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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임 속 바이킹이 되었다-122화 (122/205)

▣ 122화

“선장님. 이대로 가다간 적들의 배에 따라잡힐 것 같습니다!”

베네치아 상선의 선장인 안토니오는 견시수의 급박한 보고에 이를 악물며 뒤를 바라보았다. 과연 그의 말대로 다섯 척이나 되는 배가 이쪽의 뒤를 쫓으며 맹렬하게 따라오고 있었다.

“젠장. 감히 어떤 간 큰 놈들이 동지중해에서 해적질을 한단 말인가!”

처음에는 같은 베네치아의 상선인 줄 알았다. 레반트 무역은 자신들이 거의 독점하고 있었고 실제로 다니는 배들 중 태반은 베네치아의 상선이었으니까.

그리고 마침 바람이 잘 불어 물자도 조금 남았기에 건네주려고 그들에게 다가가고 있자니 뭔가 이상했다.

배의 모양이나 형태가 제노바의 상선과 비슷하게 생긴 건 둘째 치고서라도 배가 너무 가벼웠고 속도도 지나치게 빨랐다.

일반적으로 무역을 할 물건들을 실으면 배가 무거워서 깊이 가라앉아야 정상인데 저들은 아무것도 싣지 않은 것마냥 배가 너무 가벼워 보였다.

뭔가 이상해서 가던 걸 멈추고 경계를 하고 있자니 저 미친놈들이 갑자기 해적 깃발을 내걸었다. 처음에는 농담인지 뭔지 긴가민가했는데 저 미친놈들은 정말 화살을 쏘며 돌격했다.

그렇게 허겁지겁 배를 돌려서 도망쳤지만, 화물 때문에 그런지 점차 적들에게 뒤를 잡히고 있었다. 이대로 가면 이쪽의 노잡이들이 먼저 퍼질 것이다.

“젠장. 싸워야 하나?”

항복이라는 선택지도 있었지만 선장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항복한다고 저놈들이 자신들을 살려준다는 보장도 없었고 선장급인 자신은 무조건 노예가 되거나 참수당할 테니까.

하지만 선장은 선뜻 결정을 내리지 못했다. 빨리 집에 가서 쉬고 싶었고 거래한 물건들 중 바다 위에 오래 두면 상하는 물건들이 꽤 있어서 노잡이와 선원들을 닦달해 항해속도를 올렸기 때문이다.

이대로 맞붙어봤자 제대로 된 전투효율도 내지 못할 테고 재수 없으면 세 척이 다 나포당하는 최악의 결과를 맞이할지도 몰랐다.

“선장님! 안젤로호에서 화물들을 버리자고 합니다!”

“베아트리체호에서도 동일한 신호입니다. 둘 다 이대로라면 적들에게 붙잡힐 거라 생각하는 것 같습니다.”

“젠장. 그 수밖에 없나?”

화물을 버리고 달아난다고 해도 자신은 선장이었기에 화물에 대한 책임을 져야 했다. 물론 이유가 있던 만큼 정상참작이 될 테지만 현실적으로 화물을 버린 선장이 좋은 시선과 대우를 받기는 힘들었다.

물론 그럼에도 불구하고 선장은 결단을 내려야 했고 그는 입술을 깨물며 소리쳤다.

“화물을 버려라! 전부 내다 버리고 전속력으로 퇴각한다! 저놈들을 향해서 뿌려!”

화물을 내던진다고 바로 바다에 가라앉지는 않을 테니 만약 해적 놈들이 물자를 노리고 있다면 굳이 자신들의 뒤를 더 쫓지는 않을 것이다.

하지만 그런 예상과는 다르게 그들은 바다에 버린 화물을 쳐다도 보지 않고 오히려 속도를 더 높여서 자신들을 추격해왔다.

“이런 개자식들. 기어코 우리와 끝장을 보겠다는 건가!?”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조타수의 물음에 선장은 입을 다물었다. 동지중해에 뜬금없이 나타난 것도 모자라 화물을 거들떠보지도 않는 해적. 값비싼 무역품보다는 자신들을 바다에 수장시키는 게 목적으로 보이는 놈들.

“빌어먹을. 누군가 했더니 제노바 놈들이었군.”

그놈들이 뜬금없이 몰타에 모여서 이상한 짓을 한다는 얘기를 듣기는 했다.

다만 그 보고가 들어온 뒤로 별다른 일이 있던 것도 아니었고 자신들의 무역로와 동선이 겹치는 것도 아니었기에 그냥 소 닭 보듯 하며 신경을 끄고 넘어갔었다.

하지만 그게 실수였다. 저놈들은 자신들을 해적질하기 위해 그곳을 전진기지로 삼았던 것이었다. 구멍이 많긴 하지만 그나마 지금 시점에서 가장 그럴듯한 추리였고 선장은 황급히 주변을 둘러보며 소리쳤다.

