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095화
하지만 그런 생각과는 별개로 나는 가볍게 힐데의 어깨를 주무르며 마사지를 시작했다. 원래 이런 건 거부감이 없는 부위부터 주물러 줘야 한다.
나는 마음을 비운 채 성심성의껏 그녀의 어깨를 풀어주었다. 기분이 나쁘진 않은지 힐데는 별다른 반응이 없었고 나는 좀 더 강하게 주무르려다 깜짝 놀랐다.
“어… 이거 생각보다 심하게 뭉쳤는데?”
본격적으로 마사지에 들어가려다 손아귀에서 느껴지는 딱딱함에 나는 당황했다. 그녀의 어깨는 체구에 비해 벽돌이라도 들어있는 것처럼 딱딱했다.
맨날 갑옷을 입고 다녀서 그런 건가? 아니면 그만큼 단련을 해서 그런 건가? 확실히 저 무식해 보이는 메이스와 방패에 갑옷까지 걸치고 다니려면 어지간한 체력으로는 불가능하겠지.
혹시 이게 실전압축근육이란 건가? 혹여나 힐데에게 얻어맞지 않도록 주의해야겠다.
아무튼, 손으로 풀어주기에는 여러모로 견적이 나오지 않아 일단 나는 발로 가볍게 밟아서 그녀의 몸을 풀어주기로 했다.
“야, 이거 너무 딱딱해서 손으로는 힘들고 일단 발로 밟아줘야 될 것 같은데?”
내 말에 엎드려있던 힐데가 반쯤 몸을 돌리더니 게슴츠레한 얼굴로 나를 바라보았다.
“…왜 그런 눈으로 보는데?”
“아니요. 뭐 예상하고 있었습니다. 말은 마사지라고 얘기하지만, 결국은 당신의 음습하면서 남들에게 말하지 못할 욕구를 채우기 위한 행동이었군요.”
“……아니… 뭔….”
당황스럽다. 물론 그런 생각이 조금도 없다고는 말하지 못하겠지만 지금만큼은 순수하게 그녀의 몸을 마사지하기 위해 최적의 방법을 얘기해줬는데 저런 식으로 매도하다니… 상처받았다.
“교단의 사제를 벗겨놓고 발로 짓밟으면서 쾌감을 느끼다니, 당신도 참 대단하군요. 하지만 괜찮습니다. 알고도 당해 주는 것. 그게 사제의 본분이니까요. 제 자비로움이 느껴지십니까?”
“아니, 선생님. 선생님 근육이 너무 뭉쳐있다니까요?”
“굳이 그렇게 변명할 것 없습니다. 애초에 라그나르 당신 취향이 특이한 건 진작에 알고 있으니까요.”
다 안다는 듯한 표정을 짓고 있는걸 보니 괜히 배알이 꼴렸다. 하지만 나는 참았다. 군자의 복수는 10년을 기다려도 늦지 않는다는 말을 되새기면서.
물론 10년은 아니고 10분 후긴 하지만 그때는 저 입에서 저런 건방진 말 대신 우는 소리를 내뱉게 될 것이다.
성공적인 복수를 위해 나는 마음을 가라앉힌 뒤 무념의 자세로 천천히 그녀의 어깨를 밟으며 뭉친 몸을 풀어주었다.
“흐응… 새, 생각보다 괜찮… 읏… 군요.”
나는 조각을 하는 예술가의 마음으로 그녀의 몸을 부드럽게 풀어갔다. 딱딱하게 뭉쳐있긴 했지만 부드러우면서도 강단 있게 어깨를 밟아주자 힐데의 몸도 조금씩 부드럽게 풀려갔다.
그 뒤로 나는 손으로 남아있는 부분을 마저 풀어준 뒤 손을 쭉 내려 기습적으로 그녀의 오른쪽 발바닥을 양 엄지로 쭈욱 밀어 올렸다.
물론 예상외로 내가 성실하게 마사지만 하자 힘을 풀고 있던 힐데는 갑작스런 내 습격에 비명을 내질렀다.
“흐으으으읏!!!! 무슨… !”
마사지라는 건 오묘하다. 사람의 혈도를 자극해 작은 움직임만으로 그 사람을 제어하는 게 가능하지 않은가. 그런 관점에서 보면 생각 외로 외설적일지도 모르겠네.
물론 나는 그런 생각을 숨긴 채 태연한 얼굴로 얘기했다.
“발 마사지야. 발은 제2의 심장이라고 하잖아. 이왕 하는 거 가볍게 풀어줄 테니까 몸에 힘 빼.”
“자, 잠깐만 기다… 아으으윽!”
힐데가 필사적으로 기다리라고 외쳤지만 나는 인정사정 봐주지 않고 그녀의 발바닥을 주물렀다. 사자는 자기 새끼를 강하게 키운다지?
