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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임 속 바이킹이 되었다-81화 (81/205)

▣ 081화

[덴마크 코펜하겐]

수많은 병사를 이끌고 자신의 형제들을 토벌하기 위해 나섰던 에릭 블러드엑스는 출진한 지 채 넉 달도 되지 않아 수많은 포로와 재물들을 가지고 복귀했다.

그런 그를 환히 웃으며 맞이한 건 그의 아내이자 여왕인 군힐드였다.

“전하. 승전을 감축드립니다.”

“무얼, 이런 걸 승전이라고 자축하면 세상이 비웃을 거요.”

물론 그런 말을 하는 것과 다르게 이번 출진에서 에릭 블러드엑스가 거둔 전공은 작다고 할 수 없었다.

최근 자신이 덴마크에 있다고 노르웨이에서 반기를 든 자신의 형제인 시구르드와 올라프를 토벌한 것도 모자라 그들을 사살했기 때문이었다.

권력에 도전하면 형제들까지 잔인하게 사살하는 에릭의 모습에 사람들은 공포에 떨었고 야를들은 살기 위해 침묵했다.

“사람들은 이미 하랄 블로탄을 잊었으며 야를들 역시 전하를 인정하는 추세입니다.”

“흥, 제깟 놈들이 날 인정하지 않으면 어쩐단 말인가.”

“세상에는 제 목숨 아까운 줄 모르는 놈들이 널려있지 않습니까?”

군힐드의 말에 에릭은 동감한다는 듯 피식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자신의 손으로 죽이고 온 올라프와 시구르드 역시 목숨 아까운 줄 모르는 병신들이었으니까.

“아무튼, 이번 승리로 노르웨이와 덴마크에서 전하께 반항할 이들은 사라졌다고 봐도 무방합니다.”

“그러겠지. 그리고 그 얘긴, 마지막 후환거리를 제거할 때가 왔다는 말이군.”

“그렇습니다. 이미 하랄 블로탄이 에스토니아의 탈린에 있는 것을 확인했습니다.”

“그대의 하나뿐인 혈육이니 원한다면 살려서 돌아올 수도 있네.”

“저는 전하와 결혼하는 순간부터 모든 인연을 끊었습니다.”

죽여도 상관없다고 우회해서 이야기하는 군힐드를 보며 에릭은 혀를 내둘렀다. 형제를 죽인 자신이 할 말은 아니지만 군힐드 역시 자신 못지않게 지독한 여자였기 때문이다.

“리보니아 기사단은 뭐라 하던가?”

“의견차가 어느 정도 있었지만, 합의에 성공했습니다.”

“아주 좋군. 이번 원정으로 병사들이 많이 상했으니 한 달 동안 휴식을 취한 뒤 출정하도록 하지.”

“출정에 차질이 없도록 준비해놓겠습니다.”

“부탁하지.”

말을 마친 군힐드는 에릭이 쉴 수 있게 자리를 비워주었다. 그렇게 자신의 방에 돌아온 군힐드는 침대에 걸터앉으며 이를 갈았다.

“하랄. 드디어 이 기나긴 악연을 끝낼 때가 왔구나.”

하랄 블로탄. 마땅히 자신의 것이 되어야 할 왕의 자리를 차지한 자신의 남동생.

정식 후계자이자 장남이었던 크누트가 불의의 사고로 죽었을 때 군힐드는 후계자의 자리가 자신에게 올 거라 확신했다.

하랄은 어렸고 군사적인 업적도 없었던 반면, 자신은 왕국을 위해 수많은 이들을 죽이며 손에 피를 묻혔기 때문이다.

허나 자신의 아버지였던 고름 1세는 자신은 왕의 그릇이 아니라며 하랄에게 왕위를 물려주었다. 어처구니가 없었지만, 아버지의 확고한 지지 아래 야를들이 뭉치기 시작했고 결국 덴마크에서 자신이 설 자리는 없어졌다.

