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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임 속 바이킹이 되었다-162화 (162/205)

▣ 162화

내가 수퉁의 대가리를 쪼개는 동안 북부는 다시 왕위에 오른 하랄이 새롭게 왕국을 재건하고 남아있는 반란군 잔당을 정리하며 숨 가쁘게 돌아가고 있었다.

중부 역시 큰 사건들이 굵직굵직하게 일어나고 있었는데 일단 황제가 사망했다. 죽었는지 아니면 죽임을 당했는지는 모르겠지만 어쨌든 황제는 죽음을 맞이했다.

당연히 제국은 난리가 났고 나는 빨리 뉘른베르크로 오라는 사자공의 편지를 받고 서둘러 남하 중이었다.

“거참. 그렇게 죽을 양반이 뭔 부귀영화를 누리겠다고 그 지랄을 했는지 모르겠네.”

“사람이란 언제 죽을지 모르기에 그렇게 아등바등하며 살아가는 게 아니겠습니까?”

“오, 그럴듯한 대답인데? 이비 너 철학 쪽에도 견문이 있었어?”

“그냥 제 생각일 뿐입니다. 저 역시 그런 흉한 몰골로 몇십 년을 살아오지 않았습니까. 그러다 보니 저 자신의 존재 이유에 대해 조금 자문하다 보니 그런 것 같습니다.”

“그래서, 어떻게 지금은 답을 찾았어?”

내 물음에 이비는 그녀답지 않게 요염한 표정을 지으며 답했다.

“아마 주군을 만나기 위해 지금까지 고생한 게 아니겠습니까?”

“푸하하하핫, 이비 너도 제법 말하는 게 늘었어.”

“제 진심을 이야기했을 뿐입니다.”

부드럽게 미소 짓는 이비의 모습에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하긴, 지금까지 쓰던 가면을 벗어던진 것만 봐도 그녀에게 심경의 변화가 있었다는 걸 알 수 있었다.

“그나저나 라그나르. 몸은 진짜 괜찮은 것 맞습니까?”

“왜? 안 괜찮아 보여?”

“그게 아니라 당신이 반신이라는 게 솔직히 안 믿겨집니다.”

“그렇습니다. 주군. 애초에 반신이라는 건… 신의 피를 이었다는 것 아닙니까?”

반신. 즉 절반은 신이라는 거고 그건 모친이든 부친이든 하나는 신이라는 얘기겠지. 나 같은 경우 높은 확률로 오딘이 내 아버지일 터였다.

물론 오딘이 옆 동네 신인 제우스만큼 바람둥이는 아니었지만, 그도 주신이었던 만큼 꽤 여기저기 씨를 뿌리고 다녔다고 적혀 있으니까.

뭐, 그런 말도 있지 않던가. 제우스에게 바람둥이라는 이미지가 박힌 건 과거 제우스의 신전이 고아원의 역할도 겸했기에 그런 얘기가 나온 거라고.

애비 없는 아들이라 불리는 것보단 제우스의 아들이라고 불리는 게 더 나았을 테니까. 그리고 그건 북유럽에서도 비슷한 상황이었을 것이다.

다만 내 경우 진짜 오딘의 아들인지, 아니면 그저 그런 전승을 따른 것뿐인지는 나도 모르겠다. 애초에 내 기억은 일정한 선 이후로는 지우개로 지운 것처럼 백지 그 자체였다.

부모는 고사하고 어린 시절도 기억나지 않았으며 힐데와 생활했던 기억만 어렴풋하게 떠오를 뿐이다.

아마 게임사에서 딱 이 정도까지만 설정을 잡은 게 아닐까 하고 미루어 짐작할 뿐이다. 원래 NPC를 설정할 때 기본적인 골자만 잡아두지 그걸 세세하게 풀어두진 않으니까.

“글쎄, 솔직히 나도 잘 모르겠네. 갑자기 반신이라고 해도 크게 와닿지가 않거든.”

