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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임 속 바이킹이 되었다-164화 (164/205)

▣ 164화

내 제안에 사자공은 기겁을 하며 주변을 둘러보더니 두 눈을 부릅뜨며 내게 소리쳤다.

“자네 미쳤나?”

“아니요. 멀쩡합니다.”

“멀쩡한데 왜 그 지랄인가? 혹시 날 죽이고 싶어서 그러나? 그러면 그냥 말로 하게.”

“지금 말로 하고 있잖습니까.”

“이런 시발. 그게 그 얘기가 아니지 않나. 갑자기 왜 뜬금없이 황제 얘기를 꺼내는 건가?”

“뭐가 문제입니까? 솔직히 저는 사자공 전하께서 쌍수를 들고 환영하실 줄 알았는데요?”

솔직히 사자공도 황제에 대해 욕심을 가지고 있었다. 프리드리히 역시 사자공이 자신의 황권을 위협할 유일한 사람이라는 걸 알기에 제거하려 한 거고.

“내가 그 자리에 관심이 없었다고 하면 거짓말이네만 지금 와선 솔직히 흥미도 관심도 떨어졌네. 자네는 알지 모르겠지만, 나와 프리드리히는 평생을 경쟁하며 살아왔다네.”

“그건 알고 있습니다. 사자공 전하가 어릴 때부터 바이에른을 두고 다퉜다지요?”

“뭐 그것부터 해서 자잘한 것까지 다퉈왔지. 그도 그럴 게 우리는 꽤 비슷했거든.”

틀린 말은 아니다. 둘 다 고귀한 혈통에 사촌이었고 나는 새도 떨어뜨릴 권력을 가지고 있었다. 차이점이라면 프리드리히는 황제였고 사자공은 공작이었다는 점일까?

그 이외에도 한 가지 더 다른 점이 있었는데 사자공은 황제가 그토록 가지고 싶어 했던 군재를 가지고 있었다.

가진 작위를 제외하면 자신보다 더 뛰어난 사자공을 향해 프리드리히가 얼마나 열등감을 태워 왔을지는 쉽사리 짐작할 수 있는 부분이었다.

“그렇기에 나는 프리드리히가 없다면 황제의 자리는 내가 차지할 수 있을 거라 생각했네. 물론 그게 헛된 망상이라는 걸 깨닫기 위해선 큰 대가를 치러야 했지.”

글쎄… 원역사에서는 더 큰 대가를 치렀다는 걸 하인리히는 알고 있을까? 개인적으로 바이에른을 뺏긴 선에서 끝난 거라면 나름 선방했다고 생각한다.

“그렇게 생각하니 모든 게 허무해지더군. 애초에 지금 내가 틀어쥐고 있던 권력조차 자네가 선심 쓰듯 건네준 것에 불과하지 않나? 결국, 모든 게 허상에 불과했던 게지.”

“죽을 때라도 되셨습니까? 사람이 갑자기 바뀌면 죽을 때가 가까워진 거라고 하던데.”

“죽을 때라… 어쩌면 그럴지도 모르겠어. 평생의 적수라고 생각했던 프리드리히가 저렇게 허망하게 가고 나니 다음 차례는 나라는 생각이 들더군.”

“현자가 다 되셨군요.”

“그렇게 비꼬지 말게. 솔직한 말로 난 더 이상 권력에 욕심이 없네. 오토에 대한 권력 승계만 마무리되면 조용히 살 생각이야.”

“아직 은퇴하시기에는 젊은 나이가 아닙니까?”

“그렇다고 피 끓는 청춘도 아니잖은가. 무릇 사자는 자신의 이빨과 발톱이 빠지기 전에 죽을 자리를 찾아야 하는 법이네.”

“이해는 하지만 안타깝군요.”

“내 생각을 알았으면 이제 그런 권유는 하지 말게나. 거기에 자네가 황제로 만들어주겠다고 한 건 내가 아니라 내 아들 아닌가.”

