 말을 멈춘 힐데는 가히 성녀와도 같은 미소를 지으며 한마디 덧붙였다.

“괜찮습니다. 저는 너그럽고 관대하니 가끔 라그나르가 당신을 찾아가는 건 눈감아 주겠습니다. 그게 마땅히 성녀이자 본처가 갖춰야 할 자비로움과 자애가 아니겠습니까?”

“글쎄, 라그나르는 내 몸을 더 마음에 들어하던 것 같은데… 애초에 그 빈약한 몸뚱아리를 가지고 라그나르에게 만족하라고 하면 그에게 미안하지 않아?”

칼리나는 힐데의 몸을 쓱 훑으며 비아냥거렸고 그걸 제법 신경 쓰고 있었는지 힐데는 이를 악물고 칼리나를 노려보았다.

“뭐, 라그나르도 맨날 똑같은 것만 먹으면 질리지 않겠어? 가끔은… 그래. 색다른 거라도 먹어봐야겠지. 그래야 내가 얼마나 소중한지 깨달을 거야. 안 그래 라그나르?”

뜬금없이 불똥이 나한테 튀었지만 나는 입을 다물었다. 달변은 은이요 침묵은 금이라 했던가. 이럴 때야말로 침묵은 금이라는 걸 알고 있었기에 나는 못 들은 척 발길을 재촉했다.

그리고 힐데는 건수를 잡았다는 듯 칼리나를 안쓰러운 표정으로 바라보며 이야기했다.

“저런, 라그나르는 젊은 여자를 좋아하는 걸 모르시나 보군요. 하긴, 스스로에게 자신이 없으니 라그나르가 자신을 사랑한다는 확신을 가지고 싶겠지요. 그게 전형적인 나이 든 여자의 특징이니 충분히 이해합니다.”

내가 알기로 둘의 나이 차이는 5살 정도로 알고 있다. 칼리나가 20대 중반. 힐데가르트가 20대 초반. 그런데도 불구하고 나이로 공격당하자 칼리나는 분한 듯 입술을 깨물며 침묵했다.

사람인 이상 나이라는 건 무슨 수를 써도 좁힐 수 없는 격차였다. 그리고 여자들 사이에서 나이라는 건 곧 젊음을 의미했다.

즉, 대부분의 남자가 젊은 여자를 좋아한다는 걸 고려해봤을 때 이것만큼 힐데에게 유리한 지표는 또 없겠지.

“흐음, 어떨까? 내가 듣기로 라그나르와 10년이 넘게 같이 살았다는데 맞아?”

“그렇습니다만? 혹시 부러운 겁니까?”

“아니, 전혀. 그런데 혹시 이런 생각은 안 해봤어? 그 10년이 넘는 세월 동안 라그나르가 널 보고 아무런 행동도 취하지 않았잖아? 그런데 뜬금없이 어제 안아 줬다라… 이게 뭘 뜻할까?”

“…무슨 소리를 하고 싶은 겁니까?”

힐데는 목소리를 낮추며 으르렁거렸지만 칼리나는 여유로운 표정으로 어깨를 으쓱였다.

“글쎄… 난 그저 네가 동정과 애정을 구분했으면 하는 것뿐이야.”

“뚫린 입이라고 맘대로 지껄이기는!!!”

결국 힐데가 분노를 이기지 못하고 신성력을 끌어모으자 칼리나 역시 검을 뽑을 태세를 취했다. 그렇게 둘의 다툼이 심화될 기미가 보이자 나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흐음, 저래서야 3P는 무리겠어. 안 그래 이비?”

“…예?”

이비는 지금 무슨 소리를 하느냐는 듯 날 쳐다보았고 나는 피식 웃었다.

“그냥 하는 소리야. 늦으면 하인리히가 지랄할 테니까 빨리 가기나 하자.”

“예? 어… 저기, 주군. 일단 두 분을 말려야 하지 않습니까?”

“이봐. 이비. 내가 저기서 누구 편을 들면 어떻게 될 것 같아? 이럴 땐 그냥 입 다물고 있는 게 상책이야.”

장담하건대 내가 저기에 끼어들어봤자 절대 좋은 꼴은 못 볼 것이다. 오히려 나야 저년이야 소리나 안 들으면 다행이지.

“그건 그렇습니다만….”

“그러고 너랑 있으면 모든 게 해결될 거야. 잠깐 실례할게.”

“예? 그게 무슨… 꺄악!”

나는 이비의 겨드랑이에 손을 집어넣은 뒤 그녀를 끌어 올려 내 말안장 위에 앉혔다. 그러자 그녀에게서 가냘픈 비명이 새어 나왔고 즉각 힐데와 칼리나의 시선이 이쪽으로 향했다.

