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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임 속 바이킹이 되었다-118화 (118/205)

▣ 118화

물론 계획을 세웠다지만 그걸 바로 실천하는 건 다른 문제였다.

일단 몰타에 거점을 세우는 데만 6개월 정도는 걸릴 것이다. 이것도 최대한 행복회로를 돌렸을 때의 얘기니 일반적으로 1년은 걸리겠지.

물론 살라딘에게 도움을 요청한다면 그 시간은 더 빠르게 단축되겠지만 일방적으로 그에게 도와달라 요구할 수는 없는 법이다.

그리고 살라딘이 두 팔 걷고 도와준다고 해도 거점이 뚝딱 만들어지진 않는다. 그러니 요새가 만들어질 동안은 칼리나가 외교적으로 항의도 하면서 시간을 끌어줘야겠지.

그때 동안 우리는 펠로폰네소스반도에 있는 수많은 백국들과 테살로니카 왕국, 그리고 베네치아의 상선들을 찌를 복수의 칼날을 갈아야 할 테고.

앞에서는 평화를 이야기하며 뒤에서는 전쟁을 준비하는 것. 이런 걸 두고 화전양면전술이라고 하던가? 군대에서 정신교육을 들을 때 북한이 지겹도록 쓰는 전술이라고 했었지.

근데 뭐 넓게 보면 손자병볍 중 하나인 혼란계와 별로 다를 게 없다. 원래 전쟁이라는 게 누가 더 상대방을 잘 속이는가를 시험하는 것 아니던가.

“오랜만에 니스로 복귀하는군요.”

“어? 어. 그렇네.”

힐데의 말대로 우리는 승리를 축하하는 연회를 끝마친 뒤 니스로 향했는데 이런저런 기간을 합치면 거진 10개월 만에 복귀하는 셈이었다.

“정 붙이면 고향이라더니 어느새 이곳이 고향처럼 느껴지는군요.”

힐데의 말에 이비도 동감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고 나 역시 그 말에 동의했다.

원래 사람은 뭐든지 처음이라는 것에 애착이 가는 법이었다. 첫 월급, 첫 차, 첫 직장처럼. 아. 첫 직장은 예외다.

아무튼, 그런 관점에서 니스는 내 힘으로 얻어 낸 첫 번째 영지였고 실제로 도시를 발전시키면서 알게 모르게 정이 꽤 많이 들었다. 과장 조금 보태면 이 도시 구석구석 내 손길이 닿지 않은 곳이 없었으니까.

성이 가까워지자 나는 내 바로 뒤에서 따라오고 있는 필리프를 불렀다.

“필리프.”

“예. 백작 각하.”

“백작이 아니라 공작이네.”

“예? 아… 죄송합니다. 공작 전하.”

“그래. 자네에게는 예산관리가 아니라 오토가 담당하던 치안을 맡길 생각이네.”

뜬금없이 자신이 호명되자 오토는 화들짝 놀란 표정을 지었고 자신이 맡았던 일이 필리프에게 넘어간다는 말에 미묘한 표정을 지었다.

반면 필리프는 이걸 좌천이라고 생각했는지 힘없는 목소리로 대답했다.

“그게 백… 공작 전하께서 내리신 처분이라면 달게 받겠습니다.”

“처분? 내가 설마 자네를 재무관에서 해임하는 게 처벌이라 생각하는 건가?”

“…아닙니까?”

뭐, 동서와 시대를 막론하고 돈을 다루는 직책이 원래 힘이 세긴 하다. 그 때문에 내가 황제의 아들인 필리프를 재무관에 임명했을 때 어느 정도 반향이 있기도 했고.

“자네는 평생 재무관만 하다 죽을 생각인가? 원래 지도자는 이것저것 다재다능하게 다 할 줄 알아야 하네. 명령을 내리려면 그래도 뭘 알고 얘기해야 하지 않겠나?”

“!!!”

힌트는 이쯤이면 됐다. 머리가 어느 정도 굴러간다면 내가 자신을 키우려는 걸 알아들었겠지. 그게 아니라면 술을 마시면서 자신을 좌천시킨 나를 씹어댈 테고.

“할 수 있겠나? 못할 것 같으면 지금 얘기하게.”

“할 수 있습니다. 아니, 하겠습니다.”

“좋아. 자네가 날 이전처럼 대한다면 나 역시 자네를 이전처럼 대할 것이네. 이 점 명심하게.”

가슴에 새기겠다는 필리프의 대답을 뒤로한 채 나는 오토를 내 옆으로 불렀다. 오토에겐 비어있는 재무관 자리를 맡길까 고민하다 고개를 저었다.

재무야 고드프리에게 맡기면 된다. 이미 살라딘과 안면을 트기도 했고 그에게서 협력하겠다는 답변을 받았으니 당분간 외교는 손을 떼도 괜찮다.

“오토, 그대는 당분간 내 곁에서 비서 업무를 수행하게.”