비록 힐데가 내 친딸은 아니지만 나 역시 그녀를 강하게 키울 것이다. 라그나르도 그걸 바라고 있지 않을까?
“하앗… 앗… 으읏.”
거기에 그녀의 발은 생각보다 작아서 양손으로 감싸 쥘 수 있을 정도였기에 나는 열 개의 손가락을 촉수처럼 움직이며 마구 주물렀다.
“하으으읏!! 싫… 앗… 아응!!”
물론 힐데는 입으로는 싫다고 했지만, 몸은 솔직했다. 온몸을 비틀면서도 몸의 피로가 풀리는 쾌감에 저항할 수 없었는지 그녀는 별다른 저항을 하지 못했다.
마지막 마무리 단계로 들어가기 위해서 나는 그녀의 종아리를 가볍게 문지르며 근육을 풀어주었다. 원래 많이 걷거나 하면 종아리에 알이 배기지 않던가.
그녀는 말을 타며 다른 예비마들도 제어해야 했기에 필연적으로 허벅지와 종아리에 힘이 들어갈 수밖에 없었고 당연히 그 부위도 뭉칠 수밖에 없었다.
“으그으으으읏!!!!”
그 때문에 그녀의 종아리와 허벅지를 주무르자마자 힐데에게선 짐승이 포효하는 듯한 소리가 새어 나왔다. 하지만 그녀는 용케 비명을 참아냈고 나는 슬슬 몰려오는 양손의 피로함을 달랜 뒤 마사지를 이어나갔다.
절묘하면서도 부드러운 힘 조절로 계속 힐데의 다리를 풀어주자 그녀는 더 이상 저항을 포기한 건지 빨랫감마냥 축 널브러진 채 작은 신음 소리를 내뱉을 뿐이었다.
이제 슬슬 마지막을 장식할 차례다. 어쩌면 나는 지금 이 순간을 위해서 길고도 긴 시간 동안 빌드업을 쌓아온 것일지도 모른다.
가볍게 심호흡을 한 나는 가드가 느슨해진 힐데의 겨드랑이를 양 엄지로 정밀하게 타격했다.
“흐아아아아앙!!”
마침내 힐데에게서 쾌감인지 고통인지 모를 소리가 새어 나오자 나는 입가에 미소를 지으며 부드럽게 그녀의 겨드랑이 안쪽을 문질렀다.
“거기느은…… 후으읏!”
그녀는 꼭두각시 인형이라도 된 것마냥 내가 겨드랑이 안쪽을 누를 때마다 새된 신음 소리를 내뱉었다.
“으읏… 흣… 이,이제… 흐응… 됐습니다.”
“괜찮아. 보니까 몸이 많이 뭉친 것 같은데 이참에 확실하게 풀어줄게.”
호의로 무장한 내가 마사지를 멈추지 않자 힐데는 필사적으로 발버둥 치며 내게서 벗어나려 했지만 나는 집요하게 그녀의 혈을 누르면서 마사지를 이어나갔다.
애초에 마사지라는 건 근육을 풀어주는 행위이니 몸에 힘이 풀릴 수밖에 없다. 더군다나 여기는 게임이지 않은가. 현실보다 더 효과가 좋을 수밖에 없다.
이래 보여도 마사지사로 플레이할 때 골든핑거 업적도 따본 적이 있다. 나는 그때의 경험을 살려서 원하는 만큼 힐데의 겨드랑이를 주물렀다.
물론 이건 절대 내가 겨드랑이 애호라서가 아니다. 단지, 그곳에 신경이 많이 쌓여있기 때문이다. 왜 임파절인가 뭔가 하는 것들이 겨드랑이 같은 데 많이 있지 않던가.
그렇게 스스로의 마사지에 심취해 한 시간이 넘게 힐데를 주물러주자 마사지가 끝난 그녀의 모습은 꽤나 장관이었다.
어찌나 몸을 비틀었는지 시트는 흙과 땀이 뒤섞여 있었고 몸을 부들부들 떨리고 있었으며 그녀의 입에서는 단정치 못하게 침이 질질 흐르고 있었다.
이건 사진으로 남겨두고 싶네. 분명 흑역사가 아닐까? 아무튼, 몸이 풀어지자 마음도 풀어졌는지 그녀는 그대로 잠들었고 나도 꽤 피곤했기에 그냥 그대로 쓰러져서 잠에 빠졌다.
뭐, 덕분에 말들을 마사지하는 건 다음 날로 넘어가야 했지만 어쨌건 이 약간의 꼼수로 인해 나는 거진 700km에 달하는 긴 거리를 일주일 만에 주파할 수 있었다.
물론 다음 날 깨어나서 분노한 힐데에게 설교와 잔소리, 매도를 들은 건 당연한 일이었고.