둘은 자신들이 싸울 때 엉뚱한 년이 이득을 보자 서로 짜기라도 한 것처럼 즉각 다툼을 멈추고 말을 몰아서 내 옆으로 다가왔다.

다만 내가 이비를 거의 끌어안다시피 하고 있는데도 별다른 말이 없었는데 아무래도 눈앞의 상대보다는 이비가 낫다는 생각이 깔린 듯했다.

그 때문에 둘은 서로를 노려볼지언정 더 싸우지는 않았고, 덕분에 나는 무사히 하인리히의 저택에 방문할 수 있었다.

“살얼음판을 걷는 기분이었네. 그렇지? 이비?”

“후우… 주군. 이러실 거면 미리 말씀을 해주십시오. 솔직히 심장에 너무 안 좋습니다.”

“하하하. 미안해. 그나저나 이비 너는 이제 앞으로 어떻게 할 생각이야?”

“어떻게…라니요?”

“아니, 너도 크바스를 먹고 저주를 극복했잖아. 그럼 여행의 목표는 달성한 거 아니야?”

나는 그녀가 저주를 해주할 수 있도록 돕고, 그녀는 주치의로서 날 섬기는 것. 그게 나와 이비가 맺은 계약이었다.

“그건 그렇습니다만… 솔직히 전 제가 죽을 때까지 저주를 해제할 수 있을 거라곤 생각도 못 했습니다.”

그야 그럴 테지. 이비라고 자신의 저주를 풀기 위해 노력을 안 했겠는가? 다만 날 따라다닌 지 몇 년 만에 저주가 풀려버리니 그녀도 당혹스러울 것이다.

“다만 하나 확실한 건 저는 계속 주군의 옆에 있고 싶습니다. 이전에 제가 주군께 영원한 충성의 맹세를 하지 않았습니까?”

“난 그게 저주가 풀리는 것에 한정해서 그런 줄 알았지.”

“저주가 풀리든, 그렇지 않든 저는 주군께서 절 버리지 않는 이상 제가 죽는 그 순간까지 주군의 곁에 있을 생각이었습니다.”

“그래? 그것 참 다행이네. 좀 뜬금없긴 한데 힐데나 칼리나나 한 명 정도는 괜찮다고 했거든? 이거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해 이비?”

“예… 예?”

뜬금없는 내 질문에 그녀가 당황해서 되물었지만 나는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좋다고? 그래. 네가 좋다니 나도 좋네. 사실 지금에서야 하는 말이지만 가끔 네 몸을 마사지할 때 참는 게 여간 힘든 게 아니었거든.”

힐데도 그렇고 칼리나도 그렇고 둘 다 몸매가 좋긴 하지만 이비에 비할 바는 아니었다. 이비의 몸은 그야말로 압도적인 부드러움의 향연이자 폭력이었다.

부드러움과 폭력이라는 말이 공존한다는 게 이상했지만, 이비를 보면 누구라도 공감하게 될 터였다. 거기에 이비는 성격 자체도 유들유들해서 제법 괴롭히는 맛이 있었다.

“자세한 건 나중에 이야기하자.”

나는 어안이 벙벙해 있는 이비의 어깨를 툭툭 두들겨준 뒤 칼리나와 힐데를 끌고 응접실 안으로 들어갔다.

그곳에는 이미 황제라도 된 것마냥 거만한 표정을 짓고 있는 하인리히가 의자에 앉아 날 기다리고 있었다.

하지만 그 오만함 사이로 숨길 수 없는 피곤함과 탈력감이 새어 나오고 있었다. 저 오만방자해 보이는 태도는 스스로의 상태를 숨기기 위한 가면에 불과하겠지.

거기에 어떻게든 짙게 화장을 해서 병태를 숨기려 하는 것 같았지만 내 눈을 속이는 건 불가능했다. 이비 역시 그렇게 생각하는지 조심스럽게 내 등을 두 번 찌르며 신호를 주었다.

한 번당 1년이었으니 2년 안에 죽을 것 같다는 말이겠지. 근데 상태를 보니 2년도 길게 쳐준 것 같은데… 재수 없으면 1년 안에 죽을지도 모르겠다.

어차피 그의 죽음은 이미 예정된 운명이나 다름없었지만 그렇다고 너무 일찍 죽는 건 곤란했다. 이쪽에서 이상한 누명을 쓸 수도 있고 통치자가 1년 안에 3번이나 바뀌면 주민들도 불안해할 테니까.

