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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임 속 바이킹이 되었다-160화 (160/205)

▣ 160화

기도를 끝마치자 여느 때처럼 신성력이 내 몸을 휘감았고 그 모습에 수퉁은 흥미롭다는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과연 오딘의 대전사라 칭할 만하군.”

“그렇게 말하는 것치고는 꽤나 여유로워 보이는군.”

다른 이들은 오딘의 대전사라는 얘기를 들으면 경외심을 품거나 극도로 경계하거나 둘 중의 하나였는데 수퉁은 느긋한 표정을 지을 뿐이었다.

“그야 그렇지 않겠나? 자네가 섬기는 오딘조차 날 두려워해 도둑놈처럼… 아니 이미 내 술을 훔쳐 갔으니 도둑놈이지?”

혼자 킬킬거린 수퉁은 목소리를 가다듬으며 말을 이었다.

“아무튼, 신인 오딘조차 나와 맞서 싸울 생각을 하지 못했네. 하물며 그의 대전사인 자네라고 다를 게 무엇인가?”

“과연 도끼에 대가리가 찍히고도 그딴 말을 내뱉을 수 있을지 궁금하군.”

“하하하하, 그 배짱 하나는 봐줄 법하군. 그대는 오딘보다는 토르의 대전사가 더 어울리는 것 같아. 안 그런가?”

내가 뭔가를 대답하기 전에 시스템창이 떠올랐고 나는 피식 웃고 말았다.

― 자신의 대전사를 모욕하는 모습에 오딘이 분노합니다. 저 거인의 두개골을 박살 내버리십시오.

“방금 오딘께서 얘기하시길 그대의 두개골을 박살 내버리라는군.”

본인에 대한 살인 예고를 했음에도 불구하고 수퉁은 여전히 여유로운 얼굴이었다. 괜시리 저 얼굴을 보니 도끼로 목을 베어버리고 그 목을 발로 짓밟고 싶은 감정이 꿈틀꿈틀 기어 올라왔다.

“확실히 자네라면 그런 오만한 얘기를 할 만하지. 자네뿐만 아니라 함께 온 동료들도 보통 사람은 아닌 듯하니 말이야.”

실제로 내가 말을 하며 주의를 끄는 동안 힐데와 이비 역시 힘을 개방하고 언제든지 수퉁에게 달려들 준비를 끝마쳤다.

“아무튼, 대화는 이쯤이면 됐겠지. 혹시 지겨웠더라도 용서하게. 그래도 몇백 년 전까지는 자네처럼 술을 훔치기 위해 왔던 인간들이 있었지만 최근 몇십 년간은 사람의 코빼기도 안 보여서 말이야. 무심코 반가워서 나도 모르게 말을 길게 하고 말았네.”

“상관없어. 마지막 유언인데 그 정도는 얼마든지 들어줄 수 있지.”

“그 배짱 하나는 정말 대단하군. 아무리 생각해도 섬기는 신을 잘못 만난 것 같지만… 뭐 좋아. 내 특별히 자네의 목은 베어서 내 수집품에 넣어주도록 하겠네.”

말을 마친 수퉁은 자세를 바로잡았고 나는 괴성을 터뜨리며 그에게 달려들었다. 울프베르트로 한 번 강화되고, 오딘의 힘이 덧씌워진 도끼가 그의 방패를 쪼갤 듯 내리쳤다.

콰광!

지금껏 내 도끼가 쪼개지 못할 건 없었지만 요란한 소리와는 다르게 내 공격은 그의 방패에 흠집조차 남기지 못했다.

“하지만 배짱과 실력이 비례하는 건 아닌 모양이야. 실력은 없는데 입만 살아있는 걸 인간들은 허세와 만용이라고 부르더군.”

명백히 날 도발하는 말투였지만 난 개의치 않고 뒤로 물러나며 힐데와 이비에게 눈짓했다. 내가 물러난 자리로 힐데가 기합을 내지르며 메이스를 휘둘렀다.