다만 하나 확신할 수 있는 건 라그나르와 함께 업데이트된 다른 바이킹 영웅들도 각자 반전이 있었을 거라는 점이다.

그런 점에서 보면 라그나르의 반신 각성도 나름대로 퀘스트 라인이 있지 않았을까? 나는 중간에 어거지로 각성을 한 거고.

사실 이 게임에선 도로 가든 모로 가든 보스를 잡기만 하면 그만이다. 그처럼 각성도 단계를 밟아가든 수퉁을 조지고 크바스만 얻든 방법 자체는 상관이 없는 것이다.

아마 북유럽 기반의 다른 신화급 유물을 얻어도 비슷하게 흘러가서 각성했을 것 같기는 한데… 솔직히 모르겠다.

인게임이라면 세이브 리셋을 하든 치트를 쓰든 확인을 해 봤을 테지만 지금 그런 걸 할 수 있는 상황은 아니잖은가. 거기에 반신화라는 거창한 타이틀을 단 것치고 크게 바뀐 건 없었다.

어차피 이전에도 신의 힘을 끌어서 싸우지 않았던가. 효율이 좋아지긴 할 테지만 크게 체감할 만한 수준도 아닐 것이다.

즉 반신화로 인해 좋아진 걸 꼽아보자면 더 이상 신성중독에 대해 걱정할 필요가 없다는 점이었다. 그 증거로 상태창의 신성중독 항목도 깔끔하게 사라져 있었다.

그래도 반신화 그 자체만으로 큰 이득이긴 했다. 신성중독은 플레이어가 꼽은 제일 좆같은 특성 1위를 달리고 있었으니까.

그러니 지금 내 상황을 한마디로 정리하자면….

“운이 좋군.”

“예? 뜬금없이 그게 무슨 말입니까?”

“운이 좋다고. 딱 맞춰서 황제가 죽었잖아?”

내 말에 의도적으로 말을 돌린다고 생각하는 건지 힐데는 불만스러운 표정을 지으면서도 충실하게 내 말에 대꾸해주었다.

“그렇지요. 가끔 그런 걸 볼 때마다 세상이 당신을 중심으로 돌아가는 것 같기는 합니다.”

“걱정하지 마. 내 세계의 중심은 언제나 너였으니까.”

내가 힐데의 어깨에 손을 올리며 얘기하자 힐데는 기분 나쁜 표정을 지으며 내 손을 가볍게 쳐냈다.

“대체 그런 근본 없는 멘트는 어디서 찾아오는 겁니까? 애초에 여자를 꼬실 때 그런 멘트가 통할 거라고 생각하는 것 자체가 이해가 안 가는군요.”

“이비랑 칼리나한테는 잘만 통하던데? 그렇지 이비?”

내가 그녀의 허리를 감싸며 얘기하자 이비는 얼굴을 붉히며 고개를 끄덕였다.

“예? 아… 네. 그렇습니다. 주군은 제 태양 그 자체이십니다.”

물론 그 모습에 힐데는 질렸다는 표정으로 날 쳐다보며 쏘아붙였다.

“지금에서야 하는 말이지만, 당신의 그런 그 행동이 얼굴을 깎아 먹는 건 알고 있습니까?”

“오, 그거 혹시 내가 잘생겼다는 얘기야?”

“대체 어디를 어떻게 들으면 그렇게 해석할 수 있는 겁니까? 다른 건 몰라도 그 긍정적인 마인드만큼은 본받고 싶군요.”

내 질문에 힐데는 거칠게 쏘아붙였지만 미묘하게 붉어진 그녀의 얼굴만 봐도 충분히 대답이 됐다. 하긴, 약간 노안이라 그렇지 라그나르 정도면 선도 굵고 잘생긴 편이긴 했다.

“그래. 그렇다고 치자고.”

“말을 말아야지요. 그나저나 중부에 가면 어떻게 할 겁니까? 저희한테도 간단한 지침 정도는 내려줘야 뭐 어떻게 스탠스를 잡지 않겠습니까?”