결국 군힐드는 자신의 것을 되찾기 위해 노르웨이의 왕이었던 에릭과 결혼을 했고 그를 꼬드겨서 덴마크를 공격하게 만들었다.

하랄 블로탄은 에릭의 군세에 제대로 된 저항조차 하지 못한 채 자신의 추종자들을 끌고 허겁지겁 도망쳤고 덴마크의 왕위는 마침내 자신에게 다시 돌아왔다.

“그러고 보니 제가 왕이 되면 수많은 피가 흐를 거라는 아버지의 말이 영 틀린 것은 아니군요.”

그녀는 자신의 머리 위에 씌워진 왕관을 어루만지며 귀기 어린 목소리로 다짐하듯 중얼거렸다.

“저승에서 지켜보십시오. 최후의 승자가 되는 게 누구인지, 진정한 덴마크의 왕이 누구인지 흘린 피로써 입증할 테니.”

* * *

[폴란드 크라쿠프]

정의공과의 밀회로 암암리에 폴란드와 동맹을 맺은 나는 북부로 올라가기 위한 준비를 서둘렀다. 당연히 더 추운 곳으로, 볼품없는 황무지로 간다는 소식에 힐데는 잔뜩 인상을 찌푸렸다.

“그래서 그 제안을 받아들였단 말씀이십니까?”

“응. 혹시 화났어?”

생각해보면 힐데나 이비의 의견도 묻지 않고 나 혼자서 독단적으로 결정한 셈이었다. 물론 나는 이게 맞다는 걸 알지만 그 과정에서 둘의 의견을 묻지 않은 건 내 잘못이었다.

무릇 리더라 함은 사람들을 옳은 길로 이끄는 것도 중요하지만 이끌어가는 과정도 중요하니까. 그 과정이 잘못된다면 독재와 다를 게 없다.

“화나지 않았습니다. 제가 언제 당신의 결정에 반대하거나 의심을 품은 적이 있습니까?”

“음, 그건 그랬지.”

툴툴대기는 했지만, 결국 힐데는 내가 하자는 대로 다 해줬다. 부탁하는 건 전부 들어줬고.

“다만 구태여 그 위험한 곳으로 갈만한 가치가 있는지는 모르겠군요.”

“글쎄… 가치는 찾기 마련이지. 너와 이비에게도 분명 북부는 가치 있는 곳이 될 거야.”

내게 북부의 가치는 운명과 다름없었다. 정확히는 메인 퀘스트를 깨기 위함이었지만 사실 메인 퀘스트 따위는 아무래도 좋다. 이미 메인 퀘스트의 목표는 내 삶의 이정표가 됐다.

퀘스트를 깨면 원래 세계로 돌아갈 수 있다는 간절한 희망만이 내가 미치지 않고 버틸 수 있게 해준 원동력이었으니까.

물론 이제는 과거의 내가 진짜인지, 아니면 그저 한여름 밤의 긴 꿈에 불과했던 건지 혼동이 오지만, 눈앞에 보이는 퀘스트 창은 실재했고 모든 것에 해답을 찾기 위해선 메인 퀘스트를 깨는 수밖에 없다.

“라그나르. 혹시나 해서 묻는 거지만… 예전에 제가 당신에게 했던 말 때문에 그러는 겁니까?”

“뭐?”

“아니… 아닙니다. 잊어주십시오.”

뭔가 숨기고 있는 듯한 그녀의 말투에 더 물어보고 싶었지만 그러기엔 힐데의 표정이 너무 안 좋아서 그만뒀다. 어차피 내가 모든 기억을 떠올리면 해결될 문제니까.

“라그나르. 뭐가 어찌 됐건 지금의 제게 가장 중요한 건 당신입니다. 저는 당신과 함께 있을 수만 있다면 그곳이 어디라도 상관없습니다. 부디 그것만은 알아주십시오.”

“……그래.”

왠지 모르게 말을 하는 힐데의 목소리에 물기가 섞여 있었기에 나는 나도 모르게 그녀를 꽉 안아준 채 머리를 쓰다듬어 주었다.