그리고 그 뒤를 이어 이비가 아포피스의 힘을 빌려 주문을 외우자 뱀으로 형상화된 수십 가닥의 사슬이 그를 묶었다.

하지만 기쁨의 탄성을 터뜨리기 전에 그는 단 한 번의 기합으로 자신을 억죄던 사슬을 모두 끊어냈으며 힐데를 밀쳐냈다.

“제법 매서운 공격이었지만 이걸로는 부족하네. 날 묶으려면 글레이프니르(펜릴을 묶을 수 있게 특별히 제작한 실) 정도는 가져와야 할 걸세.”

그 말대로 나와 힐데, 이비가 온갖 힘을 기울이며 그의 목을 베어버리기 위해 노력했지만 그는 느긋하게 우리의 공격을 전부 파훼해냈다.

상황이 점점 안 좋게 흘러가자 나는 입술을 깨물며 주변을 둘러보았다. 인간의 체력은 무한이 아니다.

내색은 안 하지만 힐데는 한계에 달한 듯했고 이비 역시 아포피스의 힘을 너무 많이 끌어낸 모양인지 바닥에 주저앉아 거칠게 숨을 몰아쉬고 있었다.

“이게 그대들이 보여줄 수 있는 전부인가? 그렇다면 정말 실망이군.”

수퉁은 흥미가 떨어진 모양인지 한숨을 내쉬며 자세를 바로잡았다. 이제 놀이는 끝났다는 그의 말투에 나는 입술을 깨물었다.

내 착오였나? 너무 쉽게 생각한 건가? 계속된 승리가 내 눈을 멀게 한 건가? 내 여정은 여기서 끝나고 이곳이 내가 묻힐 무덤이라는 건가?

아니, 그럴 리가 없다. 나는 이 게임의 고인물이자 수많은 역경을 헤쳐나왔다. 그런 내가 이런 구석진 곳에서 죽음을 맞이할 리가 없지 않은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잡생각을 떨쳐낸 나는 내가 끌어낼 수 있는 힘을 전부 끌어내기로 했다. 사실 내 상태창을 볼 수 없는 만큼 지금 내가 하는 짓은 도박에 불과했지만… 어차피 죽을 거라면 발악은 해봐야 하지 않겠는가.

“오딘이시여. 그대가 지혜를 위해 스스로의 몸을 꿰뚫어 제물로 바쳤듯 나 역시 그대에게 이 몸을 제물로 바치나니, 눈앞의 시련을 헤쳐나갈 힘을 내려주소서.”

기도를 끝마친 나는 허리춤에 매여있는 칼을 꺼내 거리낌 없이 내 배를 꿰뚫었다.

남의 배때지를 뚫을 때와는 다르게 약간의 망설임이 생기긴 했지만, 눈앞의 거인에게 한 방 먹여주고 싶다는 생각이 두려움을 이겨낼 수 있게 도와주었다.

“크으윽.”

“뭘 하나 했더니 자해인가? 취향 참 특이하군.”

수퉁이 날 비아냥거렸지만 나는 개의치 않고 신성력을 받아들였다. 그리고 그 순간 수십 개의 창이 내 눈앞에 떠올랐는데 문제는 그 태반이 경고창이었다는 점이다.

― 경고! 엄청난 양의 신성력이 몸에 주입됐습니다.

― 경고! 신성력이 몸을 좀먹고 있습니다.

― 경고! 더 이상 신성력을 감당할 수 없습니다.

― 경고! 신체 일부에 과부하가 걸립니다.

― 경고! 신체의 일부가 붕괴되기 시작합니다!

수많은 경고창들과 함께 온몸에 탈력감이 들며 힘이 빠지기 시작했다. 나는 스스로 서 있을 수조차 없을 정도로 몸이 약해짐을 느꼈고 그대로 그 자리에 주저앉았다.

힐데인지, 이비인지 모를 가냘픈 비명이 내 귀에 울려 퍼졌지만 그게 누구의 목소리인지 구분하지 못할 정도로 내 몸은 무너지고 있었다.

