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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임 속 바이킹이 되었다-74화 (74/205)

▣ 074화

그렇게 나는 리슐리외와 오토, 필리프, 고드프리, 벨렌테, 힐데, 이비를 이끌고 제일 먼저 농노들이 농사를 짓는 땅으로 이동했다.

성을 포위하며 공성을 할 때 우리가 뒷일을 생각 안 하고 마구잡이로 사용해서 그런지 땅은 내년 농사를 짓지 못할 정도로 황폐화되어 있었다.

인분과 오수, 가축들의 분뇨와 음식물 쓰레기들로 오염되어 있는 데다 참호를 파기 위해 마구 헤집어놓은 땅은 빈말로라도 상태가 좋다고 할 수 없었다.

어차피 똥이나 음식물 쓰레기들은 비료로 쓸 수 있으니까 적당히 묻어놓으면 되는 거 아니냐고 할 수 있는데 그게 또 그렇지가 않다.

이 게임은 쓸데없는 부분에서 묘하게 사실적이었는데 기본적으로 가축들의 분뇨는 퇴비로 쓰기에 적합하지 않다.

반면 사람의 인분은 동서를 막론하고 비료로 사용됐는데 문제는 그냥 땅에다 똥을 싸재낀다고 비료가 되는 건 아니었다.

인분을 비료로 쓰기 위해서는 삭히는 등 일련의 발효과정이 필요했는데 이를 거치지 않으면 농작물에 기생충이 득실거리는 광경을 마주하게 될 것이다.

안 그래도 위생 관념이 저조했던 중세에 의술이라고 제대로 정립되어 있을 리가 만무하니 이는 결국 사람들이 치명적인 질병과 감염에 노출되는 것을 의미했다.

거기에 재수 없이 전염병이라도 돌면 무조건 도시를 봉쇄해야 했는데 모든 물자가 부족한 니스를 봉쇄한다는 건 굶어 죽느냐 병에 걸려 죽느냐의 양자택일이었다.

그 때문에 대지의 오염은 빠르게 배제해야 할 요인이었고 나는 그 중요성을 누구보다 잘 알기에 첫 번째 시찰 장소로 경작지를 고른 것이다.

“거 냄새 한번 지독하군.”

나는 기침을 하며 인상을 찌푸린 채 손을 휘저었다. 분뇨와 오수, 인분, 음식물 쓰레기 등이 한데 뒤섞여있는 냄새는 가히 역겨웠다.

아니, 고작 역겹다고 칭할 게 아니라 그냥 정신이 나갈 정도였다. 다른 이들도 내색은 안 했지만, 얼굴이 있는 대로 찌그러져 있는걸 보니 심히 기분이 안 좋은 듯했다.

젠장. 내가 쳐들어갈 때는 어차피 수성 측에서 뒤처리를 하니까 뭔 짓을 해도 신경 안 썼는데 막상 내가 뒤처리를 하려고 하니 미쳐버릴 것 같다.

물론 게임 내에서도 이런 잡다한 전후처리를 하긴 했지만, 그때는 그냥 마우스로 몇 번 클릭하면 끝이었다. 하지만 현실이 된 지금은 하나부터 열까지 내가 직접 처리해야 했다.

게임이 아닌 현실이라는 건 이비나 힐데한테 무릎베개를 받으면서 허벅지에 뺨을 부빌 때는 최고였지만, 하기 싫은 일을 직접 하려니 재앙이 따로 없었다.

하지만 나는 애써 그런 감정을 숨긴 채 뒤돌아 수하들을 바라보며 물었다.

“내가 왜 여기에 왔는지 알고 있나?”

“황폐화된 토지를 복구하기 위해서가 아닙니까?”

의외로 내 질문에 대답을 한 건 고드프리였다. 아니, 의외랄 것도 없었다. 그는 굉장히 열약한 상태의 십자군을 말 그대로 똥꼬쇼를 하면서 이끌었으니까.