* * *
밀라노로 복귀한 나는 곧장 칼리나와 독대를 하게 되었다. 정확히는 그녀가 날 보자마자 내 손을 붙잡고 응접실로 데려온 거지만.
덕분에 나는 씻기는커녕 그간의 노고조차 풀지 못한 채 그녀를 만나야 했다. 땀 냄새 때문에 좀 씻고 싶다고 얘기했지만, 그녀는 막무가내였다.
그렇게 엉거주춤하게 테이블에 앉아 있자니 그녀가 와인병과 와인잔을 가지고 와서 우아하게 와인을 따르기 시작했다.
새삼스럽게 느끼는 거지만 그녀의 행동 하나하나는 한 폭의 그림과도 같았다. 역시 미인이라서 그런 건가? 그런 내 상념은 그녀가 내게 와인잔을 건네주면서 깨졌다.
“후우… 라그나르.”
“왜?”
“왜? 왜에?”
내 말꼬리를 붙잡고 늘리며 되묻는 칼리나의 모습에 나는 재빨리 머리를 굴렸다. 내가 야만인이긴 하지만 멍청하진 않다.
저건 누가 봐도 화난 모습이었고 나는 그녀가 왜 화났는지에 대해서 생각해봤지만 팟 하고 정답이 떠오르진 않았다.
그래서 얌전히 입을 다물고 있자 그녀는 와인을 한 번에 들이켜더니 거칠게 탁자에 내려놓으며 내게 따지듯 물었다.
“대체 왜 내가 보낸 편지에 답장이 없던 거야? 내가 보낸 편지에 꼬박꼬박 답장해준다는 조건으로 당신을 보내주지 않았던가?”
“아니, 답장을 안 한 건 아니잖아. 그리고 전쟁 때문에 바빴단 말이야.”
솔직히 나는 억울하다. 바쁜 와중에도 칼리나가 보내는 편지를 꼼꼼히 읽고 꼬박꼬박 답장을 적어줬다. 단지 시간이 흐를수록 바빠지기도 했고 그녀는 하루가 멀다고 편지를 보내왔기에 답장을 하지 못했던 것뿐이었다.
아니 일주일에 한 통도 아니고 하루에 한 통이 말이 되는가. 편지도 가끔 써야 뭐 할 말이 있는 건데 그녀는 매일매일 보내는 편지마다 거짓말 하나도 안 보태고 A4 3~4장 분량의 편지를 보내왔다.
하지만 칼리나에게 내 변명은 통하지 않았고 그녀는 매서운 눈으로 나를 노려보며 소리쳤다.
“그래도 편지를 보낼 시간이 없던 건 아니잖아! 솔직히 답장 쓰는 게 한 시간씩 걸리는 것도 아니고.”
“…….”
뭐, 중간에 귀찮아서 한두 번 답장을 안 하긴 했었지. 그리고 그게 쌓이다 보니 한 일주일 정도 답장을 안 하기도 했고.
“라그나르. 나도 순정이 있어. 당신이 이렇게 내 순정을 짓밟으면! 그때는 나도 막무가내로 나가는 거야!!”
그녀의 말에 자꾸 지하실 엔딩이 머릿속에 맴돈다. 물론 내 눈앞의 칼리나는 집착 게이지가 꽤 높긴 하지만 내가 싫어하는 일을 하진 않을 것이다.
…하지 않겠지?
“그거 알아? 당신은 니스의 백작이지만 내게 소속되어 있는 거?”
물론 그건 명분상일 뿐 실제로 별다른 효력은 없다. 사자공이 황제의 신하라고 프리드리히에게 고분고분하게 대하는 건 아니잖은가.
하지만 그 당사자가 힘을 가지고 있다면 명분은 엄청난 무기가 된다. 그 때문에 나는 일이 더 커지기 전에 솔직하게 사과하기로 했다.
“미안해. 내가 잘못했어.”
“겨우 그런 핑계로 넘어가려는 거야? 난 핑계보단 행동으로 보여주는 게 더 좋은데.”
그녀의 말에 나는 품속에서 그녀를 위해 준비했던 향수와 브로치를 꺼내서 건네주었다.
“널 위해 준비한 선물이야.”
“흐응… 내가 이런 거에 넘어가는 쉬운 여자인 줄 알아? 거기에 이왕 줄 거라면 반지가 더 좋은데 말이야.”
“음….”
선택을 잘못했나? 하지만 그런 생각을 하기가 무색하게 그녀는 웃으면서 내가 내민 브로치를 옷에 꽂았다.
“맞아. 난 쉬운 여자야. 그러니까 당신이 한 번만 꽉 안아주면 풀릴 것 같아.”
다행스럽게도 화가 풀린 모양이다. 나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그녀를 가볍게 안아주려는데 갑자기 그녀가 날 확 끌어당기며 기습적으로 키스했다.
그리고 그 순간 칼리나와의 기억이 일부 해방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