“물론 그건 맞습니다만 지금 당장은 힘들 겁니다. 아시다시피 명분이 없지 않습니까?”

내 말에 사자공은 팔짱을 낀 채 잠시 생각에 잠기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사실 명분이라는 건 한마디로 정의 내리기가 애매하다. 사전적 의미야 표면상의 이유라지만 명분은 누가 어떤 이유를 대면서 휘두르느냐에 따라 그 성질이 변하기 때문이다.

가령 강대국이 약소국의 땅을 탐내 전쟁을 벌일 때는 구차한 변명이 될 테고, 약소국이 독립을 쟁취하기 위해 총과 칼을 드는 것은 위대한 대의가 되기 때문이다.

물론 대부분의 경우 법보다 주먹이 가까웠지만 이게 국가 간의 레벨이 되면 얘기가 조금 달라진다. 독일이나 나폴레옹처럼 다 패고 다닐 게 아니라면 명분을 마냥 무시할 수는 없었다.

제삼자가 들을 때 지금 이걸 진심으로 하는 소리인가? 싶은 명분이라도 빼 드는 건 명분 자체가 무슨 일을 행할 때 자신들의 행위가 합당함을 밝히기 위해 내걸어야 하는 이유이기 때문이었다.

그 일본조차 영토 확장을 위해 대동아 공영이라는 얼토당토않은 명분을 펼치지 않았던가. 러일 전쟁을 할 때도 일본이 아시아의 대표로 서양에게 대항해 싸운 전쟁이라고 홍보했고.

그런 점에서 이쪽이 황제위를 차지하기 위해 내걸 수 있는 명분이 없다. 물론 황제의 자리는 호엔슈타우펜이 계승하는 게 아닌, 선제후와 주교들의 투표로 뽑히는 거지만 사자공도 아니고 그 아들이 나선다면 누가 뽑아주겠는가?

“결국, 오토가 뽑히든 하인리히가 뽑히든 둘 중에 하나겠지. 그리고 나와 칼리나 변경백은 오토를 지지할 테지만 솔직히 머릿수가 후달리지 않나.”

“남은 선제후들은 뭐랍니까?”

“그놈들은 간만 보고 있네. 주교들은 아무래도 하인리히의 편을 드는 모양새고.”

“프리드리히에게 얻어먹은 게 있다는 거군요. 하긴, 사자공 전하를 숙청할 때 주교들이 적극적으로 협력하긴 했었죠.”

“그것도 그렇고….”

사자공의 시선이 나를 향했고 나는 헛웃음을 지었다.

“제가 바이킹이라서 그런 겁니까? 개종하지 않은 야만인이라?”

“그것도 있고 자네의 동료 중 하나가 정화교단의 사제가 아닌가? 거기에 최근 칼리나 변경백과 그 휘하의 검은 용 군단의 크기가 너무 커졌네. 교황청에서 경계할 만도 하지.”

“쯧. 겁쟁이 새끼들밖에 없군요.”

“위대한 용담공 전하가 그 상대라면 누군들 겁을 집어먹지 않겠나?”

사자공의 밑도 끝도 없는 농담에 나는 피식 웃으며 대꾸했다.

“제가 아니라 사자공 전하가 두려운 거겠지요. 늙었어도 사자는 여전히 사자니까. 애초에 저들의 머릿속에 저는 여전히 야만스러운 바이킹 아니겠습니까?”

“바이킹 도끼에 대가리가 찍혀 보면 생각이 달라질 걸세. 아무튼 그래서, 자네가 얘기한 기발한 대책이 뭔가? 설마 진짜 날 황제로 만들 생각은 아니겠지?”

“뭐, 그것도 하나의 방법이었지만 공작 전하께서 싫다는데 별수 없지요.”

초월한 표정으로 모든 걸 다 내려놓은 표정의 사자공을 보고 있자니 더 권하기도 뭐했다. 원래 평양감사도 제가 하기 싫으면 그만이라지 않은가.

“알았으면 마저 얘기나 해보게. 뭘 어쩔 셈인가?”