그의 처절한 몸부림은 예루살렘을 점령한 뒤에도 계속됐는데 말이 성지지 실상은 적들에게 둘러싸인 땅덩이에 불과했다.

결국, 자체적으로 물자를 보충하고 병력을 유지하며 도시를 지키기 위해서 그는 할 수 있는 모든 걸 다 해야 했다.

그리고 그중에 먹는 것만큼 중요한 건 없기에 농업에도 많은 신경을 썼고 그때의 경험 때문인지 그는 농업에도 나름 조예가 깊었다.

“역시 대단하십니다. 척하면 척이군요.”

이런 게 바로 짬에서 나오는 바이브지. 나는 만족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수하들을 향해 몇 마디 더 덧붙였다.

“이렇게 급속도로 오염된 토지는 그대로 방치하면 다시 재생할 때까지 긴 시간이 걸린다네. 그 때문에 중화시켜주거나 오염의 원인을 제거해야 될 필요가 있지.”

“그렇습니다. 시간과 돈, 노동력이 많이 들긴 하겠지만 이걸 그대로 덮어놓고 있다가 나중에 다가올 후폭풍을 감당하는 것보단 나을 겁니다.”

한번 피를 본 일이 있었는지 고드프리는 확신에 찬 목소리로 얘기했고 나는 아까부터 지원사격을 해주는 고드프리를 힐끗 쳐다보았다.

그 역시 나를 바라보더니 작게 윙크했는데 역시나 나를 지지해주려는 행동이었다.

비록 이들이 내 수하라지만 아직 내가 이들 앞에서 증명한 게 없었고 태생이 야만인이었기에 알게 모르게 내 행동에 불만을 품을 수도 있었다.

수하로 들어왔으면서 주군을 의심하는 게 말이 되냐고 할 수 있는데 원래 신뢰라는 게 하루아침에 쌓이는 건 아니잖은가.

애초에 이들은 힐데나 이비, 칼리나처럼 긴 시간을 들여서 관계를 쌓은 것도 아니고 단순히 서로 간에 원하는 게 있어서 맺어진 계약관계였다.

그 때문에 인망이 있으며 이미 스스로를 증명한 고드프리가 나를 대놓고 지지해 줌으로써 다른 이들의 불안과 불만을 종식시키는 역할을 해준 것이다.

굳이 비유하자면 촉의 위연이 낸 자오곡 계책을 제갈공명이 지지해준 느낌이다.

단순히 위연의 계획을 들었을 때는 고개를 갸우뚱하며 ‘어, 틀린 말은 아닌 것 같은데 네가 말하니 좀 그러네?’ 같은 느낌이지만 제갈공명이 탁월한 계책이라며 적극적으로 지지한다면 다른 이들도 믿고 따르지 않겠는가.

머리만 잘 굴러가는 줄 알았는데 사회생활도 만렙이군. 하긴, 그 정도 나이라면 볼 거 못 볼 거 다 봤을 테고 내가 본인에게 어떤 스탠스를 기대하고 있는지 다 파악하고 있겠지.

“고드프리 경께서 이리 제 마음을 헤아려주시니 마음 한켠이 든든하군요. 괜찮으시다면 황폐화된 대지를 복구하는 걸 도와주시겠습니까?”

“물론입니다.”

고드프리의 지원을 등에 업은 나는 내가 이 사안에 대해 얼마나 중요하게 생각하고 있는지 알려주기 위해 이비를 껴 넣기로 했다.

“이비. 오염된 대지에서 경작된 먹거리가 얼마나 위험한지는 잘 알고 있겠지?”

“물론입니다. 주군.”

“리슐리외와 고드프리 경과 잘 협의해서 먹거리 때문에 문제 되는 일 없게 하도록.”

“알겠습니다.”

“리슐리외!”

“예. 백작 각하.”