“안젤로와 베아트리체에게 지금 당장 베네치아로 퇴각하라고 명령해라. 그리고 이 배는 최대한 시선을 끌다가 적들과 전투에 돌입하도록 하겠다.”

“예? 그러느니 다 같이 모여서 싸우는 게 낫지 않겠습니까?”

“적들의 배후는 제노바다. 이대로 싸워봤자 우리가 질 게 뻔해. 그러느니 본국에 흉수라도 알려야 하지 않겠나?”

비록 제노바의 명성이 이전에 비하면 많이 내려앉았고 자신들에게 패권을 빼앗겼다지만, 그래도 제노바는 여전히 저력 있는 해양도시였다.

거기에 함선의 숫자도 이쪽이 모자라고 저들은 자신들을 털기 위해 작정하고 온 놈들이었다. 길고 짧은 건 대봐야 아는 거지만 이대로 싸우면 이쪽이 패배할 확률이 극도로 높았다.

“허면… 저희가 시선을 끌어야겠군요.”

말이 시선을 끄는 거지 실상은 미끼와 다름없었기에 선장은 무거운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고 키를 잡고 있는 조타수 역시 마음을 굳혔다.

“저기도 배가 다섯 척밖에 안 되니 우리가 흩어져서 퇴각하면 쫓기 힘들 거야. 안젤로와 베아트리체를 앞으로 보내고 우리는 최후미에서 퇴각하다 반전해서 적과 전투에 돌입한다. 이해했나?

“…알겠습니다.”

곧 선장의 결단은 함선에 알려졌고 그들은 결연한 표정으로 각오를 다졌다. 바다 사나이는 바다에서 죽어야 하는 법. 하물며 조국을 위해 명예롭게 죽을 수 있는 기회가 왔는데 뭐가 두렵겠는가.

“서, 서, 선장님! 전방에 거대한 배가 출현했습니다!!!”

“오… 신이시여. 설마 처음부터 저럴 생각이었던 건가?”

눈앞에 나타난 거대한 건물 크기의 배에 선장은 입을 다물지 못했다. 하지만 이내 고개를 저으며 자신의 의지를 다졌다.

“적들의 배가 몇 척이건, 그 키가 얼마나 되건 우리가 해야 될 일이 바뀌는 건 없다. 이대로 적의 시선을 끌어…… 이런 시발.”

선장은 차마 말을 끝까지 잇지 못했다. 거대한 배의 마스트에서 휘날리는 까마귀 문양의 깃발. 저런 문장을 사용하는 가문은 이 근방에서 단 하나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야만공….”

하이르 앗 딘을 참살했으며 북부에서 수많은 전공을 세운 인물. 백작에 오른 직후 수많은 전투를 승리로 이끈 불패의 바이킹.

그의 압도적인 무력과 잔인함, 인간을 벗어난 듯한 흉포함은 활활 타오르던 선장과 선원들의 각오를 끄기에 충분했다.

콰아앙!!

그 순간 배가 엄청난 충격을 받은 것처럼 흔들리면서 요동쳤고 선장은 바닥을 한 바퀴 구른 뒤 허겁지겁 일어나 소리쳤다.

“뭐, 뭐냐!?”

“발리스타! 발리스타입니다. 적 함선 중앙에 발리스타 확인!”

발리스타라고? 그건 공성 무기가 아니던가. 그런 괴물 같은 무기를 실어두다니… 이 말도 안 되는 불합리와 부조리 앞에서 선장이 할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었다.

그저, 저들이 들을지 말지조차 모르는 욕설만 내뱉으며 죽음을 기다리는 것 이외에는.

* * *

“갑판장. 환영의 의미로 노포나 한 발 쏴주게.”

“알겠습니다.”

내 명령에 갑판장은 능숙하게 발리스타를 장전하더니 유효 사거리 안에 들어오자마자 거침없이 발리스타를 발사했다.

거대한 날치마냥 하늘로 솟구치며 날아가던 발리스타의 탄환은 그대로 떨어지며 적의 배를 강타했다.

흔들리는 배 위에서 똑같이 흔들리는 적의 배를 맞추는 게 쉬운 일이 아님을 알고 있었기에 나는 아낌없이 그를 칭찬했다.

“자네 솜씨가 제법이군.”

“원수를 눈앞에 두고 실수를 할 리가 있겠습니까. 거기에 라그나르 공작 전하께서 지켜보시는데 실수해서야 되겠습니까.”

“하하하, 그렇게 얘기해주니 기분이 좋군. 선장!”

“예. 공작 전하!”

“자네는 계속 배를 끌고 남은 두 척을 상대하도록 하게. 저놈들 하는 모양새를 보니 싸울 생각이 없어. 최대한 나포를 목적으로 싸우되 아니다 싶으면 그냥 침몰시켜버려.”

사실 계속 배 위에 있을 거라면 필요 없을 명령을 굳이 자신에게 내리자 선장은 고개를 갸웃거리며 되물었다.

“알겠습니다. 헌데 공작 전하께서는…?”