“알겠습니다!”

오토 역시 사자공에게 뭔가 언질을 받은 게 있는지 우렁찬 목소리로 대꾸했고 나는 만족스러운 얼굴로 미소 지었다.

그 사이 니스에 도착했고 내가 도착했다는 얘기가 전달됐는지 이곳에 남겨두고 간 이들이 나를 마중 나와 있었다.

“어서 오십시오. 용담공 전하.”

“하하, 벌써 소문이 여기까지 퍼졌습니까?”

“공작 전하의 위명이 대륙을 뒤흔들고 있는데 모르는 게 이상하지 않겠습니까?”

“과찬이십니다. 그보다 일단 들어가시지요. 자네들도 내 나중에 따로 면담과 함께 시찰을 할 테니 가서 일 보게.”

내 손짓 한 번에 모여있는 이들이 순식간에 해산했고 나는 오토만 대동한 채 고드프리와 함께 성안을 산책하며 그간에 있었던 이야기들을 보고 받았다.

그는 허투루 이스라엘을 다스린 게 아니었다는 듯 내가 원하는 정보들만 쏙쏙 골라서 내게 전달해주었다. 그 덕에 나는 반나절도 안 되는 시간에 몇 개월간 일어났던 일을 파악할 수 있었다.

“흐음, 그럼 살라딘과는 완전히 협정을 맺은 셈이군요.”

“예. 물론 비밀 협정에, 서로의 의견이 맞을 때만 유효한 협정이겠지만 그는 현명한 군주니 적어도 저희와 적대하진 않을 겁니다.”

그 부분은 나도 안심할 수 있다. 일단 살라딘의 목표는 바다 건너 있는 우리가 아니라 장기 왕조와 결착을 내는 거니까.

그러니 우리가 먼저 미친 짓을 하지 않는 이상 살라딘도 우리에게 적대하진 않을 것이다. 원래 적의 적은 내 친구라고 하지 않던가.

“그나저나 몰타의 요새 건설에 관한 건 거절하거나 이런저런 조건을 달면서 이것저것 얻어낼 줄 알았는데 생각 외로 쉽게 허가해줘서 놀랐습니다.”

“베네치아와 라틴을 공격하는 거점으로 사용할 거라 하니 쉽게 허가해주더군요. 물론 안전을 위해서 자신들의 병력을 일부 주둔시키겠다고 했습니다.”

나는 북부로 원정을 가기 전에 고드프리에게 몰래 몰타에 관한 얘기를 적어서 밀서를 전달했고 고드프리는 내 기대를 저버리지 않고 긍정적인 답변을 가져왔다.

솔직히 자신들 코앞에 기독교 세력이 요새를 건설하겠다는데 허가해 줄 사람이 몇이나 있겠는가? 하지만 살라딘은 자신이 대인배임을 입증하듯 전폭적인 지지와 협조를 약속했다.

“믿음과 신뢰에 대한 감사의 의미로 거래를 할 때 이쪽에서 값을 후하게 쳐줘야겠군요.”

“현명한 생각이십니다. 헌데 공작 전하. 실례가 안 된다면 한 가지 여쭤봐도 되겠습니까?”

“고드프리 경이라면 두 개라도 괜찮습니다.”

내 가벼운 농담에 고드프리가 작게 웃으며 궁금한 점을 물었다.

“혹시 처음부터 이렇게 될 걸 알고 살라딘과의 관계를 개선하신 겁니까?”

뭐, 꼭 그런 건 아니고 몰타가 요충지이기도 하고 인게임에서도 자주 써먹은 데다 훗날을 위해서 미리 씨를 뿌려놓은 것뿐이었다.

물론 언젠가는 씨를 뿌린 만큼 수확을 할 거라 생각하고 있긴 했지만 그게 이렇게 빠를 줄은 몰랐지.

아마 모르는 이들이 볼 때는 예측을 넘어서 미래 예지의 영역이 아닐까? 실제로 칼리나도 내가 낸 해결책에 상당히 놀란 눈치였고.

“그렇습니다. 베네치아가 복수의 칼날을 갈고 있는 건 자명한 사실이었고 그런 그들을 견제하기 위해선 살라딘의 힘이 필요했으니까요.”

“허어… 공작 전하의 선견지명과 통찰력은 언제봐도 놀랍군요.”

“하하, 과찬이십니다.”

나는 그렇게 화기애애하게 고드프리와 대화를 이어갔고 그 얘기를 뒤에서 전부 듣고 있던 오토는 어안이 벙벙한 얼굴이었다.

아마 독실한 기독교도인 그에게 예루살렘 왕국의 왕이었던 고드프리가 이슬람과 밀약을 맺었다는 사실이 꽤 큰 충격으로 다가온 모양이었다.

“오토.”

“예… 예. 공작 전하!”