“이븐 시나는 내 주치의이기도 하지만 뛰어난 학자일세. 자네의 정책을 도와줄 만한 지식을 가지고 있는 데다 능히 세계 제일의 의사라고 칭할 정도니 여자라고 무시하지 말고 그녀를 곧 나라 생각하며 존중해주게.”

“여부가 있겠습니까.”

“그리고 고드프리 경은 내가 더 소개할 것도 없겠지. 자네의 롤모델이라 생각하고 곁에서 모시면서 고드프리 경의 모든 것을 배워두게. 분명 크게 도움이 될 걸세.”

“명을 받들겠습니다.”

내가 행정의 총괄을 리슐리외에게 맡기고 노골적으로 그를 밀어주자 각자 치안과 예산을 맡고 있던 오토와 필리프는 굴러들어온 돌인 리슐리외를 경계했다.

하지만 그의 가문이 생각보다 별 볼 일 없다는 것과 오토나 필리프 둘 중의 한 명에게 힘이 쏠리는 것보단 차라리 제3자에게 몰리는 게 낫다고 생각했는지 리슐리외를 별 불만 없이 받아들였다.

그 때문에 나는 눈치 보지 않고 그를 키우는 게 가능했다. 고드프리가 달라붙는다면 금방 유능한 행정가로 성장할 것이다.

“필요한 노동력은 마을 곳곳에 난민들이 많을 테니 그들을 징집해서 사용하게. 하루 두 끼의 식사와 약간의 일당을 지급하면 군말 없이 수행할 걸세. 만일 거부한다면 다소 강압적인 방법을 사용해도 상관없네.”

“제 임의로 군사력을 동원해도 괜찮다는 말씀이십니까?”

군사권은 오로지 영주인 나의 권한이었기에 리슐리외는 조심스러운 표정으로 물었고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군사 동원은 오토와 협의해서 적당히 차출하게. 오토. 문제없겠지?”

“가벼운 경상자들을 포함한다면 10명 내외 정도는 괜찮을 겁니다.”

“그렇다는군. 더 자세한 건 둘이 알아서 협의하게.”

그리고 또 누구의 협조를 받아야 되더라? 잠시 생각하던 나는 떨떠름한 표정을 짓고 있는 필리프의 이름을 불렀다.

“필리프.”

“예. 백작 각하.”

고개가 꽤 뻣뻣하던 필리프도 결국은 오토처럼 내게 고개를 숙였고 고드프리를 제외하면 깔끔하게 서열정리가 됐기에 나는 그에게 거리낌 없이 하대했다.

“힘들겠지만 예산을 짜내보게. 지금 우리 상태가 파산하기 일보 직전인 건 알고 있네만 그래도 황폐화된 땅을 복구시키는 게 최우선이네.”

“굉장히 힘들겠지만… 최선을 다해보겠습니다.”

“근시일 내로 제노바에서 추가적인 지원이 들어오면 예산을 몰아줄 테니 그때까지만 참게.”

“알겠습니다.”

“리슐리외, 그대는 말했듯 땅의 복구에 전념하고 이에 대한 계획안을 만들어 가져오게. 일주일이면 되겠나?”

“사흘이면 충분합니다.”

“자신감 넘치는군. 좋아. 그럼 그 부분은 믿고 자네에게 맡기도록 하겠네.”

그렇게 최우선 과제의 분배를 마친 나는 다시 말 위에 올라 순시를 이어갔다.

평상시에는 가볍게 지나갔던 것들이지만 통치자의 눈으로 보니 문제가 되는 부분이 눈에 밟혔기에 눈살을 찌푸리며 얘기했다.

“혹시 도로 정비는 가능하겠나?”

로마가 커질 수 있던 건 수많은 이유가 있겠지만 나는 도로가 꽤 큰 지분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한다. 실제로 이 게임에서도 가도가 얼마나 잘 정비되어 있고 치안이 잡혀있느냐가 도시 개발의 척도였다.

