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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임 속 바이킹이 되었다-137화 (137/205)

▣ 137화

호기롭게 북부를 토벌하겠다고 마음먹긴 했지만 그게 지금 당장 바이킹들을 조지겠다는 얘기는 아니었다. 체스도 그렇고 장기도 그렇고 다짜고짜 왕을 잡을 순 없지 않은가.

차근차근 시간을 들여서 적의 말을 하나씩 쓰러뜨리고 기회가 왔을 때 왕을 잡아채야 한다. 아직 제대로 자리도 못 잡았는데 굳이 잠자는 곰을 쿡쿡 찔러서 끔살당할 수는 없잖은가.

그 때문에 나는 퀘스트도 깰 겸 야만인들을 조지기로 했다. 사실 신성제국 입장에서 바이킹을 포함해 북부에 있는 놈들이 다 야만인이긴 한데 그렇다고 다 같은 야만인은 아니다.

중국이 오랑캐를 분류할 때도 동이, 서융, 남만, 북적으로 나누었고 여진족 역시 건주여진, 해서여진, 야인여진등으로 나뉘지 않았던가.

엘베강 동쪽에 있는 야만인들은 정확히 얘기하자면 슬라브인들이었다. 그들은 본래 동유럽 부근에 살던 게르만들이 훈족들에게 영혼까지 털려서 서유럽으로 도망칠 때 그 자리에 들어왔고 거기에 계속 굳어져 살게 된 것이다.

다만 이들은 따로 국가를 만든 건 아니고 부족 체제로 여기저기 흩어져 있기에 토벌하기에 딱 좋았다. 원래 옛날부터 흩어져 있던 놈들이 하나로 통일되는 순간 그 저력이 어마무시하지 않던가.

몽골족이 그러했고 여진족이 그러했다. 슬라브라고 그러지 못하란 법은 없었다. 그러니 나는 이참에 원정을 통해 여러 가지 이득을 취할 생각이었다.

우선 뤼벡이 공격당해 파탄 난 민심도 회복하고 전투경험을 통해 병력들을 정예로 육성하는 게 가능했다. 또한, 오토의 이름을 전면으로 내세우며 그의 이름을 널리 알림과 동시에 훈련시킬 기회였다.

“필리프. 지금 당장 우리가 운용할 수 있는 병력이 얼마나 되나?”

“지금 당장 공작 전하께서 명령만 내리면 출격할 수 있는 숫자를 말씀하시는 겁니까?”

내가 고개를 끄덕이자 필리프는 눈살을 찌푸린 채 머리를 굴리더니 이내 대답했다.

“천 명 정도 될 겁니다.”

그 말에 나는 잠시 생각에 잠겼다. 내가 끌고 온 병력이 3천 정도 되니 주변을 경계하고 대민지원을 나갈 인원을 제외하면 그 정도가 딱 적당하긴 했다.

“내일 병력을 끌고 비스마르로 출진할 테니 준비해두게. 보급은 비스마르에서 요한나를 통해서 추가로 받을 테니 한 달 치만 준비하게.”

보급물자의 양이 많아진다는 건 작전반경이 넓어진다는 얘기였지만 반대급부로 행군속도가 현저히 줄어든다는 말이었다.

보급물자를 운반하려면 말이나 소 같은 가축이 필요했고 그들을 지킬 호위부대도 필요했기 때문이다. 호위의 수를 줄일 수도 있었지만, 보급부대는 언제나 적의 1순위 타겟이었다.

적의 보급물자를 탈취하거나 군량을 불사르는 순간 모든 전략과 전술이 의미가 없어진다. 관도대전에서 수적으로 열세였던 조조가 그렇게 눈에 불을 켜고 원소의 군량고를 찾아다닌 것도 다 그런 이유에서였다.

“그리고 기병은 정찰 및 도망치는 놈들을 추적하는 용도로만 운용할 테니 경기병들로 50기 정도만 차출하게.”

“어… 중기병들은 안 데려가실 겁니까?”

남부에서만 전투를 해왔던 필리프이기에 중기병의 중요성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기에 경기병과 보병만 끌고 간다는 내 말에 멍한 얼굴로 되물었고 나는 한숨을 내쉬었다.

“이보게 필리프. 이 추운 날씨에 말 다 죽일 일 있나? 거기에 길이 진창이라서 중갑을 착용하고 있으면 얼마 가지도 못하고 퍼질 걸세.”

“죄송합니다. 제가 생각이 짧았습니다.”

“지금부터라도 기억해두게.”