“간단합니다. 황제 자리를 하인리히한테 넘겨주시지요.”

“…뭐라고?”

“어차피 지금 황제 자리가 중요한 게 아니잖습니까? 힘도 없는 허울뿐인 황위 따위 얼마든지 가져가라고 하십시오.”

“그래도 그 자리가 가지는 위상을 무시할 수는 없네.”

“전하. 황제가 가지는 권력과 힘은 황제의 자리에 올랐기에 가지게 되는 게 아니라 황제가 될만한 놈이 황제의 자리에 앉아서 만들어지는 겁니다.”

내 대답에 기가 찼는지 공작은 헛웃음을 터트리더니 이내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젠장. 자네가 대체 뭘 생각하고 있는지 모르겠군. 허면 그냥 넘겨주겠다는 말인가?”

“받아낼 건 받아내야지요. 다만 그 전에 조금 정리가 필요할 겁니다.”

“정리? 정리 정돈이라도 할 셈인가?”

나는 사자공의 유머 코드가 끔찍하다는 걸 머리 한구석에 집어넣으며 대꾸했다.

“먹을 수 있는 양은 한정적인데 입이 많으면 입을 줄여야 하지 않겠습니까?”

뭐, 우스갯소리로 5명이 피자 한 판을 먹는데 칼질 3번으로 공평하게 나누는 방법이 뭐냐고 묻는 문제가 있었다.

정확히 5등분을 만들면 되는 일이지만 사실 칼질 3번으로 만드는 건 힘들지 않은가?

이 문제의 답은 의외로 간단한데 칼질 2번으로 피자를 정확히 4등분한 뒤 한 명을 죽이면 칼질 3번으로 4명이 공평하게 나눠 먹는 게 가능해진다.

하지만 칼질 3번으로 3명을 죽인다면 두 명이서 절반씩 나눠 먹는 게 가능하지 않을까? 싸이코패스 같은 생각이지만 이 시대에서는 충분히 가능한 얘기였다.

“선제후들과 척져서 좋을 건 없네.”

“그걸 아시는 분이 선제후들과 척져서 황제에게 숙청당하기 직전까지 가셨습니까?”

“그래서 그 경험을 토대로 자네에게 충고해주는 게 아닌가? 그들은 자신들이 배제당하는 상황을 싫어할 걸세.”

“공작 전하. 생각해보십시오. 공작 전하가 다스리는 작센, 칼리나가 다스리는 롬바르디아, 필리프가 다스리는 바이에른이 연합하면 두려울 게 뭐가 있겠습니까?”

“왜 뜬금없이 필리프가 바이에른을 다스리나?”

“아, 얘기 안 했던가요? 하인리히의 황제위에 대한 지지를 대가로 바이에른을 필리프에게 넘기라고 할 겁니다.”

물론 내 말에 사자공은 대놓고 얼굴을 찡그리며 불만을 표출했다.

“이런 젠장. 내가 바이에른을 얼마나 애지중지 키워놨는데 자네는 그걸 길가에 굴러다니는 돌마냥 거래하려 하고 있군.”

“어차피 지금은 공작님 것도 아니잖습니까. 그리고 일만 잘 풀리면 바이에른을 돌려받을 수 있을 겁니다. 조금 오래 기다리셔야 할 테지만요.”

“내가 늙어 죽는 게 더 빠를 것 같네만?”

“그럼 그때는 그곳에 묻어드리겠습니다.”

“무슨 말을 못 하겠군. 아무튼, 아까 하던 얘기를 이어보자면 저쪽은 프랑켄과 슈바벤, 상·하 로트링겐이 연합을 하지 않겠나?”

“그래봤자 우리보다 동맹이 견고하겠습니까? 저희는 함께 피를 흘리며 싸운 혈맹이 아닙니까?”

“이쪽은 남북으로 갈라져 있지 않나. 거기에 저쪽은 주교들도 지지하고 있고 교황청도 저들의 손을 들어줄 걸세.”

