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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임 속 바이킹이 되었다-102화 (102/205)

▣ 102화

성 내외부의 모든 곳을 되돌아본 나는 마지막으로 제노바 총독의 아들인 벨렌테가 업무 중인 항만으로 향했다.

니스가 항구도시이기는 하지만 영주성에서 항구까지는 15분 정도 걸어야 했기에 나는 고드프리와 함께 말을 타고 항만으로 향했다.

바다에 가까워질수록 바다 특유의 냄새가 코를 찔렀고 나는 미소를 지었다. 역시 바다는 이래야 하지 않겠는가.

“확실히 발트해와는 풍겨오는 냄새부터 다르군.”

“바다면 다 같은 바다가 아닙니까?”

“저도 그럴 줄 알았는데 그게 또 그렇지가 않습니다. 그곳은 민물의 유입이 많아서 물이 짜지 않습니다. 실제로 제가 마셔봤는데 밍밍하더군요.”

“그게 가능합니까? 바다가 짜지 않다니… 상상이 가지 않는군요.”

“뭐, 나중에 직접 가보면 알게 될 겁니다.”

“흠? 혹여 북부에서 뭔가를 도모하실 생각입니까?”

거 눈치 하나는 겁나게 빠른 양반이네. 하긴, 예루살렘의 왕으로 있으면서 얼마나 정치적으로 시달렸겠는가. 오히려 눈치가 없는 게 이상한 거지.

“확정된 건 아니고 생각만 하고 있습니다. 나중에 구체적으로 계획이 세워지면 말씀드리겠습니다.”

“기대하고 있겠습니다. 이곳에서의 평화로운 삶도 좋지만, 저는 제 마지막을 화려하게 불태우고 싶으니까요.”

그는 푸근하게 미소를 지으며 이야기했지만 부드러운 말투와는 다르게 그의 눈에는 불꽃처럼 이글거리는 열망이 깃들어 있었다.

“하하, 걱정하지 마십시오. 고드프리 경께서 죽을 때쯤에는 온 세상이 경의 이름을 알게 될 테니까.”

지금은 비록 신성 제국 밑에 있지만 언젠가는 독립을 할 생각이다. 물론 백작위를 반납할 생각은 없으니 독립이라기보단 겸직이라는 게 더 맞는 표현이겠지.

그때가 될 때까지는 이곳에서 자중하며 힘과 인맥을 키워야 한다. 이 게임은 혼자서 독불장군처럼 모든 걸 다하는 건 불가능하니까.

당장 사자공조차 수많은 인맥과 힘을 지니고 있었지만, 황제의 처벌에 제대로 된 반항도 하지 못하고 영국으로 쫓겨나지 않았던가.

“백작 각하. 도착했습니다.”

내가 생각에 잠겨있는 사이 항만에 도착했고 나는 상념에서 깨어나 주변을 둘러보았다.

내가 자리를 비운 사이 간단한 시설만 있던 항구는 어느새 온갖 기반 시설들이 자리한 항만으로 바뀌어 가고 있었다.

한쪽에서는 인부들이 목재와 건축 재료들을 옮기며 건물을 짓고 있었으며 다른 쪽에선 노역자들이 배에서 온갖 상품들을 하역하고 있었다.

“어서 오십시오. 백작 각하. 여기까지는 어쩐 일이십니까?”

내가 온다는 소식이 전해졌는지 벨렌테는 수행원들을 이끌고 허겁지겁 내게 다가왔다. 나는 긴장한 표정을 짓고 있는 그를 향해 가볍게 미소를 지으며 용건을 얘기했다.

“다른 게 아니라 보고서를 받기는 했는데 직접 눈으로 보고 싶은 것도 몇 가지 있어서 이렇게 찾아왔네. 폐가 아니라면 안내를 해주겠나?”

“물론입니다.”