여기까지 생각을 마친 나는 헛기침으로 목을 가다듬으며 그에게 오른손을 내밀었다.

“만나서 반갑소. 하인리히 공작. 이렇게 안 좋은 시기에 봐서 유감이오.”

내 악수 요청에 하인리히는 힘있게 손을 맞잡으려 했지만 안타깝게도 그의 손에선 열정과 패기가 느껴지지 않았다. 그저 다 죽어가는 환자의 병약함만이 느껴질 뿐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프리드리히의 아들답게 자신감 넘치는 얼굴로 날 바라보며 힘 있게 대꾸했다.

“괜찮습니다. 용담공 전하. 헌데 공사가 다망하신 공작님께서 무슨 일로 이 사람을 보자고 하셨습니까? 그것도 칼리나 변경백과 정화교단의 성녀님까지 대동해서 말입니다.”

“편지에도 이야기했듯 그대에게 제안을 하나 할까 해서 왔소.”

“제안이라, 제안을 빙자한 협박이 아니길 빌어야겠군요.”

“하하, 그렇게 경계할 것 없소. 설마 이 사람이 공작님을 겁박하려 하겠소?”

“말 돌리지 마시고 본론만 이야기하시지요. 사실 저나 공작님이 사이좋게 회담을 나눌 만한 사이는 아니잖습니까?”

아무리 자기 목숨이 얼마 남지 않았다지만 이건 급해도 너무 급하지 않은가? 뭐든 간에 서두르는 남자는 미움받는 법이다.

하지만 지금 당장 아쉬운 건 이쪽이었기에 나는 어깨를 한 번 으쓱인 뒤 이야기했다.

“원한다면 바로 본론만 이야기하리다. 이번에 칼리나 변경백과 사자공 전하께서는 하인리히 공작. 그대를 황제로 밀어줄 생각이오.”

내 말이 끝나자 응접실에는 정적만이 감돌았고 이내 하인리히의 커다란 웃음소리가 응접실 안을 가득 채웠다.

“푸하하하하. 거 참 재밌는 농담이군요. 덕분에 크게 웃을 수 있었습니다.”

“내 말이 농담처럼 들리나 보군.”

“그럼 그게 진심으로 하는 소리란 말입니까? 만약 그렇다면 전 용담공 전하가 진짜 본인인지부터 의심해봐야 할 것 같군요.”

“내가 고작 농담 하나 하자고 이곳까지 올 리가 없지 않나?”

내가 진지한 얼굴로 대꾸하자 하인리히 역시 자세를 바로잡으며 진중한 어조로 물었다.

“조건이 뭡니까?”

“바이에른을 돌려주게. 그리고 필리프를 그곳의 공작으로 임명해 주게나.”

“필리프. 필리프라… 혹여 필리프를 통해서 절 계속 압박할 생각이십니까?”

“아니라고는 못 하겠지만, 솔직히 별것도 아닌 걸로 그대와 더 싸우고 싶지 않다네. 그리고 그건 자네도 마찬가지겠지?”

정곡을 찔렸는지 하인리히는 입을 다물었고 나는 능숙하게 말을 이었다.

“사실 황제위는 우리에게 신포도에 불과하네. 바이킹인 내가 황제위에 오르겠나, 아니면 여성인 칼리나가 오르겠나? 그도 아니면 사자공 전하가 오르겠는가?”

이쪽은 황제위에 오를 만한 사람이 없다. 그러니 굳이 이것 가지고 더 다투느니 실질적인 이득을 보겠다는 게 내 의견이었다.

“자네도 우리와 싸우고 싶지는 않잖나? 그렇다고 황제를 포기하진 못할 테니 이쪽에서도 체면치레는 할 수 있게 바이에른 정도는 달라는 말이지. 그 대가로 자네는 만장일치로 황제위에 오르게 되니 그 정통성이 의심받을 일은 없지 않겠나?”

내 제안에 하인리히는 입을 다물고 나를 쳐다보았다. 그렇게 죽일 듯이 날 내려보던 하인리히는 맥이 풀리는지 헛웃음을 지었다.

“부황 때도 그랬지만 용담공께서는 제법 협상을 잘하시는군요.”

“칭찬 고맙네.”

“좋습니다. 공작님께서 하신 제안을 긍정적으로 검토해보겠습니다. 아시겠지만 사안이 사안이니 지금 여기서 답변드리지 못하는 점. 이해해 주시기 바랍니다.”

저렇게 얘기한다는 것 자체가 이미 승낙을 한 거나 다름없었기에 나는 슬며시 미소 지으며 그에게 작별 인사를 고했다.

“여부가 있겠습니까. 황제 폐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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