나는 필리프의 어깨를 툭 쳐준 뒤 다시 뤼벡으로 복귀했다. 내일 출정하기 전까지 혼란은 어느 정도 수습해야 하지 않겠나.

* * *

하루 정도면 혼란을 수습할 수 있을 거라는 예상과는 다르게 나는 무려 사흘이나 시간을 투자해야 했다.

우선 생각보다 뤼벡의 상태가 개판이었고 전 영주는 바이킹과의 전투에서 전사한 데다 수많은 개척민들은 바이킹들의 분노로부터 살아남기 위해 난민이 되어 뤼벡으로 몰려들었다.

뤼벡 역시 간신히 성만 지킬 수 있을 정도로 박살 난 상태였기에 난민들로 인해 치안은 개판이 되었고 살아남은 시민들은 자신의 것을 지키기 위해 문을 걸어 잠갔다.

난민들은 살아남기 위해 도둑질을 했고 몇몇은 집단적으로 백주대낮에 창고를 털며 약탈까지 벌였다. 물론 남아 있는 경비대는 그런 그들을 막지 못했고 뤼벡의 치안은 실시간으로 무너져가고 있었다.

그렇게 뤼벡이 무법 도시가 되려던 찰나 내가 병력을 끌고 도착했고 간신히 도시의 통제권을 되찾아 올 수 있었다.

당장 내가 데려온 병사들만 3천을 넘어가는 데다 살아남은 이들에게 충분한 양의 물자를 보급해줄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렇게 수하들을 각자의 능력에 걸맞게 배치하며 뤼벡의 행정적 공백과 치안의 공백을 메꿔 넣은 나는 곧장 병력을 이끌고 출정을 감행했다.

뤼벡의 시민들은 내 출진에 어디서 모아왔는지 모를 꽃잎까지 뿌리며 환송해줬는데 내가 자신들의 구원자인 건 둘째치고 자신들의 원수를 갚아준다는 생각이 컸던 모양이다.

물론 당사자가 아닌 엉뚱한 이들을 조지러 가는 거였지만 사실 그게 무슨 상관이란 말인가. 원래 남산에서 뺨 맞고 한강에서 화풀이한다고 저들에겐 분노를 배출할 대상이 필요했던 것뿐이다.

그런 내 출정에 오토 역시 호응했고 곧바로 휘하의 병력을 끌고 내게 합류했다. 다행히 중기병들을 끌고 오는 참사는 벌이지 않았고 정예병들로만 추려서 경기병을 100명 정도 끌고 왔다.

생각보다 기병들의 숫자가 늘어났지만 이백 정도는 어찌저찌 운용할 수 있을 것이다. 보급 한도를 넘어서지만 않으면 기병은 많을수록 좋았으니까.

“오랜만에 뵙습니다. 공작 전하.”

“그래, 자네도 안녕했나?”

“예. 그리고 그… 뤼벡의 일은 유감입니다. 아버지께서 준비가 되는 대로 물자와 병력을 추가로 지원함은 물론 뤼벡에 직접 들러서 그들을 위무하겠다고 하셨습니다.”

“다행이군. 솔직히 내가 출정을 나가 있는 동안이 걱정되긴 했거든. 사자공 전하께서 뒤를 봐주신다면 안심일세.”

사실 나로서는 뤼벡의 상황은 굉장히 당황스러웠다. 하노버로 가서 사자공을 만난 뒤 내 본거지를 뤼벡으로 정했고 그때까지는 아무런 문제도 없었다.

헌데 내가 뤼벡으로 오는 그 며칠 사이에 에릭 블러드엑스가 이끄는 바이킹들이 뤼벡을 침공해서 근방을 다 불태우고 약탈해간 것이다.

사실 뤼벡보다야 함부르크가 더 먹음직스러운 도시였지만, 그곳까지 가려면 빙 돌아서 가야 하는 데다 이 한겨울에 북해를 가로지르는 건 정신 나간 짓이었다.

그렇다고 뤼벡과 함부르크를 제외한 다른 도시를 털자니 그 고생과 위험성에 비해 얻는 게 없었기에 뤼벡을 공격한 것이다. 그 과정에서 에릭이 의도한 건 아니지만 내가 한 방 먹은 것도 사실이고.

“아무튼, 바이킹들에 대한 단죄는 나중에 실행할 걸세. 폴란드와 하랄 블로탄의 지원도 필요하니 못해도 봄… 4월까지는 기다려야겠지.”