“그야 지켜보면 알 테니 우선 강습용 갤리 3척만 내리게.”

강습용 갤리는 그 이름답게 속도도 빠르고 기습에 용이했지만, 최대정원이 스무 명에 불과했으며 적의 화살 공격에 그대로 노출되는 소형 함선이었다.

물론 전투력을 기대한다기보단 공수부대와 같은 개념으로 운용하는 함선이었는데 적의 시선을 분산시키고 귀찮게 하는 게 주목적이었다.

“예? 갑자기 강습용 갤리는 왜… 설마 저 배를 급습할 생각이십니까?”

“당연하지. 그게 아니면 왜 강습용 갤리를 내리라고 했겠나?”

“전하. 그… 정말 괜찮겠습니까?”

선장은 내가 화를 낼 걸 알면서도 다시 한번 물었는데 그도 그럴 게 적의 함선에는 노잡이를 포함하면 못해도 100명은 타고 있을 터였다.

그곳을 정원이 스무 명도 안 되는 갤리 3척으로 공격한다는 건 일반적으로 미친 짓이었지만, 난 자신 있었다.

“괜찮으니까 하는 얘기 아닌가. 빨리 병력들 꽉꽉 채워서 배나 내리게. 그리고 벨렌테에게 이쪽으로 함선 하나 붙이라고 신호하고.”

저놈들이 우리 좆돼보라면서 갑판에 도끼질을 해서 배를 자침이라도 시켰다간 그야말로 닭 쫓던 개꼴이 돼버릴 것이다.

저게 다 돈인데 그렇게 둘 수야 없지. 원래 해적질의 묘미는 남의 배를 뺏는 게 아니던가. 어차피 아이유브의 지원으로 인해 선원들은 몰타에서 끊임없이 생성 중이다.

결국 사람을 태울 배가 모자란 상황인데 이렇게 적의 배를 탈취해서 약간의 수리만 거치면 바로 취역시켜 전력으로 써먹는 게 가능했다.

더불어 베네치아에 대한 도발도 될 테고. 세계 최강이라고 불리는 베네치아의 함선이 해적선으로 재탄생한다? 모르긴 몰라도 피가 거꾸로 솟지 않을까?

그렇게 나는 병력들과 함께 열심히 노를 저으며 적의 함선에 달라붙기 위해 안간힘을 썼다.

물론 저들도 바보가 아니었기에 화살을 쏘고 덩치를 이용해 충각을 시도했지만, 벨렌테가 이끄는 함선 중 하나가 이쪽에 붙어주면서 노련하게 적의 시선을 끌어주었다.

덕분에 우리는 그 틈을 타서 손쉽게 적의 함선에 바싹 붙었고 즉시 갈고리를 던져서 배를 올랐다. 당연히 위에선 갈고리를 끊어내고 우리를 떨치기 위해서 지랄을 했지만, 전부를 떨쳐내는 건 불가능했다.

나 역시 뒤에서 바라만 보는 게 아니라 라운드 쉴드를 왼손에 차고 밧줄에 의지해 배를 기어올랐다. 배의 표면이 물에 젖어있던 데다 적의 방해로 오르는 게 힘들었지만 이미 탈인간의 스펙을 보유한 내겐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우리가 갑판 위로 올라왔을 땐 이미 백병전이 한창이었다. 아마도 이쪽에서 시선을 끄는 사이 함께 달라붙었던 함선에서 도선을 시도한 모양이었다.

적들은 부족한 무장과 전투력, 떨어진 사기를 메꾸기 위해 노잡이들까지 전부 불러와서 처절하게 전투를 벌이고 있었는데 우리의 합류로 인해 순식간에 전세가 기울었다.

그 때문에 나는 이미 피칠갑이 된 적의 선장을 향해 한껏 여유로운 표정으로 제안했다.

“이름 모를 선장이여. 항복하게. 그 의기를 높이 사 지금 항복하면 목숨만은 살려주지.”

“야만인 따위에게 할 항복은 없다.”

“안타깝군.”

난 가볍게 손짓했고 뒤에서 내 명령만 기다리고 있던 제노바의 선원들은 괴성을 내지르며 적들에게 달려들었다. 그들은 그동안의 울분을 풀 듯 손속을 두지 않고 적들을 베어 나갔다.

그렇게 학살에 가까웠던 전투는 적들의 항복으로 종료되었다. 그리고 때마침 저쪽에서도 전투가 종료됐다는 신호를 보내왔기에 나는 곧장 함대를 철수시켰다.

첫 전투라서 일단은 아군의 전투력도 확인할 겸 지켜보기만 했는데 솔직히 이 정도면 굉장히 양호했다. 물론 베네치아에서 각 잡고 토벌을 시행하면 형편없이 털리겠지만 원래 뭐든 첫술에 배부를 수는 없는 법이다.

계속해서 해적질을 하며 기술과 경험을 쌓는다면 빠른 시일 안에 훌륭한 해적 집단으로 거듭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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