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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임 속 바이킹이 되었다-143화 (143/205)

▣ 143화

오랜만에 힐데와 시간을 보낸 나는 모든 준비가 끝나자마자 병력들을 준비시켰다. 본래라면 좀 더 일찍 올라가고 싶었지만, 기회는 단 한 번뿐이었기에 나는 신중에 신중을 기할 수밖에 없었다.

물론 이번 원정을 실패한다고 해도 또 준비하면 그만이었지만 그때는 폴란드의 도움을 받기도 힘들 테고 지금처럼 에릭의 의표를 찌르는 것도 불가능할 것이다.

량주 지역이 제갈량의 1차 북벌에 호응했다가 북벌이 실패로 돌아가면서 반란 세력이 뿌리뽑혔던 것처럼 덴마크 내부에 있는 하랄의 지지 세력들도 이번 전쟁에서 패배하면 전부 숙청당할 것이다.

거기에 먼저 떠난 이비가 퓐섬에서 자리를 잡을 시간도 필요했다. 그러니 나로서는 신중하게 움직일 수밖에 없었고 때가 무르익었다 생각되자 곧장 병력을 일으킨 것이다.

계속해서 준비를 하고 있던 만큼 병력들의 출진 준비는 그 어느 때보다 신속했고 나는 배 위에 오르기 전에 다른 이들을 보며 각자에게 당부했다.

“하랄. 자네를 믿고 있지만 절대 서둘러선 안 되네. 이건 결국 인내심 싸움이야. 내가 셀란에서 에릭을 붙잡고 있을 테니 믿고 야를들을 회유하게.”

“지금껏 자네가 날 실망시켰던 적이 없지 않나. 이번에도 난 그럴 거라 믿네. 하지만 이번만큼은 자네도 몸조심하게. 그가 이끄는 정예병력들은 지금껏 자네가 만나봤던 어떤 적들보다 강력할 거야.”

하랄의 조언을 가슴속에 새긴 나는 그 옆에서 아쉬운 표정을 짓고 있는 례셰크를 바라보았다.

“아직 용담공 전하께 배워야 할 게 많은데 따로 행동하는 게 아쉽군요.”

“너무 아쉬워하지 말게. 례셰크. 어차피 우리는 곧 만나게 될 거야. 그리고 하랄도 일대의 영웅이라고 불릴 사내이니 그를 잘 보좌하도록 하게.”

“알겠습니다.”

“아무튼, 날아오는 화살에는 눈이 없으니 자네도 항상 몸조심하게. 훗날 폴란드의 왕이 되어야 할 사내가 이런 곳에서 주저앉을 순 없지 않겠나?”

“물론입니다 전하. 늘 그랬듯 승리로 저 자신을 증명하겠습니다.”

“믿음직스럽군.”

나는 자신 있다는 듯 가슴을 탕탕 두들기는 례셰크를 보며 마음속 깊이 미소지었다. 이제 슬슬 사자공이나 프리드리히, 정의공 같은 현시대의 패자들이 은퇴를 바라보는 시점이다.

아마 몇몇은 몇 년 안에 죽음을 맞이하겠지. 그런 그들의 뒤를 이을 후계자들 중에서 례셰크는 단연 독보적이었다.

그를 포함해 오토와 필리프만 잘 꼬드겨도 내가 죽는 그 순간까지 외교로 고통받을 일은 없을 것이다. 어쩌면 중세판 비선실세에 등극하게 될지도 모르고.

아무튼, 그런 내 미래의 꿈도 이곳에서 승리했을 때 빛을 볼 수 있을 것이다. 이미 에릭 블러드엑스와 군힐드와의 관계는 돌이킬 수 없는 강을 건넜으니 반드시 이번 기회에 제거해야 했다.

그를 위해서 총력을 기울여야 했고 거의 모든 병력을 끌고 북상하는 만큼 집단속을 철저히 해야 했다. 그리고 그를 위해서 나는 리슐리외를 영주 대리로 임명했다.