힐데의 질문에 나는 턱에 난 수염을 쓰다듬으며 생각에 잠겼다. 본래는 필리프와 하인리히가 서로 견제하는 틈을 타서 적당히 로트링겐 공작을 황제로 선출할 생각이었다.

그렇게 그를 허수아비 황제로 만들 생각이었는데 굳이 그럴 필요가 없을 것 같다. 황제는 아무런 말도 남기지 못한 채 사망했기에 뉘른베르크의 상황을 보고 결정하면 그만인 것이다.

최선의 선택지가 있는데 굳이 차선을 고를 필요는 없지 않은가.

“일단은 뉘른베르크에 가서 상황을 한번 확인해봐야 될 것 같아.”

“알겠습니다. 그럼 전 그동안 교단에 좀 다녀오겠습니다.”

“그래, 다음에 볼 때는 성녀님이겠네.”

“그건 모르는 일이지요. 성녀라는 게 단순히 신성력이 높은 것만으로 되는 건 아니잖습니까.”

아무래도 그녀도 나랑 같이 다니다 보니 대충 세상 돌아가는 이치를 깨달은 모양이다. 다만 내 눈에는 그녀가 성녀가 된 미래가 보였다.

신성력 자체도 넘사벽인 데다가 북부에서 직접 발로 뛰며 야만인들 개종도 시키고 무엇보다 용담공이라고 불리는 나와 가족 같은 관계를 유지하고 있지 않은가.

정치적으로나 종교적으로나 그녀 이외에 성녀가 될 만한 이는 존재하지 않았다. 그리고 원래도 그녀는 성녀의 칭호를 받는다.

그게 라그나르라는 캐릭터가 나오기 전에는 라그나르의 죽음으로 말미암아 각성을 했다는 게 문제였지만.

아무튼, 우리는 뉘른베르크에 도착했다. 앞서 얘기한 대로 힐데는 교단으로 떠났고 나는 이비를 사자공이 머물고 있는 저택에 전령으로 보냈다.

“내일 오시겠다는 말씀이시군요.”

“그래. 아무래도 칼리나에게 가봐야 하지 않겠어?”

황제가 죽었다는 소식은 칼리나에게도 연락이 갔을 테고 새롭게 선제후로 임명된 만큼 그녀도 이곳에 왔을 것이다.

그녀와는 거진 1년이 넘는 시간 동안 떨어져 있었기에 한시라도 빨리 가서 달래줘야 했다. 언제 오냐고 날 독촉하는 편지가 꽤… 아니 조금 많이 오기도 했으니까.

“알겠습니다. 사자공 전하께 말을 전하는 것 이외에 제게 따로 시키실 일은 없으십니까?”

그녀의 말에 나는 잠깐 팔짱을 낀 채 생각에 잠겼다. 일단 제일 중요한 건 상황 파악이다. 칼리나에게도 현 상황에 대해 들을 순 있겠지만 사자공만 수집할 수 있는 정보도 있을 것이다.

“가서 현재 상황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사람들이 누구를 지지하는지 등에 대해 조사해서 내일 아침까지 칼리나의 저택으로 보내줘.”

“알겠습니다.”

“아, 그리고 정력 회복에 좋은 약재도 조금 보내주고. 잘못하면 내일 사자공을 만나러 못 갈지도 모르거든.”

“아… 어… 알겠습니다. 부디 몸조심하십시오. 주군.”

내가 무슨 의도로 이런 얘기를 했는지 깨달은 이비는 새빨개진 얼굴로 내게 꾸벅 인사한 뒤 날 떠나갔다.

그녀가 점이 되어 멀어질 때까지 바라보던 나는 가볍게 심호흡한 뒤 칼리나가 머무는 저택으로 향했다.

그곳에는 이미 내가 온다는 소식이 전해진 건지 칼리나가 저택 앞까지 마중 나와 날 기다리고 있었다. 그렇게 서로의 얼굴이 확인되자마자 그녀는 뛰다시피 내게 달려와 내게 안겼다.