나는 자연스럽게 나와 고드프리가 타고 온 말을 근처에 있는 수행원에게 맡긴 뒤 벨렌테의 뒤를 따랐고 그는 나를 한창 공사 중인 현장으로 이끌며 설명을 시작했다.

“이곳에는 현재 조선소를 건설하고 있으며 공사의 60% 이상이 진행되었고 3개월 안에 완공될 것으로 예상됩니다.”

“조선소? 굳이 조선소를 건설할 게 있나? 제노바에 의뢰하는 게 더 낫지 않나?”

“물론 그게 더 싸게 먹히기는 합니다만 협의 조건에 조선 기술의 이전도 있지 않습니까?”

“…그렇긴 한데 이렇게 본격적으로 해줄 줄 몰랐군. 난 그저 기술자들을 몇 파견해주는 것으로 끝날 줄 알았는데 말이야.”

사실 이 게임에선 기술이전 같은 건 어지간해선 해주지 않는다. 돈으로 로비를 하고 엉덩이가 헐도록 빨아 재껴야만 해줄까 말까 한 게 기술이전이다.

심지어 선박 제조기술처럼 고급기술에 밥줄과 같은 기술은 절대 안 해준다. 어찌어찌해서 기술이전을 해준다고 해도 정작 그 기술을 써먹을 만한 기반 시설은 가르쳐주지 않는 게 태반이었다.

간단히 비유하자면 총기에 대한 지식과 원리는 가르쳐주지만, 총기를 제작할만한 제반 시설은 만들어주지도 않고 가르쳐주지도 않는다는 얘기였다.

결국, 이론과 실기 사이의 괴리감에서 오는 시행착오를 거쳐 가면서 만들어야 하는데 조선이 한두 푼 하는 건 아니잖은가.

국가 사업도 아니고 이제야 본궤도에 오르기 시작한 도시에서 조선에 그렇게 큰돈을 투자하는 건 현실적으로 불가능했다.

그 때문에 제노바에 기술지원을 요청하긴 했지만 당장 니스에서 써먹기보다는 나중에 북부로 올라가서 본격적으로 써먹을 생각이었는데 제노바는 다르게 받아들인 모양이다.

기술자나 몇 파견할 거라는 내 생각이 무색하게 제노바는 본격적으로 조선소까지 짓고 있었다. 이것만 봐도 그들이 우리와의 동맹에 진심이라는 걸 알 수 있었다.

“저희는 공통된 적을 가지고 있지 않습니까? 거기에 저희는 상인입니다. 백작 각하께서 저희에게 신의를 보여주셨으니, 저희 역시 신의를 보여야 하지 않겠습니까.”

“고맙네. 허면 완공되고 나면 저곳에서 배를 찍어낼 수 있다는 얘기군.”

“예. 다만 이는 어디까지나 소형 선박에 한하며 그 이상의 규모를 가지는 선박에 대한 기술이전을 해드릴 수는 없는 점을 이해해주시기 바랍니다.”

“그거면 충분하네.”

소형 선박 제작에 관한 기술을 받은 뒤 자체적으로 연구를 시킨다면 북부로 올라갈 때쯤에는 중형 선박 정도는 자력으로 만들어낼 수 있을 것이다.

거기에 내게는 르네상스 시대를 풍미한 천재라고 불리는 레오나르도 다빈치나 라파엘로, 미켈란젤로가 있지 않던가.

“헌데 조선소는 저기서 짓고 있으니 그렇다 치고 도크는 어디에 있나?”

“아, 제가 미리 말씀을 못 드렸는데 조선소 자체는 저희 제노바에 있는 것과 동일한 크기입니다. 다만 저기서 찍어내는 선박만 소형이고 대형 선박들도 조선소 내의 도크에 입거는 가능합니다.”

“완벽하군.”

“감사합니다.”

상인 출신이라 그런지 일을 하는 게 굉장히 깔끔하다. 총독이 벨렌테를 이곳으로 보낸 건 자기 자식이라서기도 하지만 한 명의 상인으로서 벨렌테의 능력을 믿었기 때문일 것이다.