니스에서도 고드프리를 도와 내정을 총괄한 경험이 있는 데다 본인의 능력도 출중했기에 그만한 적합자가 또 없었다.

물론 필리프나 오토에게 맡길 수도 있었지만, 필리프는 내 명령을 받고 남부와의 교역로 확보를 위해 뉘른베르크로 내려가 있었고 오토는 함부르크를 다스리는 데 정신이 없었다.

“리슐리외. 늘 그렇지만 자네에게는 힘든 일만 맡기는 것 같군.”

“괜찮습니다. 용담공 전하의 밑에서 일하는 게 먹고 살기 위해 마음에도 없는 신학 공부를 할 때보다 훨씬 즐겁더군요.”

리슐리외는 그의 트레이드 마크라고 할 수 있는 붉은 색 옷을 두른 채 키득거렸다. 그 모습이 제법 잘 어울렸기에 나 역시 웃으며 그의 말을 받았다.

“신실한 사제가 그런 말을 해도 되나?”

“하나님께선 자비로우시니 용서해주실 겁니다. 거기에 절 대신해 제 가족들에게 돈과 음식, 장작과 입을 옷을 전달해주시지 않았습니까?”

동료와 수하들의 호감도를 관리할 목적으로 복지정책을 펼쳤었는데 그게 제법 호평이었고 특히 가족을 위해 많은 것을 포기해왔던 리슐리외에게 감동으로 다가온 모양이었다.

“저와 제 가족을 가난에서 구원해 주셨으니 용담공 전하께서 곧 저의 구세주이자 신이 아니겠습니까?”

“푸하하하, 자네 제법 아부를 잘하는군.”

“다른 건 몰라도 전하께 감사하는 제 마음만큼은 진실입니다.”

“그래, 아무튼, 이번에도 잘 부탁하네. 자네가 뒤를 맡아주고 있기에 내가 안심하고 원정을 나갈 수 있는 거라네.”

유비가 오나라를 침공할 때 제갈량을 두고 간 건 그가 원정을 반대해서이기도 했지만, 당시 혼란스러웠던 서촉을 믿고 맡길 수 있는 건 제갈량뿐이었기 때문이었다.

나 역시 아직 어수선한 뤼벡을 두고 전쟁터로 나아갈 수 있는 건 리슐리외의 능력을 믿기 때문이었다.

“레오나르도, 미켈란젤로, 라파엘로. 그대들은 내가 없는 동안 리슐리외를 잘 보좌해주게.”

이 셋은 처음에는 니스를 떠나 북부로 간다는 소식에 망설였지만 내가 여전히 지원을 빵빵하게 해줄 거라는 말과 함께 5년만 종군한다면 종신 교수직을 주겠다는 말에 두 눈을 빛내며 나를 따라왔다.

아무튼, 이곳에서 공성전을 할 것도 아니고 예술가 셋을 데리고 전쟁터에 가기는 너무 위험해서 그냥 이곳에 남기기로 했다. 원래 사람은 각자의 능력에 맞게 적재적소에 배치해야 하는 법이다.

“얀. 그대는 나를 따라 종군하게. 이 중에서 자네만큼 기병을 잘 다루는 이가 없잖나.”

“영광입니다. 용담공 전하.”

그동안 얀은 내 밑에서 계속 병력들을 육성하거나 아니면 산적 소탕 같은 일만 해왔기에 이참에 한번 날뛰게 만들 생각이었다.

물론 윙드후사르 같은 중기병을 운용하는 건 애초에 불가능했고 기병들도 정찰을 위한 경기병이 전부였기에 끽해야 30기 안팎일 것이다.

원래는 기병의 숫자를 늘릴 겸 예비마들은 짐말로 쓰려고 했지만, 건초 확보 문제도 있고 전투마를 관리하는 것도 일이었기에 나는 상대적으로 들이는 노력이 적은 노새를 짐말로 쓰기로 했다.