“고드프리 경과의 대화에서 눈치챘겠지만 필요하다면 이교도의 힘이라도 빌려야 하네. 편견과 아집에 사로잡혀 먼 길을 돌아가는 일이 없도록 하게.”

“명심하겠습니다.”

그렇게 고드프리와의 대화를 마친 나는 아직까지 얼빠진 표정을 짓고 있는 오토를 끌고 정화교단으로 향했다.

지난번에 한번 얼굴을 비춰서 그런지 힐데를 보러왔다는 말에 교단의 사제는 나를 이전의 지하실로 안내해주었다.

그곳에는 여전히 수많은 사람들이 바쁘게 움직이고 있었는데 힐데 이외에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얼굴도 마주할 수 있었다.

“레오나르도?”

“아, 공작 전하. 오랜만에 뵙습니다.”

“자네가 여기는 웬일인가?”

“시간이 조금 남아서 해석을 도와주고 있었습니다. 공작 전하께서 그리 명하시기도 했고 여기에 나와있는 수도교 기술은 저도 개인적으로 흥미가 있어서 말입니다.”

“그래, 그러고 보니 내가 그대에게 상하수도 시설의 건설을 맡겼었지. 고드프리에게 보고 받기로 성 내부의 상하수도 건설은 끝마쳤다고 하던데?”

“예. 다만 성 내부는 그 규모가 작지 않습니까?”

“그건 그렇지?”

“완전히 같지는 않지만, 바흐강의 물을 끌어 올 때 수도교에 있는 기술들을 일부 이용한다면 좀 더 예산을 절약하고 개량이 가능할 것 같아 찾아보고 있었습니다.”

“흠, 그래서 어떻게 성과는 있나?”

“예. 머지않아 결과로 보여드릴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이론이 완벽하게 세워지면 그때 공사 도면을 들고 찾아뵙겠습니다.”

“그때가 오기를 내 손꼽아 기다리고 있겠네.”

레오나르도는 알아서 잘하고 있는 것 같기에 함께 있는 힐데에게 고생하라며 위로 아닌 위로를 보내준 나는 지하실에서 나와 미켈란젤로가 있을 성 외부로 발걸음을 옮겼다.

그렇게 미켈란젤로의 거처에 가니 미켈란젤로와 라파엘로가 밭에서 수확한 듯한 작물을 바라보며 한창 토론을 하고 있었다.

“내가 타이밍을 잘못 맞췄나?”

내가 슬쩍 끼어들며 얘기하자 둘은 깜짝 놀라 그 자리에서 허리를 숙이며 내게 예를 갖췄다.

“공작 전하! 어서 오십시오.”

“그래. 미켈란젤로. 자네가 유의미한 성과를 거뒀다고 그래서 직접 보고를 듣기 위해 와봤네. 헌데 라파엘로 자네는 왜 여기에 있나?”

“제가 라파엘로에게 몇 가지 조언을 얻고자 불렀습니다.”

“그래? 서로 잘 지내는 모습을 보니 아주 좋군.”

생각했던 것보다 친하게 지내서 다행이다. 이건 그냥 하는 말이 아니었는데 솔직히 예술가 삼인방의 상성이 워낙 안 좋아서 문제가 일어날 줄 알았다.

그런데 생활 환경이 좋아지고 각자 다른 분야에 대한 업무를 지시해서 그런가 싸움은커녕 협업을 하며 시너지를 내고 있었다.

“그래서 어떻게 품종 개량은 성공했나?”

“예. 지난번에 크기를 키워서 반쪽짜리 성공을 거뒀었다면 이번에는 맛을 개량해 온전한 성공을 거뒀습니다. 물론 지력의 소모가 생각보다 크지만, 그것 역시 방안을 찾았습니다.”

“인분을 빠르게 삭히는 방법이라도 찾았나?”

“아니요. 콩과 식물인 토끼풀을 심는 겁니다. 지력을 회복시켜 주는 것은 물론이요 잡초가 자라는 것을 방지해 노동력을 아낄 수 있으니 일석이조가 아니겠습니까?”

실제로 화학비료가 만들어지기 전까지 토끼풀이나 순무를 사용해서 지력을 회복시키긴 했지. 나쁘지 않은 방법이다.

“어차피 휴경 중인 땅이니 약간의 노동력만 투자하면 되겠군.”

“그렇습니다. 그리고 공작 전하. 이게 완벽히 품종 개량을 마친 종자로 수확한 열매입니다.”

미켈란젤로는 내게 찐 감자와 삶은 옥수수를 건넸고 나는 객관적인 의견을 위해 반씩 나눠서 오토에게 건네주었다.

“생각보다 맛있군요. 씨알도 굵어서 배도 금방 차고요.”

나 역시 동감하는 바였기에 고개를 끄덕이며 긍정했다. 이제 이걸 양산시키면 나는 외교를 함에 있어서 또 다른 비장의 패를 얻게 될 것이다.

현대도 그렇지만 식량은 국가를 압박할 수 있는 가장 효과적인 무기였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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