“하이르 앗 딘을 토벌하고 획득한 배들은 어떻게 처리했나?”

“항해가 어려울 정도로 반파되거나 상태가 심각한 배들은 일단 제노바로 보내서 입거를 시켰습니다. 수리가 가능한 건 최대한 수리를 할 생각이고 그게 불가능한 것들은 해체해서 자재의 재활용이라도 할 생각입니다.”

“상태가 괜찮은 배들은?”

“그런 배들은 기술자들을 통해 이곳에서 경정비를 하며 경험을 쌓게 할 생각입니다.”

“좋은 생각이군. 아무것도 없는 상태에서 배를 설계하고 만드는 것보단 수리를 하면서 조금씩 배우는 게 좋겠지.”

“예. 조선소가 다 완공된 건 아니지만 그것과는 별개로 내부의 도크가 지어지는 대로 수리에 들어갈 겁니다.”

나는 턱에 난 수염을 쓰다듬으며 획득한 배들의 처분이 적혀있는 서류를 훑어보았다. 해적 놈들이긴 해도 배가 본인들 밥줄이라 그런지 나름대로 정비는 한 모양이었다.

문제는 제노바에서 해상전을 벌일 때 압도적으로 짓밟아서 그런지 당장 운용 가능한 배가 몇 안 된다는 게 아쉬울 따름이었다.

“그래. 그 부분은 자네를 믿고 맡기도록 하지. 그리고 상단 구성은 잘돼 가고 있나?”

“예. 아이유브와 협상이 완료되면 그때부터 본격적으로 무역을 할 생각입니다. 아마 그때쯤 되면 입거했던 배들의 수리도 다 끝날 겁니다.”

“흠… 총독 각하께서는 복 받은 분이시군.”

“예?”

뜬금없이 총독의 이야기가 나오자 벨렌테가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반문했고 나는 미소를 지으며 그를 칭찬했다.

“자네 같은 훌륭한 아들을 두고 있으니 뭐가 걱정이겠나.”

“하하, 과찬이십니다.”

“아무튼, 정말 고맙네. 조금만 더 고생해주게.”

“감사 인사는 오히려 제가 드려야지요. 백작 각하 덕분에 침체됐던 아국의 상업은 물론이고 조선소도 오랜만에 활기로 가득 차 있습니다.”

하긴, 제노바는 이미 우리와 운명공동체나 다름없다. 베네치아에 밀려서 서서히 말라 죽어가는 지금 우리와의 동맹이 돌파구라 생각하는 거겠지.

실제로 관세 철폐와 무역로의 개방, 구매층의 증가는 상인들에게 호재 중의 호재였다. 거기에 추후 베네치아와 전쟁을 하게 되면 부족한 육군력을 우리가 대체해줄 수도 있지 않겠는가.

내가 만족스러운 표정으로 항만을 둘러보며 모든 공사가 완공됐을 때의 모습을 상상하고 있을 때 벨렌테가 내게 다가와 주변을 쓱 훑어보더니 귓속말로 속삭였다.

“그리고 아버지께서 백작님의 제안에 대한 답을 주셨습니다. 약 500명 정도의 용병들을 지원해준다고 하시더군요.”

제노바는 조선, 무역, 용병으로 유명했는데 파비스를 짊어진 쇠뇌병들이 바로 제노바의 특산품이었다.

실제로 그들의 용맹과 신의에 대해선 두말할 것도 없었는데 다소 비싼 것을 제외하면 제노바 쇠뇌병들은 다른 용병들에 비해 전투력이나 충성도 면에서 압도적인 우위를 점하고 있었다.

“총독 각하께서 큰 결단을 내려주셨군. 내가 총독께 깊이 감사드린다고 전해주게. 나중에 일이 끝나면 큰 선물과 함께 한번 찾아뵌다는 말도 함께 말이야.”

“알겠습니다. 꼭 전해드리겠습니다.”

