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게임 속 바이킹이 되었다-138화 (138/205)

▣ 138화

내 말에 감화된 건지, 아니면 필리프와 내가 보고 있는 앞에서 추태를 보일 수 없다 생각한 건지 오토는 생각보다 뛰어난 지휘력을 보여주었다.

“보병 대기! 방패병 열 발자국 앞으로!”

경기병들을 이용해 적을 기습한 오토는 곧바로 적의 부락이 혼란에 빠진 틈을 타서 보병을 앞으로 진군시켜 적들을 압박했다.

“궁병 준비! 발사!!!!!!”

적들은 새벽녘쯤에 갑작스레 나타난 경기병에 정신을 못 차리고 있었고 살기 위해 도망친 이들은 후방에서 대기하고 있던 궁병들의 화살에 먹이가 되어 쓰러져 갔다.

“보병 돌격!!! 적들을 모두 처단하라!”

때가 무르익었다 생각했는지 오토는 곧장 돌격 명령을 내렸고 웅장한 나팔소리에 보병들은 각자의 무기를 들고 적을 향해 달려나갔다.

미리 얘기가 돼있던 건지 그때를 맞춰 기병들은 전선에서 이탈해 주변을 빙빙 돌며 포위망을 형성했다. 그렇게 야만인 부족은 제대로 된 저항조차 하지 못한 채 사망하거나 살기 위해 두 팔을 들고 항복해야 했다.

“훌륭하군.”

완벽히 자신의 생각대로 병력들을 통제하는 오토의 모습에 나는 절로 박수를 쳤다. 하긴, 아무리 중세가 혈통빨이었다지만 깜냥도 안되는 이를 호엔슈타우펜의 대항마이자 제국의 황제로 내세울 리는 없겠지.

“고생했네. 오토. 완벽에 가까운 솜씨였네.”

“고작 200명도 안 되는 작은 부락일 뿐입니다. 이 정도도 못 해서야 어디 가서 공작 전하의 부관을 했다고 얘기나 할 수 있겠습니까?”

대놓고 현재 내 부관인 필리프를 저격하는 말에 그의 얼굴 표정이 일그러졌지만 나는 내색하지 않고 호탕하게 웃으며 오토를 치하했다.

“푸하하하, 아부라는 걸 알지만 그래도 그렇게 얘기해주니 기분이 좋군.”

적당한 경쟁의식은 사람을 성장시키는 요소다. 물론 이게 과해지면 자존심이 짓밟힐 수 있겠지만 그건 내가 적당히 조절하면 그만이다.

“일단 점령한 부락은 아예 다 불태워서 잿더미로 만들어버리게. 포로로 잡은 이들을 심문해서 근처에 다른 부락이 있는지도 확인하고.”

“알겠습니다.”

“음… 공작 전하. 그렇게 야만인들을 몰아붙일 필요는 없지 않습니까? 어차피 저들을 끌어들일 거라면 적당한 시점에 손을 내미는 게 좋지 않겠습니까?”

수긍하는 오토와는 다르게 필리프는 납득할 수 없다는 표정으로 내게 반문했고 나는 순순히 고개를 끄덕였다.

필리프 입장에서 충분히 들 수 있는 의문이었고 전쟁의 사후처리 역시 지휘관의 영역이었기에 이왕 가르치기로 한 거 이유를 설명해주기로 했다.

“자네 말대로 할 수도 있을 걸세. 하지만 우리는 이쪽 지역을 정복하러 왔고 우리의 힘을 보여줄 필요가 있다네. 거기에 이미 전투 시작 전에 항복을 권하지 않았나?”

물론 제대로 된 항복 권유라기보다는 새벽에 뜬금없이 기병을 보내 항복하라고 소리치고 별다른 대답이 없자 쓸어버린 것에 불과하지만 어쨌건 항복을 권유했다는 사실이 중요한 거다.

“그건 그렇습니다만….”

“여전히 납득하지 못한 표정이군. 하지만 생각해 보게. 이랬거나 저랬거나 우리는 덴마크의 바이킹들에게 뤼벡이 약탈당한 상태네.”

그것도 인근의 마을들이 약탈당한 게 아니라 외성이 점령당하고 그 과정에서 영주가 죽음을 맞이하는 등 내성 빼고 다 털린 상태였다.

“이런 상황에서 땅에 떨어진 위상을 끌어올리고 건재함을 과시할 방법이 뭐가 있겠나?”

총명한 필리프였기에 더 이상 의문을 품지 않았고 나는 다음 야만인 부락에 대한 공격은 필리프에게 맡겨보았다.

필리프는 오토와는 다르게 정식적으로 사절을 보내 야만인들에게 항복 의사를 물었고 그들이 거절하자 철저하게 짓밟았다.

물론 전투의 지휘는 오토보다 못했지만, 훨씬 더 깔끔하게 뒷마무리를 했고 나는 만족스러운 표정으로 그의 공을 치하했다.