평상시라면 기분 나쁘다며 저리 치우라고 할 테지만 지금은 가만히 내 손길을 받아들였다.

그렇게 한참 동안 날 끌어안고 있던 힐데는 이내 제정신이 돌아왔는지 기도를 하러 가겠다며 서둘러 자리를 비웠다.

힐데의 행동으로 잠시 분위기가 어색해졌지만 나는 개의치 않고 이븐 시나를 불렀다.

“이비.”

“예. 주군.”

“그것 좀 벗어봐. 보는 내가 답답해서 안 되겠다.”

내 명령에 그녀는 잠시 망설이더니 쓰고 있던 마스크를 벗었다. 여전히 그녀의 얼굴에는 화상 자국과 뱀이 기어간 듯한 흉터가 여기저기 새겨져 있었다.

“이리 와봐.”

그녀는 조심스럽게 내게 다가왔고 나는 이비의 턱을 잡은 채 이리저리 돌려가며 그녀의 얼굴에 새겨진 저주와도 같은 낙인을 훑어보았다.

내 눈길이 닿을 때마다 그녀의 얼굴은 새빨갛게 물들었는데 내가 자신의 얼굴을 만진다는 것보다, 자신의 흉측한 모습을 여과 없이 보인다는 사실이 부끄러운 것 같았다.

“흠… 여전하네.”

“더 나빠지지 않는다는 사실에 감사하고 있을 뿐입니다.”

“언젠가 내가 네게 새겨진 낙인을 지워준다고 얘기했었지?”

“그렇습니다. 주군.”

하지만 대답하는 그녀의 태도를 보아하니 진심으로 내가 흉터를 지울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진 않는 모양이다.

그만큼 그녀는 자신의 의술에 자신이 있다는 의미였지만 원래 중이 제 머리 못 깎는 법이다. 애초에 그녀의 낙인은 신의 저주였기에 인간의 힘으로는 절대 고칠 수 없다.

그래서 필요한 게 엘릭서나 불로초, 넥타르, 크바스 같은 전설적인 약이다. 물론 저것들 중에 구하기 쉬운 건 하나도 없지만 그나마 바이킹인 내겐 북유럽 신화에서 비롯된 크바스를 구하는 게 제일 쉬울 것이다.

바이킹과 관련된 퀘스트는 대부분 시련이었기에 육체 강화 계열인 내게 딱 맞기도 하고.

“실은 정화교단을 통해 네 낙인을 지울 방법을 찾고 있었는데 얼마 전에 실마리를 찾았어.”

“그게 정말이십니까!?”

내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이비는 나를 끌어안을 듯 바짝 다가서며 물었고 나는 진정하라는 표시로 그녀의 어깨를 가볍게 툭툭 쳤다.

“죄, 죄송합니다. 그게 그러니까… 너무 기뻐서 저도 모르게 그만….”

“괜찮아. 네 맘 다 이해하니까.”

그녀가 심호흡을 하며 어느 정도 진정되는 낌새가 보이자 나는 천천히 이야기를 풀어나갔다.

“정화 교단에서 얘기하기를 네 낙인에는 신성력이 느껴진다고 하더라고. 그런 경우 인간의 힘으로 그걸 지우는 건 불가능해.”

“이게 신의 저주라는 말씀이십니까?”

“저주…라기보다는 성흔이지.”

그녀의 몸에 새겨진 낙인은 이집트의 악신이자 뱀의 화신인 아포피스의 성흔이지만, 굳이 그런 것까지 말해줄 필요는 없을 것이다.

사족이지만 그녀가 그렇게 사람을 살리려 애쓰는 것도 자신의 안에 내재된 악신의 힘을 억누르기 위한 것이었다.

만일 그녀가 세상을 떠돌며 제한시간 안에 낙인을 제거하지 못하면 그녀는 이집트 지역에서 아포피스의 사제로서 다시 태어나게 된다. 그리고 그 최후는 대부분 파멸로서 끝을 맺게 된다.