하랄 블로탄도 출정을 준비해야 할 테니 실제로 병력을 끌어모아 덴마크로 북상하는 건 5월이나 돼야 가능할 것이다. 그것도 모든 일이 술술 잘 풀릴 때의 얘기고 재수 없으면 내년까지 질질 끌릴 수도 있겠지.

그나마 이곳은 여름이 그렇게 가혹하지 않아 여건만 된다면 계속 싸울 수 있다는 점이 유일한 위안거리였다. 더위에 지쳐서 퇴각하는 것만큼 비참한 게 또 없으니까.

“그때 복속시킨 야만인들도 전투에 투입하실 생각이십니까?”

옆에서 나와 오토의 얘기를 조용히 듣고 있던 필리프가 정곡을 찔렀고 나는 놀란 표정을 숨기지 않은 채 고개를 끄덕였다.

“자네 머리가 꽤 잘 돌아가는군. 대부분 거기까지는 짐작 못 하던데.”

“실은 공작 전하께서 북부에서 리보니아 검의 기사단을 무너뜨릴 때 사용하셨던 방법을 떠올린 것뿐입니다. 그때도 원주민들을 끌어들여서 내부에서부터 그들을 무너뜨리지 않으셨습니까?”

“뭐, 이번에도 비슷할 걸세. 내가 끌고 온 병력들은 남부와 중부 출신이라 추위에 약하지만, 슬라브족들은 계속 이곳에서 나고 자랐기에 추위에 강하지 않겠나?”

물론 강제로 징집해서 고기 방패로 쓰기보단 이쪽으로 끌어들일 생각이었다. 그리고 그들이 원한다면 대가로 그들만의 나라를 만들어 줄 생각도 있었다.

물론 그게 온전한 호의 때문은 아니었다. 그게 이쪽에서 야만인들을 통제하기도 편한 데다 폴란드가 동맹국이라고는 하지만 여러 공작들이 영토를 분할해서 통치하는 대공위시대였다.

항상 그렇지만 국경이 붙어 있으면 꼭 문제가 생기기 마련이었다. 그 때문에 나는 적당히 슬라브인들의 나라를 하나 만들어서 완충지대로 삼을 생각이었다.

“그건 그렇습니다만 야만인들이라 통제가 힘들지 않겠습니까? 거기에 전투력 역시 아국에 비하면 형편없을 겁니다. 실제로 사자공 전하께서도 그들을 손쉽게 몰아내지 않았습니까?”

야만인들을 끌어내리며 제국을 올려치는 필리프의 대답에 나는 어이가 없었다. 로마도 야만인에게 멸망했고 중국의 여러 통일 왕조들도 야만인에게 멸망했다.

하지만 방금 필리프와의 대화에서도 알 수 있듯 대부분의 사람들이 야만인에 가지고 있는 인식은 필리프와 크게 다를 바가 없었다.

그리고 의도적으로 야만인을 내려침으로써 사자공도 덩달아 내려치고 싶었겠지. 이랬거나 저랬거나 필리프는 호엔슈타우펜 가문의 사람이었으니까.

“슬라브족들은 자기들끼리 국가를 이루지 못해서 그렇지 개개인의 무력은 바이킹 못지않다네. 그리고 그들이 사자공 전하께 계속 패배한 건 그분이 대단해서 그런 거지 슬라브족들이 형편없어서 그런 게 아님을 왜 모르는가?”

“그건 그렇습니다만….”

“직접 그들을 상대해보면 자네도 알 수 있을걸세.”

원래 사람은 자기가 겪어봐야 아는 법이다. 내가 백날 천날 얘기해봤자 들어먹히기나 하겠는가. 때로는 경험을 통해서만 얻을 수 있는 것도 있다.

“헌데 공작 전하. 폴란드는 뭘 미끼로 끌어들일 생각이십니까? 그들에게 이번 전쟁은 참전할 명분이 없지 않습니까? 돈 몇 푼 때문에 올 정도로 폴란드의 상황이 좋은 것도 아니고요.”

오토의 말대로 지난번 사자공의 숙청 때 폴란드가 달려온 건 내 부탁 때문이기도 했지만, 사자공이 숙청당하면 북쪽의 정세도 출렁이는 데다 황제의 세력이 너무 커질 걸 염려했기 때문이다.

그 때문에 실질적으로 얻는 이득이 없음에도 다른 공작들이 병력의 차출에 동의한 것이었다. 반면 이번 전쟁은 어디까지나 덴마크와 북부의 야만인들을 상대로 하는 전쟁이다.