그 덕에 생각보다 기병의 숫자가 줄어들었지만 얀이라면 능력껏 잘 운용할 것이다. 다른 건 몰라도 기병을 지휘하는건 얀을 따라올 자가 없었으니까.

“마지막으로… 고드프리 경. 늘 어려운 부탁을 드려서 죄송합니다. 하지만 이런 부탁을 드릴 수 있는 사람은 고드프리 경밖에 없습니다.”

“걱정 마십시오. 반드시 기대에 부응해드리겠습니다.”

그에게는 따로 특별한 임무를 맡겼는데 경험 많은 고드프리라면 현명하게 잘 처리할 것이다. 솔직히 성공 가능성이 낮다고 생각하지만, 성공만 한다면 에릭을 압박할 수 있을 것이다.

그렇게 모두에게 당부 겸 인사를 건넨 나는 그들의 환송을 받으며 배 위에 올랐다. 원거리 항해를 할 것도 아니고 병력들의 숫자도 천 명을 살짝 넘는 정도였기에 이동은 중소형 갤리로 충분했다.

그 때문에 우리는 빠른 속도로 바다를 헤쳐 나갔고 이틀 만에 덴마크 땅에 발을 디딜 수 있었다. 물론, 우리가 상륙한 곳은 원래 목적지였던 셀란섬이 아니라 그 밑에 있는 롤란섬이었다.

“일단 롤란섬의 중심인 나스코브부터 접수하도록 하지.”

도시의 규모도 어느 정도 갖춰져 있는 데다 뤼벡과 얼마 떨어져 있지 않았기에 혹시 모를 상황에서도 뒤를 잡히지 않고 빠르게 퇴각할 수 있을 것이다.

“충격을 주고 어그로를 끌어오려면 차라리 셀란을 급습하는 게 낫지 않겠습니까?”

이미 이비는 날 떠났기에 내 곁에 남아있는 건 힐데 하나였고 나는 왠지 모를 쓸쓸함을 느끼며 그녀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그것도 나쁘진 않지만 첫 공격을 하고 나면 저쪽에도 우리의 숫자가 얼마 되지 않는다는 걸 알게 될 거야. 그렇게 되면 에릭이 우릴 무시할 수도 있어.”

“그건 이곳을 공격해도 매한가지 아닙니까? 어차피 이제 곧 에릭의 귀에 우리가 출항했다는 소식이 귀에 들어갈 텐데요.”

“그러니 이쪽이 선발대인 것처럼 행동해야지. 하랄 블로탄이랑 용담공인 나, 그리고 폴란드의 례셰크까지 지원을 왔는데 상륙한 병력의 숫자가 고작 천 명이라면 무슨 생각이 들겠어?”

내 말에 팔짱을 끼고 잠시 생각하던 힐데는 나지막하게 탄성을 내질렀다.

“아! 당연히 이쪽을 본격적인 공격에 앞서 파견한 선발대라고 생각하겠군요.”

“그 와중에 유틀란트반도가 공격당한다? 저게 진짜 주공인지 아니면 자신들을 끌어내려는 함정인 건지 판단이 안 될걸? 골 좀 때릴 거야.”

“그렇게 온갖 정보를 노출해서 그의 판단을 유보시킨 뒤 시간을 끌려는 겁니까?”

“맞아. 그러다 못 참고 뛰쳐나오면 그때 술래잡기를 해줘야지. 애초에 이쪽에서 턱 밑에 칼날을 들이밀고 있는데 언제까지 버틸 수 있겠어.”

롤란섬에서 해안선을 타고 북상하면 쾨벤하운까지 이틀이면 닿을 거리였다. 그가 어떤 판단을 내리건 이쪽을 한번 청소하고 싶어 할 것이다.

“자신들이 기만당한 걸 알고 유틀란트반도로 진군하면 어떻게 할 겁니까?”

“그때는 빈집 한번 제대로 털어줘야지.”

내가 이끄는 병력은 조공이면서도 주공이었다. 정확히 얘기하자면 내가 포함되지 않으면 조공, 내가 포함되는 순간 주공이 된다는 말이다.