“그럼 이걸 제거하기 위해선 어떻게 해야 합니까?”

“그보다 더 고위 신의 힘으로 정화해야지.”

“고위 신이라 하심은 주군께서 섬기시는 신인 오딘을 의미하는 겁니까?”

오딘이 아포피스보다 고위 신인지는 모르겠지만, 적어도 마법에 관해서는 오딘을 따를 자가 없다. 굳이 찾자면 예수나 제우스 정도일까?

“맞아. 오딘의 힘을 사용한다면 너의 낙인도 정화할 수 있겠지.”

물론 말처럼 쉬운 일은 아니다. 다 잊혀져가는 신이라도 오딘은 한 신화의 주신이다. 지난번에 와일드 헌트를 일으키는 것만으로도 얼마나 많은 힘을 소모했던가.

결국, 내 몸에 오딘을 빙의시키기 위해선 나 자신이 신격을 얻어야 한다. 그리고 그를 위해 가장 빠른 방법은 크바지르의 피로 빚은 벌꿀주인 크바스를 마시는 것뿐이다.

힘들기는 하지만 방법을 찾았다는 말에 이비는 고개를 숙인 채 흐느꼈다. 아무래도 얼굴에 새겨진 낙인 때문에 평생 동안 가면을 쓰고 살아온 만큼 서러움이 몰려왔겠지.

나는 굳이 그녀를 제지하지 않고 조용히 등을 두들겨주며 그녀의 눈물이 그치기를 기다렸다. 약간의 시간이 지나자 그녀는 감정을 추슬렀는지 붉어진 눈으로 사과했다.

“못난 꼴을 보여드려 죄송합니다.”

“괜찮아. 그럴 수도 있지. 아무튼, 지금은 실마리만 잡은 것뿐이니까 북부에 가게 되면 시간이 날 때마다 오딘과 연관된 모든 것들을 수집해. 허무맹랑한 소문이든, 문서든, 현상이든 뭐든 간에 좋아.”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원래 퀘스트를 수주하려면 NPC를 통해서 하는 게 제일 좋지만 내가 북부를 싸돌아다닐 수 있는 것도 아니고 NPC들의 위치 역시 랜덤변수가 적용되었기에 위치 파악도 힘들다.

그러니 단서라도 찾아서 그를 바탕으로 오딘의 흔적을 쫓아야 한다. 하는 김에 크바스 이외에도 오딘의 창인 궁니르나 라그나로크의 시작을 알렸다는 걀랴르호른 같은 보물들에 대한 정보도 겸사겸사 얻으면 좋은 거고.

“그리고 곧 에스토니아 지역의 탈린으로 올라갈 거니까 필요한 준비는 미리 다 해놔. 그곳에서 제대로 된 물자를 보급받기는 힘들 테니까.”

“알겠습니다.”

“그래. 그럼 바쁠 텐데 일 봐.”

이비는 내게 허리를 깊숙이 숙인 뒤 방을 나섰고 홀로 남게 된 나는 지도를 펼친 채 고민에 빠졌다. 사실 정의공에게 호언하긴 했지만, 갑작스레 결정된 일이었기에 이번 작전에는 빈틈이 꽤 많았다.

즉, 피해를 최소화하고 작전을 성공적으로 이끌어나가기 위해선 한 치의 오차도 없이 완벽한 계획을 수립해야 했다.

“에휴. 이번에도 고생만 바가지로 하겠네.”

야영과 노숙은 일상이요 제대로 된 음식은 기대조차 하지 말아야 하며 추위는 물론이고 극악무도하다는 기사단 놈들과 싸워야 하겠지.

“다 끝나고 니스로 내려가면 좀 쉬어야지.”

물론 니스로 복귀를 해도 그리 오래 쉬지는 못할 것이다. 우리 위대하신 황제 폐하께서는 세상에 둘도 없을 트러블 메이커였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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