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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임 속 바이킹이 되었다-107화 (107/205)

▣ 107화

북부로 진군하는 건 생각했던 것보다 빠르게 진행됐다.

당연히 사자공이 숙청당할 걸 알고 미리 준비하고 있던 나는 두말할 것도 없고 다른 귀족들 역시 설마 사자공이 숙청을 당할까 하면서도 칼리나에게 찍히지 않기 위해 준비를 해뒀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뭐, 귀족들이야 진짜로 북부로 진군하기보다는 그저 칼리나의 명령을 명분으로 군사력을 보강하고 싶었을 뿐이겠지만.

어쨌건 니스뿐만 아니라 칼리나의 세력권이 미치는 범위에 소규모지만 물자들을 집적화시켜뒀기에 병력들은 가벼운 차림으로 빠르게 북부를 향해 진군할 수 있었다.

나폴레옹 전쟁 시기에 그가 이끄는 군대는 빠른 기동을 바탕으로 적군을 압박했고 사방에서 적군을 몰아치며 궤멸시켰다.

단순히 기동성만을 가지고 그게 가능하냐고 물을 수 있는데 기본적인 전투력만 뒷받침된다면 충분히 가능하다.

FPS 게임을 떠올리면 간단한데 적이 정문으로 들어가는 걸 봤다면 조심스레 그쪽을 경계하며 진입하지 않겠는가?

그런데 갑자기 적이 후문에서 나타나 총을 쏘면 무방비하게 적의 공격에 노출될 수밖에 없다.

행군 속도 역시 이와 다를 게 없다. 일반적으로 사람은 자신이 ‘상식’적으로 알고 있는 안의 범위에서 적군의 이동을 예측하는데 그를 벗어난다면 상대의 허를 찌르는 게 가능하다.

가령, 적을 습격하기 용이한 곳에 미리 도착해서 기다린다거나 진형이 갖춰지지 않았을 때 후방을 급습한다거나 하는 식으로 말이다.

물론 이 시기에 통조림이나 병조림 같은 게 있는 것도 아니니 온전히 나폴레옹을 따라 할 수는 없겠지만 물자 창고를 이용한다면 최대한 비슷하게 흉내 낼 수는 있을 것이다.

“뭐, 그렇다고 해도 황제를 향해 칼을 휘두를 수는 없는 법이지.”

칼은 뽑을 수 있겠지만 그걸 휘두르는 건 별개의 문제다. 결국, 우리가 해야 할 건 황제가 예상하지 못한 시점에 들이닥쳐서 기세를 누그러뜨린 뒤 번갯불에 콩 볶아 먹듯 중재를 하는 것이다.

그런 생각으로 다소 사기와 전투력이 감소하는 것을 감안하고서라도 병력들을 몰아치며 행군 속도를 높이고 있는데 이비가 조심스럽게 내게 다가와 귀띔했다.

“주군. 방금 전 필리프 경의 파벌과 오토 경을 따르는 파벌 사이에 말다툼이 있었습니다. 큰일이 벌어지기 전에 중재하는 게 좋지 않겠습니까?”

“어느 정도였는데?”

“서로 칼까지 뽑아 들었습니다. 물론 유혈사태로 번지지는 않았습니다만….”

뭐, 슬슬 이야기를 할 시점이긴 했다. 오토나 필리프나 내가 그들에게 들어가는 정보를 의도적으로 차단했기에 북부로 가는 건 알고 있었지만 누구를 지지하기 위해서 가는지는 모르고 있었으니까.

장담컨대 둘 다 조마조마할 것이다. 이번에 동원한 병력의 숫자는 예상을 훌쩍 뛰어넘어 거진 7천에 육박하고 있었고 내가 누구의 손을 들어주느냐에 따라 전쟁의 판도가 뒤바뀔 테니까.

“마침 점심시간이고 하니 여기서 점심을 먹고 이동하도록 하지. 둘에게는 내 막사로 오라고 전해줘.”

“알겠습니다.”

이비는 고개 숙여 인사한 뒤 둘에게 내 메시지를 전하기 위해 발을 돌렸고 나는 팔짱을 낀 채 오토와 필리프를 떠올리며 미소를 지었다.

“슬슬 큰 그림을 그려볼 때도 되긴 했지.”

다 큰 사자와 독수리를 조련하기는 힘들지만, 어린 사자나 독수리라면 내 입맛에 맞게 조련할 수 있을 테니까.

* * *

“어서들 오게.”

“귀한 자리에 초대해주셔서 감사합니다. 백작 각하.”

“백작 각하와 점심을 함께 할 수 있다니, 무한한 영광입니다.”

둘은 내 심기를 거스르고 싶지 않아서인지 평상시보다 더 극진한 존칭을 썼고 난 웃으며 둘의 잔에 와인을 따라주었다.

“내 자네들이 온다고 해서 특별히 주방장에게 신경 좀 써달라고 했네만 자네들 입맛에 맞지 않을까 걱정이군.”