기본적으로 교통이 편리해야 사람들이 많이 몰리지 않겠는가. 이건 시대를 막론하고 불변의 진리였다. 당장 서울과 지방에 놓인 지하철의 숫자만 봐도 확실히 알 수 있지 않던가.

거기에 추후 알렉산드리아를 비롯해 이집트와 교역을 할 때 해상에서 물건을 가져와도 운반에서 막히면 답이 없지 않던가.

전시에는 군사를 빠르게 파견할 수 있음은 물론이요, 보급로로 사용할 수도 있으니 도로의 유용성은 더 말해봤자 입만 아플 지경이었다.

“그런 대규모 토목 사업은 지금 예산으로는 절대 불가능합니다. 향후 상업 도시의 역할을 수행하기 위해 도로가 얼마나 중요한지를 부정하는 건 아닙니다만 지금은 안 됩니다.”

“지금처럼 노동력이 남아돌 때 처리하는 게 제일 좋긴 한데… 그 부분은 자네 말대로 하지.”

그 뒤로도 나는 각자에게 맞는 역할과 일감을 부여하며 시찰을 이어나갔다.

“아, 그러고 보니 고드프리 경. 지금 당장은 아니더라도 근시일 내에 알렉산드리아에 가주실 수 있으십니까?”

“백작 각하께서 명하신다면 그곳이 불구덩이라도 가야지요.”

그의 부드러운 농담에 나는 피식 웃으며 말을 이었다.

“이전에 말씀드린 것처럼 제노바의 상단이 이곳에 자리 잡는 대로 알렉산드리아와 무역을 해 볼 생각인데 그전에 이집트의 술탄인 살라딘을 만나 그쪽의 상황을 파악하고 이쪽의 의견을 타진해 주십시오.”

“살라딘이라… 알겠습니다. 토지 정비가 끝나는 대로 갔다 오겠습니다.”

“자세한 내용은 나중에 따로 불러서 말씀드리겠습니다. 크게 급한 일은 아니니 준비만 하고 계시면 됩니다.”

리슐리외에 고드프리까지 임무를 부여한 나는 마지막으로 벨렌테를 바라보며 지시했다.

“벨렌테. 제노바에서 기술자들은 언제 건너온다고 했나?”

“사흘 내로 투자금 및 상단을 구성할 인원들과 함께 도착할 겁니다.”

“잘됐군. 니스를 항만으로 쓰려면 추가로 이것저것 건설해야겠지만 니스 인근은 그렇게 파도가 쎈 편은 아니니 당장은 기존에 해적들이 쓰던 걸 보수해서 사용하도록 하게.”

기본적으로 항구는 배만 정박하면 그만이었지만, 항만은 거기에 [email protected]로 하역 시설이나 상업 시설들을 지어서 종합적인 역할을 수행할 수 있게 만들어 놓은 것이다.

비유하자면 항구가 그냥 커피라면, 항만은 TOP라고 할 수 있겠지.

“그 부분에 관해선 나보다 자네가 훨씬 더 잘 알 테니 딱히 터치하지는 않겠네만, 보고서는 올리도록 하게. 행정적으로 협조해야 할 부분이 있다면 리슐리외에게 얘기하고.”

“알겠습니다.”

그렇게 나는 영지 곳곳을 쏘다니며 각자에게 업무를 부여함과 동시에 그들이 가진 고충이나 건의사항을 들었다. 애초에 나는 순시를 빙자해 수하들 간의 친목을 도모할 생각이었다.

아무리 내가 이곳의 영주라지만 모든 걸 내 맘대로 할 수는 없었다. 애초에 그럴 거면 이들을 부른 이유가 없지 않던가.

거기에 나에 대한 호의나 호감도는 둘째 치고 충성도가 일정 수치 이하로 내려가면 얼마든지 날 배신할 수 있었기에 지속적으로 이런 부분을 관리해줄 필요성도 있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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