“아, 그리고 자네가 만나줬으면 하는 인물이 있네.”

세상살이가 내 생각대로 흘러가지 않으니 이를 대비해 보험이 필요할 수밖에 없다. 그리고 난 지금 여기서 제노바를 통해 보험을 하나 들어놓을 생각이었다.

* * *

나는 시찰을 끝마친 뒤 저녁 식사 자리에 벨렌테를 초대했다. 사람을 소개해준다는 말에 벨렌테는 제법 옷에 힘을 주고 찾아왔는데 20대 중반 정도의 여성이 내 옆에 앉아 있자 당황한 눈초리였다.

“백작 각하. 혹시 제가 만나볼 사람이라는 것이 귀족가의 여식이었습니까?”

“뭐? 푸하하하. 요한나. 그대가 귀족가의 여식처럼 보이나 보군.”

“어머, 그렇게 봐주시니 영광입니다. 상단장님.”

상단장이라. 뭐 일단은 제노바 쪽에서 파견 온 이들 중에 벨렌테가 총 책임자니까 틀린 말은 아니지.

“정식으로 소개하겠네. 여기 이 친구는 제노바 총독의 아드님인 조반니 2세 벨렌테, 이쪽은 레비아탄 상단 출신의 요한나 레비아탄일세.”

그 순간 벨렌테는 그녀의 정체를 정확히 꿰뚫어 본 모양이었다. 뭐, 나에 대해 조사하다 보면 그녀에 대해서도 알게 될 수밖에 없다.

당연히 벨렌테는 당황스러운 표정으로 날 바라봤지만 난 어깨를 으쓱하며 요한나에게 물었다.

“뭐, 나와 그녀가 과거에 다소 잡음이 있기는 했지만 지금 그녀는 내게 충성을 맹세했다네. 그렇지 않은가?”

“물론입니다. 각하. 상인으로서 단언하건대 백작 각하와 있으면 돈이 굴러들어올 텐데 왜 배신을 하겠습니까? 더군다나 각하께서는 이미 절 죽일 수 있는데도 살려주시지 않았습니까?”

“말이야 그렇지만 자네를 온전히 믿을 수 없는 것도 사실이지. 그래서 그녀를 지원할 때 제노바에서도 조금 투자를 해줬으면 하는데… 괜찮겠나?”

내 곁에 두고 계속 쓴다면 상관없겠지만 나는 그녀를 북부, 정확히는 사자공의 영역으로 올려보낼 생각이었다.

그 후 이쪽에서 물자를 지원해줘서 그곳에 자리 잡게 만든 뒤 추후 내가 북부로 올라갔을 때 그를 기반으로 삼아 빠르게 확장을 해나갈 생각이었다.

그 때문에 그녀는 첨병 역할을 해줘야 했는데 밑도 끝도 없이 돈만 쥐여줘서 올려보내기에는 찝찝하고 불안해서 제노바를 끼워 팔 생각이었다.

제정신이 박혀있다면 나와 칼리나, 그리고 제노바와 검은 용군단을 적으로 돌리진 않겠지.

“알겠습니다. 제게 여유 자금이 조금 있으니 그를 투자하도록 하겠습니다.”

벨렌테는 그런 내 의도를 눈치챘는지 적지도 많지도 않은, 딱 본인이 감당할 수 있는 양을 투자하기로 했다.

“고맙네. 자, 그럼 요한나? 이렇게 나와 제노바가 그대에게 믿음과 신뢰를 보여줬으니 그대 역시 우리에게 믿음을 보여줘야겠지?”

“물론입니다. 백작 각하. 제게 투자하신 걸 절대 후회하지 않게 해드리겠습니다.”

“말로는 뭔들 못하겠나. 이번에야말로 자네의 능력을 입증해보게. 자네가 북부에서 확실히 자리를 잡는다면 그때는 그대를 중히 써주도록 하지.”

“반드시 기대에 부응하도록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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