실제로 내 앞에 놓여있는 식단은 절대 호화롭지 않았다. 물론 병사들이 먹는 식사치고는 괜찮다 못해 호화로운 식단이었지만, 귀족이 먹는 식사로는 턱없이 부족했다.

“그렇지 않습니다. 이런 사소한 것들에서 병사들은 감동을 받는 법입니다.”

“실제로 병사들의 사기도 높습니다. 과연 백작님의 용병술은 감탄밖에 나오지 않는군요.”

“하하, 그대들이 내 얼굴에 금칠을 해주는군.”

둘이 과하게 아부하는 측면도 있긴 했지만 아예 틀린 말은 아니었다. 원래 사람은 의외로 사소한 것 하나에 감동받고 사소한 것 하나에 분노한다.

특히 먹을 거로 차별하는 것만큼 서러운 게 없다. 그 때문에 나는 다른 지휘관들과 영주들에게도 나처럼 병사들과 함께 막사에서 자고 함께 경계근무를 서는 것까진 바라지 않아도 식사를 통일하는 것만큼은 동참해줄 것을 부탁했다.

역지사지라고, 사람은 역으로 지랄을 해줘야 자기 일인 줄 안다고 했다. 저들도 병사들의 처우를 직접 경험해봐야 병사들의 처우를 개선해주지 않겠는가?

그리고 그게 다 검은 용군단의 전투력 상승으로 이어지고 병력들이 강군으로 나아가는 원동력이 될 것이다. 잘 먹는 잘 쉬는 군대가 잘 싸우는 법이니까.

헝그리 정신? 개같은 소리 지껄이지 말라고 해라. 본인이 굶으면서 그딴 소리를 하면 이해라도 하지 왜 애먼 병사들은 굶긴단 말인가.

실제로 병사들의 처우는 매우 열악했다. 당장 화장실도 구덩이 하나 파놓고 그 위에 널빤지를 올려놓은 게 끝이고 위생상태도 매우 열악하다.

거기에 사역은 물론이요 경계 근무와 잡다한 일들까지 병사들이 다 하니 당연히 사기와 전투력이 바닥을 찍을 수밖에 없다.

그 때문에 플레이어들은 병력들의 생활, 거주 환경, 보급 등을 개선해 병력들의 전투력을 최대치로 끌어올릴 수 있었고 이런 점이 NPC 영주들에 비해 플레이어가 훨씬 유리한 점이었다.

쌍둥이라고 서로 똑같은 게 아닌 것처럼 하위 티어의 징집병이라고 둘의 전투력이 똑같은 건 아니었으니까.

다만 이런 문화와 풍습이 검은 용군단에 정착하려면 긴 시간이 필요할 것이다. 관습이라는 게 하루아침에 만들어지는 건 아니잖은가.

뭐, 어쨌건 그건 나중 문제고 지금은 눈앞의 작은 사자와 독수리를 길들일 시간이다.

“그래, 다른 게 아니라 내가 자네들을 부른 건 몇 가지 이야기를 하기 위해서네.”

내가 바로 본론을 꺼내자 둘은 긴장한 표정으로 내 말을 경청했다. 아마 내 입에서 나오는 말에 따라 둘 중의 한 명은 포로 겸 인질이 될지도 모르는 일이니까.

“어제 자네들 파벌끼리 가벼운 말다툼이 있었다더군. 맞나?”

물론 칼부림 직전까지 갔지만 굳이 그 부분은 이야기하지 않았다. 굳이 이런 거로 갈궈서 기분 상하게 할 이유는 없지 않은가.

“예. 사소한 오해가 겹치다 보니 그렇게 된 것 같습니다. 주의하겠습니다.”

“관련자는 엄중히 문책했으니 두 번 다시 이런 사소한 문제로 백작님의 심기를 어지럽힐 일은 없을 겁니다.”

“그렇게까지 얘기하니 내 따로 더 얘기하진 않겠네. 하지만 명심하게. 아랫사람의 잘못은 윗사람의 허물이라는 것을.”

둘을 가볍게 질책한 나는 와인을 한 모금 마신 뒤 본론을 꺼냈다.

“그다음으로 이게 본론인데… 둘 다 내가 왜 북부로 올라가는지 궁금할 거야. 그렇지 않나?”

내 물음에 둘은 서로의 눈치를 보면서 고개를 끄덕였고 나는 가볍게 미소 지으며 말을 이었다.

“결론부터 얘기하자면 난 누구와도 싸울 생각이 없네. 그게 오토 자네의 아버지인 사자공이든, 필리프 자네의 아버지인 황제 폐하든 말이야.”

내 말에 둘의 얼굴은 미묘하게 변했고 나는 턱에 난 수염을 쓰다듬으며 느긋하게 시간을 끌었다. 어차피 지금 상황에서 갑은 나니까.