나는 살아 움직이는 공성 병기이자 군대 그 자체였고 그런 내가 정예병들을 끌고 수도 주변을 초토화시킨다면 에릭은 결코 우리를 무시할 수 없을 것이다.

* * *

[덴마크 쾨벤하운 – 에릭의 거처]

화려한 궁성 안에 걸맞게 화려한 옷을 걸친 사내는 분노로 얼굴을 씰룩이며 테이블 위에 잔뜩 쌓여있는 편지를 읽고 있었다.

그렇게 네 번째 편지를 읽던 도중 도저히 화를 참지 못하겠는지 그는 들고 있던 편지를 구겨 바닥에 집어 던지며 분노를 표출했다.

“이런 빌어먹을. 이놈이나 저놈이나 구원요청을 하면 뭘 어쩌란 말이야!”

노르웨이의 정당한 왕이자 덴마크의 왕위 찬탈자. 에릭 블러드엑스의 분노 섞인 포효에 답한 건 그의 부관이었다.

“그렇다고 저들의 목적이 뭔지 모르는데 병력을 끌고 나갈 순 없는 일 아닙니까?”

“나라고 그걸 모르겠나? 근데 대체 저놈들이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 건지 당최 짐작이 안 되는군.”

에릭은 지금 말 그대로 머리가 아파 죽을 지경이었다. 차라리 병력을 끌고 나가 화끈하게 한번 싸우라고 하면 모르겠는데 적들은 자신에게 보기를 주고 선택을 강요하고 있었다.

하랄 블로탄은 유틀란트반도가 제집인 양 종횡무진으로 휘젓고 다니며 야를들을 설득하고 있었고 셀란섬의 남부에서는 라그나르 로드브로크가 롤란섬을 거점으로 삼아 순회공연을 하며 약탈을 감행하고 있었다.

자신에게 적대적이었던 야를들은 쌍수를 들고 하랄에게 합류하고 있었으며 자신을 지지하던 야를들의 영토는 순식간에 박살 나고 있었다.

그 모습에 중립을 지키던 야를들까지 하랄에게 합류하고 있다니 에릭은 정신이 나갈 것 같았다. 이대로 유틀란트반도가 하랄에게 넘어간다면 전쟁이 길어질 수밖에 없었다.

그렇다고 지원을 가기도 힘든 게 애초에 뭐 좀 성에서 버티고 있어야 지원을 가든 말든 할 텐데 시시각각으로 전선이 변화하고 있으니 함부로 병력을 보내기도 힘들었다.

헌데 자신의 아내인 군힐드는 본인의 지지기반이 무너진다는 사실에 분노한 건지 왜 병력을 파견하지 않냐고 하루가 멀다 하고 자신을 들들 볶고 있었다.

“허면 전하. 최근에 이름을 날리고 있는 예언가의 조언을 받아보시는 게 어떻습니까?”

“예언가라고?”

“예. 최근 퓐섬에서 이름을 날리고 있는 인물인데 제법 능력이 출중하다고 합니다.”

“자세히 얘기해보게.”

부관은 자신이 들은 소문들을 간추려서 에릭에게 이야기했고 그 말을 조용히 듣고 있던 에릭은 긍정적인 표정을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예언이니 마녀니 하는 건 잘 모르겠지만 적어도 그 예언가의 통찰력은 그럴듯해 보였다. 원래 예언이라는 게 모든 가능성을 확인한 뒤 가장 확률이 높은 미래를 얘기하는 게 아니던가.

“좋아. 그대에게 병력을 지원해줄 테니 당장 그 예언가를 불러오도록 하게.”

“알겠습니다.”

“헌데 그 예언자의 이름이 뭐라고?”

에릭의 물음에 부관은 눈살을 찌푸리며 생각에 더듬었고 이내 천천히 입을 열었다.

“음… 흔한 이름이 아니어서 확실하진 않습니다만 제 기억이 맞다면 분명 아포피스라고 했던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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