“우리에겐 폴란드와 덴마크, 그리고 제노바가 있지 않습니까? 대가리가 박혀있다면 헛짓거리는 못 할 겁니다.”

“으음… 그건 그렇네만 어디 세상일이 생각대로 흘러가던가?”

“땅을 가지고 싸우는 것도 아니고 황제위 가지고 서로 박 터지게 싸우기는 싫을 테니 저쪽이 원하는 걸 건네주고 이쪽도 원하는 걸 받는 겁니다. 그게 제일 깔끔하지 않겠습니까?”

잃을 게 많은 놈들끼리는 절대 싸우지 않는다. 승리했을 때 챙기는 것도 많지만, 반대로 지게 되면 쌓아 올린 모든 것을 잃어버리기 때문이다.

“…젠장. 난 잘 모르겠군. 이쪽에서 승낙을 해도 저쪽에서 받아들이겠나?”

“받아들이게 해야지요.”

“거절한다면?”

“그때는 뭐… 도끼가 답을 알려주지 않겠습니까?”

호의가 계속되면 권리인 줄 안다고 했던가? 이쪽에서 한발 물러서서 양보해줬는데 그를 당연한 것처럼 여긴다면 본때를 보여줄 생각이었다.

* * *

내 제안에 필리프는 불만스러운 표정을 지었지만 그 뒤에 이어진 말에 입을 다물었다.

“솔직히 말해서 필리프 자네가 황제의 자리를 감당할 수 있겠나?”

“…아니요. 아마 힘들겠지요.”

“그러니 바이에른의 공작 자리로 만족하게. 자네도 살고, 하인리히도 황제가 되고. 윈―윈이 아니던가. 지옥… 아니, 천국에 계실 자네 아버지도 그 정도면 만족할 걸세.”

“형님이 바이에른을 내놓으려 하겠습니까?”

“그게 싫으면 황제 자리를 포기해야 하지 않겠나?”

애새끼도 아니고 나이를 서른쯤 먹었으면 똥오줌은 가릴 줄 알겠지.

“설마 내전을 벌일 생각이십니까?”

“필요하다면 해야겠지. 아쉬운 건 우리가 아니잖나?”

내 말에 필리프는 잠시 생각에 잠기더니 이내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대답했다.

“설사 형님이 공작 전하의 제안을 받아들인다고 해도 이건 미봉책에 불과합니다. 고름은 터뜨려야지 방치한다고 해결되는 건 아무것도 없습니다. 오히려 놔두면 곪을 대로 곪겠지요.”

“맞는 말이네만 고름을 째기 위해선 어느 정도 곪아야 하는 법일세. 안에 든 것도 없는데 쨀 수는 없잖나?”

“그렇게 얘기하시면 할 말은 없습니다만 솔직히 전 뭐가 맞는지 잘 모르겠습니다. 다만 공작님 덕에 제가 살아남은 것도 사실이니 용담공 전하께서 하자는 대로 해야겠지요.”

“날 믿고 조금만 기다리게나. 어차피 슈바벤은 다시 자네 손에 들어올 걸세.”

내가 이렇게 자신하는 이유는 간단했는데 하인리히는 원역사에서도 6년 남짓 통치하고 사망했다. 그런데 선대 황제였던 프리드리히가 생각보다 오래 살았다.

당연히 하인리히도 원래 황제에 즉위했던 때보다 더 나이를 먹을 수밖에 없었고 덕분에 올해 그의 나이는 서른하나였다.

원역사에서 그가 서른셋에 죽었던 걸 생각해보면 빠르면 2년, 늦어도 3년 내에 죽겠지.

하지만 우리 불쌍한 하인리히는 자신이 죽을 거라는 것도 모른 채 희희낙락해서 어수선한 슈바벤을 안정시키고 내정을 하며 발전시킬 것이다.

그리고 그가 죽었을 때, 필리프를 이용해 슈바벤을 홀라당 집어삼키면 되는 것이다. 그야말로 완벽한 계획이 아니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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