“물론 단순히 무력시위를 하기 위해 올라가는 것도 아니네. 정확히 얘기하자면 나는 사자공 전하와 프리드리히 폐하 사이를 중재하기 위해서 올라가는 거라네.”

“중재라면… 싸움을 말리시겠다는 말씀이십니까?”

“정확하네. 안 그래도 외부의 적들이 득실거리는 이때 굳이 내전을 벌여 국력을 깎아 먹을 이유가 어디 있나?”

“백작 각하. 황제는 이미 칼을 뽑았습니다.”

오토는 큰일이라도 난 것마냥 얘기했지만, 나는 심드렁한 표정으로 대꾸했다.

“그게 무슨 상관인가? 칼을 뽑았으면 다시 집어넣으면 그만이지.”

“가능하겠습니까?”

“내가 그렇게 하겠다는데 뭐가 문젠가?”

듣기에 따라서는 굉장히 오만한 말이었지만 지금의 나는 충분히 그럴만한 능력이 있었다.

황제도 멍청이는 아니니 내가 사자공의 편에서 싸우는 걸 원하지 않는다면 칼을 다시 집어넣어야 한다는 걸 알고 있을 것이다.

그래도 고집을 부린다면? 그때는 무력을 동원해야겠지. 어차피 사자공이 숙청당한다면 그다음 차례는 우리가 될 테니까.

“허면 중재안의 내용은 어떻게 만드실 생각이십니까?”

“그거야 칼리나와 사자공, 황제 폐하 이렇게 셋이서 의논할 일 아니겠나?”

물론 이쪽에선 양측에서 뭘 얻어낼지 초안을 짜놓긴 했지만 굳이 그것까진 말해주지 않았다.

그렇게 내가 어렴풋하게나마 황제와 대적하겠다는 의지를 보이자 오토의 얼굴은 눈에 띄게 밝아졌다. 황제에게 숙청당해서 가문이고 영지고 다 터져나가는 것보단 내 중재안이 더 나을 테니까.

반면 필리프는 얼굴이 새하얗게 질렸는데, 사실 말이 중재지 이는 황제의 행보에 제동을 걸겠다는 말이나 다름없었기 때문이다.

“백작 각하!”

“목소리 높이지 말게. 필리프. 내가 나이를 많이 먹긴 했지만 귀까지 먹은 건 아니니까”

“각하. 만약 아버… 폐하께서 각하의 중재안을 받아들이지 않으신다면 어쩔 생각이십니까?”

“그러면 나로서도 어쩔 수 없네. 내 비록 황제 폐하께 원한이나 앙금이 있는 건 아니지만 내가 살기 위해선 칼을 뽑을 수밖에 없지 않겠나?”

“그건 말이 중재지 협박이나 다름없지 않습니까!?”

“필리프, 그렇게 화내지 말고 자네가 내 입장에서 한번 생각해보게. 정녕 황제 폐하께서 사자공을 숙청한 뒤에 칼리나와 나, 그리고 검은 용군단을 그냥 두고 보실 것 같나?”

“…….”

“내 폐하를 뵌 기간이 긴 건 아니네만 그분이 황권 강화에 누구보다 집착하고 있다는 건 잘 알고 있네. 그런 그분이 제2의 사자공이 될 수 있는 칼리나를 그냥 두고 볼 거라 생각하는 건가? 내 생각엔 절대 아닐 것 같네만….”

“제가… 제가 절대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게 막겠습니다.”

“지킬 수 없는 약속은 하지 말게.”

필리프는 비록 프리드리히의 아들이지만 그는 차남이다. 장자에게 모든 게 상속되는 제국법 특성상 황제위는 장남인 하인리히 6세에게 넘어갈 것이다.

물론 원역사에서는 그가 단명했기에 하인리히 6세의 아들인 프리드리히 2세가 클 때까지 임시로 필리프가 황제가 되기는 했었지. 물론 정식으로 받은 건 아니고 독일 왕 정도에 그쳤지만 말이다.

“물론 나도 다짜고짜 싸울 생각은 아니네. 말했듯 사자공 전하와 황제 폐하의 중재를 위해서 최대한 노력할 생각이고 싸움은 최후의 보루일 뿐이네.”

“…알겠습니다.”

“그리고 나는 내가 어떤 상황에 처하든 자네들을 인질로 잡을 생각은 없네. 내가 작센에 도착하면 오토 자네는 사자공 전하께, 필리프 자네는 황제 폐하께 사자로 가게.”

“진심이십니까?”

“내가 거짓말이나 농담을 하는 것 봤나? 자네들이 믿을지 아닐지 모르겠지만 나는 정말 중재를 하기 위해서 올라온 것이네. 그를 위해서 내 진심을 먼저 보여줘야 하지 않겠나?”

뭐, 이쪽에서 진심을 보인다고 해도 저쪽에서는 날 믿어주지 않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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