이 정도면 간단한 야만인들은 굳이 내가 나설 것 없이 둘을 보내는 것만으로 소탕이 가능할 것이다. 사실 게임도 그렇지만 초반에나 도적들과 야만인이 무섭지 후반 가면 그냥 귀찮고 걸리적거리는 걸림돌에 불과하지 않던가?

게임에서야 오토 기능이라도 있었지 여긴 그런게 없었기에 나는 날 대신해서 오토와 필리프를 키울 생각이었다. 그리고 둘은 포커로 제국의 황제라는 타이틀을 딴 게 아니라는 듯 뛰어난 포텐셜을 보여주며 야만인들을 때려잡았다.

그렇게 하루 이틀이면 갈 거리에 있던 비스마르를, 굳이 일주일이 넘게 빙빙 돌아가며 근방에 있는 야만인 부락들을 초토화시킨 다음에야 나는 비스마르에 입성했다.

비스마르의 시민들은 수많은 야만인 포로들을 데리고 입성하는 우리의 모습을 보며 환영했고 오랜 기간 보지 못했던 요한나 역시 수하들을 데리고 나를 맞이해주었다.

“오랜만에 뵙습니다. 용담공 전하.”

“오랜만이네. 요한나. 무사한 걸 보니 기쁘군. 이곳까지는 바이킹 놈들이 오지 않은 모양이지?”

“이곳은 굳이 공격해봤자 얻을 게 별로 없기에 그냥 지나친 모양입니다.”

“대신 뤼벡이 털렸으니 이걸 다행이라고 해야 하나?”

물론 입 밖으로 내진 못하겠지만 난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살아남은 이들이 생존을 위해 내게 의존해야 하는 만큼 뤼벡은 물론이요. 인근에서 내 영향력이 커질 테니까.

“오자마자 일거리를 넘겨줘서 미안하네만 우리가 가져온 물자랑 야만인들을 좀 처분해주게. 뤼벡에서 많은 이들이 죽었으니 노동력이 필요할 걸세.”

흑인들이 노예로 팔려나갔던 건 단순히 노동력이 필요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뤼벡 역시 노동력이 필요했다. 공급과 수요가 맞아떨어지니 요한나는 돈을 긁어모을 수 있을 것이다.

“알겠습니다. 대금은 물자로 치러드려도 되겠습니까?”

“눈치가 빨라서 좋군.”

“헌데 계속 야만인 토벌을 이어나갈 생각이십니까? 겨울이라 힘들지 않겠습니까?”

“겨울이기에 토벌을 하는 걸세.”

겨울은 모두에게 가혹한 계절이었다. 우리가 춥다면 야만인들도 추웠고 우리가 힘들면 그들도 힘든 게 당연한 이치였다.

그런 야만인들이 겨울을 나기 위해 준비를 끝내놨는데 우리를 피해서 도망치겠다고 지금껏 모아놓은 음식들과 장작들을 내버려두고 도망칠까?

그 때문에 언제나 겨울은 야만인과 산적 토벌에 최적의 시기였고 나는 해가 넘어가기 전에 그들을 전부 처리할 생각이었다.

* * *

[야만인 마을 약탈을 완료하셨습니다. 명성과 명예가 상승하며 야만인들이 당신에게 적대적인 감정을 품습니다.]

[야만인 포로 획득을 완료하셨습니다. 명성과 명예가 상승하며 야만인들이 당신에게 두려움을 품습니다. 몇몇 야만인들은 당신에게 경외심을 품고 있습니다.]

[야만인 부족 간 분쟁 해결을 완료하셨습니다. 명성이 상승하며 두 부족을 몰살시켜 분쟁을 해결한 당신의 모습에 야만인들은 공포에 떨고 있습니다. 몇몇 야만인 부족은 당신의 손길로부터 살아남기 위해 몸을 의탁할 것입니다.]

[야만인 족장 암살을 완료하셨습니다. 명성이 상승하며 명예가 하락합니다. 그 누구에게도 들키지 않고 족장을 암살한 당신의 실력에 야만인들은 자비를 구걸하게 될 것입니다.]

하나하나 완료돼가는 퀘스트를 보며 나는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었다. 이제 더 이상 북부에 야만인들은 없었고 야만인이었던 문명인들만 남게 됐다.

물론 여전히 도적들이나 내게 저항하는 야만인들이 남아있지만, 그놈들은 굳이 내가 손쓸 것도 없이 동족들의 손에 의해서 토벌당할 것이다.

고대로부터 생존을 위해 강한 이들을 따르는 건 불멸의 진리였고 나는 투항과 복종의 대가로 생존과 안전을 보장해줬으니까.

물론 이 광활한 지역 전부를 점령한 건 아니었다. 딱 베를린부터 슈체친 라인까지만 정리했고 나머지는 폴란드에게 맡겼다.

이쪽에서 더 밀고 들어가봤자 보급선이 워낙 길어져서 이득 볼 것도 없는 데다 이미 야만인들이 충분히 동화되었기에 영토를 욕심낼 필요도 없었다.

반면 폴란드는 지금이 눈에 거슬리던 웬드족과 포메른 공국의 생존자들을 쓸어버릴 기회라는 걸 알았기에 작정하고 병력을 투입했다.