병력 끌고 와봤자 보상금이라는 명목으로 돈 몇 푼 받는 선에서 끝날 테고 영토야 이미 북방 원정을 성공시켜서 넘칠 만큼 받아냈다. 이미 배가 가득 찬 폴란드가 굳이 병력을 끌고 올 이유가 없는데 왜 도와주러 오겠냐는 게 질문의 요지였다.

“내가 폴란드와 얼마나 친밀한 관계인지는 그대들도 알고 있지 않나?”

“그건 그렇습니다만….”

“하지만 참전은 고작 친분을 바탕으로 요청할 수 있는 게 아니지. 허면 자네들은 왜 폴란드가 참전을 약속했다고 생각하나?”

역으로 내가 질문하자 그들은 입을 다물었고 나는 한숨을 쉬며 설명을 시작했다. 사실 내가 이들에게 모든 걸 하나하나 설명해주는 것도 이들을 가르치기 위해서였다.

“포메라니아 지역이 어딘지 알고 있나?”

“예. 그다인스크 근방이 아닙니까? 그 길쭉하게 생긴 특이한 형태의 지형 말입니다.”

“알고 있다니 설명이 쉽겠군. 그곳은 폴란드가 유일하게 바다와 마주한 곳이네. 자네들도 니스에 있었던 만큼 항구를 가지고 있다는 게 얼마나 큰 장점인지는 알고 있겠지?”

그곳에서 수많은 상단과 물자들이 운반되는 걸 봤기에 둘 다 고개를 끄덕였다.

“폴란드가 그 지역을 손에 넣은 건 얼마 되지 않는데 사실 거긴 포메른 공국을 무너뜨리고 정복한 지역일세. 그리고 그때 포메른 공국의 일원들 일부가 서쪽으로 도망쳤다네.”

내 말에 그제야 일의 전말을 깨달았는지 둘 다 멍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고 나는 부가적인 설명을 덧붙였다.

“그들은 그곳에서 세력이 가장 큰 ‘웬드족’들과 손을 잡고 폴란드를 괴롭히고 있지. 폴란드 입장에선 병력을 일으켜 쓸어버리고 싶겠지만 공작들 간의 정치적 이해관계도 있는 데다 전쟁이라는 게 그렇게 쉽게 벌일 수 있는 게 아니지 않나?”

결국, 폴란드의 참전은 순수한 호의가 아니라 윈―윈 관계에 불과한 셈이었다.

“전쟁이라는 건 힘만 가지고 할 수 있는 게 아니라네. 이런 비유는 어떨지 모르겠지만 제국 내에서 황제 다음가는… 아니 어쩌면 황제 폐하보다 더 큰 권력을 가지고 있던 사자공 전하도 결국 황제와 다른 선제후들의 압박에 굴복할 수밖에 없었지.”

역발산기개세라는 초패왕 항우도 결국 유방에게 패했고, 천하무쌍이라 불리던 여포도 결국 조조에게 목이 베였던 것처럼 일신의 무력 이외에도 수많은 것들이 복합적으로 어우러지는 게 전쟁이었다.

그리고 나는 그중에 외교를 최우선으로 생각하고 있다. 미국처럼 초강대국이 아닌 이상 타국과의 연계와 협력은 필수였고 함께 무언가를 했다는 건 추후 그 국가와 외교 관계를 발전시킬 때도 좋게 작용할 테니까.

“자, 이론은 이쯤하고 이제 실전을 경험해볼 차례군.”

나는 정찰병들이 가져온 정보와 시야 한구석에 떠 있는 퀘스트용 지도를 힐끗 바라보며 오토에게 들고 있던 지휘봉을 넘겼다.

“오토. 이번 전투는 자네가 지휘해보겠나?”

“어… 제가 말입니까?”

“그래, 니스에서 1년 넘게 내 부관으로 종군하지 않았나? 내가 어떻게 지휘하는지 봤으면 충분히 해낼 수 있을 텐데?”

하지만 그는 여전히 당황스러운 얼굴이었고 나는 그런 그를 향해 슬쩍 도발했다.

“못 하겠나? 그러면 필리프에게 넘기도록 하지. 필리프 자네는 할 수 있겠지?”

하지만 오토는 내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내게서 지휘봉을 받아들였다. 이를 악물고 표정이 굳어 있는 게 곧 죽어도 호엔슈타우펜에겐 지기 싫은 모양이었다. 그 모습에 나는 싱긋 웃으며 그를 격려했다.

“오토. 오늘 이곳에서 자네가 더 이상 새끼 사자가 아님을 만천하에 증명해보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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