“오랜만이야 라그나르. 정말 많이 보고 싶었어.”

“나도 마찬가지야.”

나는 칼리나에게서 느껴지는 부드럽고 달콤한 향기를 맡으며 그녀를 꽉 끌어안아 주었다. 물론 이런 과감한 애정행각에 시선이 쏠리는 게 느껴졌지만 그게 무슨 상관이란 말인가.

거기에 일부러 보라고 과시하는 것도 없잖아 있었다. 이 시기 상대측에 스파이나 세작을 보내는 건 태양이 뜨고 지는 것과 같은 진리와도 같았다.

그리고 그중에서도 제국을 지탱하는 3개의 축 중 하나이자 검은 용군단의 수장이며 선제후인 칼리나에게 사람이 붙는 건 당연한 일이었다. 오히려 안 붙었다고 하면 그게 더 의심스러울 테지.

그러니 나는 그들에게 대놓고 나와 칼리나 사이의 끈끈한 애정을 과시하며 헛짓거리하지 말라고 경고하는 것이다. 칼리나 역시 그걸 알기에 저택 앞까지 나와서 나를 마중해준 것이고.

“일단 들어가자. 사람들에게 애정을 과시하는 것도 좋지만 난 좀 더 조용한 곳에서 당신과 단둘이 대화를 나누고 싶거든.”

글쎄, 내가 생각할 땐 그걸 몸의 대화나 섹스라고 표현하던 것 같은데… 상관없겠지. 나는 묘하게 들뜬 기색의 칼리나를 따라 저택 안으로 들어갔고 그녀는 나를 식당으로 이끌었다.

“배고프지? 빠르게 온다고 제대로 먹지도 못했을 텐데 당신을 위해서 미리 식사를 차려놨어.”

물론 그런 것치고는 차려져 있는 음식들의 의도가 명확했다. 굴에 장어, 산수유에 먹음직스럽게 구워진 고기와 알싸하게 풍겨지는 마늘 향까지.

“으음….”

“왜 그런 표정을 짓고 있어? 일단 한잔해.”

그녀는 붉은 와인을 따라 내게 건네주었고 나는 가볍게 그녀와 잔을 부딪친 뒤 입안에 털어 넣었다.

알싸하면서도 달콤한 와인의 맛과 향기가 느껴졌고 그녀는 잔이 비자마자 바로 채워주며 말을 이었다.

“북부는 어땠어? 들려오는 소문을 들어보니 잘하고 있던 모양인데.”

“고생 좀 했지. 사실 군힐드랑 에릭을 잡는 게 힘든 일은 아니었는데….”

나와 칼리나는 그간 있었던 일들을 안주 삼아서 술잔을 비워나갔다. 그러다 보니 어느새 와인병이 바닥을 드러냈고 내가 다른 와인을 따려고 하자 그녀가 내 손을 붙잡았다.

“술은 이 정도면 충분하지 않아?”

“칼리나. 이제 막 한 병 비웠잖아. 그리고 음식도 많이 남았는데….”

그녀가 무슨 의도로 이야기하는지 알았기에 나는 당황스러운 표정으로 대답했다.

“푸흣. 당신 아랫도리나 보고 얘기하지 그래.”

그 말에 시선을 아래로 내리니 과연 그녀의 말대로 내 아랫도리에 서식하고 있는 구렁이가 바지를 뚫을 듯 꿈틀거리고 있었다.

그녀와 함께 술을 마시며 대화를 나누다 보니 나도 모르게 그녀와 살을 섞었던 기억이 내면의 악마를 깨운 모양이다.

“네가 너무 매력적이라서 어쩔 수 없잖아.”

그 말이 마음에 들었는지 그녀는 나를 침대로 이끌며 내 귀에 부드럽게 속삭였다.

“오늘은 확실할 거야. 당신의 색으로 마음껏 물들여줘.”

남자의 마음을 간질이는 그녀의 말에 나는 마음을 다잡았다. 아무래도 오늘, 그녀에게 반신의 힘을 보여줘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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