내가 오판한 건가? 감당할 수 없을 정도로 신성력이 내 몸을 잠식하고 있었던 건가?

아니, 내 선택은 틀리지 않았다. 나는 이를 악물며 도끼를 움켜쥐었다. 몸이 물먹은 솜처럼 무거워졌고, 점차 의식이 희미해지며 절로 두 눈이 감겨왔지만 나는 입술을 깨물고 허벅지에 힘을 주며 적을 향해 돌진했다.

그리고 시스템은, 그런 내게 반응해주었다.

― 꺾을 수 없는 의지가 발동합니다. 당신의 의지는 강철과도 같으니 그 무엇도 그대를 꺾지 못할 것입니다. 몸이 신성력을 받아들이기 시작합니다.

신성력이란 무엇인가? 이는 말 그대로 신의 성스러운 힘이었고 내 몸이 그 힘을 받아들였다는 건….

― 오딘의 의지가 당신과 공명합니다. 오딘의 힘이 당신에게 깃들고 있습니다.

꺼져가던 불꽃이 순식간에 타오르는 게 느껴졌다. 온몸에서 투지와 분노가 들끓어 올랐고 칼에 의해 피가 줄줄 흘러내리던 가슴팍의 상처는 아문 지 오래였다.

그와 싸우며 얻었던 상처들 역시 전부 다 아물었으며 몸에선 활력이 솟구치고 있었다. 갑작스레 바뀐 내 모습에 수퉁은 눈살을 찌푸렸다.

“자신의 한계를 뛰어넘은 건가? 하지만 그래봤자 힘을 내려주는 건 오딘일 터. 오딘조차 나를 어찌하지 못했는데 그대가 뭘 할 수 있겠나?”

장담하건대 오늘 저 녀석은 청출어람이라는 사자성어를 깨닫게 될 것이다. 힘을 주는 주체가 오딘이든 토르든 상관없다. 결국, 그 힘을 활용하는 건 나 라그나르 로드브로크니까.

거기에 백문이 불여일견이라고 직접 느껴보면 알 것이다. 그 때문에 나는 그에게 대꾸하는 대신 오른손을 내밀었다.

아무것도 없는 허공에서 딱딱한 무언가가 잡혔고 나는 그게 오딘의 신창 궁니르라는 걸 깨달았다. 던지면 무조건 맞고 사용자의 손으로 되돌아온다는 전설의 무기.

“후우….”

가볍게 숨을 내쉬며 나는 투창 자세를 잡았고 그런 내 의지에 공명해 창날과 자루에 새겨진 룬 문자가 빛나기 시작했다. 그 모습이 제법 위협적으로 보였는지 수퉁은 방패를 끌어당기며 방어 자세를 취했다.

“흐아아아압!”

기합과 함께 나는 궁니르를 집어 던졌고 아쉽게도 궁니르는 상대의 방패를 뚫지 못하고 거친 파열음과 함께 튕겨 나왔다. 그 모습에 수퉁은 흰 이를 드러내며 나를 비웃었다.

“회심의 한 수였던 모양인데 아쉽게 됐군. 내가 소용없다고 하지 않았나.”

“그런 것치고는 과하게 쫄아있던 것 같은데 혹시 내가 잘못 봤나?”

말을 마친 내가 손을 뻗자 어느새 궁니르가 내 손으로 돌아와 있었고 나는 다시 투창 자세를 취했다.

“포기할 줄 모르는 친구군. 계란으로 바위를 깰 수는 없는 법이라네.”

“글쎄… 너무 빨리 속단하지 말라고.”

확실히 그의 말대로 투창은 허무하게 막혔지만 상관없다. 거북이 등딱지가 아무리 단단해도 계속 후려치면 박살 나기 마련이니까.

콰아앙!!

그리고 내 예언은 현실이 되었다. 그의 전실을 가려주던 방패는 계속되는 투창에 버티지 못하고 산산이 조각났고 그는 드물게 당황한 얼굴이었다.

“계란이 바위를 깨버렸군. 이제 어쩔 텐가?”