혹독한 추위와 부족한 물자는 누구에게나 공평했지만 폴란드는 예외였다. 그들은 수많은 실전경험으로 단련된 정예병들과 수많은 승리로 인해 얻어낸 물자들이 비축되어 있었으니까.

그들은 말 그대로 압도적인 돈과 물량으로 웬드족들을 몰아붙였고 이내 항복을 받아낼 수 있었다. 그렇게 해가 지나기 전에 웬드족의 토벌이 마무리되었고 곧 새해가 찾아왔다.

그 이후로는 살을 엘듯한 추위와 폭설이 몰아쳤기에 토벌을 멈추고 복귀할 수밖에 없었고 덕분에 북부는 다시 평화가 도래했다.

하지만 북부에서 살고 있는 이들이라면 누구나 다 알고 있었다. 이 잠깐의 평화는 곧이어 벌어질 대규모 전쟁을 위한 휴식기에 불과하다는 것을.

* * *

[덴마크―코펜하겐]

“라그나르 그 개자식이 북부로 올라왔다고?”

“예. 전하. 믿기지 않으시겠지만 남부에서의 모든 것을 포기하고 북부로 올라갔다고 합니다.”

“미친놈이군. 이유를 알 것 같지만 올라온 이유가 뭐라던가?”

덴마크와 노르웨이의 왕인 에릭 블러드엑스의 질문에 전령은 그의 눈치를 살피며 조심스럽게 대답했다.

사실 전령들은 자신이 보고 들은 사실 그대로를 상급자에게 전달해야 했고 그 때문에 듣기 싫거나 기분 나쁜 소식이 전달되면 화풀이 대상이 되어 깨지는 경우가 종종 있었기 때문이다.

“오딘의 신탁을 받았다고 합니다.”

전령의 대답에 에릭은 화를 내기보다 어이가 없어 코웃음을 쳤다.

“하, 오딘이라고? 힘도 없고 애꾸에 전사도 아닌 신을 섬긴단 말인가? 이곳 스칸디나비아반도에서 주신은 오직 토르뿐이거늘.”

토르. 천둥의 신. 묠니르를 다루며 로키의 세 자식 중 하나인 요르문간드를 처치한 최강의 전사. 그런 그가 주신이 아니라면 대체 누가 주신이란 말인가.

멍청한 늑대 새끼 하나 이기지 못해 잡아먹힌 오딘 따위는 주신으로 불릴 자격조차 없었다.

“재밌구나. 허면 봄이 오는 대로 그 겁쟁이 하랄 블로탄과 함께 날 끌어내리려 하겠군.”

라그나르는 공공연하게 하랄 블로탄을 지지하며 자신을 왕위찬탈자라 칭했다. 그 때문에 언젠가는 다시 그와 맞붙을 날이 올 거라 생각했는데 이렇게 빨리 결전의 순간이 다가올 거라고는 예상하지 못했다.

“예. 이미 엘베강 동부의 슬라브족들을 정리하고 있다고 합니다. 아마 전하와의 결전을 앞두고 후방을 정리하는 게 아니겠습니까?”

“쯧, 그놈이 올라올 줄 알았다면 슬라브족들을 지원해줄 걸 그랬군.”

전령의 말에 에릭은 작게 혀를 찼다. 지난번 탈린에서의 전투에서 스웨덴의 방해를 받아 제시간에 도착하지 못했고 그 때문에 함대를 끌고 먼 곳까지 원정을 나가 아무런 이득도 얻지 못했기 때문이다.

만약 라그나르가 그들을 무시한 채 자신과 싸우려 한다면 그대로 되돌려줄 생각이었지만 생각보다 교활한 놈인 것 같았다.

“그들은 야만인에 가까운 데다 피아를 가리지 않으니 어쩔 수 없지 않았습니까.”

사실 슬라브족들은 에릭에겐 계륵과 같은 존재들이었다. 거슬리긴 하는데 그렇다고 공격을 하자니 덴마크의 영토도 아니었고 건들지 않으면 굳이 싸움을 걸지는 않았기에 그냥 방치만 하고 있었다.

그런데 그 미친놈은 겨울에 직접 토벌을 하고 다녔고 그 덕분에 에릭은 라그나르를 견제할 패를 하나 잃어버린 셈이었다.

“그건 그렇지만 아쉬운 건 어쩔 수 없군.”

“그래도 뤼벡에 심대한 타격을 줬으니 한동안은 대규모로 병력을 일으키기 힘들지 않겠습니까?”

전령의 말에 에릭은 순순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나마 그게 행운이라면 행운이었다. 물론 함부르크도 공격했다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이 남기도 했지만, 만약 그랬다면 역으로 뒤를 잡혔을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거기에 에릭은 지나간 과거에 연연하는 성격이 아니었기에 크게 아쉬워하지도 않았다. 그저 그의 몸속에 흐르는 전사의 피가 라그나르와의 결전을 바라고 있을 뿐.

“라그나르. 오딘의 대행자여. 토르께서 네놈을 심판하실지니 어디 한번 결판을 내보자꾸나.”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