“그깟 창 따위는 피하면 그만이다!”

내가 창을 빙글빙글 돌리며 그를 비웃자 그는 검을 바로 잡더니 괴성을 내지르며 나를 향해 달려들었다. 하지만 난 자리에서 한 발자국도 움직이지 않은 채 자세를 잡고 그를 노려보았다.

“소용없다! 네놈의 신성력도 이제 끝을 보이고 있지 않더냐!!!”

그의 말대로 슬슬 내 안에 넘쳐흐르던 신성력도 조금씩 사그라드는 게 느껴졌다.

수퉁이야 자신의 방패가 깨지는 것보다 내 안의 신성력이 먼저 바닥을 칠 거라 생각해서 버텼던 모양이지만, 그래도 그의 목숨을 거둬갈 정도의 신성력은 남아있었다.

물론 그를 위해선 몸 안의 신성력을 전부 태워야 했고 나도 그 대가를 치러야 할 테지만… 어쩌겠는가. 눈앞의 거인은 이것저것 사정 봐가면서 싸울 만한 상대가 아니었다.

― 오딘의 진정한 힘을 받아들입니다.

― 오딘이 권능이 당신의 혈관을 타고 흐릅니다.

휘이이잉.

지금까지와는 다르게 궁니르에 바람이 깃들었고 그와 함께 내 몸도 여기저기가 어긋나는 게 느껴졌다. 인간의 몸으로 신의 권능을 받아들이는 건 많은 부담을 야기했다.

입가에서는 피가 줄줄 새어 나오고 있었고 시야가 흔들리고 있었다. 무게조차 느껴지지 않을 정도로 가볍던 궁니르는 흡사 돌덩이라도 들고 있는 것 같은 이질감이 느껴졌다.

하지만 나는 이를 악물고 상대의 가슴팍을 조준했다. 수퉁은 그 멀던 거리를 순식간에 좁혀오고 있었지만 나는 끝까지 그를 바라보며 기회를 노렸다.

그리고 마침내 그가 내게 다가와 검을 치켜들고 내려치는 순간 나 역시 상대의 가슴을 노리며 창을 찔렀다.

그의 거대한 검에 비해 내 무기는 너무나도 작고 연약해 보였지만 신창이라는 이름에 걸맞게 궁니르는 그의 검을 부수고, 그의 살가죽을 관통하는 것도 모자라 그의 심장을 꿰뚫었다.

“커헉!”

단 한 번의 일격에 수퉁은 무릎 꿇었고 그의 가슴팍에는 커다란 구멍이 뚫려있었다.

폭풍의 힘 때문인지 절단면은 깔끔했고 수퉁은 믿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자신의 바람구멍 난 가슴을 바라볼 뿐이었다.

“흐흐, 내가 했지만 제법 볼만한 피어싱이군.”

신성력이 바닥나서 더 이상 궁니르를 유지할 수 없어진 나는 창을 소환 해제한 뒤 도끼를 꺼내 들었다.

“내가 얘기했었지? 반드시 네놈의 대가리를 도끼로 찍어버리겠다고.”

“이런 말도 안 되는… 아니 애초에 어, 어째서 네가!? 너는 분명….”

수퉁은 당황한 목소리로 버벅거리며 이야기했지만 난 그걸 끝까지 들어줄 생각은 없었다.

“거인도 발할라에 갈 수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가게 되면 오딘께 안부 전해주게.”

말을 마친 나는 거칠게 포효하며 그에게 달려가서 그대로 날아올라 그의 머리를 찍었고 수퉁은 제대로 된 비명조차 내지르지 못하고 절명했다.

수퉁의 거대한 몸체가 스르르 무너져내렸고 그의 죽음을 확인하자 긴장이 풀리며 어마어마한 피로감과 상실감이 날 덮쳐왔다.

그 때문에 그의 죽음으로 말미암아 내 앞에는 수많은 시스템 창이 떠올랐지만 나는 그걸 보지 못한 채 쓰러지듯 허물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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